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주회를 다니다 보면 소문 난 잔치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진짜 알짜
배기 연주회인데도 관중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관중들의 연주회 체험이 지나치
게 소문 중심으로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는 때문이기도 하고 기획사 측의 안일한 대응 때문
에 그럴 수도 있다. 이번 경우는 어느 경우인지는 모르겠으되,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레온
플라이셔 초청 연주회]도 마찬가지였다. 연주 자체는 너무나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
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를 다한 연주로 관객에게 보답한 연주회,
뭐 대충 그런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연주회 체험에는 자기 나름의 방식에 중요하다. 레온 플라이셔의 연
주 역정은 문자 그대로 인간 승리다. 오른손 마비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양손 연주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 단련을 계속한 점, 그리하여 그만의 연주기법을 터득하게 된 점등이 그렇
다. 37살의 나이에 근육긴장이완증으로 오른손 마비가 오고, 30년 이상 왼손만으로 연주를
하다가 다시 오른손 연주 시작. 그리하여 이제 70대 후반에 이른 피아노의 노대가가 보여주
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그 귀한 체험을 같이 나누고 싶어 마누라와 두 아들놈들을 전부 동
원하고 연주장을 찾았다. 5월 27일 7시.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레퍼토리를 보면 슈베르트 중
심으로 라벨 곡이 하나 들어가 있다. 슈베르트의 [환상곡 Fm]는 4 손가락을 위한 곡으로 라
벨의 [라 발스]는 4 손가락을 위한 편곡으로 그의 부인인 캐더린 제이콥슨과 협연을 하고,
휴식 시간 후의 슈베르트의 [소나타 Bb. D.960]은 그의 독주 무대이다. 약속시각이 7시보다
10분쯤 지난 7시 10분에 나타났는데, 두 분 다 검정색 의상으로, 캐더린 제이콥슨의 의상
은 이걸 뭐 반짝이 옷이라 하나? 연주 중에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시선을 끌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요란하게 화려한 의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질박한 편에 속하는 의상이었다.
어찌 보면 관중의 시각을 현란하게 만들기보다는 연주에 충실하겠다는 의사 표현인 듯.
첫곡 슈베르트 [환상곡 Fm]. 연탄(煉炭)곡이면서 4개의 악장이 중단없이 이어지는 곡이
다. 왼손으로 시작하여 오른손으로 넘어가기. 아! 이 감미로운 선율. 마치 영화음악의 한 소
절같은 느낌을 준다. 약하게 시작하여 잠시 부풀다가 가라앉으며 영롱하게 빛난다. 격렬하게
치달리다 반복하기. 연주의 성격은 정통적이기보다는 다소 뉴에이지 풍으로 칼라 짙은 해석
에 의한 것. 나중에는 고음부 손가락과 저음부 손가락의 차별이 강하게 드러나며 강력해진
다. 그러다 다시 또 다른 주제의 감미로움으로 흐르다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그러다 이제
는 경쾌함으로... 두 사람의 어울림이라고 해야 하나? 참 자연스럽다. 고음부와 저음부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면서도 일체감을 뽑아내는 탁월한 연주, 이렇듯 상반성 속에서 일체감을
이룩함이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역설이다. 힘의 구사에 있어 특히 두 사람의 호흡일치에
주력한 듯,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안정된 형태를 보인다. 같은 소절이 반복되며, 편
안한 마음과 감미로운 서정에 잠기게 된다. 장쾌하게 끝을 맺듯 뚝 멈추더니, 다시 처음의
감미로운 선율로 넘어간다. 4악장인가 보다. 정말 이 선율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
하고 있다. 고음부 주자는 가끔 오른손만을 사용하기도 하며, 감정의 고도를 적절하게 상승
시키며 조절하더니, 이어 저음부와 고음부의 주고받기가 이루어진다. 이제 마지막인가 보다.
어떻게 저대도록 4 손가락의 감정 고도 조절이 잘 이루어질까? 마치 한 몸이 된 듯. 한 몸
에서 4 손가락이 뻗어 나와 연주를 하는 듯... 이제 한껏 격정적으로 치오르다 뚝 그치며 다
시 처음으로... 피를 말리는 구만! 그리하여 잔잔하게 종결. 조용히 길게 끌며 종결. 시각 7
시 30분
다음 곡은 라벨의 [라 발스]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세계를 차츰차츰 분명히 드러내면서
멋진 왈츠 춤을 추는 현장을 보여줌은 그의 [볼레로]와 더불어 참 특이한 느낌을 갖게 하는
관현악 곡인데, 피아노 연탄(連彈)용으로 편곡하면 그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다..
