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사십 살쯤 되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어떤 불길한 예감 때문에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간호를 부탁해 급히 내가 사는 곳으로 올라오셨지요. 어머니께서는 오죽하면 당신을 불렀을까 하셨지만, 며칠 지내다 그만저만해지면 내려갈 요량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라는 날짜는 지킬 수가 없게 되었으며, 근 한 달이나 내 곁에 머물며 간호를 하셨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던 열두 살 이후로 제일 오랫동안 당신의 치마폭에 싸여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의사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원인불명열’이란 그럴듯한 병명을 붙이고 치료를 계속했지요. 생각해 보면 이처럼 인간의 목숨이 보잘것없고 함부로(?) 다뤄진 적도 없었을 겁니다. 원인도 모르는 병을 고치겠다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딘지도 모르고 떠나는 밤길보다도 더 위험했을 테니까요. 그 길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스럽기도 하고 겁도 나는 일이었지요. 할머니가 계셨다면 어디 용한 무당이라도 찾아 굿을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현대의학이 이리도 비참해 보인 적도 없지요.
퇴원하는 날, 의사가 고백하기를-그는 나와는 대학 동문이었고 사돈의 소개를 받은 처지여서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열이 나는 병명을 서너 개나 잘 되게 적어놓고 그 병의 각각의 특징을 짚어가면서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주까지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대학병원으로 보내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이 말은 마치 죽기 직전에 호스피스병원으로 보내겠다는 말로도 들렸고, 살아난 걸 보면 운도 좋았다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다행히 병이 나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지만 이처럼 무책임한 병원도 있나 싶었지요.
나는 여덟 시간 간격으로 그러니까 하루 세 번 주기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열타기’ 경험을 하였습니다. 열이 오를 때면 간호사가 가져다 준 얼음주머니를 겨드랑이에 끼고 열이 내릴 때까지 견디다가 열이 내리고 나면 학질환자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했지요.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잠인지 뭔지 모르는 알 수 없는 꿈의 정원을 거닐고는 하면서, 정신이 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곁에 계시다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솔직히 어떤 때는 여기가 죽음 후에 온다는 그 어디쯤이 아닌가 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집 뒤 조상의 묘가 모셔진 종산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헛소리를 하는 나에게서 어머니 역시 뭔가 좋지 못한 낌새를 느끼셨는지 집으로 내려가겠다는 말씀을 다시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태어나서 이처럼 어머니의 모정을 소중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좋다는 감정마저 느끼지 못한 채 열에서 깨어나면 혹시 집으로 내려가신 것은 아닐까하면서 침대 곁을 두리번거렸죠. 초등학교 일학년 때 홍역을 앓아 어머니가 업고서 학교에 간 적이 있다고 하셨지만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철부지 때 일이었고, 이때가 어머니의 병간을 받아본 첫 번째 기억입니다.
이미 집안 내 친족 간에 많은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셨음으로 죽음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겼겠지만 자식이 죽을 수도 있다는 불길함에 전전긍긍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지요. 어머니의 죽음관은 명쾌해서 현세가 아닌 죽은 후의 일에 대해서는 무심하셨습니다. 나 역시 어머니를 닮아서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아무 것도 남기지 말고 냇가에 뿌려 없애라 일렀으니 천생 나는 어머니의 자식인 것이 분명합니다.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어서 늘 애걸복걸하며 어떻게든 아껴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야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죽은 후에야 무엇이 되건 알 수 없으니 신경 쓸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찰스 램이 앓았다던 ‘신경열’이라는 병이나 내가 앓았던 ‘원인불명열’이나 시간적으로 약 180여 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유명한 찰스 램도 나도 병원침대에서 발버둥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침대 위에서 했다던 자신의 행태를 황제놀음에 익살스럽게 비유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발버둥치고, 응석도 부리고, 병원 하인(?)들이 가져다주는 식사를 침대에 앉아서 황제처럼 받아먹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혹여 어머니가 가실까봐 노여움을 탈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가끔 어머니의 사랑을 가늠해 볼라치면 그때의 일이 나를 우쭐하게 합니다.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내 어머니처럼 자식을 사랑했을까 하고 어리석은 내기를 하게 되지요. 얼마 안 있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사년이 되어 오는데 아직도 원망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죽음에 대해 너무나 초연해서 더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신 것이지요. (그런데 나 역시 그리 오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집 현관을 들어서면 부모님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는데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어머니에게 말하고는 합니다. 엄마는 참 못 되었어. 돌아가시니 그렇게 좋으슈? 육십하고도 칠 년을 더 산 나도 어머니의 길을 따라갈 것이 분명하며 점점 더 그때가 가까워오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이 편안함 모르지?
