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먼저 갈께요~

[풍접초]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작가의 전화기가 아니다. 그냥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 듣다 못한 화가가 모닝콜 좀 꺼 달라고 한다. 모닝콜을 끄면서 그러게 왜 모닝콜을 해 놓느냐고 한마디 했다. 어제 아침 화가의 전화기 모닝콜 예약을 죄다 죽였는데 어느새 살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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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콜을 하지 않은 지가 좀 된 것 같다. 어느 날 가만 생각해 보니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스케줄을 가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는데 왜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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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연에서 들은 얘기에서 더욱 용기를 얻었다. 자연과 친하게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오늘날처럼 지나치게 부지런하게 만든 사람들이 일본인이라고 한다. 해방이 되고 난 뒤에 더욱 심해졌는데 근대화를 추구하다 보니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게으른 것으로 보이게 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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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논밭에서 일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러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여 도시에서 살다가 들어온 이가 그 시스템에 맞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모닝콜을 맞춰놓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을 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왜 그랬을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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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한 뒤에 정수기 필터를 갈았다. 1년에 한번 갈아 끼우는 필터인데 할 때마다 서툴다. 갈아 끼우고 나면 물이 넘쳐서 쩔쩔매기도 하고 끙끙대기를 매번 반복하다 보니 정수기에서 필터를 갈아달라고 삐삐 소리가 나면 목 뒷덜미가 뻐근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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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쉽게 갈아 끼웠다. 설명서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가~ 아무튼 제대로 마치고 나니 화가가 칭찬을 해 준다. 당신 대단해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제 내가 없어도 혼자서 잘 살 것 같아 안심이 되오.라고 덧붙인다. 이건 예전에 작가가 화가에게 했던 멘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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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심코 건넸던 '내가 없어도 혼자서 잘 살 것 같다'라는 말이 얼마나 가혹한 말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 목록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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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오늘 만난 두 명의 싸가지 남자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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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는 작가가 지팡이를 짚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만났다. 그는 고관절이 아픈 것은 폐가 안 좋을 때도 온다고 하면서 친척 중에 한 사람이 고관절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더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픈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잘 살피라는 배려의 얘기로 알아 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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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서 그 친척이 주식을 했는데 폐암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 짓(주식하는 것)'을 했고 결국은 죽었다는 것이다. 육십하나에 죽었어요~ 그 얘기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목욕탕 건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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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남자는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만났다. 작가가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오니 웬 남자가 큰소리로 그렇게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오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이게 웬 말인가 했더니 자신이 등산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등산지팡이에 대하여 잘 아는데 끝이 고무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거나 할 때 물기가 있는 곳을 딛게 되면 미끄러져 사람이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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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와서 화가의 지팡이 끝을 들어서 보여주기까지 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쌍으로 했다. 그를 뒤로하고 차를 타러 가는데 '내가 나이가 칠십다섯인데 사람들은 내 나이로 보지 않아요. 건강은 젊었을 때 잘 지켜야지요~'라고 한다. 계단 앞에서 채소 장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하는 얘기 같은데 작가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이고 딱 맞는 그 얘기가 어찌 그리 가슴을 후벼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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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고 있는 화가 옆에서 '쳇~ 팔십은 너끈하게 넘어 보이던데~ 머리 염색하지 않고 거울 한번 보라지~'라고 했다. 위로의 말이라고 하는 말들이 얼마나 가혹한 말인지~ 어제 이전에 작가가 바른말이라고~ 옳은 말이라고 사람들에게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싹수없는 말이었는지 ~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하지만 어쩌랴~~ 그때는 어렸으니 말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되돌아보면 또 얼마나 많은 잘못된 말들을 하며 살았다고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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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어도~라는 화가의 말이 떨어져 콩고물이 묻기 전에 답을 했다. 무슨 말이에요. 일본 사람들이 엄청 추앙하는 성덕태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부인을 간호하다가 부인이 먼저 가고 나니 그다음 날 죽었대요.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지요. 작가가 하루 먼저 갈게요. 화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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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태자 얘기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에게서 들었다. 그는 빛은 한반도로부터~ 일본 역사 제대로 알기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몇 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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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꽤 감동받으며 읽었다. 책 속에 나오는 곳을 가게 되었을 때는 그 감동이 몇 배가 되었고 수년이 지나 다시 그곳을 가서 소중한 유산이 파괴된 것을 보고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5000년 역사를 가져서 전국 방방 곳곳이 문화재이지만 매일매일 부수며 산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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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를 알려면 한반도만 보아서는 잘 보이지 않으니 동아시아 속에서 보아야 한단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을 알아보자고 한다. 우리는 일본이 자랑거리를 가지고 나오면 '그거 다 우리가 해 준거야~'라고 한단다. 왜 그렇게 말할까? 그 근거를 대라고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는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꽤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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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년 전 고조선이 멸망하고 우리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었다. 야요인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요시노가리'였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쌀농사 이모작이 가능한 비옥한 들판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10만 명이 채 안 되는 토착 조몬인이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인구가 50만 명으로 불어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인구의 70%가 바로 야요이 한국인이었다. 야요이 인과 조몬인의 혼혈이 일본인이라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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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가의 역사에 대한 설명도 재미가 있다. 일본의 천황가 자손은 호족이었다. 천황가의 며느리는 소가씨 집안사람이었는데 일본의 혼인제도는 '방초혼'이라고 결혼을 하고서도 각자 자기 집에서 살다가 필요시 남자가 처가를 방문하고 아이를 낳으면 외가에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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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씨는 백제 개로왕이 사망하고 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나라 사람이란다. 소가씨 집안 사람들은 백제에서 갔으니 당연히 불교를 믿으니 토호세력 모노노베 집안이 반대하여 싸움이 일어났다. 소가씨와 모노노베의 싸움에서 소가씨가 승리한 뒤에 천황을 죽이고 스이코 여왕이 자신의 아들 성덕태자(쇼토쿠태자)를 세운 뒤에 섭정으로 직접 통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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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성덕태자는 무척이나 존경을 받는단다. 그 성덕태자가 622년 자신의 부인이 죽고 하루 뒤에 죽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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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부인보다 조금 먼저 가기를 바란다. 아닌가? 그런데도 하루 먼저 가겠다는 얘기에 침묵으로 긍정하는 화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화가가 보기에 혼자 두기엔 안심이 안되는 사람이 작가이니 말이다. 인정~인정한다. 제1의 인생에서 화가는 언제나 작가의 지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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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먼저 갈께요~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푸근하다. 다시 정정해서 말하는 게 어떨까. 하루 뒤에 오세요~

[살구]

잘 읽었 습니다

[그리움(수원-강릉)]

같이 가시는 것은요?
하지만 나이가 적은 님은
더 늦게 와야겠지요.
제 처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