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곰배령 생태탐방센터 → 강선마을→곰배령→하산 탐방로→생태탐방센터→주차장'의 10km 구간을 5시간 동안 야생화를 즐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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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높이: 1,164m
위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점봉산의 령인 곰배령은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연중 입산 통제 구역이다. 인터넷 등 언론에 유명 산행지로 게재되면서 탐방객들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2009.7.15부터 점봉산 일원 2,049ha의 원시림 가운데 일부 구간(진동-강선리-곰배령)에 대하여 생태체험장으로 개방되었다.
곰배령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떡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약 5만 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하여 마치 고산 화원을 방불케 한다. 봄에는 얼러리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 물봉선, 가을에는 쑥부랑이, 용암, 투구, 단풍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곰배령은 경사가 완만하여 할머니들도 콩 자루를 이고 장 보러 넘어 다니던 길이다. 가족 단위의 탐방코스로 훌륭할 뿐 아니라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아름다운 산으로 소개되고 있다. 점봉산 남쪽 자락의 곰배령은 초여름의 신록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산행코스다. 점봉산 일대는 울창한 원시림에 계곡이 깊고 각종 희귀 야생화가 자생, 국내에서 생태 보전이 뛰어난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곳.
곰배령 코스는 산세도 완만하고 구간도 짧아 이 같은 점봉산의 진수를 만끽하면서 가족 단위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녹음이 짙은 계곡을 걷다 보면 선경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해발 약 1,000m 상에 위치한 곰배령 고갯마루는 수천 평에 걸쳐 평평한 초지가 펼쳐진 이색적인 지형구조를 보인다. 초원 위로는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피나물꽃, 미나리아재비 등의 야생화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탁 트인 전망도 일품이다. 가깝게는 작은 점봉산(1,295m)과 호랑이 코빼기(1,219m), 멀리로는 설악산의 대청, 중청, 소청봉이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진다. 곰배령은 백두대간의 등뼈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한국의 산하
5월 21일 일요일에는 부부가 설악산 국립공원 내,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을 다녀오기로 했다. 점봉산의 한 고개인 곰배령은 봉우리가 아님에도 등산객이 많이 찾는 순으로 줄 세운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18번에 오를 정도로 많이 찾는 고개로, 인기 200 내에 유일하게 오른 고개다! 야생화 천국으로 유명하고, 산행이 어렵지 않아, 등산객보다는 상춘객이 많이 찾을 거로 생각되지만. 어쨌든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100에 다 오른 후 200과 300에 오르는 중이라, 언젠가는 올라야 할 고개였는데, 둘레길 걷기 중인 마누라가 같이 가자고 해 가게 됐다. 문제는 안내산악회나 관광회사에 신청만 한다고 끝이 아니라, 하루 450명에게만 허락하는 산림청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에도 신청해야 한다는 거다. 곰배령 탐방은 4주 전 9시 정각에 4주 동안의 탐방 신청을 받기 시작하는데, 휴일 탐방은 예약받자마자 몇 분 내로 종료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루 450명만 예약을 받는데, 9시 정각 예약 사이트에 접속한 순간 앞에 1,000명이 넘게 대기 중이라 이론적으로는 예약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과 곰배령 탐방 예약 절차가 같아, 대피소 예약에 익숙한 산꾼은 정각에 접속하기만 하면 웬만해서는 예약 실패하는 일은 없다. 역시 앞선 예약자가 1,000명이 넘었으나, 두 명 예약에 성공했다. 한차례 예약 폭풍이 지나고, 안내산악회 5월 21일 곰배령 신청자 중에는 취소자가 없어, 모두 예약에 성공했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로 접어들자, 예약에 실패한 거로 보이는 신청자가 한두 명씩 취소하더니, 일주일 전에는 24명만 남아, 신청자가 많아 44인승 버스로 증차했다가 다시 28인승 버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흘을 남겨둔 수요일에는 16명만 남았다. 여기서 한 명이 더 취소하면, 탐방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대안으로 다른 안내산악회도 찾아봤으나, 비슷한 상황이다.
