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줄기를 찾아서 백두대간에 이어 여섯 번째 정맥 답사인 한남정맥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七長山)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김포시의 문수산(文殊山)에 이르는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고, 그것이 다시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나뉘며 북서로 고도 2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한강유역과 경기 서해안지역을 분계 한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도덕산․ 국사봉․ 상봉․ 달기봉․ 무너미고개․ 함박산(函朴山)․ 학고개․ 부아산(負兒山)․ 메주고개․ 할미성․ 응봉(鷹峰)․ 형제봉․ 광교산(光敎山)․ 백운산․ 수리산(修理山)․ 소래산(蘇來山)․ 성주산(聖住山)․ 철마산․ 계양산(桂陽山)․ 가현봉(歌弦峰)․ 필봉산(筆峰山)․ 학운산(鶴雲山)․ 것고개․ 문수산 등이다.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정맥 종주대가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을 따라 문수산에서 칠장산을 향해 한남정맥 종주를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로써 112일째, 반은 산줄기에 미친 사람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짐없이 덕수궁 앞에서의 만남, 어둠이 채 가시기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정맥꾼들...
가시거리가 100m가 안 되는 48번 국도는 오늘따라 거북이 걸음이다. 시청 앞 세종로에서 출발하여 북아현동, 망원동, 성산대교를 건너 강서구 등촌동, 가양동, 공항동으로 이어지는 서울시내를 18Km를 빠져나와 다시 공항 삼거리에서 고촌, 그리고 김포시가지와 오늘 우리가 통과하는 것고개에 이어 강화대교를 통과하면서 강화읍에 진입하고, 다시 양사면 인화리에서 교동면 호두포와 연결되어야 하나 군사보호구역으로 이곳에서 72km의 종단을 맞는 한 많은 48번 국도...
드넓게 펼쳐진 김포평야의 광활함만큼이나 후덕한 인심과 풍요함이 스며나는 김포시가지를 통과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벼농사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고장 김포시... 정맥꾼들의 바램은 제발 정맥길에 들어서기 전에 안개야 거쳐라...
버스는 48번 국도를 벗어나면서 302번 군도에 접어든다. 1969년 강화대교가 건설 개통 후 폐쇄된 갑곶나루가 소재 한 곳이다. 월곶면 성동리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는 지방기념물 제108호로서 성동리와 강화군 갑곶리 사이를 배편으로 연결하던 나루터다. 갑곶이라는 명칭은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입을 당하여 강화도를 몽진 할 때 이곳이 대안과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정묘호란 당시에도 인조임금이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 당시에는 봉림대군이 수어 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인양요 때에는 격전을 치렀던 역사적 실전의 현장이기도 한곳이다. 포구곶리 버스 정유소가 보인다. 안개는 거칠 기미가 없다.
09시 30분 드디어 대장정의 시작은 보구곶리 마을길을 따르다가 마지막 집 마당을 통과하며 만나는 보리밭, “보리밭은 밟아주어야 해” 하며 앞서가는 박덕주 선배, 오름길은 6분 뒤 한남정맥 마루금에 붙으면서 오른쪽으로 한적한 정맥능선이 시작된다.
TV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첫 봉에 오르고, 5분 뒤 성동리에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을 만나면서 정맥길의 동반자인 낯익은 리본(박성태, 신원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키의 소나무숲길, 긴 오르막길은 평탄한 능선 날 등으로 이어지다가 삼각점과 비슷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바위지대를 따라 올라선 바위봉인 265봉, 안개가 자욱하니 눈뜬장님과 진배없다.
연이어 오른 바위봉인 245봉, 서서히 능선이 들어 나면서 문수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10분 가량 내려선 곳엔 좌우로 넓은 하산길이 나있고,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며 시작되는 긴 오름길이 10여분 이어진다.
능선분기점인 321봉이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정맥능선엔 산성길이 시작된다. 문수산성은 월곶면 포내리 문수산에서 해안지대를 성채로 연결한 면적이 20만 3511㎡에 둘레가 약 2.4km가 되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1694년(숙종 20년) 구축한 것으로, 강화 갑곶진과 마주보는 김포 쪽에 위치하여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도 입구를 지키는 성이다. 명칭은 문수사라는 절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취예루 공해루 등 문루와 암문이 각 3곳에 있었으며, 취예루는 갑곶진 건너편 해안에 있어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나... 1812년(순조 12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고,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과의 일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때의 격전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었고, 성내가 크게 유린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섰으며, 문수산 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가까이엔 신라 진성여왕 때 창건하였다는 문수사가 있다.
산성 위로 나있는 정맥길은 석문을 통과하고 문수산 전위봉에 오르면서 시설물이 가로막는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사면길을 따르다가 근무자의 양해를 구하고 올라서는 길이 다시 가로막는 철조망,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굳게 잠겨있어 왼쪽으로 잡목과 가시넝쿨을 헤치다가 정맥의 첫 신고(정맥꾼들에겐 여름에도 스패츠가 필수)를 단단히 치르고 올라선 곳이 넓은 헬기장이 자리잡은 문수산(△376m)이다.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고, 삼각점(문수산 21번, 61년 복구)을 확인한다.
