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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비밀과 석가모니 메시지
제1장 천사세계
1. 본연의 천사세계
우리 인간이 천사를 생각할 때, 그의 아름답고 착하고 예쁜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천사의 직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사항을 인간에게 전달하거나 인간이 어렵고 힘들 때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천사의 직분은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리는 영(靈)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천사의 체(體)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여러분은 천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육신을 가진 모습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영인체만을 가진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면 육신이 없는 천사가 육신을 가진 인간 앞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으며 연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지상생활을 영위할 때 육신을 지니고 생활한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로 향할 때 모든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육신을 벗고 영혼, 즉 영인체의 모습으로 영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들은 언제든지 지상의 후손들 앞에 나타날 수도 있고 협조할 수도 있다.
천사는 비록 영인체만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부리는 영으로서 인간을 위해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의 활동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하다.
다음에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천사의 모습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천사는 하나님의 부리는 영으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자신에게 맡겨질지라도 그것을 모두 기꺼이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하므로 남성으로 창조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사를 생각할 때 남성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곱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우악스런 남성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는가?
이 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영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무엇이든지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나타낼 수도 있고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남성의 모습으로 지음 받은 천사지만 인간을 위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천사가 인간에게 협조하거나 연락을 취할 때 그의 모습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천사는 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과 다양한 컬러로 인간을 매혹시키는 것이 본래 천사의 직분이다. 그러므로 천사의 모습은 남성으로 지음 받았지만 인간 앞에 나타날 때, 인간에게 다만 여성의 모습으로 보였을 뿐이지 결코 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천사가 여러분에게 아름답다고 알려진 것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라는 뜻이다. ― 2000. 9. 10 ―
(1) 천사세계의 조직
천사의 세계는 우리 인간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천사들의 조직과 체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부적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천사들은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섭리를 잘 알고 하나님의 명령에 100퍼센트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 실례를 들어보겠다.
지상생활에는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에누리 없이 변함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우리 인간이 겨울이 추워서 겨울을 싫어할지라도 물러가던가. 자연의 섭리는 하나님의 창조 이후 천도를 따라 수만 년 수천 년이 지나갈지라도 그 본분을 다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께서“여름아, 너는 무얼 하느냐? 가을아, 너는 왜 아직 소식이 없는가?”하고 꾸지람을 하시는 법이 없다. 지상생활의 4계절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그 법도에 따라 그대로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천사세계를 창조하신 이후, 천사는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어느 구석진 곳, 아무리 어려운 자리일지라도 조직적으로 그대로 순종하며 자기의 본분을 다해 나가고 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인간 사회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질되고 오염되었지만, 인간을 위해 창조된 천사세계의 조직은 마치 4계절의 운행처럼 그대로 지속되어 온 것이다.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천사에게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에 따라 천사세계는 한결같이 법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천사세계의 조직과 체계는 마치 어떤 공장의 기계 설비에 있어서 하나의 전원 스위치만 누르면 모든 기계가 순식간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움직이고 어떤 것을 깨닫고 활동한다. 그러나 본연의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명령 없이도 하나님의 활동에 따라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본연의 자녀의 모습이다. 현실적 인간은 변질되어 하나님의 심정과 섭리를 헤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인간을 위한 천사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근본 법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천사들의 조직과 체계와 그들의 활동은 오직 하나님의 심정 스위치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 변화에 따라 천사들의 조직 체계로 일시에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천사세계의 조직과 체계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사랑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자녀를 위한 일념 때문에 구석진 그늘에까지도 하나님은 자신의 체온이 천사들을 통해서 내려지길 바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천사세계 창조의 본래 뜻이다.
― 2000. 9. 11 ―
(2) 천사세계의 모습
천사세계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 하나 하나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 아니라 천사들의 조직과 그룹에 따라 그 사명을 달리 하셨다. 천사들은 여러 차원의 조직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이러한 조직 아래 여러 차원의 그룹이 편성되어 있다. 그래서 천사들은 여러 종류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인간의 경사(慶事)를 축하할 경우, 메시지와 사명을 전달할 경우, 예언을 전달할 경우 등등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사명에 따라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천사의 사명과 천사의 호칭은 변화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천사들의 활동 범위에 따라 그들의 의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지상생활에 있어서 인간이 여러 의식에 참석할 때마다, 그 의상을 달리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장례식에 갈 경우 색동 저고리를 입고 가는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천사의 의상은 한정된 공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의상과는 다르다. 천사는 지상인처럼 옷을 사러 다니거나 맞추는데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옷을 입어야 한다. 천사의 의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게 된다.
그런데 천사들의 의상은 어느 누구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한순간에 아름답고 화려한 차림새로 변화되고 있다. 천사들이 어떤 모임을 향하여 출발할 때,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들의 의상의 모양과 색깔이 달리 나타난다. 그리고 천사들이 움직일 때는 아름다운 광채가 찬란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상인들은 이러한 천사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천사들의 모습을 환상으로 본 사람은 수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계의 영인이 보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 특히 지상인들은 천사들의 의상의 화려한 빛깔과 광채를 볼 수 없다. 천사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상에서 육안으로 볼 경우와 영계에서 영안으로 볼 경우는 전혀 비교될 수 없다.
천사들의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은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형상적으로 닮아 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낼 때, 당신의 자녀를 기쁘게 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평화와 행복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천사들의 모습을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때, ‘남자가 화려한 의상을 입어 봐야 얼마나 아름답겠는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상에서 춤을 추는 남자 무용수들의 옷차림을 상상해 보라. 어찌 그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천사들의 모습을 지상인이 환상으로 볼 때, 다만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처럼 보일 뿐이다.
이처럼 천사들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그들의 활동 범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지상인이 자신의 육안으로 보았던 천사들의 모습도 매우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의 모습은 더 아름답다. 경우에 따라서 매우 준엄한 자태로, 어떤 때는 아주 청아하고 고운 여인의 자태로, 각각 달리 나타나는 그들의 실제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천사들은 어떠한 모습을 취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안테나에 맞춰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천사세계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 심심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 2000. 9. 12 ―
(3) 천사의 활동 장소
천사세계의 모습은 이미 밝힌 바와 같다. 인간이 머물고 있는 곳과 천사가 머물고 있는 장소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여러분은 궁금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에 인간에게 필요하고 즐겁고 평화롭고 기쁘게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혹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는 경우를 위하여 천사세계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먼 곳에 두었다가 필요로 하실 때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그들을 두고 계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그들의 그룹에 따라 다르다. 천사에게 맡겨진 소명이 그룹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머무는 처소는 정해져 있다. 천사들은 자기들의 고유한 처소에서 항상 머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이 가정에서 머물 수 있고, 직장에 가서 머물 수 있다. 휴가철이면 바다나 산에 가서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인간이 가서 머물고 있는 장소마다 천사들이 있다. 우리가 움직이는 처소마다, 머물고 있는 장소마다 천사들은 항상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가며 자기의 사명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활동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천사들의 보호권 내에 있지만 그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인간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할지라도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탄과 조상의 세력에 의해서 천사가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천사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주어서 그를 정금같이 굳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지상의 어느 곳에 머물든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할지라도 육신을 가진 자로서의 새로운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0. 9. 13 ―
(4) 천사의 활동 범위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관계를 영원히 연결하기를 원하셨다. 천사의 활동은 지상의 어느 곳이든지 미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시가 직접 닿는 곳과 간접적으로 닿는 곳에 따라서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 크고 작게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양상은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다.
지상생활을 할 때 바닷가에서 수영하던 사람이 갑자기 물 속으로 들어가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천사들은 어떻게 활동할까? 물론 천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고 현장에서 구출하려고 온갖 힘을 다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는 천사들과 인간을 사탄세계로 뺏어 가려는 사탄편 천사들과 악령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이 사람의 모든 환경과 조건이 어느 편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사탄과 천사의 치열한 싸움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때 천사가 힘에 겨워서 사탄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사탄과 악령이 그 인간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할 때 천사가 도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거나, 그 인간의 소명이 사탄권에 처해 있게 되면 천사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편 천사와 악편 천사간의 수많은 전쟁이 인류역사 시초부터 일어났다.
천사세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들 본연의 목적과는 다른 여러 차원의 전쟁이 인류역사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사실임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수많은 천사들의 보호권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본래부터 지니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러한 환경을 중심하고 우리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 ― 2000. 9. 14 ―
(5) 영인과 천사의 관계
영계에는 수많은 영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영인들과 천사들은 어떻게 서로 교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 지상생활을 마감하고 영계에 들어오게 되면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들의 처소로 가서 정해진 위치에서 살게 된다. 이러한 영인들은 그들 자신의 장소와 위치에 따라 그들의 모습도 달라진다.
상류층 영인들의 모습과 저급한 하류층의 영인들의 모습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간이 지상생활을 할 때 동일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상류층의 귀족과 하류층의 걸인의 모습과 옷차림이 다른 것과 같다. 영계로 온 영인들의 모습은 지상에서 자신의 삶의 결과에 따라 정착지가 정해진다. 이것이 천도다. 따라서 각 처소에서 머무는 영인들의 모습과 천사들의 관계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상류층에 머물고 있는 영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겐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천사들이 함께 머물고 있다. 이곳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최고의 걸작품, 가능한 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서 영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 상류층의 영인들은 왜 하나님의 직접 지시를 받지 않고 천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의문이다.
지상생활에서도 최고의 자리에서 최정상의 어른으로부터 지시를 직접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 영인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류층의 영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을 때도 있고, 천사를 통해서 받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위치에서 천사가 전달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사항이므로 영인들은 조금도 의심 없이 그 내용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휘황찬란한 광채 속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러한 천사의 모습도 대단히 황홀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전달받는 영인들은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류층에 머물고 있는 영인들에게 나타나는 천사들은 무엇을 하는가? 상류층에 있어서나 하류층에 있어서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천사들의 사명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류층의 천사들보다 하류층의 천사들이 고생을 더 많이 하고, 그들의 옷차림에 있어서도 상류층의 천사들만큼 휘황찬란한 광채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것은 지상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지상생활에서 전도하러 나섰을 때 마음이 선량한 부잣집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말씀을 잘 받아들이면서 모든 분위기가 좋아지면, 우리의 마음과 몸도 기뻐지고 우리의 모습도 밝게 변할 것이다. 그러나 행동이 불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어서 지치게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도 우울해지고 우리의 모습도 어둡게 변할 것이다. 이처럼 삭막하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겨 나오는 하류층의 영인들의 환경 속에서 천사들이 황홀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동일한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활동하는 처소에 따라 그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영인들과 천사들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다. 그래서 천사들이 지상의 후손들을 찾아가서 협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이 영계에서 영인들을 찾아가 협조하는 것이다.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천사들이 인간을 협조하는 원리는 동일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신 근본 목적은 지상이나 천상이나 인간을 도와주고 사랑하는데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다. 우리 인간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우리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 앞에 깊이 감사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완성하고 가정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위상을 확고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 2000. 10. 2 ―
(6) 천사들의 수
인간을 창조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인간은 거의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부모가 앉으나 서나 항상 자녀를 걱정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곳곳마다, 요소 요소마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천사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지상생활을 통하여 바닷가에서 놀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모래사장에서 찜질을 하면서 여러 가지의 게임을 할 것이다. 이러한 장소마다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사들은 인간들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고 있다. 마치 귀한 분이 지나갈 때 카펫을 깔아 놓는 것처럼 천사들은 항상 인간들의 길을 예비하고 보호하고, 하나님께 인간의 움직임을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사실을 거의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천사의 보호권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익사 사고 등 갖가지 사고로 죽어 갈 때 천사들은 무엇을 하는가? 수많은 천사들은 인간을 위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이 천도에 어긋나면 그들의 움직임은 한순간에 달라질 수도 있다. 마치 인간이 전기에 감전되는 순간을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듯이 인간이 천도에서 이탈되면 천사의 보호권에서 금새 분리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의 기준에 따라, 예를 들어 자기의 생각, 마음가짐, 평소의 생활 태도 등이나 타인의 공적,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에 따라 천사들이 인간을 보호하는 모습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 배치된 천사의 수는 지구상의 인구보다 더 많다. 그러나 이러한 천사들은 항상 자기들의 위치에서 그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가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의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온전히 성장한 후에도 언제 어느 곳이든지 천사들이 항상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신 것이다. 이러한 천사들은 항상 우리 인간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과 지시에 따라 그들의 움직임이 달라지므로 우리 인간은 그들의 움직임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과 기준이 천사들이 보호할 수 있는 영역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직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 받은 행복감에 또한 무한히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 2000. 10. 5 ―
2. 누시엘 타락 이후의 천사세계
하나님이 천사를 지으실 때 본연의 천사가 타락할 것을 예상하고 또 다른 천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누시엘은 본래 인간 앞에 천사로 지음 받았지만 자기의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흉내를 내면서 생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누시엘은 온갖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여 다른 천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누시엘에게 여러 차원으로 타이르셨다. 그러나 누시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하나님 눈을 피해 가면서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이 모르셨겠는가? 하나님이 자녀를 사랑하기에 천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항상 안테나를 함께 하고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해와가 누시엘의 꼬임에 빠져 비원리적인 행동과 위치로 떨어지게 되었는가?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지상이나 영계나 타락 전이나 타락 이후나 하나님의 창조의 본연의 뜻은 변함없고 인간을 사랑하심도 또한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인간도 성장 과정에서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했고 천사들도 하나님의 입장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가 하나님처럼 높아진다는 누시엘의 유혹에 천사들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물론 천사들에게도 창조목적을 실현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천사들도 누시엘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 천사들은 하나님편에 서지 못하고 누시엘의 유혹과 명령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많은 천사들이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누시엘의 역사(役事)가 시작되는 곳마다 수많은 누시엘의 잔당들이 따라다니면서 인간을 유혹하여 해치고,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싸움을 할 수 있는 세력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누시엘을 따르는 천사들을 그냥 두셨는가? 그들을 불러서 호통을 치며 누시엘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에 의한 성장 때문이다. 천사도 인간의 주관의 대상이요, 인간의 치리의 대상이므로 하나님은 누시엘을 따르는 천사들을 간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빼앗겼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기에 사랑과 원리의 기준에서 명령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미완성기에서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아담과 해와, 즉 자녀를 잃어버리게 되므로 누시엘을 추종하는 천사들에게 직접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통일원리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비원리권으로 떨어진 누시엘이나 해와를 직접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누시엘은 자신의 세계를 선전하는데 총력을 경주하였다. 하나님은 원하지 않았지만 천사의 세계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누시엘편 천사세계와 하나님 본연의 천사세계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천사세계에는 하나님의 선편 천사세계와 사탄의 악편 천사세계가 생겨난 것이다. ― 2000. 10. 5 ―
(1) 악의 천사세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천사들 중에서 누시엘과 함께 생활하는 천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생소(생령요소) 등 여러 차원의 생명적 요소가 거의 단절되고 누시엘로부터 악의 요소, 예를 들면 시샘, 질투, 교만, 지나친 욕심 등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누시엘을 중심한 천사들은 사탄의 요소를 지닌 모습으로 변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천사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과 휘황 찬란한 광채를 거의 잃어버렸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어둠의 보자기에 싸여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누시엘은 항상 자기의 위치에서 이탈하여 하나님의 위치에서 행동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자기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면서 불안과 초조 속에서 생활하였다. 누시엘의 모습이 이러하므로 누시엘을 따르는 천사들과 그 외의 존재들도 역시 항상 불안과 공포와 초조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누시엘의 일당들은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이 언제부터 자기들의 소탕 작전을 시작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시엘은 자기들의 수적 세력이 확보되면 하나님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인류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어 가며 하나님을 속이고 인류를 괴롭혀 왔던 것이다.