위의 글처럼, 2023년 5월 21일 부부가 곰배령 생태탐방을 하기로 하고, 안내산악회와 생태탐방센터에 신청을 마치고 탐방 일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안내산악회에 신청한 44명 중 생태탐방센터 예약에 성공한 인원이 16명에 미치지 못해 결국 성원 미달로 산악회에서 탐방 자체를 취소했다. 그날 이후는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나는 나대로 산행이 잡혀 있어, 다른 날짜의 곰배령 탐방을 신청하지 않고 내년을 기약했다. 그리고 갑진년 안내산악회 일정 게시판에 곰배령 생태탐방 계획이 공지되자마자, 마누라가 두 자리를 신청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위의 글과 같은 절차를 거쳐 생태탐방센터 예약도 성공해, 다시 출발일만 기다리고 있다. 역시 올해도, 안내산악회 신청자 중 많은 수가 탐방센터 예약에 실패해 취소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27명이 신청하고 2명이 대기 중이라, 이 상태에 변함이 없으면, 2년 만에 곰배령 생태탐방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야생화 탐방으로는 좀 이른 감이 있기는 하나, 이상 기후로 더위가 일찍 찾아온다는 예보고, 최근 다녀온 산에도 야생화가 만개한 걸 보면, 곰배령도 그럴 거로 생각한다. 기상청 중기예보에 의하면 탐방 당일인 토요일은 오전에 맑다가, 오후에 약간 구름이 끼고, 기온은 최고 29℃까지 올라가 다소 덥다는 정보다. 물론 이는 단기예보가 나오는 금요일이 되어봐야 그나마 정확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더위에 대비해 찬물을 준비하고, 곰배령 식당에서 늦은 점심과 하산주를 마실 예정이나, 비상식으로 김밥도 가져갈 생각이다. 그 외는 등산에 준하는 준비가 아니라, 도보여행에 맞춰 준비한다. 탐방 하루 전 곰배령과 가까운 설악산 산악기상 예보에 의하면 당일 종일 맑고, 기온은 영상 17~18℃, 바람은 1m/s로 생각보다 덥지는 않아 보이나, 대청봉 기준 예보라 곰배령은 그보다 기온이 높겠지만, 그래도 최근 이상 기온보다는 다소 낮은 게 불볕더위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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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50분 사당역 1번 출구발, 7시 정각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라, 5시경 일어나면 되는데, 지난밤 마누라와 외식하며 빨갱이 한잔한 게 효력을 발휘했는지, 전날 10시경 잠이 들어, 새벽 4시경 깼다. 해서 더 자려고 노력해 봤으나, 잠이 오지 않아, 빠르게 자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아지트로 와 볼일을 보며, 밤사이 변한 게 있는지 확인했다. 산행 신청은 한 자리가 비었다가 다 채웠고, 날씨 예보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초미세먼지는 '보통', 미세먼지는 '좋음'이라 조망은 좋을 듯하나, 애초 조망 때문에 방문하는 곰배령이 아니라, 내일 즉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비가 내리다는 예보인데, 그나마 그 비를 피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안내산악회의 공지 중 이상한 걸 발견했다. 워낙 잘 나가는 산악회라, 토·일 포함 공휴일은 자체 보유 차량으로 감당이 안 돼, 다른 회사의 전세 버스를 빌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닌데, '보조 배터리, 식수+컵은 각자 준비하라….'는 문구는 이 산악회 공지에서 처음 본다. 컵은 다른 버스에서는 볼 수 있는 종이컵이 없다는 의미인 거 같고, 식수는 역시 다른 버스에서는 제공하는 뜨거운 물이 없다는 뜻인데, 보조 배터리는 뭐지? 어쨌든 상춘철을 맞이하여 전세 버스 빌리는 게 쉽지 않은 듯하다. 평소 산행 때와 같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마누라와 함께하는 산행이라, 마누라의 페이스 맞춰, 5시 40분경 얼린 물 500mL 두 병, 차가운 보리차 650mL 한 병 등 평소보다 물을 많이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막 들어온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해 예정보다 이른 5시 57분 구파발발 오금행 열차를 타고, 6시 37분 양재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등산객을 대상으로 틈새 상품인 김밥을 팔기 위해 매주 토요일만 새벽에 문을 여는 과거 청과물 가게, 현재 1,000원 빵 가게에 들러 김밥을 한 줄 샀다. 나야 곰배령 식당에서 하산주를 겸해 늦은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 김밥 먹을 생각은 없고, 마누라가 먹을 김밥이다. 이후 1번 출구로 나가 서초구청 민원실 화장실에 들른 후,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6시 50분경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며 보니, 벌써 관광버스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타야 하는 산악회 버스는 아니고, 동호회 또는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2박 3일 또는 1박 2일 상춘 여행을 가는 관광버스다. 일·월 비 온다는데, 상춘에는 비도 상관없나?
