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수요일.
아침부터 비가 제법 내린다.
망설이다 그냥 하루 일과인 등산을 빗속에서 한다.
사람은 나같은 사람 몇명 있고 산속은 조용하고 빗방울 소리만 크게 들린다.
등산중에 내가 올린글 운명에서 소개한 베토벤 교향곡 5번이 나온다.
동창회 날 어느 친구가 나를 보고 머리가 베토벤 같네 그랬는데,
나는 베토벤을 좋아하지만 베토벤을 닮기 위해서 머리를 기르는 건 아니다.
무명의 독일박사 김정운 교수가 슈베르트 머리를 하고나서 운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기른 것도 아니다.
그냥 이제는 내 인생에서 한번도 안해 본것을 한번 해 보는 것 뿐이다.
이발을 할때쯤에 만난 친구가 기른 머리가 더 좋아보이니 머리를 길러보라 했다.
그것도 좋겠다 생각하고 울산에 있는 손녀의 백일 잔치를 위해서 이발한 후로는 한번도 깍지를 안했다.
그게 벌써 6개월이다. 그러니 머리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늙은이로 살아볼 작정이라서 염색도 안하고 그냥 한번 해 보는 것이다.
모든 로망을 포기하니 인생도 허무해 지는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유를 얻는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정리 되는게 내인생도 정리될 날도 머지 않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내인생에 한번도 안해본 장발을 해본다.
아내는 날 보고 그 전에 머리를 짧게 깎았을 때에는 깍두기 조폭머리 같다고 놀렸는데 지금이 제일 보기 좋다고 한다.
베토벤을 닮으려한 사람은 슈베르트인데 거인을 닮지는 못했다.
베토벤 같아지려 노력을 했는데 결국은 그장벽을 넘지는 못한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관을 멘 여러음악가 중에 하나다.
장례식이 끝나고 베토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첫잔은 베토벤을 위해, 두번째 잔은 다음 죽을 사람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했는데 그게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다.
베토벤을 좋아해서 베토벤 옆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둘다 음악가들의 공원묘원으로 이장 되었다. 그곳엔 많은 음악가들이 묻혀있다.
그 앞에는 모차르트 묘지도 있는데 모차르트 묘지는 그냥 빈 무덤이다.
전염병이 유행할때 죽어서 많은 시체들과 합동으로 공동묘지에 그냥 묻었는데 시체를 찾을 수도 없고 해서 빈 무덤만 만들어 놨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묻혀 있는 그들의 무덤에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비엔나에 갔어도 그럴 기회는 없었다.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넘게 운집을 했다.
그 베토벤이 하도 인기가 많아서 그의 물건이라는 물건은 다들 조금씩이라도 가져갔다.
그래서 그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것은 남아나질 않았다.
모차르트 무덤은 비어있고 베토벤은 시신이 많이 훼손된 상태고 온전하게 묻힌 것은 죽기전에야 겨우 성공한 슈베르트밖에 없다.
아이러니라고 할까?
하긴 무덤이라는게 산자들을 위한 것이다. 무덤에 시신이 있고 없고는 별로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산 자들은 그 묘지나 비석을 보고 그를 기리면 그 뿐이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베토벤을 너무 큰 벽으로 생각해서 한동안 교향곡은 더 이상 쓰려 하지 못했다.
바그너는 교향곡은 안쓰고 그저 오페라를 종합예술로 생각해서 오페라 작곡을 많이 했다.
쇼팽은 연주용 피아노 곡을 많이 썼다.
녹턴이나 발라드나 듣기 편하고 낭만적인 그런 곡을 많이 썼다.
그것은 연인 조루주 상드 덕이었을 듯하다.
그의 심약함과 병약함을 잘 보살펴 준 것이 남장을 하고 다니는 걸출한 여성 조루주 상드다.
그녀 때문에 쇼팽은 좀 더 많은 작곡을 할 수가 있었다.
우리한테 많은 곡을 남겨 우리의 가슴을 적셔 준다.