이러한 억울한 사연이 이제 새 천년의 새 역사가 시작되면서 낱낱이 밝혀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창조하셨던 천사들까지도 누시엘에게 내주면서 참아 오셨다. 참부모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하나님의 슬픈 역사적 사연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제 누시엘의 굴복과 함께 천사세계도 본연의 모습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우리 인간은 느껴야 할 것이다. 사탄의 모습에서 본연의 천사 모습으로 돌려놓고 땅도 하늘도 모두 하나님의 소유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 땅의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온 인류와 온 누리와 온 땅의 천지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우주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받은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하나님과 화답하며 행복의 나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날이 머지않아 반드시 도래한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총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2000. 10. 9 ―
(2) 악령의 정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미성숙기에 있는 인간을 사랑하고 여러 측면에서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천사들 중에서 일부는 누시엘의 유혹을 추종함으로써 사탄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누시엘과 함께 인간을 괴롭히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면서 역사를 일구어 왔으니 이것이 다름 아닌 죄악의 역사다.
그런데 악령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이 따로 악령이란 피조물을 만든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악령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들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누시엘의 뜻을 추종함으로써 생겨난 존재다. 인간이 지상생활을 할 때 하나님을 섬기며 선한 일을 하다가 영계로 오면 결코 악령으로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지상생활을 할 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았던 자가 영계로 오면 악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이 바로 천상의 지옥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지옥에 머물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악령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천상의 지옥인들은 자신들의 환경이나 위치에 항상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유리 방황할 수도 있고, 한곳에 정착한 지옥인들 중에서도 때때로 자신들의 위치를 떠날 수도 있다. 그들이 바로 악령이다. 그러면 지옥인이 어떻게 악령으로 변하는가?
천상에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활동하고 있다. 악한 천사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할 때 흔히 지옥인에게 찾아가서 계속 유혹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어떤 지옥인에게 “당신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하면서 속이고, 현재 그의 환경을 불만스럽게 여기도록 계속 유도하면서 그곳에서 머물지 못하도록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렇게 되면 지옥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너무도 괴롭고 비참하므로 그 위치에서 좋은 환경으로 옮겨 보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악한 천사들은 육신의 고통이 심한 지옥인에게 그 고통을 치유해 주겠다고 유인하여 그의 후손을 아프게 하거나 후손의 사업을 방해하는 등 여러 차원으로 미혹의 손길을 사방으로 뻗쳐 가면서 자기들의 세력 확보에 온갖 정성을 다 발휘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 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지옥인들을 돕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머무는 지옥인들은 누구든지 마음이 솔깃하여 악한 천사들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이러한 지옥인들은 사탄과 짝이 되어서 지상의 인간을 괴롭히게 된다. 지상의 인간들 중에서 그들이 가장 가깝게 습격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후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악한 천사들과 함께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유리 방황하는 영인들과 합세하여 지상인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상인은 심한 병에 걸려 병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으며, 원인 모를 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 육신을 잃은 영인은 또 다시 지옥으로 와서 사탄의 아지트에 머물게 되므로 악의 세력은 점점 불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 영인은 고통스럽고 외로운 자리에 머물게 되므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그의 품속으로 돌아오길 한결같이 기다리는 것이다. 악한 천사(사탄)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입장으로 들어간 영인들 모두는 악령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지상에서 사탄과 악령의 정체를 잘 판단하여 자신의 신앙이나 지성으로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이겨내는 지상인이 적지 않게 있다. 여러분은 자신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여러분 자신을 주관하여 사탄이나 악령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대부분의 신앙인은 사탄과 악령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여기서 사탄과 악령의 정체를 잘 판단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보다 신앙이나 인격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대상이 되는 인생 선배에게 반드시 의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인간은 사탄이나 악령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성약시대, 자신의 이름으로 보고하고 기도하는 시대에 참부모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헤치고 나갈 여러 가지 실상을 알려 주었으니 우리는 성숙된 신앙인의 자세로 돌아가 영원한 이 나라에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위치에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누시엘과 그의 잔당들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한편, 우리는 이 사실을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속히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는 누시엘의 잔당들이 머물 수 있는 아지트를 활활 불태워 버리길 바란다. 그것은 나의 위상을 확인하는 길이요, 나의 신앙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부모, 하나님을 모실 평화로운 보금자리가 하루속히 정착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리포터 질문
문 : 천사세계에 번식이 있습니까?
답 : 천사세계 뿐 아니라 이곳의 어떠한 피조물도 번식할 수 없다.
문 : 창조 당시에 인간의 수는 지극히 소수였는데 천사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 그토록 많은 천사들은 어디에 머물고 있었는지, 그 이후 인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는데 그때 또 다시 천사를 창조하셨는지요?
답 : 하나님이 천사를 창조하실 때 많은 무리를 창조하셨지만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천사들은 모든 만물과 함께 거하면서 주인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인간의 수가 많아졌다 할지라도 참주인의 모습은 없었기에 천사들은 만물과 함께 외롭게 기다려 왔다. ― 2000. 10. 10 ―
제2장 낙원의 세계
1. 낙원의 구조
우리가 낙원이라고 생각할 때 그곳은 지옥보다는 대단히 평화스럽고 안정된 곳처럼 느껴진다. 여러분은 낙원이란 이름은 도대체 누가 붙였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낙원을 직접 창조한 것인가, 낙원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등이 궁금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낙원은 하나님이 창조한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한 곳에 살기를 원하셨지만, 지상인들은 여러 차원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게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 앞으로 직접 가지 못하는 영인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낙원은 그러한 영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대기하는 대합실인 것이다.
그룹에는 여러 종류의 그룹 단체가 있고 종교에도 여러 종단들이 모두 따로따로 되어 있다. 지상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이 따로 있고 가족이 모이는 가족 단위가 따로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있고, 활동하는 시간이 있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시간과 여가 선용의 시간이 별도로 있다. 이곳 낙원의 생활도 지상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이곳의 영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언젠가 여러 측면의 영계의 실상을 밝힌 바 있듯이 상류층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의 마음먹음과 동시에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상류층 영계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곳 낙원은 상류층과는 달리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지상처럼 출퇴근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자기들의 적성이나 취미에 맞춰서 그룹끼리 일하는 직장들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고,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는 모습도 지상과 비슷하다. 그러면 지상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낙원에 머물고 있는 대부분의 영인들은 자신들이 영인체만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언젠가 낙원세계에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곳의 모든 생활은 지옥과 확연하게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살기 때문에 보다 더 값진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항상 함께 협조하며, 보다 더 선하게 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그곳은 천국은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들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곳을 크게 분류하면 상류층·중류층·하류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별·교파별·종파별로 조직이 달리 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영인들은 자신들이 지상에 있는지 영계에 있는지 판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들의 위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곳 대부분의 영인들은 서로서로 친밀하게 지내며 다른 영인들과 쉽게 친구가 되어 살아간다. 낙원에서는 누구나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분야별로 직장을 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상처럼 그렇게 어렵게 찾아 헤매지는 않는다. 서로서로 협조하면서 직장을 소개하고 한 직장이 싫으면 다른 직장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 이곳은 직장을 구하기 힘든 지상의 경우와 다르다. 이곳은 상류층·중류층·하류층에 따라 그들의 생활 양상이 각각 다르다. 낙원의 영인들은 항상 여유가 있고 풍족한 생활을 한다.
그리고 낙원의 하류층은 상류층보다는 어렵지만 지옥과 상당히 다른 밝음과 소망이 있으며, 자기 처소에서 생활하는 환경과 여건이 상류층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지옥보다 훨씬 행복한 곳이다. 그뿐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의식주 문제가 항상 따라 다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상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의식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이처럼 이곳 낙원 생활에는 의식주를 위한 약간의 활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식주 문제 해결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해결하는가? 자기의 직장인들끼리 서로 물물교환을 하고 살아간다. 옷과 양식, 심지어 집까지도 서로 나누고 바꿔 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면 이러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소재는 어디인가?
정말 신기한 사실이 있다. 공장에서 많은 옷을 만들어 내는데 갖가지 옷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줄지 않는다. 그리고 옷을 만들어 내는 직원(영인)들은 항상 여유 있는 웃음 속에서 일을 하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항상 평화스럽다. 그러면 공장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감들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 그런데 옷감을 만들어 내는 공장에 옷감을 짜기 위한 재료들이 항상 수북히 쌓여 있다. 그것은 또 누가 만든 것일까? 최초의 원산지는 보이지 않고 재료들은 항상 쌓여서 줄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은 일정한 때가 되면 썩어서 폐기 처분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썩지 않는 것일까? 지상인들은 공상 영화나 달나라 이야기하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러니 낙원의 세계만 들어와도 소망이 있는 곳이요,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처소이다. ― 2000. 10. 12 ―
2. 낙원의 조직
낙원세계의 조직이나 구조는 평면적으로 보면 지상세계의 그것과 유사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지상에는 어떠한 물건이 필요하면 그 물건을 구입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과 시간과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낙원세계에서는 그 물건 구입처가 여기 저기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 항상 풍족하게 있으므로 원하기만 하면 항상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지상에서는 물건을 구입하려면 도매상으로부터 소매상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이 없을 때 허탕치기도 하고, 돈이 부족하면 구입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어느 곳에서나 항상 구할 수 있다.
지상인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낙원세계에서는 지상처럼 그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피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겠다. 기독교에서 목사님을 중심하고 주일마다 예배를 볼 때 여러 곳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교회로 모여든다. 지상에서는 택시나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여 예배에 참석할 것이다. 그러나 영계의 영인들은 어떻게 예배에 참석하는가?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는 시간이 되면 신도들이 언제 모였는지 모르지만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고, 예배를 마치고 나면 이미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 돌아가 있다.
여러분은 이곳의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 낙원은 그 규모나 모습이 영계의 상류층과 비슷한 점이 다소 있다. 그러므로 조직의 모임이나 움직임에 있어서 인력이 필요할 때가 있고 전연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룹의 모임에 있어서 항상 여유가 있고 생활양식 자체도 평화롭다.
그러면 어떤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지상생활과 비슷한 조직이 이곳에도 대부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영인들은 삶의 목적이 동일하고 소망도 동일하다.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겠다는 목적뿐이다.
그리고 불교인에 있어서도 여러 단체가 있다. 그러면 불자들도 하나님을 향하여 살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권에서 선하게 살다가 이곳에 온 영인들은 그들의 종파마다 다소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왔던 기준을 중심하고 화평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도 전도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각 종파마다 전도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 사회의 모습이 지상과 비슷하다. 지상에서 불교권에서는 극락을,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향하여 신앙하는 것처럼 이곳의 각 종단의 조직도 비슷하다.
그러면 이곳의 여러 종단에서 참부모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 불교권이나 유교권에 있는 대부분의 영인들이 참부모님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원리수련을 많이 실시하고 있다. 이 점도 지상과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지상생활에 있어서는 조직할 때마다 인력이 필요하고 노동의 대가도 지불되겠지만 여기서는 조직의 활동 범위가 여러 분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교회의 예배 모임처럼 인력이 전혀 필요 없을 때가 많다. 이곳의 대부분의 영인들은 시간적 초조감이나 절박감을 느끼지 않고 항상 여유 있는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곳의 조직 사회는 지상에서처럼 돈이 필요 없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며 자기들의 노동의 대가는 어떻게 지불받는가?
날짜와 시간에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물건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있는 장소에 가서 마음대로 가져가기도 하고 서로가 필요치 않는 물건을 바꿔 쓰기도 한다. 낙원세계 전체가 각자의 가정처럼 아늑하고 풍요롭다. 여기저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항상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필수품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서로 다투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낙원도 이렇게 풍요롭고 평화로운데 하나님이 계신 천국은 얼마나 좋을까. 그리운 내 보금자리, 영원한 안식처는 하나님이 계시는 평화의 에덴동산이니 그곳을 향하여 열심히 살아보자.
― 2000. 10. 12 ―
3. 낙원의 생활
낙원의 생활은 영계의 상류층, 천국의 생활과 다르다. 그러나 낙원에 사는 영인들은 언젠가 소망의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천국의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고, 닮은 점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천국에는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천국은 어떤 것이든지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금새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낙원은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영인들은 노동력으로 자신들의 소원을 실현한다. 때로는 천국의 생활처럼 노동력을 전혀 들이지 않고 그들의 뜻한 바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일상적 생활에 있어서 그렇게 아쉬워할 것이 없다. 조금만 수고를 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것은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낙원의 여러 계층 중에서 하나님이 항상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인들은 그곳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영인들은 여기서 천국을 향하여 소망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낙원에 왜 수많은 종파(종단)가 들어와 있는가? 지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종교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신, 알라, 브라만 등)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할지라도 각자의 삶이 낙원에 올 수 있을 만큼 선하게 살았다면 그 영인체는 낙원으로 올 수 있는 것이다. 낙원의 영인들은 언제 보다 좋은 처소나 천국으로 갈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그들 후손의 실적(공적)·기도·헌금·선행 등등이 있을 때, 그들은 훨씬 좋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이곳은 흥진님의 진두 지휘 아래 있기 때문에 흥진님의 지시 여하에 따라 그들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종단들이 아무리 열심히 신앙하고 전도하고 희생 봉사하면서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기의 부모임을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천국을 향하여 단계별로 옮겨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낙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속히 원리강의를 듣고 하나님의 심정과 복귀의 한을 깨달아 하나님이 자신들의 부모임을 확실히 체휼하고, 지상에 계신 문선명 선생님이 하나님의 체(體)를 쓰시고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오신 천상천하 참부모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면, 천국으로 향하여 차츰차츰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 낙원에 있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원리수련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흥진님은 영진님에게 낙원세계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맡기고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력하신다. 때로는 흥진님은 영진님에게 용기를 주시고 낙원세계의 복귀를 위하여 집중하고 계신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지상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생각하는 관이 쉽게 바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그들의 삶의 결실로 말미암아 이곳 낙원에까지 왔다고 느끼면서 자신들의 삶을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상에서 어떤 종교도 갖지 않고 살아온 영인들이 이곳 낙원에 머물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영인들을 전도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낙원이란 곳이 완전히 천국으로 되기까지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흥진님은 대단한 포부와 자부심을 갖고 낙원세계에 소망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도 소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00. 10. 16 ―
※ 낙원세계의 하류층과 중간 영계의 상류층은 거의 동일하다.
