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시의향기 - (738) 생명을 함부로 하는 일이야말로 수라/ 문학평론가 나민애

[화룡이(이창모)]

생명을 함부로 하는 일이야말로 수라

티스토리/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수라(修羅) - 백석(1912∼1996)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찌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식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한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와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1912-1996), 「수라(修羅)」 전문

이 시는 실화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거미 한 마리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밤, 시인이 앉아 있는 자리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시인은 무심코 그것을 문밖으로 내던진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 다른 거미, 그것도 큰 거미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시인은 마음이 찌릿해진다. 큰 거미는 어미 거미겠지. 아까 그 작은 거미를 찾으러 왔겠지. 이런 생각에 시인은 몹시 미안하다. 그래서 큰 거미를 작은 거미 버린 곳으로 보내준다.

이러고 말았으면 실화는 시가 못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정말 작은 새끼거미가 등장했다. 그 새끼는 얼마나 작은지, 집중해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발이 보일 정도로 작다. 그 거미를 보고 시인은 가슴이 메어온다. 너는 분명 아까 작은 거미의 동생이고, 아까 큰 거미의 아가구나 싶다. 졸지에 형도 없어지고, 어미도 없어졌으니 이 작은 것은 어찌 살까. 형도 어미도 멀리 내던진 시인은 미안한 마음에 쩔쩔맨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시인 백석이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 예명인 ‘석’도 멋진데 ‘기행’이라는 본명마저 멋지다. 그는 마치 전설처럼, 멋지지 않은 부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국적으로 잘 생긴 미남자에, 먼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거리는 곱슬머리였다. 한 여인의 목숨 같은 사랑을 받을 만한 남자였다. 그런데 이렇게나 멋진 남자 백석은 마음이 가장 멋지다. 이 시를 보면 알게 된다. 이 사람의 마음은, 나노 사이즈만큼 섬세한 공감대들로 가득하다. 미물이라고 소홀히 할까. 작고 여리다고 무시할까. 멋진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백석은 말한다.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하는 일이야 말로 수라, 지옥이라고. < ‘나민애가 만난 토요일의 시, 내게로 온 시詩 너에게 보낸다(나민애, 밥북,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 7.11. 화룡이) >

[의초 이정석]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하는 일이야 말로 수라,
지옥이라고.
수라(修羅 는 지옥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멋진 남자 백석은
마음이 가장 멋지다.

멋진 남자도 마음이 멋져야 되는 모양입니다!

[화룡이(이창모)]

겉멋만 멋진 사람을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멋진 사람을 1번으로 꼽는 까닭이 뭘까요?

고맙습니다.

[화룡이(이창모)]

일상에서 나도 시인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은 그 상황을 한 편의 시로 승화시켰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시인은 시를 남겼고, 나는 한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무엇이 이와 같은 차이를 가져왔는가?
2023.7.11. 05:00, 까만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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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이(이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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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겪고 후회하는 것처럼,
글자로 붙잡아 두었는가,
아니면 흘려보내고 말았는가의 차이 아니겠는지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문자로 생각의 자취를 남기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7.12. 05:16,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