역시나 찍사는 사진에 없어 조금은 서운하답니다. 카메라를 든 죄이지요.
김포평야의 자그마한 야산들 사이로 우뚝 서있는 문수산, 산은 낮지만 인천 앞 바다에 떠있는 월미도, 서울의 북한산, 개성 송악산까지 보이는 서부전선에 위치한 산이다.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을 점령하였던 적이 있다. 안개를 원망해야 하나 탁 트이는 조망을 한남정맥 종주기념으로 듬뿍 받으려고 했는데 욕심인가... 하늘이 트이며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마니산...
정상을 뒤로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정맥은 잡목 숲으로 7분 정도 내려서다가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이곳에서 많은 정맥꾼들이 과외공부를 했다나...)으로 들어서니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가파르게 10여분 가량 내려서다가 만나는 소나무 숲길, 그리고 내려선 곳이 차선이 없는 22번 군도인 콘크리트포장 길이다.
도로를 가로지르며 넓고 선명한 비포장 길로 정맥은 이어나간다. 서서히 오름길, 공터를 지나면서 계속되는 비포장군사도로가 정맥능선으로 나있다. 뒤돌아보니 우뚝 솟아있는 문수산, 뚝 떨어지는 선명한 정맥능선을 내려서는 정맥꾼들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산판길을 만나고 이어 산판길을 버리고 능선 날 등으로 이어지던 정맥이 군 삼각점(?)이 있는 105봉에 오르니 좌측으로 애기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애절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애기봉, 병자호란 때에 일이다. 높새바람이 기세가 봄기운에 밀리고 있을 때, 기생 애기(愛妓)는 봄의 따사로움을 만끽하며 평양감사와의 사랑을 막 피어나는 잔디 위에 수놓고 있었다나...
그런데 이것이 하늘의 시기인가, 노여움인가, 두 사람의 운명을 모질고 슬프게 만든 변란이 일어났다. 북쪽 오랑캐(후의 청나라) 의 침략과 노략질로 감사와 애기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못했으므로 걸어서 수 천리 길을 가야만 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수 천리를 걸어가야 하는 일이 힘겨운 노릇이었지만 감사를 따르는 애기는 참고 견디며 개풍군까지 왔으나, 감사는 오랑캐들에게 잡혀 북행 길에 오르게 되었다.
감사와 생이별을 한 애기는 혼자 강을 건너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기를 학수 고대 했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감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쑥갓머리산(하성면 가금리 소재) 정상에 올라 임 계신 북녘을 향해 눈물로 소리치며 애타게 기다리다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명재경각의 애기는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매일 애타게 기다리던 산정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다.
애기의 유언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장사하고 그 산을 애기봉(愛妓峰)이라 불러왔다. 지금 애기봉 정상에는 강 건너 북녘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실향민들이 향수를 달래려 자주 찾는 망향의 동산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애기봉은 북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힌 곳이지...
105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또한 철조망이 가로놓여있다. 언제쯤이면 우리의 산줄기를 이런 장애물 없이 마음 놓고 달려볼 수 있을까? 왼쪽으로 이어가던 정맥길이 철조망이 끝나면서 금녕김씨와 한양조씨 합장 묘를 만나고, 이어 오름길에 김해김씨와 경주최씨 묘지 잔디밭에서 허기를 채우는 정맥꾼들...
20여분의 식사시간 다시 출발하면서 올라선 곳이 80봉이고 역시 군 삼각점인가(?) 정맥은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짧은 거리지만 가파르게 떨어지다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가 56번 지방도다. 한번쯤은 지나쳤던 도로다. 그 때는 무심코 지나갔었는데... 도로를 가로지른다. 펑퍼짐한 능선길이 이리저리 나있다. 잠시 후 만나는 콘크리트포장길, 정맥은 한동안 이 길로 이어나간다. 5만 분의 1 지도와는 생판 다른 그림이어서 정맥꾼들은 행여나 하며 간다.
에덴농축 입간판이 나타나고 곧이어 정맥은 콘크리트포장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숲길로 들어서면서 오물냄새가 코를 찌른다. 개 사육장, 불청객이 나타나도 짓을 줄 모르는 멍텅구리 견공들을 만나면서 에덴농축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정맥은 잠시 올라선 곳이 90봉이다. 이어 십자로안부를 통과하고, 또 하나의 90봉에 올라서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키 작은 소나무 숲을 헤치다가 내려선 곳이 고운가든과 고정리 지석묘를 가리키는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아스팔트포장도로인 12번 군도다.
좌측으로 고정2리의 남정골은 이덕형이 광해군 무오에 폐 대비론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하고 영창 대군을 사사한 사건의 발단)을 반대하다 삭탈관직된 후, 통진의 한산 아래 정자를 짓고 조수헌과 매일 만나 글을 짓고 세월을 소유하였는데 그 정자 이름이 남정이라나...