제3장 지옥편
1. 지옥의 현황
지옥이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슬프게 그리고 가장 아프게 하는 곳이다. 이 곳은 지상인이 지상에서 살 때 어렵고 힘들 때마다 ‘아이구, 지옥이다. 지옥 같은 생활이다’란 용어를 자주 쓰는데 그것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곳이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고 일말의 기쁨과 소망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어렵고 힘든 모습이 항상 노출되지만 그 모습을 숨기거나 감출 장소가 없기 때문에 서로 쳐다보면서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곳의 심각한 상황들이다. 이곳의 영인들에겐 소망도 기쁨도 없기 때문에 언제나 화나고 짜증난 모습을 짓고 있다. 그 날 그 날의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몹시 지루하다.
흔히 지상에서도 생활하기가 힘들면 ‘지옥 같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곳이다. 지상에서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할지라도 때때로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삶을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항상 악취가 나고 주위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를 살펴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지상 삶의 결과에 따라 이곳에서 최악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좀 바꿔 보고 싶을지라도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하면 지상에서 살 때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지옥은 지상에서 살아갈 때 자기가 지은 죄악의 모습을 최악으로 표현하고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모든 동식물들마저도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곳은 인간 상호간 수수의 관계가 끊어져 있으므로 자기 자체의 빛깔을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 본연의 속성에서 동떨어져 있어서 인간 자체의 빛깔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곳의 만물은 어둠 속에 가려서 그들 개체의 고유하고 독특한 빛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곳은 항상 이러한 모습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이곳의 영인들은 그들 스스로 이곳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속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곳을 모두 없애 버리고, 이곳의 모든 담과 벽을 헐어 버리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상류층처럼 복귀시켜 함께 살고 싶어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세미나가 있고 수련이 있고 교육의 장소까지 있다. 이러한 교육에 참석하여 새 사람이 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면 구제의 길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각 종단의 대표들이 방문할 수 있고 개인의 전도 길도 열려 있기 때문에 여러 층의 사람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기들의 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구제된다 하더라도 상류층으로 가는 자가 지극히 드물다. 지옥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복귀하기 위하여 여러 측면의 수련을 시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흥진님이 맡고 계신다. 흥진님은 이곳의 실상을 참아버님이 영계에 오시기 전에 정리하려고 애쓰신다. 박종구 선교사님이 타이거처럼 열정적으로 애쓰시는 모습과 흥진님의 침울하신 모습 앞에 병든 영인들의 마음이 쉽게 열려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우리는 이곳의 복귀를 위하여 총진군할 준비를 하고 있다. ― 2000. 10. 17 ―
2. 지옥의 구조와 조직
지옥이란 이름은 정말 하나님께 대단히 큰 아픔을 주는 대명사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대하여 말씀도 못하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다.
지옥의 구조란 천국과 낙원과 조금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요, 지상생활의 최하류층의 생활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도 저녁이 와도 생활의 변화가 없다. 지상 하류층의 어려움은 다소 유동성이 있을 때가 있다.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 자리를 피하면 남의 행복을 볼 수 있지만 여기 지옥은 남의 행복조차도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지상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이 와서 자기 회사나 일터에서 의식주 해결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노력한 대가만큼 월급을 받아서 살아간다. 이것이 공통적인 지상의 삶이다. 그런데 지옥은 지상의 최하류 생활과 비슷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찾아가야 할 일터가 없고, 일터가 있다고 해도 그곳에 모인 영인들 모두가 지옥에서 생활하는 영인들이기 때문에 일터뿐만 아니라 자기 집안이나 할것없이 모두가 항상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곳에서는 서로 돕고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조금이라도 편해 보려는 자기 중심적인 생활만이 보일 뿐이다. 따라서 일하는 능률이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는 항상 어둡고 침울하고 서로 고달픈 모습을 하고 마주보고 생활한다. 여기서도 지상의 조직처럼 조직과 계층이 있다. 이곳의 상류층이라 할지라도 지상의 하류층보다 더 어려운 밑바닥 생활을 한다. 이곳의 하류층은 지상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 허다하다.
그리고 조직의 책임자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의논하려고 하면 한결같이 제자리에 앉아서 부르는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모이지 않는다. 여러 차례 다시 모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주위에 있는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면서 가장 저질스러운 욕지거리를 할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모습을 글로써 지상인을 이해시키기란 대단히 힘들다. 따라서 조직과 구조가 있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옥은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혁명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얼마 전부터 흥진님께서는 지옥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하고 하류층 영인들에게 무조건 구제품을 나눠줘 가며 그들과 가까워지기를 노력하고 계신다. 이곳의 영인들은 생활 자체가 너무 어렵고 고달프기 때문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자신들의 본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반드시 드러남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의 모습이 그러함을 깨우치고 있다. 그리고 가을의 추수기의 모습이 바로 그들 자신의 모습임을 지적해 주면서 그들에게 참된 삶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이 생겨나면 그들이 직접 타인을 통하여 자기의 수고의 대가를 주라고 가르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아름다운 결실이 오리라 믿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지상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이곳에는 오지 말라고. 여기서 낙원으로 가기도 상당히 멀다. 그러니 언제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을까? ― 2000. 10. 20 ―
3. 지옥의 사람들과 삶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지옥을 창조하고 그곳의 사람들은 항상 고통스럽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지옥에 있는 자식들은 생각하시고 마음 아파하신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상헌아!”하고 부르시면서 너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이냐, 너는 어떤 때 가장 행복하냐, 그리고 어떤 때 마음이 가장 불편하고 아프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고생하는 자식들이 보고 싶으시지요?”라고 여쭤 봤더니 하나님께서는 “상헌아, 하나님의 마음을 네가 헤아렸구나!”라고 하셨다. 그런데 깜깜한 흑암 속에서 아련하게 비쳐 오는 불빛 속에서 아주 가느다란 한줄기의 빛을 따라 은방울 같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무엇일까?’하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의 눈물이었다. 나는 이 은방울을 한아름 안고서 지옥으로 가서 그들에게‘이것은 자식들을 보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눈물이 모여 한아름의 방울이 된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한 날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이것을 설명할 분위기가 아직도 조성되지 않았다.
어느 날, 흥진님은 영진님을 모시고 이처럼 힘든 곳을 보여주기 위하여 어렵게 지옥으로 가셨다. 타이거 박 선교사님은 흥진님을 모시고 뒤따라가면서 “아직은 빠릅니다”라고 만류하셨다. 그런데 흥진님과 영진님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괜찮아요”라고 합창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시궁창에 빠졌다가 나온 한 여인이 나타나서“저를 구해 주소서!”라고 하였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젊은 시절에 자살한 여인이었다. 수많은 날을 이곳에서 살아왔다면서 구해 달라는 것이다. 흥진님과 영진님은 이처럼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어찌 할 바를 모르신 채 구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흥진님과 영진님은 “하나님께 말씀드려 보라”고 하시고는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두 형제는 서로 쳐다보시며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지옥의 현장은 이것뿐이 아니다. 음란으로 망한 자는 보기 흉측한 뱀의 구덩이 속을 피해 다니며 무서워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남의 재산이나 물질 때문에 지옥으로 온 자들은 입이 찢어지고 위가 밖으로 흘러내린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거짓말로 남을 심하게 비난한 영인들은 눈이 돌아가서 튀어나오고 혀가 밖으로 나온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금으로 망한 자는 큰 빌딩에 깔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었다.
이들의 삶이 언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것인가. 어느 날 흥진님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명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하루속히 이들 모두를 고통 속에서 해방시키라”는 명령이었다. 흥진님은 이들의 무리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작은 탕감 조건을 세워서 빨리 구해 내시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원리수련을 위해서 그룹별로 모임을 갖고, 여기에 필요한 인원과 물품을 준비하시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고 계신다. 이곳의 실상들을 구체적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흥진님은 이러한 모습만은 참부모님께 보이지 않겠다는 강렬한 집념을 갖고 계신다. 이후부터는 지상에서 이곳으로 오는 영인들의 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4. 지옥이란 곳
육체를 가진 지상인은 지옥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할지라도 오직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상생활을 염두에 두고 이곳의 현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이곳의 실상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상인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 실상을 깨우쳐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나름대로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지상인은 자기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자기 집을 떠나 공원이나 극장이나 도로변이나 백화점 등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고 고달픈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지옥은 그런 순간마저도 없다. 지옥에 들어온 그 날부터 고통은 쉴 사이 없이 계속된다. 그런데 지옥인들은 자기의 어려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들을 여유도 없고 따라오지도 않는다. 따라서 전도나 수련을 하기가 대단히 힘이 든다.
그렇다고 하나님 사정을 알고, 천지 부모님 사정을 알면서 이곳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곳의 우리와 수많은 지상인들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이곳의 실상 때문에 한순간도 편안할 날이 없다. 하나님의 이런 사정을 헤아려 보면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복귀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상인들은 이곳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매일매일 쉴 사이 없이 이어지는 지옥의 행렬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지옥의 행렬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긷는 것과 같다. 그 행렬을 자르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렇지만 그동안 아무도 손댈 수 없었고 손대지도 못했던 황무지에 이곳의 우리는 지금 흥진님을 중심삼고 새로 개척하고 있다. 마치 브라질 황무지 자르딘을 참부모님이 개척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모진 마음을 모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식구들도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지만 그들의 실상을 생활을 통하여 깨우쳐 주면서 그들을 흡수시킬 것을 각오하고 있다.
그리고 상류층의 우리 식구들도 자르딘처럼 40일 수련, 20일 수련 등으로 지옥의 밑창에서 그들을 교육시키면서 좋은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참아버님이 이곳에 오실 때는 이곳으로 말미암아 참아버님 앞에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이곳 우리의 소망이다.
흥진님은 정말 효자이시다. 하루도 쉴 사이 없이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특혜나 누시엘의 참회를 통하여 작은 가치의 탕감조건으로 이곳 수련소에 많은 영인들이 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다. 상류층에 있는 우리는 지옥의 수련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있다. 40일 수련을 마칠 무렵, 한 영인이라도 더 많이 이곳 수련소로 데리고 와서 자기의 잘못된 삶을 보여주고 직접 회개하게 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관문을 열어 주실지는 아직 모른다. 여러 지상인들이여! 이처럼 힘든 지옥에 오지 않으려면 지상에 살 때 사방을 조금씩 돌아보며 참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육신의 어려움보다 내세를 위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아 살아가길 바란다. 육체의 평안은 지옥 행렬이 될 것이요, 마음의 평화는 영원한 천국의 행렬이 될 것이다. ― 2000. 10. 21 ―
제4장 불교계
1. 불자들에게 드립니다.
불자 여러분, 나는 석가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이란 뜻을 아시지요. 석가라는 사람은 지상생활에서 육신의 쾌락에 젖어 살 때 궁궐밖에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 허덕이고 질병에 시달리고 고생하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인간 석가는 생사화복의 주인이 따로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난 가운데서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많이 고심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겨우 자아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한 후 그 배후의 실체에 대하여 계속 궁금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크신 신(神), 하나님이 존재하기에 나 석가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존재 세계의 모든 현상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란 사실을 석가는 캐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석가 자신을 발견하고 주관하면 석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에 도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극락세계를 가기 위한 삶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석가가 대단히 잘못한 것은 자아발견 이후 하나님의 실존에 대하여 바르게 가르쳐 주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불자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찾지 못하고 알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 석가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불자 여러분, 곧 자아의 발견과 자신의 완성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개체 완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개체 완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완성하여 잘 살다가 극락으로 가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 극락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 석가를 불러서 “네가 깊은 경지에서 묵상하고 온갖 시험과 유혹에서 견디어 낼 때,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느냐? 그 힘의 근본은 만유원력이며, 만유원력의 주인은 곧 하나님이다”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수많은 불자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한 불효를 깊이 명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교에 입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석가만을 찾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책망이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 지구상의 모든 삼라만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수많은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한 하늘 아래 수많은 인종과 종교, 여러 차원의 문화의 색깔은 하나뿐인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의 종교와 하나의 문화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소망이요, 창조이상이요, 목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섬기고 모셔서 한 울타리에서 같은 호흡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위해서 이제부터 석가를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세계에서 같이 만나서 살기 위하여 불자 여러분이 모시고 사는 부처 석가 대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에 부처 앞에서 절을 할 때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정성을 들여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부처는 이미 하나님을 부모로 모신 자리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부처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러한 석가를 긍휼히 보시고 불자들을 구제하시기 위하여 지상인과 축복(결혼)을 맺어 주심으로써 우리 불자들을 구해 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곳(영계)에 와서 많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석가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통일교회 문선명 스승님의 지시에 따라 불자들의 구원 운동에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석가는 이곳에 와서 지극히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불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명 스승님의 사상에 대하여 공부하십시오. 이곳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세계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최상의 삶입니다. 그곳이 곧 극락세계입니다. 그러니 불자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불자 여러분의 삶의 방향 전환을 위하여 석가는 영계의 삶을 계속 전달하고자 합니다. 부디 이 점을 명심하고 연구하길 바랍니다.
불자 여러분을 위하여 석가 드림
― 2000. 10. 23 ―
2. 불자들이 머무르는 곳
인간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생활하다가 지상생활을 마치고 이곳 영계에 오게 될 때 저마다의 삶의 모습에 따라 가는 곳이 다르다. 육신을 쓰고 지상에 살 때 부자나 권력가는 그들의 뜻대로 크고 좋은 집에서 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살기도 한다. 말하자면 지상생활에서는 돈과 권력과 명예만 있으면 자기의 뜻대로 거의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면 자기의 권한이 없어진다. 그 영혼은 지상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영계의 처소가 결정된다. 지상에서 부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상당히 거대하고 호화로운 장례식(승화식)을 치르고, 비교적 넓은 자리에 화려하게 산소를 마련한다 할지라도 이곳에서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외로운 자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서 외롭고 초라한 승화식을 치렀다 할지라도 이곳에서는 수많은 영인들이 운집한 화려한 환영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해 희생 봉사하고 살았다면 그는 이곳에서 참으로 귀한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불교인들에게 간곡히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밝히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공통적 사실이다. 특히 불자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은 아무리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영위하였다 할지라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고 영생 복락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생 복락의 세계는 석가와 상관이 없다. 석가는 지상에 있을 때 영원히 머무르는 곳을 발견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이심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엄청난 불효를 하였다.