사당 출발 외교원 앞 7시 출발부터 7시 10분 출발까지 산악회 버스가 줄줄이 들어올 텐데, 이미 대기 중인 관광버스와 뒤섞이면, 버스 찾는 것도 일이라, 대기 중인 버스 열의 제일 뒤로 갔다. 그리고 운 좋게 6시 58분경 산악회 버스 중 가정 먼저 '곰배령'행 버스가 도착하는 걸 주시하다가 바로 버스에 탔다. 배낭에 든 게 없고, 28인승 버스라 발 앞에 배낭을 둘 공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막상 타고 보니, 의자 간 간격이 31인승보다 좁아 보인다. 말인즉 키가 좀 큰 승객은 발을 뻗는 것도 쉽지 않아 보여, 버스에서 필요한 것만 빼고, 배낭을 짐칸에 넣고 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충전 케이블 꺼내 꽂으려고 보니, 충전 단자가 없다! 그래서 보조 배터리를 각자 준비하라고 한 거다. 어디서 빌려도 이런 버스를 빌렸나? 같은 회비를 내고 푸대접받아 기분이 상당이 안 좋았으나,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이런 게 일상으로 바뀌어 혈압 올려봐야 내 명만 단축하는 거라, 누워서 부족한 잠을 청했다.
충분히 자고 깨자, 버스가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여 창밖을 보니, 고속도로가 아니라 승용차 주차장이다. 수도권 차량은 다 나온 듯했다. 그걸 보는 순간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곰배령 산행을 신청할 당시에는 설마 5월 6일인 월요일도 쉴 거라고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어쨌든 엎질러진 물이라, 시간을 보니, 8시 38분이라, 현 위치가 궁금해 패드의 지도 앱으로 찾아봤다. 아직 남양주다! 애초 계획은 10시 30분 곰배령 주차장 도착이나, 이미 틀렸다. 그래도 입장 마감인 11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마이크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자, 인솔 대장이 도착 예정 시각이 11시 30분경으로 입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뭐 예상했던 일이라 놀라지는 않았으나, 뒷자리에 있던, 마누라가 텔로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애초 공지에 이런 상황에 대비해 면책 조항이 있고, 곰배령 입장을 못 하면 가까운 설악산 오색에서 시간을 보내고 귀가할 확률이 높다고 알려줬다.
실내등이 꺼지고 다시 잠을 청해 또 마이크 소리에 깨자, 버스 순조롭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미 도착 예정 시각을 넘었다. 이에 인솔 대장이 곰배령 탐방 센터에 전화로 사정을 얘기하자, 늦어도 11시 40분까지 도착하며 들여보내 주겠다는 답을 얻었다고 했다. 해서 애초 가평휴게소에 쉴 예정이었으나,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그리고 11시 40분까지 도착하려면 휴식할 여유가 없어 급해도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조금 있자, 뒤에서 여성 승객이 대장에게 달려와 급하다고 하소연했지만! 버스는 계속 달려, 어느 순간 급경사 갈지자를 그리는 도로를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비좁은 도로를 조심조심 달려, 11시 40분경 승용차로 가득 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후 승객 모두 서둘러 버스에 내려 점봉산 산림생태 관리센터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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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고속도로 정체가 심했다는 걸 고려해 '점봉산 산림생태 관리센터'에서 탐방을 허용해, 신분증을 확인하고 빨간색 플라스틱 '입산허가증' 받았다. 그걸 받으며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냥 나눠주는 게 아니라, 허가증에 있는 번호와 수령자와 연결 후 주고 있었다. 해서 동행자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사실 이번 방문의 목적 중 하나가 점봉산에서 곰배령 또는 그 역으로 진행하는 산행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도 있다. 말인즉 입산 허가증을 가지고 점봉산까지 가는 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신분증과 연결된 허가증이라, 익명으로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역으로 허가증 없이 점봉산에서 내려오는 건 가능한지는 곰배령을 찍고 돌아오면서 확인하면 된다. 덕분에 예약하지 않거나,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세 명은 탐방로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걸음을 돌려야 했다!