또 정자의 구지에는 늙은 괴목 한 그루가 있는데 이상공이 친히 심은 것이라 전한다. 시간이 있으면 한번 들러 보시라고요...
잠시 올라선 통진면 고정리 산 62에 소재 한 지방기념물 제 91호로서 선사시대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돌맨(DOLMEN) 또는 고인돌이라 불리고 있는 고정리 지성묘를 볼 수가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선 십자로 안부에서 오르막길이 군부대 철조망을 우측으로 끼고 이어나간다. 노간주나무가 보이는 능선에 붙으면서 작은 봉을 하나 넘고 이어 올라서는 125봉은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정맥은 125봉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려서는 길이 급사면의 잡목과 가시넝쿨이 괴로운 비탈길이다. 이런 정맥꾼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어느새 노란 꽃잎을 터뜨린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
길고 긴 철조망 그리고 타이어로 만든... 다시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이어나가다 만나는 통신중계탑, 뚝 떨어지는 정맥길엔 고로쇠로 알고 수액을 채취하는 물통들이 여러 개 볼 수가 있다. 이 후 정맥능선과 멀어지면서 정맥길 아닌 정맥길...
승용아파트의 울타리를 개구멍으로 통과해야 하는 쓰라린 경험... 그리고 올라선 곳에서 캔 커피 한 잔이 그리워 먼저 달려왔다는 김수남씨가 건네주는 한 통의 캔 커피는 꿀맛이었다. 매점 앞에서의 잠시 다리쉼... 것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진행방향으로 오른쪽 보도블록이 깔려있는 길을 따르다가 교회건물을 끼고 1차선 아스팔트포장길을 따라 내려선 곳이 48번 국도가 지나는 것고개다. 끝없는 자동차의 행렬...
1시간 넘게 긴 기다림, 지금까지 선두와 후미가 별 차이 없이 이어왔는데 오늘 따라 오래 기다리게 한다. 감기 때문에 또 무엇 때문에 등등... 좀 아쉬운 것은 시작 첫 날부터 계획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정확하게 1시간 5분 후 도로를 가로지르면서 잔디밭에 절개지를 오르고 잡목 숲에 이어 소나무 숲으로 완만하게 이어나가는 정맥길...
삼각 측량점이 있는 80봉에 오르고 방향을 왼쪽으로 틀며 내려서는 길엔 솔잎과 낙엽이 수북히 깔려있는 길이다. 그리고 ROTC 3기 예비역 중위 윤정길 “충성”, 군부대를 통과한다. 그리고 낮은 포복으로 철조망 통과 별거 다하네...
정맥능선에 웬 집, 지저분한 개사육장... 폐 건물 이 있고 경주이씨 묘지 직전 밋밋한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틀며 내려서는 길이 과수원이다. 그물망을 통과한다. 그리고 긴 철조망 끼고 올랐다가 긴 내리막길, 개 사육장과 불그스레한 지붕의 공장건물을 보며 이어나간다.
철조망은 끝이 나고 정맥은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묘 지대를 통과하며 사슴농원 입간판이 서있는 콘크리트 마을길에 내려선다. 그리고 정맥 능선이 사라져버린 공사장을 통과하며 가파르게 흙무더기를 기어올라 만나는 50봉, 정맥은 왼쪽으로 팍 꺾으며 절개지 아래 커다란 공장건물을 끼고 이어지다 잠시 내려선 곳이 신성산업과 금성공업사 입간판이 서있는 통진면 마송리의 도수동 길이다.
정맥꾼들은 걷다보면 월담은 물론 철조망 개구멍도 수시로 통과해야만 했었지요^^*
마지막으로 이 추억의 사진 한 장, 이 개구멍으로 통과 했을까요. 아니면, 숙제입니다. 정답은.....
첫댓글 정답!
통과했습니다.
모두 개00될지라도 경고문을 무시해야할 사유가 있었겠지요!
보고는 통과 못하지요. 능선길은 걷지못했지만 그 후 많은 이야기 거리로 남았었지요^^*
당연히 통과지요. 왜냐하면 통과가 아니라면 얘깃 거리, 숙제 걸이가 안되는 것이니까요.
두 분 다 땡이네요^^*
이런 디테일로 적으시니, 산행 하신 후에 힘이드셨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절대 못합니다..ㅠㅠ
그래서 저는 거의 지명이, 여기, 저기, 거기, 그 있쟎아.... 아이 참. 거기!.. 로 모두 지시 대명사 입니다.^^
그리고 등산하시는 모습도 그렇지만, 그 옛날 광역버스? 아님 군내버스인지 잘 모르겠지만
옛 버스가 정겹네요... 잘 보았습니다. .... 오랜 자료.... 조금씩 꺼내 놓으시는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핑게지만 그래서 지맥 산행을 시작도 안했는지 모릅니다. 글재주만 있었으면 백두대간과 9정맥 세상에 내놓았지요. 그 때만에도 산꾼들의 꿈이었으니까요. 뭐 이미 오픈되어 있는 종주기인데 하나씩 읽어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