지금 불자들이 머무는 곳은 낙원세계의 최하류층이다. 석가는 수많은 불자들을 잘못 깨우치게 함으로써 불자들의 영혼을 이곳에 정착시키고 말았다는 아픔과 죄책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하나님께 그리고 불자들에게 한없이 죄송하다. 불자들도 한결같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석가의 가르침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극락세계를 소망하게 되었다. 석가는 이 사실에 대해서 무한한 안타까움과 송구함을 느끼는 바이다.
불자들이여! 석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잘못 양육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지상에서 4월 8일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그 날이 되면 석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다. 여러 불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곳 불자들이 고대하는 극락세계, 곧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상에 있는 불자들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단의 문을 활짝 열고 모든 교파의 장벽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모든 만물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권 아래 하나의 이념으로 연결된 것이요, 모든 인류는 하나의 혈통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다.
그런데 인간 조상의 잘못으로 인종과 종파와 국경이 생기고 언어가 달라진 것이다. 인간은 불교, 기독교, 유교 등 여러 종교와 종파의 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상으로 통일되고, 온 인류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고 하나님을 부모로 섬기면서 지상에서 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상생활을 마친 후, 이곳 천국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로 되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다.
그런데 지금 불자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먼 곳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을 때를 생각해 보라.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석가는 하나님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불효 자식이 되고 말았다.
불자들이여!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모든 인류는 한 형제자매다. 이러한 대 진리를 깨닫고 온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한 이념으로 하나님나라 건설에 생애를 바쳐 오신 한 스승이 계시다. 그분이 바로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전 생애를 피땀으로 얼룩 지우며 사셨다. 그리고 전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잇기 위하여 세계의 여러 인종을 섞어 가며 축복(결혼)시키고 있다.
불자들이여! 여러분 주위에 있는 통일교회를 찾아가 통일교인들을 만나 보라. 그리고 그분들의 이념을 들어 보라. 세계 어느 대통령, 어느 지도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섭리를 풀어 가고 계시는 분이 바로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각 나라마다 흩어져 있는 통일가의 가정을 자세히 살펴 보라. 그들은 문선명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남에서 북에서 서에서 동에서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그들 스승의 가르침이 바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한 생애의 배필을 사진 한 장으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문선명 스승님을 믿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애를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요, 전 인류의 어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념과 사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이며, 고루한 불교의 관에서 탈피하라. 여러분은 그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고 여러분의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수많은 불자들은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이곳 영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진리와 이념을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다.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석가의 길을 잘 알 것이다. 석가의 지상 생애는 열반의 경지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석가가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이젠 석가를 섬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천명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지금까지도 석가의 가르침을 믿고 따랐으니 이제 석가의 마지막 부탁을 다시 한번 들어주길 바란다. 참스승이 지상에 계시다는 사실을 지상의 여러 불자들에게 꼭 전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참스승의 길을 따라야 한다. 참스승은 다름 아닌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그분의 뜻을 따라만 가면 여러분은 참된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석가의 간절한 소원이다.
― 2000. 10. 24 ―
3. 석가의 일생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것이 평범한 원리인데, 이 석가는 평범한 인간의 삶 그 자체가 평범하게 느껴지지 못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다. 걸인의 걸음걸이, 부자들의 걸음걸이, 머슴들의 걸음걸이, 벼슬 정승들의 걸음걸이가 모두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는지, 그리고 왜 모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달라야 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왜 생기는지…. 왜 이처럼 모든 인간은 고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 종착지가 어디인가가 궁금했다.
석가는 배고픈 경지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병든 자의 고통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체험해 보려고 애를 썼다. 당시 석가는 헛되고 잡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고 일반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지탄을 들었다. 그러나 생로병사가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다면 이 평범한 논리가 왜 석가의 가슴을 이토록 에이게 하는지가 더욱 궁금했었다. 이처럼 고통과 갈등 속에서 생활하다가 석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전승해야 할 왕관을 버리고 결국 출가하고 말았다.
그 날부터 석가가 걸어왔던 고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석가는 마음의 자유 천지를 누릴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진리를 접하기 위해서는 배불리 먹고 깨달을 수가 없었다. 왜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가 무척 궁금하였다. 석가의 가슴은 매일매일 조여들었다. 그 때마다 석가를 에워싸고 있는 큰 실체가 있음을 깨달았고 석가는 그 실체로부터 알 수 없는 힘을 받았다. 석가는 그 힘의 원인자가 있을 것 같아서 원인자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것을 찾지 못했다.
석가가 선택한 고행의 길은 너무도 단순한 것이었다. 대우주의 원인자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의 모습만을 사색하였다. 그것은 결과적인 인간에 관한 지극히 국한된 사색이었다. 이처럼 한 생애를 외길로 살아왔지만 결국 석가는 생로병사에 대한 완전한 해답도 찾아내지 못한 채 생애를 마쳤다. 아무리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석가는 거대한 우주의 근본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귀한 사자를 나 석가에게 보내시고 숙제를 주셨다. 그것은 석가가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일생 동안 희생과 고행의 길을 걸어왔는데, 왜 지금 하나님과 직접 대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석가는 너무도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저 황공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사자를 기다리면서 석가는 하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그 사자가 나타나서 “부르셨느냐?”고 물으며 하나님의 숙제에 대한 해답을 달라는 것이다. 그때 석가는 “하나님이시여! 석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주의 근본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지 못했으며,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만 생각했고, 우주의 근본 주인이 계심을 깨우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해답을 올리자마자 갑자기 그 사자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이후, 석가의 마음은 한없이 조여들었다. ‘어찌할까?’ 하고 마음을 조이면서 몇 날을 보내고 있는데, 그 사자가 휘황찬란한 광채를 발산하며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석가님, 하나님이 계신 곳은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한 광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빛의 광채를 찾아볼 수 없지요. 하나님은 ‘석가님의 근본 깨우침이 아직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기를 원하시면 먼저 하나님께 경배를 올린 후 좀더 기다리십시오”라고 하면서 그 사자는 사라졌다. 그 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사자가 왕래하는 가운데 석가는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체온 속에 살아가는 하나의 분신인 것을…. 그런데 석가는 대우주의 크신 어른,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살았던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는가? 석가는 이것에 대해서 쉽게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석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 대우주의 주인은 하나님밖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행복과 평화가 충만한 곳으로 인도하려고 애써 오셨지만 인간이 잘못 살아왔던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슬픔이요, 하나님의 한(恨)인 것이다. 인류 역사의 출발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역사의 출발을 바로잡고 인류를 행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상에 문선명 스승님을 보내시고 새로운 진리를 밝히시게 한 것이다. 석가는 늦게나마 이러한 새 진리를 깨닫고 원리를 배웠다.
불자들이여! 문선명 스승님의 길을 따라야 하고 석가의 가르침이 부족했던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새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을 부르면서 석가의 가르침에만 의존한다면 극락세계는 불자들과 한층 더 멀어질 것이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 진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여러 불자들의 주인은 석가가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체를 쓰시고 인류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평화 사상을 선구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지상에 계시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이 사실은 현재 불교 신도들이 가장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 2000. 10. 25 ―
4. 불교인의 환생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바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따라 살다가 육체를 벗는다는 것은 대단히 복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왕실도 버리고 화려한 가문도 버리고 한 생애 동안 한 진리를 찾겠다고 숱한 고생을 하면서 살았던 석가의 생애는 한없이 슬프고 불쌍했다. 그렇다고 불교의 진리 모두가 그릇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석가는 그 진리를 따라 살다가 보니 탐욕도 시기도 없어졌다. 그리고 석가는 속세에서 물 따라 바람 따라 욕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얻었겠지만 우주의 근본과 인간의 주인에 대해서 깨우치지 못해서, 인간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목적도 알지 못하였다. 인류 역사의 흐름이 잘못되어 복귀섭리를 경륜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가운데 고행의 생애를 보냈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석가의 생애를 생각해 보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지난 세월을 다시 돌려놓을 수도 없으니 더욱 한심하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주님의 재림시대와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었기에 이곳에 와서 몸부림치며 목놓아 울고 말았다. 석가의 생애가 그의 생애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석가가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그토록 고행의 길을 걸었고 왕실의 가문을 버렸을 때 가족의 아픔이 어떠했겠는가. 지난날 석가의 삶은 하나님 앞에 외도한 자식의 노릇인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
석가의 고행 길에서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는가 하는 가슴아픈 느낌은 어거스틴보다 훨씬 더 깊고 크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몸부림이지만 석가는 종단의 책임자로서의 몸부림이었다. 이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다. 석가는 불자들의 고행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한 인간이 고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고난과 아픔을 석가는 알고 있다. 그들의 수행 과정을 지켜 볼 때 석가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면 석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욕망은 생리적으로 아내를 갖고 싶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편히 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그러한 욕망을 모두 버리라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라 나선 불자들을 생각해 보니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 불교인들의 규범을 볼 때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는 스님(고승)이 될 수 없다. 어렵고 힘든 수련을 거쳐 속세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모든 어려움을 참아 내어 한 스님의 자리에 가기까지는 숱한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가 불자들에게 수행의 근본을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곳 영계에서 대우주의 근본 주인인 하나님을 발견한 석가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 부처라는 자리까지 갈 때 걸어왔던 수행의 아픔보다 더 컸다면 누가 믿으랴!
불자들이여, 석가의 아픔을 알겠는가? 지난날 석가의 가르침은 부분적, 임의적, 상대적인 진리였다. 이제 수많은 불자들에게 석가가 다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다. 석가가 고행과 수행을 통하여 최고의 자리에서 찾아진 진리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죄짓지 않고 잘 살다가 극락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죄가 무엇인지를 몰랐고, 극락이 또한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몰랐으며, 우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몰랐다. ‘나’라는 자체가 어디서 왔는지 그 근본을 몰랐다. 이제 석가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통일원리를 통하여 바로 가르치고자 한다.
통일원리는 바로 통일교회의 문선명 스승님이 밝혀 낸 최고 진리이다. 이 진리를 통하여 죄의 근본도 알 수 있게 되었고, 인간 삶의 방향과 목적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경륜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밝히고 가르치는 석가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활론이 무엇인지 불교인들은 모를 것이다. 통일원리 속에 부활론이 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살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가고, 착하게 잘 살다가 가면 천국에 가게 되어 있다는 원리의 가르침이 통일원리에서 밝혀지고 있다.
불교인들이여!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면, 다시 말해서 아직도 윤회 환생의 망상 속에서 산다면, 극락세계는 여러분과 영원히 멀어질 것이다. 인간은 죽어도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진다. 지상에서 짐승같이 살면 지옥에 간다. 지상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잘 살면 극락세계(천국)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죄를 지었다고 돼지나 개로 만드는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심정 기준을 저급한 돼지나 개나 소의 기준으로 표현할 수는 있어도 인간이 다시 짐승으로 태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 불쌍한 석가의 불완전한 가르침을 용서하라. 이곳에서 바른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불자들이여! 불자들도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부모님이시다. 그러니 불자 여러분도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한다. 이것이 석가의 마지막 부탁이다.
5. 불교인들이 소망하는 극락세계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 인간의 탄생이 있었다. 이승에 한 번 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날이 되겠는가. 그러나 이승에서 잘못하면 짐승으로 태어나 개나 돼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무서움에 쌓여 일생을 마음 조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사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나 하나님이 기다리는 천국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영원한 행복이 충만하고 완성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지만 불교인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억울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죄가 무엇인지도 물론 모르고 있다. 불교인들의 사고 방식에는 원죄 의식이 없었다.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고된 수행의 길을 걸어왔던 불자가 수없이 많지만 이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개신교나 천주교는 물론, 수도의 길이란 대단히 어렵고 고되다. 성당의 수녀님, 신부님도 같은 수행자다. 그러나 석가는 불교 수행자의 길이 더 어렵고 외롭고 힘든 고비 길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토록 참된 진리 하나를 찾아오기까지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어 내었던 비구승들이 얼마나 많은가. 석가는 이들 앞에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몹시 망설여진다. 이들에게 지은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석가 자신이 궁금하다. 이 글을 전하는 석가는 죄인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선명 스승님의 엄청난 축복이 내려질 때도 석가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수많은 비구승들이 즐비하게 기다리는데 어찌 죄인된 석가가 그토록 엄청난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석가는 문선명 스승님을 참부모로 모실 자격이 아직도 없기 때문에 그분을 스승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극락세계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모시고 참진리를 찾아 완성한 인간의 모습으로서 눈빛만 보아도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아름다운 꿈의 동산에서 살아야 하는데 석가가 어찌 그러한 곳에서 평안을 누리며 영생 복락의 꿈을 소망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극락세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무릎이 닳도록 부처님께 절하고 공양드리는 불자들이여!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수많은 비구승의 삶이 잘못 되었다. 헛되고 헛되었다. 인간은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고 자녀를 하나님께 바쳐 드리며 아들딸·손자·며느리 함께 기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극락세계는 가정이 함께 가는 곳이요, 인간이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불자들이여!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극락세계를 소망하며 선하게 살기를 노력한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을 모시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개인의 성찰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기를 노력하고 불쌍한 이웃을 경시하지 않고 살기를 노력하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아시고 후하게 대접하실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된 진리는 대우주의 주인은 석가 부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경시하면 극락세계는 여러분과 관련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요, 극락세계다. 여러 불자들이여! 석가의 가르침은 한 시대의 인간을 선하게 가르치는 진리는 되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살아가는 진리는 아니었음을 이 지면을 통하여 분명히 밝혀 둔다. 그것을 여러 불자들은 분명히 깨닫고 명심하면서 석가의 부분적인 가르침을 참진리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무얼 보고 믿어야 하느냐?”고 여러분은 반문하겠지만 석가 부처는 확실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석가의 생애와 업적을 통하여 여러분은 석가를 믿고 따라 오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주의 대자연의 법칙을 한번 보라. 석가가 자연 법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불자들은 수행 과정에서 매섭게 추운 겨울이 오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우주의 법칙에 따라 에누리 없이 겨울이 오지 않던가. 여러분이 봄과 가을을 좋아할지라도 그러한 환경은 여러분의 뜻대로 계속되지 않는다. 이처럼 오묘한 진리가 대우주에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운행되는 우주의 주인공이 확실히 존재한다. 석가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빚어 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곧 극락세계다.