첫 번째 궁금한 걸 해소하고 탐방로에 들어서 등산 앱의 '기록 시작'을 터치한 후 늘 그렇듯이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696.3m로 생각보다 낮다. 곰배령의 높이가 1,164m라, 적어도 1,000m 부근에서 탐방을 시작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고도차 468m, 꽤 높이 올라간다. 생태탐방이라 별거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깨지고, 곰배령 코스 소개에 왜 '중급'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기본적인 확인이 끝나고, 곰배령 길목에 있는 강선마을 주민을 위한 비포장 임도로 곰배령을 향해 첫걸음을 디뎠다. 말인즉 관리센터에서 곰배령까지의 코스1 기준 5.1km의 거리 중, 센터에서 강선마을까지의 대략 2.2km는 임도란 얘기다. 그것도 차량과 사람이 늘 오가는! 고로 이 구간은 5km/h에 가까운 속도로 올라갔다. 곰배령 계곡 옆으로 난 비록 임도지만, 생태 탐방로로 개방한 거라, 이정표나 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물론 지금은 임도로 사용하지 않는 강선마을부터 곰배령까지도!
11시 47분 센터를 떠나, 11시 53분 500m 지점 이정표를 통과했다. 곰배령까지 남은 거리는 4.6km! 그리고 11시 55분 마을 주민이 만들어 세운 '강선마을' 이정표를 지나고, 11시 59분 곰배령 4.1km 이정표를 통과했다. 여기까지는 오는 동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많은 사람과 지나쳤고, 몇 사람이 쉬고 있는 약수터도 지났다. 다른 건 몰라도 약수터는 그냥 가지 않는 인간이나, 어차피 왕복하는 산행이라 내려오면서 물맛을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강선마을을 지나 중간 점검 초소에서 12시가 지나면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마을 주민의 경고에 비록 물 한 모금 떠 마시는 거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하산주 시간 확보도 중요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물길이 만든 탐방로 옆으로 계곡 중 그냥 지나칠 곳에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에 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강선마을은 아직 1km 이상 남았으나, 현재 시각이 12시로 중간 초소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당연히 중간 초소 또한 아래 센터와 같이 황금연휴 정체를 고려할 거로 생각하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아니면, 강선마을에 퍼질러 앉아 하산주를 마시면 되고!
