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이 아니고, 안개는 안개가 아니다 깊은 밤 찾아와 날이 밝아 떠나간다 찾아올 땐 봄날 꿈처럼 잠깐이건만 떠나갈 땐 아침 구름처럼 흔적도 없다 당나라 백거이의 화비화(花非花:꽃이면서 꽃 아니어라)이다. 오늘처럼 안개 자욱한 아침에 딱~ 좋은 시, 백거이가 읊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무얼 하면 제일 좋을까~ 생각하다가 어제 온 월간지 하나를 읽기로 했다. 책 속에서 백거이의 시를 읽고 빙그레 미소 짓는다. 책 속에는 진병영함양군수를 소개한 글이 있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그가 30여 년간 건축사였다는 대목이었다. 그래~ 건축과 행정은 공통점이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며 읽어나가다가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공사현장을 지휘하다 보니 얼굴이 굳어 있다는 글을 읽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권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풋풋한 젊은이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빙그레 웃는다. 그는 큰 것을 이루기보단 작은 것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큰 태양빛이 되기보단 한줄기 맑은 빛이 되자고 한단다. 시작보다 마침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임기를 마쳤을 때 나 자신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맹세를 했다는 그의 결심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닭장에 가기 전에 대문 앞 부추밭의 부추를 잘라내고 풀을 뽑았다. 지난번 잘라낸 곳에서 부추가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연이어 1/3쯤 깔끔하게 만들고 풀을 들통에 담아 가서 닭장에 넣어주었다. 애완닭은 유난히 풀을 좋아해서 닭장에 다가가면 문쪽으로 몰려나온다. 고구마 줄기와 잎을 잘라서 닭장에 넣어주기로 했다. 가을이 되니 닭들에게 줄만한 풀이 별로 없어서 고구마밭 정리도 할 겸 조금씩 뜯어서 주기로 한 것이다. 닭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보니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닭도 좋아하나 보다. 식탁에 앉아서 네이버에 뜬 기사를 검색하다가 행복한 노후 탐구라는 제목에 눈이 갔다. 일본의 노후 전문가 오오에 히데끼를 인터뷰 한 내용인데 부부 공생(共生) 5계명이 재미있다. 퇴직을 하고 나면 남편이 하지 말아야 할 5가지가 있단다. 1. 아내만 따라다니는 바둑이는 No 2. 거리 두기가 부부사랑을 키운다 3. 갑자기 친한 척하면 불편하다 4. 부부는 공동 취미 없어도 된다 5. 아내를 직장 상사 대하듯 모셔라 화가에게 보여주면 뭐라고 얘기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 대답을 알 것 같기도 하여 빙그레 웃는다. 기사를 쓴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이런 내용도 있다. 워킹맘이 퇴직을 하고 나서 지역사회 여성 모임(커뮤니티)에 들어가기가 어렵단다. 그 이유는 직장여성은 남성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는데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단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은 여성들의 모임은 합리성보다는 공감과 화합을 중요시하다 보니 퇴직을 한 여성이 자신이 갈고닦은 합리성을 버리지 않으면 트러블 메이커가 된다는 것이다. 기자의 글을 읽고 아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퇴직을 하고 어머니 모임에 참석했는데 예전에 느끼지 못하던 불편함이 느껴졌다. 아파트 분양에 대한 얘기를 열심히 나누는데 대화를 하고 있는 이들 중에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없는 얘기였다. 지금 사는 집에서 이사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영양가 없는 얘기에 왜 이렇게 열심이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바빠서 점심 식사만 하고 빠져나왔기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질감이었다. 물어보면 괜히 썰렁해질까 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들과 대화를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했더랬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서 그렇다니~~ 마치 면죄부를 받은 양 기분이 좋아졌다. 일본의 오키나와는 평균 연봉이 꼴찌이지만 행복지수는 최고라고 한다. 연봉 1위인 도쿄가 행복지수는 최하위로 이런 현상을 '돈의 역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이유를 로버트 프랭크 코넬리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사람들의 행복은 절대적 부가 아니라 상대적 부에서 온다. 내가 국산차를 새로 샀는데 친구가 비싼 외제차를 사서 끌고 오면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진다. 내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다 남보다 얼마를 더 버느냐가 행복의 척도이다. 행복해지려면? 경쟁의 도시를 벗어나서 느긋한 시골에서 살면 된다는 얘기 같다. '전쟁과 평화' 마지막 권을 읽었다. 4권 15부 361장 에필로그 2부 28장 등장인물 559명의 대작을 모두 훑어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화가 덕분이다. 넉넉한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기에 책 읽기에 몰두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등장인물이 많고 생소한 이름에 별칭까지 나와서 읽기에 걸림돌이라는 안내가 있어서 아예 이름 목록을 수첩 한 페이지에 적어서 펼쳐두고 읽었다. 톨스토이는 한편 한 편의 단편을 연결하여 장편으로 만들었는데 책을 쓰기 위한 자료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가 집필하는 공간이 도서관처럼 보였단다. 그네에 앉아 4권 318페이지 내용을 읽고 미소 지었다. 주인공 피예르가 쓸개의 발열로 병이 났는데 '의사들이 치료하고 사혈하고 약을 주었는데도 그는 회복되었다'라고 썼다. 톨스토이는 의사의 치료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했단다. 인문학 강연에서 톨스토이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했단다. 이러한 열등감을 그는 작품에서 풀었는데 소설 속에 잘 생긴 사람을 일찍 죽게 만드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잘 생긴 안드레이 공작과 아름다운 옐렌은 죽지만 뚱뚱한 피예르와 못생긴 마리야는 각각 사랑하는 짝을 찾아 해피엔딩을 맞는다. 석류나무에서 떨어진 석류 하나를 주워서 잘라보니 물기를 머금은 루비가 촘촘하다. 먹어보니 새콤한 맛은 없고 달콤하다. 석류 열매가 입을 벌리기를 기다렸는데 지금부터 하나씩 따 먹어도 되는 모양이다. 석류의 계절~ 가을 한 달이 익어 오늘 뚝~ 떨어졌다. 남은 두 달의 가을도 달콤하면 좋겠다.
첫댓글 누가 이렇게 멋진 글을 쓰실까 읽다가 다시 돌아가 닉을 보니ㅡ역시 풍접초님이군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ㅡ부부는 공동취미 없어도 된다ㅡ정확한 5계명중 하나올씨다ㅡ각자ㅡ놀기가 정답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