여러 불자들이여,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연구해 보라. 먼저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고 하나님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부처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며 경배를 올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여실 것이며 여러분에게 영원한 극락세계를 약속할 것이다.
6. 삼라만상과 성불
천지 만물의 조화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이 자기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에 묻혀 살아가고 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살았던 석가는 궁궐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궁궐 밖의 생활을 목격한 그 날부터 석가의 마음을 다스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석가의 마음의 병은 너무도 많아 어떤 약이나 명의도 효용이 없었다. 다만 석가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의 존재가 있었다. 그 힘이 석가를 묶어 버렸다. 그것은 어떠한 마력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었다. 깜깜한 밤도, 어두운 먹구름과 폭우도, 사나운 짐승의 소리도, 살을 에이는 듯한 폭설과 한파도, 그 무엇도 석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 힘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엄청난 고뇌 속에서 석가가 찾아낸 것이 바로 자아의 근원적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강력한 힘으로 모든 것을 해탈하게 되면 부처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나약하여서 부처의 자리에 모두가 설 수 없기에 갖가지 수행 과정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자들은 그 과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일생 동안 자신을 다지고 다져 가면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던져 보고 밟아 보고 더운물에 혹은 엄동설한의 찬물에도 이겨낼 수 있는가를 시험해 가면서 자신을 연단하여 왔던 것이다. 이것이 고승의 생애였다.
여기서 석가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석가 자신을 주관하고 계시는 엄청난 힘의 근원자를 석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원리의 창조원리에서 밝힌 만유원력이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성 어거스틴처럼 석가도 시대적인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석가에게도 그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힘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이 석가를 이토록 비참하게 하였던 것이다. 아내도 떠나고 부모 형제의 아픔도 뒤로 한 아픔의 자리가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오늘의 석가의 가르침에 있어서 근본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때 석가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불된 것이다. 석가는 모든 것이 스스로 성불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엄청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 세계는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석가의 진리는 너무도 오만한 것이었으며 치명적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천지에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의 손길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어디 있던가.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과학 발전의 원동력, 문화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지, 인간의 단독적인 힘으로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
4계절의 조화를 보라. 누가 기다리던가. 누가 초대했던가. 어느 인간의 힘이 닿지 않을지라도 저절로 운행되고 있지 않은가. 덧없이 살아가는 미약한 인간은 이 사실을 현실적으로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하나님의 실존의 문제는 확실하게 증거된 셈이다.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인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인이나 성자가 있다면 나와 보라.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의 근원자, 그 분이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석가는 유일 무이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다. 어찌하랴! 지상생활을 통하여 참진리의 길을 석가가 잘못 소개하였다면 여러 불자들은 석가를 공개 처형시킬 것인가? 여러분을 잘못 인도한 석가의 가르침에 대하여 진심으로 용서를 청한다. 지극히 작은 석가의 가르침을 후하게 대접하여 줄 수 있다면 참으로 고맙게 여기겠다. 그리고 시대적인 환경에 따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석가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이제부터 하루빨리 지상에서 통일원리 탐구에 전력을 다하고 하나님을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 2000. 11. 2 ―
7. 천지 만물은 모두 성불된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자연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여 4계절의 경관을 항상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어느 계절에도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과학 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석가가 어느 날 수행 길에서 돌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조그마한 돌멩이에 부딪혀서 넘어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조그마한 돌멩이의 힘에도 석가가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석가 자신은 참으로 미력한 존재임을 생각케 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실 때, 그러한 힘을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모든 것에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천지 조화의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힘이 미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피조세계의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위치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의 가치 기준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지만 천지 만물의 조화는 어느 것 하나도 거짓이 없이 진실하게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인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자기 중심적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지만, 자연을 보라. 누구의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사명을 다해 가고 있다. 이 자연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그 날부터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의 사명 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천지의 조화로움과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석가가 많은 고행의 길에서 헤매고 헤매었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실존을 캐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수많은 불자들은 석가가 걸어왔던 부분적인 해탈의 경지를 하나님에게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석가의 가르침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석가의 가르침은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석가는 이곳에서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청난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석가는 인간이다. 여러분은 인간의 속세를 떠나 번뇌의 길에서 석가를 통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참고로 하여 대자연의 주인인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석가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삼라만상의 존재 양상과 그 조화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기를 바란다. 지극히 작은 미물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서로 질서의 궤도로서 운행되고 있지 않는가. 어느 누가 엄청난 자연의 이치에 맞서서 이길 자가 있던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우주의 모든 것은 유일 무이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존재,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자들이여, 석가의 뒤늦은 깨우침이지만 이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불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석가의 간절한 부탁이다.
8. 유일무이한 존재 ‘나’
하나님의 피조물은 여러 차원으로 존재한다. 광물세계, 식물세계, 하등동물에서부터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존재물이 있다. 이처럼 무수한 존재물 중에서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고, 또한 상대(짝)를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꼭 같지 않다.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물은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 하나의 개체인 ‘나’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창조한 유일무이한 개체인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 중에도 가장 귀중한 존재인 인간으로 지음 받은 ‘나’의 모습이다. 그러한 존재인 ‘나’는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 우리 인간은 그냥 지음 받았으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갈 뿐이라는 종래의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은 하나님에 대한 보은의 삶이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석가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하여 감사했다. 그리고 하등식물의 미물이나 어떤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에 대하여 지극히 감사했다. 그리고‘나’를 찾고 싶었고 발견하고 싶었다. 그 결과 자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앎’이 지극히 부분적인 깨우침이었다. 인간이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의 대상도 연구의 대상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나’라는 존재 가치를 바로 깨달아 짤막한 인생 길에서 올바른 행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불자 여러분은 인생의 근본을 바르게 찾기를 바란다. 수많은 불자들의 삶을 석가는 잘 파악하고 있다. 착하고 선하게 살아서 극락세계로 가야 할 것이다. 윤회 환생하여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려는 여러분의 수행 과정과 그 목적을 석가는 잘 알고 있다.
인간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충견(忠犬)은 비록 네 발을 가진 짐승일지라도 주인의 은혜를 알고 주인 앞에 생명을 바치는 경우가 있음을 보지 않는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이러한 개보다 못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불자 여러분은 삶의 가치와 본질을 잘 알아야 한다.‘선’이란 무엇이며‘악’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는지 그 본질을 찾아보면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바르게 잡아질 것이다. 자연 만물은 계절마다 변하면서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꾸며 가며 서로서로 기쁨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변화는 누구에 의하여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가?
불자들이여, 놀라지 말라. 모든 존재 세계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모든 존재 세계의 모습은 오직 인간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최대의 걸작품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 걸작품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봄이 오면 인간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새싹들을 보게 하고, 여름에는 풍성한 만물을 느끼게 하고, 가을이 오면 모든 곡식들이 여물게 하여 인간이 그것을 추수하게 하고, 겨울에는 고요한 설경에서 인생을 명상하게 한다. 강, 들, 바다, 초원도 인간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창조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인간을 모든 피조세계의 주관자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하셨을까?
석가는 깨달음의 경지가 부족했었다. 여러분은 석가처럼 고행의 길, 행자의 길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여러분이 좋은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편안히 세계를 여행할 수 있고, 산길 들길 꼬불꼬불한 험한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돈만 있으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도 편안히 구경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불자 여러분은 뜻만 있으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은 부처의 시대가 아닌 성약시대다. 성약시대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대다. 통일원리의 창조원리를 자세히 정독해 보라. 그곳에는 선악의 문제가 바르게 밝혀져 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밝혀져 있다.
불자들이여, 여러분 모두는 본래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나’라는 한 개체는 그저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의 사고방식처럼 인간이 잘못 살면 동물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인식하는 시대는 이미 멀리 지나갔다.
인간은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참된 자녀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서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의 도리를 다 하는 첫째 덕목이다. 여러 불자들이여,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깊이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 개체의 완성은 부자 상봉의 자리에서 실현됨을 분명하게 그리고 길이길이 명심하라. ― 2000. 11. 24 ―
9.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실 때 모든 피조세계를 상대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상대성을 띠고 창조된 만물은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 번식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통일원리의 창조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상대성 원리에 의하여 서로 주고받는 힘의 작용에 의하여 번식되게 되어 있다. 인간의 번식도 마찬가지고, 인간의 생리 구조도 상대가 필요하게끔 창조되었다. 이것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독처하는 것이 보기 안쓰러워 해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물인 ‘나’라는 개체는 어떻게 살게 되어 있나?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가치성을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나를 깊이 생각하고 어떻게 그것을 하나님에게 보답해 드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 홀로 편안하게 잘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나 홀로’란 글자가 이미 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인간은 홀로 잘 살아간다는 어구가 이미 한참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혼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 가게 되어 있다. 부부를 이루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번식하여 4위기대를 조성할 때,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참사랑이 운행한다. 이러한 원리가 창조론에 나오고 있다. 4위기대는 가정을 이루지 않고 혼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국, 즉 극락세계는 가정적 4위기대를 이룬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극락세계를 대망하는 수많은 불자들의 삶은 그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며, 물욕도 권세의 욕망도 다 버리고 살기를 진력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바라보는 참모습이 아니었기에 불자들의 영혼은 저급한 영계권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나’라는 존재는 정말 귀하고 귀하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 보라. 아무리 헤맬지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정말 유일무이한 것이 나의 모습이다.
이러한‘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나’자신은 도대체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 드려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 점을 유심히 생각해야 한다. 석가가 이 진리를 깨달았다면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수도의 길을 가지 않고 그 속에서 진리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미 석가의 길은 지났으니 석가 같은 인물은 이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석가의 간절한 염원임을 여러분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직도 석가와 같은 길을 선택한 불자들이 있다면, 다시 돌이켜 인간 본연의 모습에 따라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로운 진리의 깨우침을 몰랐을 때는 그 길로 계속 전진해야 하겠지만 여러분의 스승인 석가 자신이‘이 길은 잘못된 길이었다’고 확실하게 알려줬으면 겸허한 자세로 그 사실을 받아 들이라. 이것이 스승과 제자의 올바른 관계가 아니겠는가.
세계 여행의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바다로, 땅으로, 하늘로, 등등으로 여러 방법이 있다. 이처럼 극락세계에 이르는데 있어서 어느 길이 여러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빠른 길인가를 생각해 보라. 여러분의 인생은 너무도 짧다. 여러분이 성약시대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의 진부한 유물을 계속 고집한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하나님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견해만 최고라고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의 진리 앞에 겸손한 모습을 갖는 것도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고루한 불자의 진리에만 얽매이지 말고 한 번 다시 생각해 보라. 여러분 자신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항상 잊지 말라. 성약시대에 있어서 이것은 석가의 마지막 당부요 석가의 염원이다. 통일원리를 알고 보니 석가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음을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이것은 석가의 솔직한 고백이다.
여러 불자들이 지금까지 석가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 왔으니 이제 석가가 이곳에서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이 지면을 통하여 전하고 있으니 여러 불자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받아 들이라. 그리고 하나님을 여러 불자들의 가정에 하루속히 모시길 바란다.
― 2000. 11. 15 ―
10. 원리로 본 인간의 영생
생로병사에 관한 진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선이 진리이었던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길이었던가? 우주만물의 주인, 대우주의 주인, 인간의 창조주, 인간의 부모인 그분이 인간에게 생로병사를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논리적 모순인가 생각해 보라.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생로병사를 주었다는 것을 당연하고 지당한 원리인 것처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믿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고개 저 넘어 숨겨져 있는 보화(비밀)와 새 진리를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고, 그리고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흘러왔다.
그것이 도대체 무얼까? 석가의 생애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묵상의 시간, 명상의 시간, 시름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깨달음이 오지 않았을 때, 석가는 그것을 찾기 위해 천비(天秘)의 세계를 뚫고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저마다의 사명이 있는 것 같다. 석가 시대의 그릇은 하나님의 직접적 선택의 몫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석가는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른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숱한 고비를 넘겼건만 석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재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대에 석가에게 내려진 깨우침은 다만 평범한 진리일 뿐이었고, 한 시대의 인간이 선하게 살도록 인도하기 위한 진리일 뿐이었다. 인간이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떠나서 살게 되면 마음이 평안해 지고 시샘도 없어진다. 석가의 가르침은 인간이 지상에서 한 세상을 그렇게 살다가 극락세계로 가면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불과하였다. 석가의 시대에는 그 정도의 진리를 밝힐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이러한 진리를 최고의 진리라고 소개한 석가의 교만함이 여기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힘은 부족하고 미천한 석가로 하여금 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간이 죄짓지 않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석가는 하나님이 당시의 이러한 진리를 석가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밝혀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다. 당시 석가의 궁극적 목적은 결코 그러한 진리의 깨달음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지만 궁극적 진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곳 영계에서 석가는 통일원리를 청강하고 정독하고 있다. 석가는 당시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왕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정황을 생각하면서 원리를 정독하고 있다. 그것은 통일원리가 너무도 위대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문선명 스승님을 선택하신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과 혈통을 볼 때, 복귀섭리의 대 전환점이 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때 문선명 스승님은 개인의 욕심과 야망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석가에게 참으로 중요한 깨우침이었다. 문선명 스승님은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진 하늘의 비밀을 만천하에 밝히시고 인간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진리를 찾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승리요, 죄악 세계를 구출할 인간의 승리였다. 그래서 문선명 스승님은 우리 불자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고대해 온 성현 중 성현인 미래 부처, 미륵불이시며, 인류의 참부모이시다. 이것이 석가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불자들의 생애를 계속 탓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하면 불자들의 마음이 상할 것이다. 그 결과 불자들은 ‘현재의 석가’를 본래의 석가가 아니라고 단정하거나, 어떤 거짓 부처가 속세를 떠나 살다가 죽은 사악한 귀신이나 마귀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지라도 석가는 이 메시지를 계속 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통일원리는 지상생활이나 영계생활의 엄연한 진리이기 때문이요,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살길은 오직 통일원리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요, 전 인류는 통일원리로 거듭나지 않으면 영생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의 4대 성인들뿐 아니라 모든 종단의 우두머리들이 한결같이 통일원리를 청강하고 있고, 통일원리 앞에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자들이여, 행자들이여, 수세대 전에 유명을 달리한 석가가 이곳에서 깨달은 진리가 통일원리이다. 여러분이 다시 속세를 떠난 심정으로 통일원리를 붙들고 매일매일 일보 백보 천보 만보를 걸어 보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몰라보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는 정답이 여러분 앞에 제시될 것이다.