완만한 경사의 비포장 임도니, 도보여행을 좋아하고 익숙한, 마누라 같은 사람에게는 걷기 딱 좋은 흙길 탐방로라, 다들 걸음이 빨라, 내 페이스로 가고 있음에도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어쨌든 12시 6분 곰배령 3.6km 이정표를 통과하고, 12시 10분 '중상급' 코스라는 '코스2' 갈림길에 도착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그 이정표가 코스2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계속 코스2 입구를 찾으며 갔다. 그 이정표에서 조금 올라가자, 갈림길이다. 하지만, 코스가 나눠지는 건 아니고 강선마을 내부 갈림길이다. 왼쪽은 마을 내부로 들어가고, 오른쪽은 몇몇 가옥을 지나기는 하나, 곰배령으로 직행하는 길이라, 당연히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2시 13분경 왼쪽은 '곰배령이야', 오른쪽은 '곰배령끝집'이라는 식당이 있는 강선마을 끝에 도착해, 마누라가 화장실에 간 동안 메뉴를 확인했다. 당시만 해도 메뉴가 같아 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같은 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메뉴를 아무리 찾아봐도, 라면 외에는 식사 종류가 없어, 직원 중 한 사람을 잡고 밥은 없냐고 물었다. 없단다, 대신 전과 두부김치가 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좀 큰 규모의 동네 점방이란 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걸 놓쳤다. 그 두 식당에서 계곡으로 내려가자, 본격적인 등산로 같은 탐방로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 건너 입구에 중간 점검 초소가 있고, 두 명의 요원(마을 주민)이 '입산허가증'을 확인한다. 정상 상태라면, 12시가 넘으면 여기서 탐방객을 차단하고 돌려보낸다. 하지만 오늘은 황금연휴의 첫날이라 유연성을 발휘해 통과시키며, 곰배령 정상에서의 마감인 2시에는 무조건 내려와야 하는 건 변함없다는 걸 강조했다. 현재 시각 12시 15분, 곰배령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2.8km라 2시까지 정상 도착은 어려운 게 아니다.
다만, 좀 전 식당 직원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3시 30분이면 강선마을에서도 무조건 하산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고로 여유롭게 하산주를 즐기려면, 최소 2시에는 곰배령이 아니라 강선마을에 있어야 한다. 해서 초소를 떠나 서둘러 정상으로 향하는데, 다리 부상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누라가 강선마을까지와는 다른 탐방로 상태에 경사도 약간 급해지자, 속도를 내지 못해, 여차하며 중간에서 되돌아올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12시 20분경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려, 가던 길을 멈추고 누가 보낸 건지 확인했다. 대기업 안내산악회로, 목요 오지팀의 부산 달음산 무박 산행을 취소한다는 거다! 예상했던 바라 놀랍지는 않으나, 이 문자를 통해 이 산악회의 정책을 정확히 파악했다. 날이 좋아 상춘객이 몰릴 때는 버스의 반을 채워도 취소하고, 날이 좋지 않을 때는 반을 채우지 못해도, 취소자에게 페널티를 물려 손해분을 보충하며 버스를 출발시킨다. 28인승 기준 성원이 14인지, 16인지 궁금했는데, 정해진 성원이란 게 없다는 걸 두 산행을 통해 확인했다[산행기].
자체 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산악회의 병폐다. 그렇다고 싼 것도 아니나, 버스를 놀릴 수 없어 평일 산행은 토요일의 68%, 일요일의 86% 수준의 가격이다. 어쨌든 내게는 고속도로지만, 다리 부상에서 갓 회복한 마누라에게는 길의 상태가 좋지 못해, 수시로 앱의 지도로 곰배령까지의 남은 거리와 경사도를 확인하며 가던 중 중간에 폭포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지나치지 않게 오른쪽을 주시하며 갔다. 12시 31분 곰배령 2.1km 남겨두고 마누라가 쉬었다고 가자고 해, 탐방로 금줄을 넘어, 위가 평평한 바위에 앉아 준비해 간 얼음물을 마시며, 2분가량 휴식했다. 산행 일에는 언제나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는 나와는 다르게,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 마누라가, 이번 산행은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휴게소에 들르지 않아, 아침을 굶은 상태라 더 힘들어해, 배낭에서 갱을 꺼내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와중에 나는 오가는 탐방객의 모습을 관찰했다.