아무래도 원망은 그만두고 사랑만 남겨야겠지만 간혹 원망도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삶이나 죽음이나 별 것 있겠습니까. 이 글을 마저 쓰고 침대에 누우면 스르르 눈이 감기게 되는 것처럼 세상일 끝마치고 나면 나는 다시는 숨을 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카페 안에 들어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곤충들-파리건, 벌이건, 나방이건 간에 파리채를 들고 쫓는 것은 습관적인 일이어서 그들이 느끼기에는 저 주인은 참 성질도 괴팍하다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죽을 때가 되어 죽을 자리를 찾다 보니 이리 날아든 것인데 채 삶을 정리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심보는 무엇인가 하고 묻겠지요. 그대 인간이여! 그 잘난 머리로 생각한다는 것이 고작 그뿐인가! 그러나 곤충들이여! 원망 마시게. 그게 인간의 심보라네. 아침에 카페에 내려가면 스스로 제 명을 다해 죽은 것들이 꽤 여럿이 됩니다. 물론 그 중에는 파리채를 피해 달아나던 것들도 있겠지요.
어머니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미 예정된 이별이었음으로 그것이 죽음이었다한들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내 할아버지에게서 혹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죽은 자들이 산 자보다 많아서 그 세계가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옹졸함이거나 생명 있는 것들 중 인간 말고는 아무도 갖지 않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공산이 큽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나는 공포에 질린 채 죽음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운명하시는 걸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도 없고 물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지간하면 내 부탁을 들어줄 만도 했지만 죽음 앞에서 당신들의 선택은 단호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알거니와, 누군가가 강제로 이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지요.
아침에는 다소 희망적일 수는 있겠지만 저녁이면 다시 의기소침해질 테지요. 아침이면 꽃 문을 열었다가 해가 나면 입을 다무는 그러나 한 계절이 가고 나면 올해는 다시 못 볼 나팔꽃처럼 우리도 그러합니다. 목에 씌워진 죽음의 둥근 칼날은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고 있습니다.
누가 죽었냐고 묻는 것은 일종의 놀라움일 뿐 누가 죽었건 생명 있는 것들의 죽음이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죽음을 찬양하던 자도, 죽음을 멸시하고 거부하려던 자도 별 수 없이 무릎을 꿇고 맙니다. 차라리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고 했던 청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 우리는 모두 세상으로 소풍 나온 소풍객인지도 모릅니다. 도연명(陶淵明)도 그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갈 것인데,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라고 세상살이의 소회를 밝힙니다.
이 모든 말들이 다 살고 난 끝의 말이어서 할 수 없이 나도 그런 말을 따라 하겠지만, 그나저나 그들도 모두 죽었으니 나도 죽을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에 무슨 원망이 있고 후회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물이 말을 한다면 삶이란 이리 흘러가는 것이라 할 것이며, 누군가를 따르라 한다면 삶 또한 흘러간다고 말하는 이치로 흐르는 물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삶이 아닌가 합니다. 샘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처럼 우리도 저절로 세상에 나왔으며 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도 죽음의 바다[死海]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물이 그 바다를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