통일원리는 우리 인간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교과서요, 지침서요, 인생의 공식을 풀어주는 인생의 해답이다. 여러분, 영생이 무엇인가? 영원한 삶의 가치를 통일원리에서 확실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를 공부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오면 우리 불자들의 삶도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석가가 가르친 깨달음의 진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통일원리를 접목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원리를 정독하면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불자들이여, 석가가 너무 가혹한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귀하게 아끼기 때문에 이렇게 메시지를 전한다. 여러 불자들도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혹은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부모의 자리에 서지 않는가? 석가도 예외일 수 있겠는가. 불자들은 석가가 너무도 사랑하는 제자들이요, 가족이요, 식구가 아닌가. 하루속히 통일원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여러 불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인생 사전에서 통일원리가 직접 인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분명한 석가 부처다.
불자들이여! 이젠 힘든 고행의 길을 걸을 때가 아니다. 성약시대가 도래하였다. 성약시대란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을 모시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이 시대 새로운 삶의 모델이 통일원리에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여러분 모두는 하루빨리 그 내용을 정독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길 간곡히 바란다. ― 2000. 11. 16 ―
11. 원리로 본 인간의 구원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아 하나님이 원하셨던 본연의 모습대로 살았더라면 인간에겐 구세주가 필요 없었다. 마치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 없고 약이 필요치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자녀의 모습으로 완성의 길로 잘 갔었으면 왜 인간을 구해내야 할 메시아가 필요했겠는가? 인간은 태초부터 잘못 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즉 미 완성기에서 인간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되었다.
인간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인간을 다시 구해내야 할 중보자, 곧 메시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인간이 잘못됨으로써 죄악 역사가 오랫동안 흘러온 것이었다. 왜 인간이 잘못되고 있는 사실을 보시고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간섭치 않고 내버려두고 죄악 역사가 이토록 오랫동안 흘러오게 하였는가? 하나님은 선을 창조하였지 악을 창조하지 않았다. 인간은 일정한 성장기간을 통하여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온 우주의 주인이 되고 모든 피조물의 주관자가 되도록 창조하셨는데, 일정한 기준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잘못이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되는 과정을 지켜보고만 계셨는가? 그것은 악을 창조하지 않았던 하나님이 악을 간섭하게 되면 악을 창조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잘못을 청산할 수 있는 주관주, 곧 메시아가 나타나서 죄악 가운데 떨어진 전 인류를 하나님 앞으로 복귀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인류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보자, 메시아를 보내기로 약속하셨다. 이제 비로소 우리 인간은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과 기회를 찾게 되었다.
죄악 가운데 떨어진 우리 인간의 모습을 메시아가 강림하여 죄가 없다는 기준에 세워 주시고 인류에게 축복을 시켜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을 통해서만이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석가는 축복을 받았다. 축복이 뭐냐? 세상에서 말하는 시집 장가가는 것이다. 축복을 누가 시켜주시는가? 통일교회 문선명 스승님은 인류의 메시아로서 축복의 주례자이다. 석가는 불자 여러분에게 너무도 무례한 부탁, 너무도 염치없는 부탁을 강요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 부탁은 여러분은 하루속히 문선명 스승님의 축복 대열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불자들이여, 석가가 걸어왔던 수행의 길, 고행의 길은 여러 불자들에겐 이제 필요 없어졌다. 시대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환경이 도래하였다. 불자들이여, 이것은 석가의 음성이니 명심하고 들어 보라. 석가가 태어난 당시 인도와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 당시의 인류는 자유스럽게 다닐 수도 소식을 알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비행기만 타면 마음놓고 오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신앙의 시대적인 혜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자녀를 직접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기에 석가처럼 어려운 고행의 길을 걷지 않고서도 극락세계로 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렵게 고생시켜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겠는가. 참인간의 모습이 되기 위한 성장 과정을 거쳐 인간이 참된 삶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은 온 천지의 만물을 그의 자녀인 인간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우주의 배후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고 살았다. 이제야 석가가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돌아 오라. 석가의 품속으로 오라. 이젠 그렇게 힘든 수행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뿐이다. 동안거도, 하안거도 하나님은 받지 않을 것이다. 무릎이 닳도록, 이마가 벗겨지도록 천 배, 만 배 하지 말라. 불자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실존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따라만 오라. 여러분이 믿고 있는 석가보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부모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면 극락세계로 직접 올 수 있다. 이 길이 최고의 지름길이다.
불자들이여! 불자들이 극락세계, 곧 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석가는 천국에 못 간다. 석가는 메시아에게 축복을 받고 천국에서 편히 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불자들에게 잘못된 진리를 영원한 진리인 것처럼 가르친 책임자로서 가슴이 메어 오는 아픔과 하나님의 자녀를 잘못 인도한 죄인의 심정을 지니고 있다.
메시아는 우리 인간에게 참부모이며, 구세주이며, 구원자이며, 우리 인류의 해방자이며, 우리를 영원한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분이다. 불자들이여, 구원이 무엇인지 아는가? 불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아도 이곳 극락세계로 올 때 함께 올 수 없을 것이다. 메시아로부터 다시 축복을 받아야 영원한 부부가 된다. 메시아를 주례자로 모시고 하나님 앞에 축복식을 올려야 극락세계, 즉 천국으로 올 수 있다. 불자들이여, 이 일이 어렵겠는가? 그것이 영원한 구원이요, 극락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우리 모두 이곳 극락세계에서 함께 만나자.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통일원리 교본을 보고 연구하라.
불자들이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석가를 믿고 따라왔지만 영원한 보금자리에 오려면 메시아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 메시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메시아가 누구일까?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우리 모두는 그 분을 부모로 모시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불효자 석가는 아직도 그분을 부모로 부를 수도 모실 수도 없는 안타까운 심경으로 나날을 보낸다. 다만 스승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석가의 심경을 불자들이 이해하겠는가?
여러분 불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돌아오면 우리 모두 다같이 메시아 앞으로 나아가 큰절을 올리며 “우리의 아버지, 구세주 아버지, 만세! 천지 부모님 만세!”하고 큰 함성으로 불러 보자. 불자들이여, 행자들이여, 나는 석가 부처다. 석가의 이 메시지를 믿고 따라야 한다. 그리고 석가의 최후의 부탁을 들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 전하면 우리 불자들이 석가의 부탁을 확실히 믿을까?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분명히 이해할까? 여러분이 아무리 해도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통일원리를 정독해 보라. 그러면 그 사실이 믿어질 것이다. 부탁하고 애원하노라. ― 2000. 11. 17 ―
이 리포트를 끝내고 석가 부처님은 너무도 많이 우시면서 리포터에게 부탁한 내용을 여기에 기록했다.“도와 달라, 도와 달라”고 통곡하면서 말씀하였다.
사모님! 통곡하고 싶습니다. 이 심정을 어떻게 전하면 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냥 통곡하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내 사랑하는 불자들, 비구니들, 오늘도 내일도 칼 추위에 떨면서 얼음장을 깨어 내며 냉수 마찰을 하면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이 석가가 어찌하면 좋습니까?
내 마음보다 자녀를 바라보고 가슴 아파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더욱 괴롭습니다. 사모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쉬운 길이 없겠습니까? 석가가 그 시대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꼭 도와주세요. 이 메시지를 책으로 출판하여 그것을 절마다 한 권씩 전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소문이 나게 되면 석가가 그것을 놓고 역사(役事)하겠습니다.
모든 불자들이 복귀될 때까지 석가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12. 생로병사의 길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병들어 죽고 늙어 죽게 되는 것을 지상의 인간은 대단히 평범한 이치인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도 무가치한 것이다. 수많은 생명들 가운데 이승에 한번 태어날 수 있는 인연은 너무도 소중하고 존귀한 것이다. 그런데 태어나서 병들어 죽게 되고 늙어 죽게 된다면‘왜 태어나는가?’하는 근본적 의문이 생길 것이다.
석가의 괴로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처럼 평범한 이치가 석가를 무척 괴롭혔던 것이다. 석가는 궁궐 안에서 풍요롭게 생활할 때 궁궐 밖의 사정을 몰랐고, 인간 삶의 모습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철이 들고 성인이 되어 갈 때 궁궐 밖의 세계가 궁금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난 석가가 백성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왕의 계대를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 석가가 인간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였을 때 석가의 눈에서 불덩이가 드나드는 것 같은 전율이 일어났다. 그 이후 석가의 가슴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이 계속되었다.
특히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태어난 인간이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볼 때 석가의 아픔은 이루 필설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인간의 현실임을 느낀 이후부터 석가는 수많은 명상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석가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수도자를 만났더라면 석가의 깨달음의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인도의 사회에는 가난과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문제보다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했을 것이다. 당시의 인간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환경과 사정에 따라 인간 본능이 여러 차원으로 달리 나타났다. 인간은 가난하고 병들었을 때 무언가에 의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생기기 마련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그러한 본능은 인간 속에 잠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장소에서 인간은 자기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절하고 기도하는 관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당시 인간은 우주의 근원자, 절대자 하나님의 모습을 찾는 것에 주력하지 못했다. 제한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 발로가 비교적 저급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즉 당시의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찾기보다 인간의 현실적 참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다.그래서 당시 석가가 걸어갔던 길은 일반인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석가는 궁궐 안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경험하였지만 일반인들은 처참한 현실에 항상 젖어 살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처참한 현실 자체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현실적 삶 자체가 너무 고달팠기 때문에 ‘인생’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석가는 궁궐 안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 보았기에 일반인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할 때‘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인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석가지만 석가도 수도 생활을 통한 고통에서 탈피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던 수도의 길이었다.‘수도의 길’이란 후대의 사람들이 붙여 준 대단히 격조 높은 표현이었다. 당시 석가의 생활은 문자 그대로 질퍽질퍽한 흙탕물에 잠긴 것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나 왜 석가의 생애가 그토록 고통스러웠나를 석가는 깨닫지 못했다. 이 나라(영계)에 와서 통일원리를 듣고 하나님을 발견한 후, 석가 자신의 수도 생활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그러나 석가의 깨달음은 너무도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이곳에서 생각해 보니 한 인간이‘인간 삶의 의미’를 깨닫겠다고 덤빌 수 있는가? 그것은 대단한 교만과 오만이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석가는 인간을 주관하고 인간 차원보다 높은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티끌만큼도 생각해 보지 못하였다. 석가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석가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석가의 생애를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당시 석가는 선과 악의 근원, 그리고 죄의 근원을 깨닫지 못했으며 왜 인간은 생로병사의 길에서 허덕이며 살다가 사라져 가는가를 깨닫지 못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 시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의 방향이 그릇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가난과 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석가는 감히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석가가 불자들을 잘못 가르쳐 놓은 결과, 불자들의 생활이 지금도 고루한 신앙을 지닌 채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수많은 불자들의 생명을 구원의 길로 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까? 석가는 가슴이 저며 오도록 하나님 앞에 죄송함을 느끼면서 불자들의 구원에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괴로워서 잠시도 견딜 수가 없다. 어떤 신앙을 하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놀아났던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하여 온갖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며 극락세계를 소망으로 삼고 힘든 수도의 길을 선택한 수많은 불자들이 영생의 극락세계가 아닌 낙원의 하류층 영계에 안착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석가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리포터를 하는 여인의 손과 팔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죄 없는 한 여인 앞에 하소연도 적지 않게 했다. “불교인을 살려 달라. 불자들의 복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그러나 어찌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지상의 현실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고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제약을 받고 있으니 석가의 이러한 심경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 실정에 처해 있다. 불자들이여, 석가의 이토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어찌 하면 좋을까. 불자 여러분이 그 방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여러분이 석가의 이러한 고통을 해방시키는 열쇠를 쥐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새 역사가 시작되기를 염원하였는데 아직도 그 역사를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지금 석가는 육체를 잃고 이곳에 있지만 자신의 육신 생활보다 이곳에서 직면한 고통이 더욱 심각하다.
사실 석가는 죄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석가가 바라는 기준과 달리, 사랑하는 불자들의 고행이 이 정도의 안식처밖에 마련할 수 없는 이곳 영계의 현실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길 부탁한다. 불자 여러분은 무능한 석가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불자들이여, 여러분이 사후에 이곳 극락세계를 소망하는 한, 불자 여러분이 가고 있는 그 길을 주위의 사정에 연연하지 말고 잔인하게 다시 방향을 전환하라. 그리하여 여러분의 신앙 길에서 하나님을 찾고 모신다면 이곳 극락세계로 직접 올 수 있다. 이러한 석가의 간곡한 부탁을 실천에 옮긴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극락세계로 올 수 있다. 여러분은 석가의 이러한 부탁을 지나가는 메시지로 듣지 말라. 이것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대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통일원리를 공부하면 바르게 알게 될 것이다. 통일원리는 인생의 바른 교과서다. 이것이 불자 여러분이 추앙하고 섬겼던 석가 자신은 물론 여러 불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지침서다. 부디 여러분이 가던 길을 급회전한 후 하나님을 섬기라. 이것이 석가의 당부요 부탁이다. ― 2000. 11. 17 ―
13. 원리로 본 인간의 원죄
세상에 태어나서 병들어 죽고, 늙어서 죽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고귀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가장 고귀한 그의 자녀로 창조하시고 그들이 부부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기 위하여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인간은 완성을 향하여 성장해 가는 기간, 즉 성장기간에 하나님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잘못 가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통일원리 교본에서는 타락이라고 규명한다.
하나님 본연의 뜻을 이루어 보지도 못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서 탈선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이 원죄가 가슴을 치고 통곡할 만큼 억울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사랑하셨지만 심부름꾼으로 창조된 천사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죄악의 자식을 번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 시조의 잘못으로서 인간 원죄의 시발이 되었다. 인류역사의 배후의 내막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석가가 불자들을 잘못 가르쳐 왔던 것이다. 이로써 석가의 아픔보다 더 큰 하나님의 아픔이 인류의 가슴속에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한이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한스러운 사실을 누가 밝혀 낼 수 있었겠는가?