휴식이 끝나고 다시 길을 재촉해, 12시 43분 곰배령 1.6km 이정표를 지나, 12시 16분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계곡이 오른쪽에 있었다면, 저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바뀐다. 그리고 탐방로 곳곳에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여기도 역시 쉼터가 있고, 많은 탐방객이 의자에 앉아 쉬거나,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물론 지도에서 본 폭포를 지나왔으나, 약수터와 비슷한 이유로 내려가며 사진에 담기로 하고 지나쳤다. 다리를 건너 12시 50분경 곰배령까지 남은 거리가 1.1km라는 이정표를 지나자, 마누라가 더는 못 가겠다며, 혼자 다녀오란다. 다리를 건넌 후 탐방로가 흙길에서 돌길로 바뀌어 걷는 게 쉽지 않았고, 경사도 조금 더 급해져 산꾼에게도 약간은 힘든 길이었다. 해서, 마누라는 쉼터에서 쉬기로 하고 혼자서 곰배령으로 향해, 12시 59분 '곰배령 600m' 이정표를 통과했다. 해서 계속 길을 가며 남은 구간의 경사도와 고도차를 알기 위해 자체 지도를 가진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통신 불량 지역이라 네이버 지도를 베이스로 하는 앱은 쓸모가 없다.
20m 등고선으로 봤을 때 높여야 할 고도는 100m 내외, 경사는 봉우리의 깔딱에 비하면 완만한 편이나, 지금까지 온 것에 비하면 약간 급하다. 왼쪽으로 보이는 폭포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계속 오르자, 울창한 숲사이로 고개 정상이 보인다. 곰배령이 멀지 않다. 해서 신이 나서 정상으로 가는데, 앞에 맨발의 청춘이 아니라 중년이 오르고 있어,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요즘 등산객 사이에 맨발 등산이 유행인 듯한데, 그걸 볼 때마다, 미신이 사람을 망치는 또 다른 방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A long time ago in a Earth' 인류의 조상이 옷을 입고, 신을 신은 이유가 뭔지, 그들은 알까?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됐다는 것도! 그나마 누구와는 다르게 저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 믿음인가?! 어쨌든 그 아니 그들을 추월해 올라가며, 동영상 촬영 시점을 잡기 위해 수시로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지도 기준 고도차 40m 내외 지점에서부터 동영상을 촬영하며 정상으로 향했다.
역시 고도차 40m와 도상 거리 40m는 실제 거리와는 차이가 커, 3분이 넘게 걸려 곰배령에 올라섰다. 그런데, 위로 갈수록 내려오고 올라가는 탐방객이 많아, 추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서 보니, 정상석이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갑판 탐방로에는 인증을 남기려는 탐방객으로 거의 도떼기시장이다. 그중 판단이 빠른 탐방객은 정상석에서의 인증을 포기하고 반대편 전망 갑판으로 향한다. 물론 정상석 인증 후 가는 인증꾼도 있을 거다! 나야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는 건 관심 밖이나, 그래도 정상석은 기록으로 남겨야 할 거 같아, 길게 늘어선 인증꾼을 헤치고 들어가, 정상석 앞으로 가서 보니, 온갖 자세를 다잡고 거의 1인당 열 장 정도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줄이 줄기는커녕 계속 길어지는 거다. 이게 다 까만 소의 1인 사진만 인증했던 결과물이다. 어쨌든 그 인증꾼이 바뀌는 틈을 타 정상석과 ‘작은점봉산’을 기록으로 남기고 물러 나와, 갈림길로 돌아가다가 그래도 무언가는 남겨야 할 거 같아 셀카를 찍었다.
이후 정상석 반대편의 전망대로 향하는 탐방객이 주고받는 얘기를 들어보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가는 하산 코스도 있다는 거다. 해서 처음에는 ‘코스2’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해 산행 후 지도를 찾아보니,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곰배골 코스다! 말인즉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점봉산 산림생태 탐방로’와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곰배골’ 두 구역이 있고, 각 기관이 별도로 관리하고 탐방 예약을 받는다!
이후 마누라가 기다리는 쉼터를 향해 본격적으로 하산하며, 그래도 곰배령 사람들은 천상의 화원이라 부르는 곳이라, 주변의 야생화를 사진에 담았다. 물론,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오르는 동안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지나쳤던, 폭포와 계곡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지도에 인증을 남기지 않은 게 떠올라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의 이미지를 캡처했다. 원래 하산에는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하는 인간이라, 1시 12분경 정상을 떠나, 1시 29분 마누라가 쉬고 있는 다리 건너 쉼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누라와 같이 하산하는데, 길의 상태가 좋지 않고, 원래 하산을 힘들어 하는 마누라가 먼저 내려가 식당에서 주문해 놓고 기다리라고 해, 혼자 갔다. 물론 페이스대로 가면 너무 거리가 벌어져, 의도적으로 중간중간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는 내려갈 때 사진으로 담아야지 생각한 폭포와 꽃에 대한 소개문, 그 소개 대상도 있다. 그렇게 내려가, 1시 50분, 중간 초소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면 강선마을 식당이다!