리스트는 교향곡을 쓸 자신이 없어서 한악장인 서곡을 발전시킨 4악장인 교향곡을 스토리 텔링의 한악장으로 회귀한 교향시를 새로 발명을 했다.
그리고 그는 쇼팽과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는데 서로 존경하면서 서로 닮지는 않고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은 상당히 친한 사이가 됐다.
사랑꾼 리스트는 그가 좋아한 한 여인을 평생 그리워 했지만 그당시 최고 인기의 아이돌인 그에게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백작부인과의 사이에 사생아 딸 코지마가 있었다. 그녀는 결혼 후에 아버지 친구인 바그너와 바람을 피워 사생아를 낳았다.
스위스로 추방된 두사람은 거기서 재혼을 했다.
리스트와 코지마는 리스트가 거의 죽기전까지는 서로 외면하고 살다 죽기 바로전에야 화해를 했다.
리스트는 그가 좋아하는 여인을 기다렸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동안 죄를 많이 지었다고 회개해서 신부가 되었다.
쇼팽
발라드1번
https://youtu.be/BSvhsw2sCBQ?si=_fE942HJMtU8cUw9
마주르카
https://youtu.be/6voEVbgABEM?si=n41JIx8_y5YssRqz
브론스키 공작과 안나 카레리나가 폴란드 평민들의 춤 마주르카를 추면서 육체적으로 불붙었는데 하물며 그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한 육체적 접촉이 더 심한 왈츠라면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생겨났을지 짐작이 된다.
폴로네이즈 6번 영웅
https://youtu.be/wWUKM1X-qPc?si=u3nM7lyqF95qDM5C
쇼팽 은 애국심이 강해서 폴란드 흙을 가지고 다녔다.
그가 죽자 시신은 프랑스에 심장은 그가 그렇게 사랑한 조국 폴란드에 묻혔다.
내 생각에는 그자신이 영웅이다.
마주르카나 폴로네이즈 폴란드 춤곡을 피아노 곡으로 작곡을 많이 했다. 왈츠곡과 연습곡도 많이 작곡을 했다.
폴란드 역사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체코와 항가리는 별저항도 못하고 항복해서 고풍스러운 유적지가 많은데 끝까지 저항한 바르샤바는 거의다 파괴가 되어 전부 새로 건설해야 해서 유적지가 별로 없었다. 지하의 소금 광산과 아우슈비츠 유적지 정도가 괸광 거리라 할 수있다. 러시아 때문에 망명한 쇼팽 곡을 러시아 사람 호로비츠가 연주하는게 아이러니이다. 조성진 폴리니 루빈스타인 연주와 비교하니 제일 좋은것 같아서 선곡했다.
빗방울 전주곡
https://youtu.be/2mz-zejexRc?si=GoePWHDg5JtKRku2
빗속에 외출한 상드를 기다리며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쓴 곡이다.
어제 아내를 동반해서 연산에 있는 나보다도 음악을 더 좋아하고 그림도 그리며 교수를 은퇴하고
틈나는대로 농사를 짓고사는 제대로 전원 생활을 하는 친구를 방문했다.
그친구는 교수 은퇴할때 음악 감상을 위해 진공관 오디오 셋트를 자기 자신에게 선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전문가다.
바그너를 아주 좋아해서 디오니스적인 예술만이 현대인을 구원 할수있다 라고 신은 죽었다고한 니체의 생각과는 달리 신을 믿으면서도 예술 활동을 한다.
니체는 혼자 좋아한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 때문인지는 몰라도 후일에는 바그너를 원수같이 미워했다.
그의 생각도 바뀌었을까?
니체의 생각대로 지금 현대는 음악과 드라마나 영화등 예술이 신 보다 더 영향력이 있기는 하다.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고 커피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창밖에는 소나기 비가 많이 온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비구경 하는것이 제법 분위기가 좋다.
상드를 기다리며 작곡한 빗방울 전주곡이 오늘 분위와 아주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