석가가 이러한 원리적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될 때 그 사실을 수없이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질문을 하면서 인간 죄의 뿌리, 즉 원죄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석가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그 심경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생로병사란 인간에게 너무도 가혹하다고 생각하고 고민해 왔던 석가에게 그것은 커다란 충격적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소망과 기대는 더 큰 것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될 때 석가의 마음은 다소 평안하였지만, 예기치 않았던 인간의 원죄 때문에 한결같이 고통을 당하고 살아왔던 우리 인생을 생각하니 정말 억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통일원리 교본은 문선명 스승님이 진리를 밝히려는 처절 참절한 역경을 통해 찾아진 내용으로서 우리 인간의 구원서이다. 이 사실을 누가 알 것인가? 수많은 인류가 사망 길에서 속절없이 사라져야 할 기구한 존재가 되었지만 이토록 엄청난 천비(天秘)를 밝혀 주신 스승님이 계셨기에 인류가 사망 길에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찾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인류는 그 스승님의 은혜에 천만번 죽어도 갚을 길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사실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움츠리고 있었던가. 그 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은 그 비밀의 보자기를 한번도 풀어놓지 못하고 억울하게 초연하게 가슴을 조이며 살얼음 밟듯이 기다려 오신 것인가.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의 아픔을 인류 역사에 그 누구도 몰랐단 말인가. 어디부터 이 곡절의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석가가 마왕과 싸울 때 한 고비, 한 고비를 물리칠 때마다 석가에게 몰려오는 것은 기껏해야 나 자신을 스스로 찾고, 주관하는 엄청난 힘에 대한 깨달음뿐이었다. 그렇지만 석가는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모든 사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만만하였다. 이렇게 힘든 고뇌와 번민의 길에서 얻어진 자그마한 힘으로 말미암아 석가는 자기 자신을 겨우 찾았지만, 하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그 스승님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불자들이여! 이러한 인간의 원리를 설명하여도 석가의 새로운 가르침을 믿지 않을 것인가. 문선명 스승님의 밝히신 원리 내용을 샅샅이 정독하여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명심하라. 그것은 여러 불자들이 살아남아질 수 있는 인생의 교본이요, 여러분이 그토록 수행의 길을 연단하지 않을지라도 소망하던 극락세계로 올 수 있는 지침서다. 그곳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공식이 기록되어 있다. 무명에서 해방되려고 몸부림치며 온갖 탐욕을 주관하기 위하여 일 배 일 배 절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통일원리 교본을 보면서 인생의 근본 문제를 풀어 보라.
석가가 가르친 시대와 메시아가 현현한 성약시대는 인간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다르다. 시대적인 환경과 혜택으로 말미암아 여러 불자들이 극락세계에 이르는 길도 달라졌다. 통일원리에서는 극락세계에 직접 이르는 지름길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많은 의심이 나고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이 억지를 부려서라도 통일원리를 한번 읽어보고 통일교인들의 삶에 관심하고 연구해 보라.
어째서 여러분은 평안한 자리에서 엄청난 통일원리를 접해 보려고 하지 않는가. 여러분이 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시대적 혜택과 환경과 새로운 진리가 여러 불자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문선명 스승님의 삶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불자 여러분은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니 석가의 부탁을 명심하고 주목하여 후일 극락세계에서 서로 만나자.
― 2000. 11. 21 ―
14. 원상론(原相論)과 불자들
석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의 갖가지 번뇌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출가하여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고 수십 번의 죽음의 길에서도 살아났다. 이처럼 석가가 사선의 고비 고비에서 생명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은 먼 거리에서나마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왕은 석가를 죽이려 했었지만 하나님은 석가를 살리기 위하여 여러 차원으로 보살폈다고 생각한다. 석가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간 전체의 문제, 더 나아가 하나님 자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해결해 보겠다는 석가의 처참한 생애를 하나님이 바라볼 때 하나님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자녀로서 항상 마음속에 두시고 아껴 오면서 자녀의 앞날의 문제를 관심 깊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부모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지만 당신은 체가 없기에 완성한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체를 쓰길 원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그의 성장 과정에서 잘못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면서부터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직접 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무한히 큰 존재다. 피조 만물의 모든 존재는 예외 없이 상대적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남성과 여성, 동물은 수컷 암컷, 식물은 수술 암술, 그 외의 모든 물질―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물까지도―에 있어서도 상대성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번식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든 피조세계가 상대성을 띠고 창조된 것은 혼자서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 창조 후 아담이 독처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창조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불자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도 이성(二性)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엔 남성과 여성 둘 다 나타낼 수 있는 이성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상대적으로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자들이여,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 보라. 특히 비구나 비구니들의 생활을 보라. 인간은 날 때부터 지음 받았던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는 하나님의 모습에 따라서 창조되었던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남녀는 서로 사랑하여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 앞에 기쁨을 돌려 드려야 마땅한 것이다. 필요 없는 인간의 생리 구조를 하나님은 창조하실 리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여러 비구, 비구니들은 지은 죄가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살아가기 위한 구도의 세계가 어찌 당연하고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약시대는 가정 완성의 시대요 천국, 즉 극락세계는 가정이 함께 들어가는 세계다. 따라서 여러분은 혼자서 극락세계로 들어올 수가 없다. 당시 석가는 여러 불자들 특히, 비구와 비구니들에게 극락세계에 입적하는 방법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 극락세계는 남녀의 상대적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계다.
여러 불자들이여, 만우주의 주인공인 하나님이 상대적 속성을 지닌 분인데 인간은 본연의 욕구를 떨쳐 버리기 위해 수많은 수행과 연단 가운데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본질의 세계를 자세히 연구하면서 사바세계에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곳 극락세계에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석가가 아내를 버리고 출가할 때 그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여러 불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속세를 떠날 만한 준비된 불자라면 통일원리 교본을 공부하고 통일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라. 그러면 석가의 부탁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통일사상을 공부할 때 이상헌 선생은 통일사상의 원상론을 통해서 석가의 아픔을 다시 한번 절절이 느끼게 하였다. 그 강의는 석가의 가슴을 채찍질하는 기분이었지만 불자들이 하나님에 관한 근본적 속성을 알지 않고서는 불자들의 개종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이상헌 선생은 석가에게 얼마나 자세하고 진지하게 심혈을 다하여 말씀하였는지 그 감동의 시간은 이루다 표현할 수 없다.
불자들이여, 이상헌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석가가 심혈을 다하여 여러분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여러분은 지상에서 자세히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대적인 좋은 환경을 놓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면 그 이상의 고행은 여러분에게 필요치 않을 것이다. ― 2000. 11. 22 ―
15.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마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인간을 삼라만상의 주인으로 창조하셨다. 왜 인간을 전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창조하였는가?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계절마다 변하는 만물의 조화로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 때문이다. 어떤 위대한 과학자라 하더라도 사계절의 조화를 창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었는가?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놀라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 되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여 주신 것이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보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시냇물과 짙은 녹음과 자연의 성숙을 느끼게 하고, 가을에는 오곡의 결실과 추수를 통한 자연의 풍요를 누리게 하며, 겨울에는 깊은 사색과 잉태와 휴식을 갖도록 한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을 위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인간 창조 이전부터 인간에 대한 갖가지 구상을 하신 후 인간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여기저기 수많은 장난감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계절마다 서로 다른 유형의 놀이터와 장난감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있어서 산모가 아기를 낳기 전에 아기를 위해 여러 가지 유아 물품과 그의 환경을 준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산모에다 비견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이토록 인간을 사랑하는가?
불자들이여,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외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어떤 교파에 속하여 있든지, 어떤 교단에 속하여 있든지,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병자든 장애인이든, 그리고 죄인이든 악인이든 그들 모두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백인, 흑인, 황인 등 인종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틀림없는 자녀다. 인간이 사는 곳곳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세계에 널려있는 땅덩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오직 그의 자녀를 위하여 만든 놀이터요 장난감에 다름없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은 지상에서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리 살아온 인간이 붙인 교단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교단에도 상관없이 모든 종단이 하나님의 품속에 안겨지길 기다린다. 불자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사고방식을 새롭게 전환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생활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전 인류는 한 하나님 아래, 하나의 부모 아래 하나의 형제자매가 되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살아가야 한다. 인류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려는 통일운동의 주역은 통일교인들이요 그들의 지도자가 바로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그 어른은 전 인류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남북의 화합 운동은 물론 세계 인류의 통일과 화합 운동을 전개하고 계신다. 그 분은 하나님의 이상을 가지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우치고 계신다.
불자들의 귀에도 그 분의 메시지가 울려 퍼질 날이 도래하였다. 여러분이 존경하고 모셔 오던 불교계의 석가가 아니면 누가 여러분에게 이토록 권면하겠는가? 이것은 틀림없는 석가 부처의 마지막 메시지니 부디 부디 명심하라. 그리고 기도하여 보라. 석가 부처가 나타나서 새롭게 가르쳐 주고 인도하리라. ― 2000. 11. 23 ―
16. 구세주가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여러분에겐 참으로 생소한 단어가 많아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여러분이 존경하던 석가 부처가 새롭게 접하게 된 진리를 알려줘야 하겠기에 이렇게 장편의 글을 보낸다.
불자 여러분이 지상 석가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왔던 것처럼, 이곳의 불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도 믿고 따르기를 바란다. 여러 불자들이여, 구세주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불교 역사의 전통 속에서 여러분은 불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개인의 수행 법에 따라 갖가지 번뇌 속에서 해탈의 길을 걷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극락세계를 소망할 수가 없다. 여러 불자들은 석가가 닦아 놓은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 오랜 세월 동안 수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불자들이 이곳에 와서 극락왕생의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제 석가는 여러분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잘못 수행하고 있는 점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하여 채찍도 가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불자들이 잘못 가고 있는 사실을 석가가 알고 있으면 여러 불자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되겠는지 곰곰이 생각하길 바란다. 우리 인간은 시초부터 극락세계로 직접 갈 수 없는 원죄를 갖고 태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 조상이 지은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 원죄를 벗겨 줄 수 있는 중보자가 인간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 분은 모든 인류에게 절대 필요한 존재로서 메시아, 구세주이시다. 메시아는 어떤 인간의 의지로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섭리역사의 경륜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지상에 현현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메시아를 인류의 참부모, 혹은 천상천하의 구세주라고 부른다. 석가는 참부모로부터 축복(결혼)을 받았다. 석가는 그 분을 참부모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만 여러 불자들 앞에 죄인이 된 모습이므로 아직도 그 분을 스승님 정도로 부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 그 분이 어찌하여 죄인, 석가에게 먼저 축복을 시켜 주셨는가? 그것은 여러 불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석가에게 먼저 엄청난 축복을 내렸던 것이다. 여러 불자들이 석가가 밝힌 진리를 통해서 중생(衆生)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며 여러분 자신을 연마하는 것처럼, 석가는 참부모님이 찾아 주신 새 진리를 통해서 여러 불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닥쳐올지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불자들이여, 석가가 참스승의 새 진리 앞에 모든 것을 바친다면 불자들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석가의 유일한 소원은 석가 자신이 하루속히 참스승을 ‘참부모’로 모실 수 있는 자리까지 해방받는 것이다. 통일원리를 확실히 깨닫게 되면 새 진리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통일교인들은 새 진리의 선구자들이요, 그들이 모시는 스승을 한결같이 자신만만하게 ‘참부모’로 시봉하고 메시아로 모시고 있다. 그 어른은 문선명 스승님이시다. 우리 불자들도 그 어른을 참부모로 시봉할 수 있으며, 메시아로 모실 수 있으며, 그 분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불자들이여, 여러분은 반드시 메시아를 통하여 새롭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 여러 불자들의 아내와 남편은 지상에 있을 때만 남편과 아내일 뿐이다. 여러분의 부부는 이곳에 오면 누구나 타인으로 돌아간다. 극락세계에서 함께 부부가 되길 원한다면 메시아를 통해서 지상에서 반드시 축복을 받아야 한다. 인간에게 너무도 감사한 축복, 그리고 너무도 엄연하고 자명한 진리를 불자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석가가 여러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메시아의 세계적 활동을 직시해 보라. 메시아가 지상에서 세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80여 생애를 통하여 피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계신다. 그 어른은 지상에서 참부모요, 천상에서도 참부모다. 전 인류의 구세주요 메시아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난 석가가 이곳 영계에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천상천하 구세주인 문선명 스승님을 여러 불자들이 모시고 그 분의 진리를 따르면 이곳에서 석가도 만날 수가 있고, 극락세계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도 있다. 불자들이여, 지상 인간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 어른은 여러분만을 항상 기다리고 계실 수가 없다. 그러니 여러분이 서둘러서 새 진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석가의 유일한 부탁이다. ― 2000. 11. 27 ―
17. 불자들의 생애
사람은 지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다. 지상을 떠나야 한다. 어디로 가고 어디를 떠나야 하는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야 한다.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사랑하는 비구들이여, 여러 불자들은 석가의 수도 생애를 잘 알 것이며 찬란하고 화려했던 석가의 출가 전의 생애도 알 것이다.
불자들이여, 석가는 그대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석가의 진솔한 고백에 주목하여 달라. 석가가 그대들에게 간절히 애원한다. 그대들은 석가를 닮기 위하여 한 생애를 투여하면서 성문 연각 보살을 통해서 대오 각성하여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불자 여러분은 과거의 석가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이지만 여러분의 삶을 하루속히 정리하라.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천만의 불자들이여, 석가의 진리의 깨우침이 그대들이 일생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라.
석가는 지상에서 수행의 길을 거쳐 이곳에서 새 진리를 알게 되었다. 이제 석가는 새로운 진리 앞에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석가의 관념을 모두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진리 앞에 영원한 생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영계에 먼저 온 석가가 지상의 불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 불자들은 새 진리를 따라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석가는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세상에서도 영원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살 수 있는 분명한 새 진리를 만났으니, 그 진리 앞에 석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것을 다짐했다.
여러분은 ‘석가의 부탁이 잘못되었다. 석가의 이름을 가장한 다른 어떤 존재가 여러분을 유혹한다’고 생각된다면, 일단 통일원리를 정독하거나 청강한 후 다시 절로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어떠한 장소에서 간절히 기도해 보길 부탁한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석가가 여러분에게 협조하거나 지시할 것이다. 지금 여기 영계에 수많은 불자들이 석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여러분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극락세계가 아니다. 영원한 극락세계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새롭게 원리 교육을 받은 후 불도의 길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의 현실이 이러하니 여러분 불자들은 지상에서 삶을 정리하고 이곳의 극락세계로 직접 올 수 있는 길을 석가가 안내하는 것이다. 현재의 불자들의 삶으로써는 극락세계로 갈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영원한 극락세계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임을 깨닫고 부모를 모시고 생활해야 한다. 불자들이 알고 있는 극락세계는 불자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지 않으면 그곳으로 갈 수 없다.
석가의 가족들이여, 불자들이여, 지난날 석가의 가르침을 다시 용서해 주길 바란다. 온 누리 온 땅은 물론 전 인류도 역시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우리 불자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여러 불자들이 한 생애를 바치는 그 길은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윤리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모시고 인류의 부모로 섬긴다면 보다 더 큰 진리가 여러분 자신을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켜 줄 것이다. 불교의 경전은 지극히 부분적인 진리다. 그러므로 큰 진리 앞에 작은 진리는 흡수되어야만 한다.