저음에서 시작하여 형체도 없이 웅얼거리기. 고음부는 단속적인 음만 울리고 저음만 계속
웅얼거리기. 고음부가 저음부로 내려 가기도 하고, 형체도 없는 듯, 멜로디가 보일 듯 말 듯,
아슴아슴 보일듯 말듯, 그러면서 저음부는 계속 웅얼대고... 그러더니 이제 고음부에서 제법
멜로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저음은 계속 웅얼거리지만 곡은 이제 힘찬 왈츠 풍으로 변모
하기 시작. 그러다 저 멀리에서 보이는 듯, 다시 아스라한 소리의 운무로....마치 구름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음악의 모습처럼.... 그러다 두 사람이 같이 폭발적으로 강력해지면, 리듬감
이 확실히 살며 곡의 형체가 제법 뚜렷해진다. 그러면서도 특히 고음부를 중심으로 한 특유
의 멜로디 구축을 확실하게 한다. 그러면서 계속 희미함과 또렷함의 반복. 그러다 고음부 쉬
고, 저음부만... 다시 같이 어울리며, 멜로디를 번뜻번뜻 보여주다 묘한 형태로 멜로디 구축.
그러다 다시 오른손의 격렬함. 그것을 이은 왼손부의 힘참. 그리고는 다시 카오스로,,, 그 왼
손 부에서 오른손 부로 넘어 오기. 그러다 혼란스러운 듯 한 속에서 형체를 잡아가며 곡의
총체적 리듬감을 잡아간다. 그 혼란스러움을 뚫고 이제 멜로디가 한층 더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절묘한 조화. 마지막 부분에 와서, 그런 면이 너무나 뚜렷하
게 부각된다. 격정적으로 같이 뚝 끝내더니, 그 결렬함으로 카오스 속의 코스모스를 그 찬란
한 비상을, 그 숨가쁨을 같이 공유하며, 더더욱 찬란한 멜로디로... 굉장하다.! 멋진 왈츠곡조
로.. 이어 어마어마한 힘으로 퉁탕거리며 끝. 박수... 시각 7시 50분
약 20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고, 8시 10분경에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Bb, D.960] 연주가 있었다. 레온 플라이셔의 독주무대. 1악장 모데라토 악장. 조용하고 느긋
하게,,, 우르릉거리며 다정하고 그윽하게,,, 음이 또렷하다. 음이 잘게 부서질 때는 음표간의
흐름을 충분히 부드럽게 잡고, 전체적으로 곡의 흐름을 중시한 듯한 해석. 그럴싸 그러한 지
오른손 음은 더 선명하게 들린다. 오른손은 영롱함을 왼손은 힘을 강조한 흐름이 한참 계속
되더니 그 둘의 묘한 어울림을 이룩해내는 연주. 그러면서도 신중한 접근으로 연주의 엄밀
성을 놓치지 않는다. 약간 긴 휴식을 두고 처음으로... 슈베르트의 멜로디성 강한 음률이 곱
게 흐른다. 슈베르트 곡은 형식미 운운하기보다는 감미로운 멜로디만으로도 너무도 아름답
다. 좋다. 몸을 과도하게 움직이지 않고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손등을 수평으로 한 정통 운
지법으로 단지 다섯 손가락 끝만 주시하며 한 음 한 음 몰두하여 곡의 진정성을 드러내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트릴 연주의 아름다움 그 또한 슈베르트 곡의 진미가 아니겠는가?. 가끔씩
조금 기복을 보이기는 하지만 곡은 그리 큰 격렬함이 없이 고요하고 안정된 서정을 노래하
는데, 전조를 한 뒤에 고즈넉한 분위기가 되었다가 다시 영롱한 색깔로... 그러다 저음의 둔
중함. 고음의 침착함 그것이 중음과 엮어지며 이제 차차 거칠어진다. 그러다 일순 고요하게
우르릉거리며 고요하게 아까의 선율을 다시 읊조리며 고요하게 부풀듯 솟다가 다시 고음의
영롱함으로.... 이제는 스케일을 타고 저음으로 내려가다 한참을 쉰 뒤, 처음 부분으로 돌아
가 노래하듯이 우르릉거리다 계속 반복하며 고요히 전조를 하며 확 밝아지더니 다시 영롱하
게... 이제 다시 거친 벌판으로 나서는데, 그 거침도 베토벤류의 거칢은 아니다. 너무나 자그
마한 거침? 그러기에 그것은 곧 영롱함으로 이어지다 반복되는 음률 속에 정서가 농밀해지
며 착착 포개어진다. 소절간의 휴식을 충분히 준 침착한 연주. 뭐 큰 특징은 없어도 슈베르
트다운 기분을 잘 살린 연주. 조용히 첫 소절을 반복적으로 메아리치듯 종결. 우르릉거리며
종결. 시각 8시 30분
2악장 안단테 악장. 서글픈 애수를 담고 천천히 시작. 단순한 센티멘탈은 아닌 그러면서
고 소녀 취향의 새콤달콤한 애수에 푹 빠져 있다 보면 그냥 넋을 놓게 만드는 선율이다. 관
중들이 감정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느릿느릿 연주한다. 강약대
비도 비교적 온건하여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도 분위기에 잘 맞는다. 슈베르트 다운 해
석. 그냥 그 기분 그대로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약간 빨라지며 기분전환. 왼손의 단속적인
음률 위에 오른 손이 영롱하게 빛나고... 이제는 흐름에 치중한 부드러운 연주. 연주자는 몸
을 꼼짝도 않고 오로지 손가락 끝만 주시하며 연주에 몰두한다. 저 집중력! 강약의 차이를
많이 주지 않으니, 곡의 흐름이 더 강조된다. 그리하여 다시 첫 부분으로... 여전한 침착성.