걸음을 재촉해 초소로 접근하며 보니, 요원 둘은 안 보이고, 초소 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탐방객이 쉬고 있다. 그럼, 여기로 내려올 때 중간에서 만난 두 요원, 즉 2시 정각 곰배령을 정리하기 위해 올라가던 두 요원이 이 초소를 지키던 사람이다. 그럼, 그 두 사람은 매일 정상까지 올라간다는 얘기다. 아, 곰배령이 영업을 안 하는 월, 화 빼고! 다리를 건너, 강선마을로 올라가며 위로 보이는 식당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유심히 보니, 왼쪽은 '곰배령끝집', 오른쪽은 '곰배령이야'로 서로 다른 집이다. 그럼, 곰배령으로 향할 때 마누라가 화장실을 이용한 '곰배령끝집'으로 가는 게 인지상정이라, 왼쪽 식당의 상태를 확인했다. 곰배령에서 내려오는 길이 잘 보이는 건물 내 식탁은 다 찼고, 반대편 야외 식탁은 빈자리가 많아, 그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곰배령으로 올라가며 마누라와 얘기했던 두부김치와 감자전 중, 먼저 두부김치와 이슬이를 주문하고,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손을 씻었다.
식탁으로 돌아오자, 이슬이와 잔 두 개만 달랑 놓여있다. 아무리 그래도 깡 이슬이는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중년 여성이 서넛이라 정확히 주인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한 명에게 이슬이 마시게 김치라도 조금 달라고 하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김치도 2,000원이라고 답한다. 아무리 산중에 있는 식당이나 인심이 야박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깡 이슬이를 한잔했다. 그러는 중에 실내 식탁의 손님이 나가 그 자리로 가도 되냐고 묻자, 그러라고 해, 주방이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며, 힐끗 보니, 두 중년 여성이 두부김치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두부김치가 아니다. 접시에 깍둑썬 두부가 있고, 그 위에, 전자레인지에 돌린 편의점요 김치를 붓고 있다. 그걸 보는 순간,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시골 점방이라는 걸 깨달았다. 추측건대,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조리되는 음식은 팔 수가 없을 거다. 그들도 나를 보고 놀라는 듯했으나, 조리할 수 없으면 당연한 모습이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지나가자 안심하는 모습이다.
점방표 두부김치를 안주로 이슬이를 홀짝이며, 곰배령에서 내려오는 길을 주시하다가, 2시경 도착한 마누라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시골 점방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상황을 이해한 마누라가 컵라면과 부추전을 주문했다. 당연히 컵라면은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부은 거라 금방 나왔고, 조금 후에 나온 부추전은 우리 부부가 생각한 거와 달리, 한입 크기의 기성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거다. 익히 알던 거라, 고맙다고 인사 후 아침에 먹으려고 샀던 양재역표 김밥을 꺼내 같이 하산주 겸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에 음식물 쓰레기를 남길 수는 없어, 이슬이 한 병과 모든 음식을 깨끗이 비운 후, 2시 30분경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산악회 마감이 4시 30분,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올라올 때와는 달리, 주변에 보이는 야생화나 폭포 등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담으며 유유자적 내려갔다.