큰 진리와 큰 사상은 통일원리다. 통일원리와 통일사상을 정독하게 되면 인생의 근본 목적을 다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의 근본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불교의 경전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부모로 모시고 살아가면 인간의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인간이 그토록 힘들게 살도록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자들이여,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다. 이 점을 특히 명심하기 바란다. 석가는 이 땅에서 살다간 한 인간에 불과하다. 절대적 진리 앞에 여러분 자신의 상대적 진리를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시간 낭비나 다름없다. 지상의 인생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우물쭈물하면서 망설이게 되면 영원한 극락세계는 여러분 곁에서 떠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극락 세계와는 영원히 멀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불자들이여, 그렇게 하지 않도록 석가가 간절히 부탁하니 여러분은 하루속히 통일원리를 받아들이라. 그렇게 하면 불자들의 생애가 영원하고 화려하고 찬란한 생애로 전환될 것이다. 아울러 극락세계가 여러분의 처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 2000. 11. 28 ―
18. 이성성상과 피조세계
통일원리에는 불교 경전에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술어들이 많이 나와서 새 진리를 깨닫는데 있어서 불자들은 대단히 당황해 할 것이다. 그래서 통일원리의 새로운 용어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수많은 불자들이 통일원리를 연구하고 관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석가의 마음에서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의 상대성, 즉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창조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부부가 되어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기 위함이다. 이처럼 피조세계의 모든 생명체는 상대를 이루어 번식하도록 창조되었다. 광물 세계, 식물 세계 모두가 상대성을 이룬 이성으로 창조되었다. 물질 세계의 미물까지도 모두 상대성을 띠고 있는 이유는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성성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오관으로 느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성 일성(一性), 여성 일성(一性)의 이성(二性)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위시한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모습을 닮아 났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통일체로 존재하고 있다. 마치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를 닮아 태어나듯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성을 닮아 창조되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성의 모습을 통일적으로 지니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다. 이것은 숙명적인 관계다. 인간 사회를 볼 때 자식은 철이 없어서 부모를 잊어버리고 몰라볼지라도 부모는 자식을 저버릴 수 없는 천정(天情)을 갖고 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도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천륜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나님과 인간의 천륜의 부자(父子)의 관계가 어찌 인간적 관계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요 인간의 부모님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유 없이 닮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이유 없이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지음 받았다. 이 엄청난 진리 앞에 불자들은 다시 깨어나야 할 것이다. 불교 경전을 다 뒤져 보라.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라는 사실이 어디에 있었던가?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천륜이다. 이러한 대 진리 앞에 어떤 다른 이론이 더 필요하겠는가.
불자들이여, 사랑하는 불자들이여, 석가는 여러분의 부모를 찾아 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의 부모를 버릴 것인가, 여러분의 부모를 모실 것인가? 석가는 이제까지 인류역사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과 진리를 여러분에게 모두 알려 주었다. 여기서도 불자 여러분은 이 진리를 부정할 자신이 있다면 부정해 보라. 석가는 가슴이 에이고 뼈살이 저며 오는 아픔 속에서 여러분의 부모인 하나님을 찾아 주었으니 이제 여러분의 책임을 기대할 뿐이다.
여러분이 이것이 사실과 다른 진리라고 생각하고 석가를 회의하고 원망하고 여러분의 실천을 망설이게 된다면 여러분의 부모인 하나님은 여러분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에게 공개하고 알려주기까지의 석가의 몸부림을 불자들은 아는가? 이제 여러분은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여러분은 새롭게 깨어나길 바란다. 여러 불자들이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불효자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 2000. 12. 5 ―
19. 이상세계와 불자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상세계와 지금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어느 쪽인가 하나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왜 두 세계는 서로 갈라져 있는가?
본래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며 살아가게 되어 있었는데, 인간 조상이 성장 과정에서 천사장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출발을 그르쳤던 것이다.이로써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현실적 세계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본연의 세계란 인간이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살아가는 세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닌 사탄이요, 참부모가 아닌 거짓부모다. 인류의 조상이 참부모가 아닌 거짓부모의 혈통을 전수받아 종족·민족·국가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 현실적 세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계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거짓부모의 혈통을 다시 하나님의 혈통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혈통전환의 문제다. 이 문제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혈통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혈통을 전수한 특별한 사명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특권이 없으면 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누구인가? 그 분이 우리의 위대한 스승님,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석가는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불자들이 살아가야 할 최고 특혜의 지름길을 분명히, 특별히, 그리고 자세하게 여러 불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 시대에 현현하신 문선명 스승님은 여러분의 구세주요, 메시아요, 천상천하 참부모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어른을 통하여 여러 불자들은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중생(重生)이요, 중생은 축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불자들이여, 극락세계에 와서 석가를 만나려거든 이 메시지를 통한 석가의 부탁을 믿고 따라야 한다.
문선명 스승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특별한 사명을 갖고 이 시대에 현현하신 분으로서 천상에서나 지상에서나 참부모다. 그러니 여러 불자들은 그 어른을 통하여 축복을 받아야 거듭나게 된다. 축복이란 사회적으로 말하면 결혼이다. 여러 부부들은 그 어른을 주례자로 모시고 결혼식을 다시 올려야 하며, 미혼 남녀들도 그 어른을 주례자로 모시고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이곳의 영원한 불자들의 세계인 극락세계에 입적하게 되는 것이다.
축복을 받은 여러 불자들은 그 어른의 가르침과 여러 의식 절차에 의하여 새롭게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였던 본연의 혈통을 전수받게 되며,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불자들은 새롭게 각성하고 깨달아 하루속히 하나님의 이상세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석가의 마지막 소원은 여러 불자들 모두가 문선명 스승님의 축복식을 통한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아 이상세계의 가족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다. 여러 불자들이 그렇게 자리잡게 되면 석가도 문선명 스승님께 ‘천상천하 참부모, 구세주여, 그대는 인류의 참부모이십니다’ 하고 경배를 드릴 자격을 가질 것 같다.
불자들이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석가의 가르침을 믿고 따랐으니 이곳 영계에서 보낸 메시지를 조금도 의심치 말고 믿어 주길 바란다. 만약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간절히 기도해 보라. 석가가 그 자리에 역사(役事)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간곡한 석가의 부탁이니 통일원리를 읽어 보라. 그렇게 하면 석가가 전하는 이 사실이 확연하게 검증될 것이다.
지상에서 힘들게 수행하는 여러 비구승이나 불자들에게 석가는 속죄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천지 만물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 아래 운행되고 있다. 불자들이여, 수많은 교파와 종단 모두는 하나님의 이상 가족으로 하나되어야 한다. 전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이상 가족이다.
불자들이여, 정말 정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기 바란다. 석가의 빗나간 지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석가가 그토록 지상생활을 통하여 고생하고 수고하였을지라도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여러 불자들에게 가르치지 못했기에 죄인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여러 불자들이 석가의 이러한 심경을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겠는가? 여러 불자들은 모를 것이다. 육신을 가진 여러 불자들은 석가가 이곳에서 느끼는 괴로움과 안타까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석가의 진솔하고 간곡한 부탁에 여러 불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석가의 애곡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불자들도 이상세계의 한 가족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애원한다.― 2000. 12. 6 ―
20. 성철 스님의 삶
나(성철)는 본래 스님의 생활을 대단히 싫어했다. 나 자신이 스스로 스님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장성하여 철이 들면서 인생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게 되었고 인간의 생사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렬한 집념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러한 집념에 사로잡혀서 남들이 다 가는 진학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 후 나를 한층 더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하게 한 것은 건강 문제였다. 이러한 과정이 상당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조용한 절을 찾아가서 휴식하며 치료하기를 권유하셨다. 나는 그것이 좋을 것 같아서 부모님의 권유에 순종하였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나는 스님들이 머무는 절에서 절 밥을 먹게 되었다.
거기서 내 생애는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내 마음에는 잡념과 갈등이 없어지고 사고의 범위도 명확해지고, 내 건강도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거쳐 나는 여생을 절에서 수도 생활을 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이 길로 가자. 가야겠다. 가 보자’ 세상에 태어나 결혼하여 자녀를 거느리고 처자식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확고하게 설정한 것이다.
성철의 본명은 ‘영주’다. 성철 시절 이전에 영주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나는 이미 결혼을 하여 아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도 생활을 선택하였다. 나는 진실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자식이라 하기엔 너무도 민망스러웠다. 나는 어머니 가슴에 아픈 상처를 남겨 놓은 자식이 되고 말았다. 이 세상의 수많은 자식들이 나처럼 부모 가슴에 심한 아픔을 남긴다면 그 자식들은 왜 태어났는가? 차라리 그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비구승이 되어서 어렵고 힘든 수행 길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성격은 대체로 우직스러운 편이다. 어떤 요령이나 타협이 거의 없이 한번 결심하면 그 결심한 것을 이루기 위해 내 길을 묵묵히 걸어 갈 뿐이다.
추위나 더위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식주 문제도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 인간이 걸어가는 길을 나는 거의 외면한 채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참으로 여러 차원의 수행 길을 걸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성철 스님’의 생애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의 삶을 깊이 통회하면서 불자들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부탁하였다.
나는 이곳 영계에 와 보니 “성철 스님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노. 아무 쓰잘 데 없더라. 아무 소용이 없더라”라고 말하고 싶다. 천지 만물의 조화에는 오로지 대우주의 근본이신 크신 존재가 계셨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 “억천만금을 다 준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기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부모이셨는데, 우리 불자들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니까 우짜면 좋노,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카이!”
내 생애 가운데 영주 시절이나 성철 스님 시절이나 하나님은 항상 내 마음속에 계셨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 부모님과 아내에게 그토록 가슴이 미어지는 사정을 만들지 않고서도 인생의 바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곳에 와서 그 실상을 알아보니 내 부모님과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지금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너무도 가슴 아파하시니 ‘성철 스님’이란 이름으로 지상의 여러 불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다.
불자들이여, 비구승들이여, 석가 부처님이 부탁한 모든 내용들을 유념하면서 지상에서 통일원리의 가르침을 잘 공부하고 배워서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석가 부처님의 간곡한 부탁을 명심하길 바란다. 나는 이곳에서 석가 부처님의 특별한 배려와 관대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귀하신 분의 혜택을 입어 불자들에게 이 글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영광을 금치 못하겠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울타리에서 고개를 들고 더 먼 곳을 바라보라. 참된 광명의 세계가 여러분 앞에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동안 불교 경전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수행해 왔던 여러 불자들은 이곳 영계에서 보낸 석가 부처님의 간절한 부탁과 모든 메시지 내용을 믿고 새롭게 깨어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먼 훗날 우리 모두가 극락세계에서 다시 만나기를 학수고대한다. ― 2000. 12. 8 ―
21. 사랑하는 고승들에게 부탁드리는 글
여러 고승들이여! 석가 부처가 여러분에게 대단히 심각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 고승들은 이번 메시지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정독하십시오. 그리고 이 석가가 협조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시오.
다시 한번 결론적으로 여러 고승들에게 석가의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여러 고승들이 걷는 수행 과정은 너무나 힘들 것입니다. 속세인은 상상하지도 못할 길을 여러분은 다 거쳤습니다. 석가가 속세를 떠났을 때 그 어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승들이여, 이제는 그처럼 어려운 수행 과정을 걷지 않아도 됩니다. 석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석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죄인의 죄인이 된 소이입니다. 이젠 여러 고승들은 자신들의 수행 길을 정리하고 빨리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하길 바랍니다. 아무리 속세를 떠나 죄를 짓지 않고 힘든 수행 길을 통과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면 여러분의 수행은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 불자들의 마음을 가장 빨리 정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문선명 스승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은 여러 고승들을 바르게 지도하실 것입니다. 그 어른은 인생 문제, 역사 문제의 해결 방안을 갖고 계시며 인류의 항구적 평화 세계 구축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
만약 그 스승님을 만나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허락되지 않으면 통일원리를 먼저 정독해 보십시오. 그 후 여러 고승들의 마음이 정리되면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모든 비구승들과 불자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시켜주시오.
여러분의 힘으로 그것이 안 되면 통일교회의 원리강사를 초빙하여 원리수련을 받게 하십시오. 통일원리를 정독하고 원리수련을 받게 되면 불교 경전에서 깨닫지 못하였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여러 불자들의 자세도 새롭게 확립될 것입니다.
고승들이여, 석가 부처는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메시지를 여러 고승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여러분이 지상생활을 할 때 석가 부처의 이처럼 간곡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 고승들과 불자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불자들의 힘든 수행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석가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 불자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것이 여러 불자들이 그토록 원하고 소망하던 극락세계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불자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한 사실 때문에 마음을 조이며 살아온 석가 부처의 애통함을 여러 고승들은 알아줘야 합니다.
고승들이여! 여러분의 수행 길에서 하루빨리 방향을 바꾸십시오. 석가는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고승들에게 하루빨리 이번 석가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애원합니다. 여러 고승들이 합심하면 전세계의 수많은 불자들을 살릴 수 있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불자들을 극락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 불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속세를 떠나 살아왔던 지난날을 정리하고 다시 속세로 돌아가 문선명 스승님을 만난 후 불자들의 살길을 의논하십시오. 이것은 석가의 최후의 부탁입니다.
석가가 이곳 하늘나라에서 통일원리를 공부하고 여러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4대 성인들과 같이 의논하고 분석하여 인생의 지당한 방향 길을 깨달았기에 여러분 고승들에게 부탁하는 바입니다. 여러 고승들이 석가 부처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통일원리를 정독하고 공부를 하였는데도 여러분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죽은 시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 자세로 이곳 극락세계로 오려고 한다면 일찍이 그것을 포기하십시오.
이곳 4대 성인들 모두는 통일원리와 문선명 스승님의 가르침과 지도에 너무나 감동하였습니다. 석가 부처가 이곳에서 있었던 여러 사실들을 여러분에게 전달할지라도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석가 부처가 보낸 이번 메시지의 내용만이라도 충분히 읽고 믿으면 여러분에겐 영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고승들이여, 그대들은 석가보다 행복합니다. 여러 고승들의 시대에 문선명 스승님이 지상에 살아 계시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통일원리를 서둘러 연구하십시오. 행운은 항상 여러분의 곁에서 기다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문선명 스승님이 지상에 머물 기간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여러 고승들도 바쁠 것이요, 문선명 스승님도 바쁠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승들이여! 석가 부처의 애곡의 메시지를 유념하여 주십시오. 그대들을 사랑하오! 불자들을 사랑하오! ― 2000. 12.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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