주남지 홍련
칠월 초순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장마가 시작되어 보름이 지난다만 우리 지역 강수량은 아직 흡족한 편 아니다. 그간 비구름이 뭉쳐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장마는 중반으로 접어들지 싶다. 근래 며칠 장맛비 틈새 이른 아침에 근교 들녘으로 나가 벼들이 자라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놓았다. 지기들에 아침이면 보내는 시조는 ‘칠월 들녘에서’로 한 수 엮어 안부를 전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른 시각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원이대로로 나가 5000번 간선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1번 마을버스로 바꾸어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가월마을을 거쳐 주남저수지에서 내렸다. 다른 승객들은 대산 산업단지나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는데, 나는 학생이라 주남저수지를 생태학교로 삼아 자연 탐방을 나선 길이다.
근교로 나가는 손님이 산업단지나 강변 들녘까지 가는데 도중 주남저수지에서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생업에 바쁜 일터로 가는 이들에게 한가로이 산책을 나선 뒷모습을 보여 기사나 남은 승객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호사스러운 유람을 나선 처지도 아니고 학생 신분으로 발품을 팔아 자연학교 현장 탐방을 나서는 걸음이기에 마음 걸려 하지 않았다.
주남저수지 산책로도 드니 새벽에 잠시 듣던 빗방울은 그쳤다. 차라리 빗방울이라도 들어 더위를 식혀주어도 좋을 듯했는데 장마를 무색하게 하는 날씨였다. 새벽하늘에 낮게 드리워 끼었던 구름은 점차 엷어져 갔다. 산책로 들머리에는 한 인부가 예초기를 짊어지고 모터 소리를 일으키며 풀을 잘랐다. 이른 시각부터 일을 시작해 한낮은 작업을 중단하고 그늘에서 쉬어야 할 듯했다.
둑길 산책로를 걷다가 탐조 관찰 구역에서 저수지를 들여다보니 수초가 엉켜 뒤덮고 있었다. 마름이나 생이가래가 주종을 이룬 속에 연들도 뒤질세라 세력을 떨쳐 자랐다. 꽃대가 밀어 올린 봉오리에서 붉은 꽃잎을 펼쳤다. 탐조대 근처에 이르러 둑길 아래 연지로 내려서니 연밭에서는 홍련이 피어나 아름다웠다. 몇몇 사진작가들은 포신처럼 커다란 카메라로 개화 장면을 조준했다.
나는 고작 휴대폰으로 찍는 풍경 사진이기에 작가들 틈에 기가 죽어 그들 가까이 가질 못하고 멀리 감치 떨어져 앵글에 담았다. 연꽃 단지 꽃은 물론 뒷모습이긴 하지만 출사 나온 작가들까지 구도에 넣었더니, 그게 오히려 작품 사진으로 써도 될 듯했다. 풍경 사진은 아침 해가 뜨기 전후 30분과 해가 넘어가는 일몰 전후 30분이 가장 적기인데, 작가들은 그걸 알고 나타났더랬다.
연지에서 둑길로 올라와 주천강이 시작되는 배수문까지 걸어 낙조대 쉼터에 한동안 앉았다. 앞으로 주남마을에서 가술까지 더 걸어야 할 들녘 들길이 십 리는 족히 될 듯했다. 카톡으로 안부가 오가는 몇몇 지기들에게 주남저수지에서 피는 홍련과 들녘 풍경 사진을 실시간으로 날려 보냈다. 이후 둑에서 들녘으로 내려서 주남마을을 거쳐 신동에서 가술까지 농로를 따라 냅다 걸었다.
주남마을을 지날 때 풀을 뽑은 농수로 언저리 팥을 심는 할머니는 뵈었는데 일을 거들어줄 여건이 못 되어 미안했다. 신동마을을 지날 때도 역시 한 할머니는 웃자란 콩을 가위로 잘라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잎이 무성한 콩은 줄기를 잘라 낮추면 꽃이 피는 꼬투리가 튼실해져 결실이 잘 됨을 익히 알았다. 가술에 닿아 테이크아웃 냉커피로 더위를 식히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국도변 시골 초등학교 울타리와 이웃한 느티나무 아래서 서성이다 아침에 주남저수지를 거쳐오며 남겨둔 사진을 꺼내 봤다. “갯버들 우거진 숲 물총새 새끼 치고 / 마름에 생이가래 수초가 뒤덮여도 / 연잎은 어깨를 맞대 세력 좋게 자란다 // 고니가 놀다 떠난 탐조대 앞들 연지 / 한여름 다가오자 봉오리 솟아올라 / 꽃잎은 하늘을 열어 불국 정토 펼친다” ‘주남지 홍련’ 전문이다. 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