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의 축복과 책임
요한일서3:1-7
어느 시골에 공부를 잘하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무척 가난해서 집에 오면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엄마를 따라 농사일도 도와야 하고 엄마가 들에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면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했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데도 시험을 보면 늘 일등만 합니다.
머리가 상당히 좋았던 것입니다.
부모들도 딸아이가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돈도 없어서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느냐 일찍 돈이나 벌면 된다는 부모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 학생은 서울의 아는 사람한데 보내져서 남의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소녀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주인도 싹싹하게 일을 잘하는 이 아이를 딸아이같이 생각하며 잘 돌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십 년 이상을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주인집 아들이 소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인은 큰 병원의 병원장이었고 그 아들은 의과대학을 다니는 장래가 촉망된 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초등학교만 나온 자기를 아내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고민하면서 그 집을 나오려고 했을 때 아들의 진실을 이해한 부모님들이 그 소녀를 불렀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아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아들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아들의 청혼을 받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옛 생활과 옛 생각을 벗어버리고 이 집의 며느리로 아내로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하라.
그것이 너를 아내로 삼고 며느리로 삼은 우리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그 집의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된 그 여자는 남편의 격려에 힘입어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서 이제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는 실제 이야기가 낮은 울타리라는 월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하고 아주 비슷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떤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라는 점입니다.
셋째, 그런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격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과거에는 너희가 어떤 존재였든지 상관없이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당시 교회는 사회적으로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노예들이 태반이었고 가난한 자, 서민들, 사회적 권위와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지금은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전만이 아니라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전에 우리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던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다른 누구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노예로 팔려가 로마 군함에 탑승한 벤허는 배의 제일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신세가 됩니다.
바다의 전투에서 극적으로 사령관의 생명을 구하게 된 벤허는 그 공로로 자유의 몸이 되고 사령관의 아들이 됩니다.
아버지 사령관의 반지를 끼고 아들의 권세를 누렸을 때 벤허에게 일어나 변화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까지도 가까이 나아가서 면담을 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로마 사령관의 아들이 되어도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할 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얼마나 큰 권세를 가졌겠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2)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형편가운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그런 것 하고 전혀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에 감격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 말을 들으면서도 맹숭맹숭합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했던 존 뉴톤과 같은 감격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녀라고 해서 뭐가 바뀐 것이 있느냐?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밥 먹여 주냐? 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축복과 은혜와 권세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축복을 꼭 붙잡아야 하고 이 축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은 아버지께서 베푸신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랑의 열매입니다.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베푸신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여러 차례 들으신 줄 압니다.
이 시간에는 그 사랑을 길게 말씀드리지 않고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우선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보내신 사랑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으신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어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②그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③그렇게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가 바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완성된 구원의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대가를 지불하고서 이루어진 값비싼 은혜입니다.
이런 값비싼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은혜이기 때문에 정말 고귀한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소중하게 간직하여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은 장래에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축복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엄청나게 누리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껏 구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은 생략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 때 누리게 되는 축복을 언급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우리가 그와(주님과) 같은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모습을 보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축복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성도들에게는 누구의 자녀냐,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경험하였을 줄 압니다.
아버지가 황제면 아들은 궁정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큰 부자면 아들은 아버지의 부함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큰 권세를 갖고 있으면 아들도 권세를 이어받을 수 있었고 많은 혜택을 풍요하게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반해 노예를 아버지로 두었으면 그는 노예로 살 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를 따라 주인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예는 주인과 함께 살수 없습니다. 주인이 누리는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인의 축복을 먼발치에서 그저 부러워하며 바라만 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영원히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또한 깨끗하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주어져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마디로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도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녀라고 한다면 아들은 당연히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죄 없으신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후에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할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십자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으니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보시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나의 자녀다. 나는 네가 어떤 죄인이라도 나의 자녀로 받아들인다.
너는 이제 천국 백성이다. 이것을 믿기만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자녀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이젠 죄짓지 말고 정신 차리고 바로 살아 달라는 호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6절 말씀에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고 했고
9절 말씀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우리는 보통 ‘죄는 어쩔 수 없이 짓게 마련’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겠느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죄에 대하여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죄를 안 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희미하고 죄를 안 지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늘 죄를 지으면서 이것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요한은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믿고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간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깨끗하심을 본받아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모습에 만족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고 아버지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게 살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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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