그렇게 하여 펼쳐지는 서정의 세계, 그냥 그 세계 속에 푹 빠져 본다. 내 마음은 그의 손끝
에서 나오는 고음과 저음의 운무속으로 끌려다니며 무장해제가 된다. 연주를 충분히 여유롭
게 하니 감상자도 여유로와진다. 그 여유로움으로 조용히 종결. 흔들리며 종결. 반복하며 종
결. 시각 8시 40분
3악장 스께르쪼 악장. 이젠 경쾌하고 빠르게... 그런데 속도가 어떻게 되든 연주자는 꼼짝
않는다. 손등을 평평하게 하여 손가락만 제자리를 찾아 침착하게 움직이기. 다시 반복하기.
이제 왼손과 오른손이 박자를 나누어 가지며, 제법 엄숙하게 베토벤의 비창 선율같은 멜로
디를 뽑아내다가 다시 처음으로.... 그리고 다시 반복, 분위기는 시종여일한데, 그 분위기 그
대로 조용히 종결,
4악장 알레그로 악장. 자못 비장하게 시작. 하지만 슈베르트가 비장해 보아야 뭐! 차라리
귀엽기만 하다. 슈베르트의 특징은 [겨울 나그네]에서 보이는 저 뼈를 저미는 듯한 애수와
쓸쓸함이 주된 것이리라! 차라리 이번 연주는 슈베르트류의 아담한 정서가 잘 살아나는 연
주라 해야겠다. 슈베르트 감상은 보통 가곡 감상에서 피아노 곡 감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인
데, 그의 피아노 곡은 어느 한 곡 버리지 쉽지 않을 정도로 정말 대중적으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잘 살아나기는 하는데, 흐름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연주에 있어서의 순간순간 악
센트 부여는 좀 미흡한 듯하다. 하지만 낭만파의 유연한 흐름은 잘 잡아낸 연주다. 그러다
쾅쾅! 울리며 숨가쁜 옥타브 연주. 그런데 여기 와서 약간 이상하다. 옥타브 연주는 손가락
의 힘이 상당해야 하는데, 좀 딸리는 모양이다. 그 뒤에 나오는 장식음 연주도 약간 이상하
다. 연주자가 지친 모양이다. 이어 반복적으로 앞으로 되돌아가며, 감정을 정돈한다. 감정을
가지런히 정돈하더니, 다시 콰쾅! 옥타브 음의 눈부신 음률 구현. 아까보다는 낫다. 그 후에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는 타건의 힘이 대단하다. 다시 처음으로 갔다가 이제 마지막
터뜨림으로 질주. 쾅! 쾅! 쾅! 끝. 시각 8시 55분
몇몇 분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모두들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 댔다. 왜 있지 않는냐?
부산시민들의 고집 말이다. 어지간한 연주자들은 그 고집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그런
데 몇번 들락날락하던 플라이셔는 관객을 진정시키더니 아무래도 계속 연주하기는 힘들 거
같다고 한다. 마지막에 입 퇴장하는 모습은 어깨가 구부정한 모습이어서 심하게 피곤해 보
였다. 그래서 더 이상 앵콜을 강요하기도 어렵게 되어 모두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일
어섰다.
레온 플라이셔의 연주는 얼마 안 되는 관중들 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선보인 연주
다. 슈베르트의 낭만파다운 곡의 흐름을 잘 잡아내면서, 정통적 운지법으로 곡 하나하나의
엄밀성까지도 잡아낸 연주였고, 그의 부인인 캐서린 제이콥슨과의 협연도 그들의 부부사이
를 내보이기나 하듯 다정하고도 정겨운 어울림으로 멋진 하모니를 구축한 연주였다. 70이
넘은 노대가의 연주는 몸을 꼼짝하지 않고 한음 한음 신중하게 골라내며, 보다 더 여유로윤
해석으로 관중들의 마음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한 연주였다. 그 연주는 삶의 여유를 터득한
노대가의 여유로운 달관의 세계가 아닐까?
달관의 경지를 그리는 부산시민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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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레온 플라이셔 초청 연주회] 후기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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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9
05.05.29 23:4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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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쉽군요.... 저도 가고 싶었었는데...진정한 역경을 극복한 예술가의 연주는 얼마나 멋있었을까요?
울산에서 봐야할 공연 생기면 꼭 말씀하세요.ㅎㅎ
혹시 부산에서 보셨나여? , 저번 금욜 울산에서도 했거든요. 울산문화예술회관이 제 직장이라 부산에서 울산까지 오실 의향만 있으시다면 놀라운 ㅎㅎ 티켓비로 도와드렸을텐데...앞으로 클래식도 울산에서 할때 올릴께요. 잘 참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