물론 길목의 약수터에 들려, 물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내려가며 보니, 탐방로가 아니라, 숲을 지나는 갑판 탐방로가 보여, 흙길 탐방로를 버리고 갑판 탐방로로 올라갔다. 그런데, 바닥에서 자라는 야생화와 풀을 건드리지 않게 다리 형태로 만들어진 갑판 탐방로라, 아래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강화유리? 투명 아크릴로 되어 있어, 뭐가 있나 봤으나, 관리를 하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기존 탐방로로 내려가는 탐방객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며, 센터를 향해 내려가자, 센터 입구에서 두 요원(마을 주민)이 '입산 허가증'을 회수하고 있는 게 보였다. 상자에 던져놓고 가도록 하는 곳이 많은데, 여기는 일일이 사람이 회수한다. 고로 입산 허가증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물론 꼭 문으로 나가라는 법은 없다. 아니, 법은 그렇지만, 법 없이 사는 무법자에게는 문은 의미가 없다. 어쨌든 확인 결과 곰배령에서 점봉산으로, 또는 거꾸로 점봉산에서 곰배령으로 가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3시 21분 탐방 센터를 지나 오전에 출발한 주차장에 도착한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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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19분경, 오전 11시 47분에 통과한 점봉산 산림생태 관리센터에 도착하는 거로 곰배령 탐방은 끝났으나, 산악회 공식 마감은 4시 30분이다. 고로 1시간 11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해서 2차 하산주를 할 만한 식당이나, 가게가 있는지 찾아봤으나 안 보인다. 물론 주차장과 붙어 있는 식당이 있기는 있으나, 말 그대로 식사를 위한 식당이지 술을 마실만한 술집은 아니다. 위에서 이미 배를 채워 밥을 먹을 상태는 아니라, 주차장 관리를 하는 마을 주민에게 물어봤다. 없단다! 그렇다고 버스에서 자려고 해도, 시동을 걸지 않아 에어컨도 동작하지 않는 차에서 찜질할 일은 없어, 마누라와 함께 오전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텅 빈 주차장 끝 그늘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왼쪽 아래 계곡에서 물소리가 요란해 내려갈 수 있는지 살펴봤다. 물론 금줄로 막고 있기는 하나,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 해서, 배낭을 들고 버스로 가, 배낭은 짐칸에 넣은 후 차에 타 워킹화와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고 잘 묶었다. 이후 슬리퍼를 신고, 바위로 돌아가,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물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그렇게 10여 분가량 계곡에서 노닥거린 후 다시 바위로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비록 찜질하는 한이 있더라도, 버스에서 자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로 가, 발에 묻은 흙을 씻어 낸 후 차로 갔다. 그 시각이 4시경으로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다.
대여섯의 승객이 우리 부부와 비슷한 생각을 가져, 이미 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한 청춘이 버스에서 내려, 버스 그늘에서 노닥거리는 인솔 대장과 기사에게 가 에어컨을 가동해 달라고 부탁하자, 기사가 투덜거리며 버스에 타더니,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켰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주차장 여기저기 그늘에 흩어져 시간을 때우고 있던 승객이 하나둘 버스에 타, 4시 20분경에는 거의 모든 승객이 버스에 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명의 승객이 타자, 이미 인원을 확인하고 있던 대장이 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고 해, 버스가 주차장을 떠난 시각이 4시 24분으로 마감보다 6분 일찍 출발했다.
목요일 남해 망운산에서 4시간 28분 만에 19.36km를 달린 피로가 아직 가시기도 전, 곰배령에서 다시 2시간 53분 동안 12.65km를 달렸고, 비록 알코올 도수는 낮으나 이슬이 한 병을 비워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대장의 마이크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가평 휴게소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5시 50분이다. 고로 곰배령 주차장에서 가평휴게소까지 1시간 26분 만에 왔다. 갈 때와는 천양지차이다.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목이 말라 식혜나 사려고 버스에 내려, 편의점으로 갔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식혜가 없어, 빈손으로 버스로 돌아갔다. 10분의 휴식이 끝난 후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서울 진입 때 약간 지체한 거 빼고는 평소보다 빠르게 달려, 1차로 복정역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7시 6분 양재역에 도착했다.
모든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 텅 빈 양재역에서 기사와 인솔 대장에게 인사 후 산악회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다가,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하고, 어디로 갈지 잠깐 고민 후 오랜만에 대조시장 삼오순대로 가기로 했다. 해서 불광역에서 내려, 대조시장 내 삼오순대에 도착한 시각이 8시 1분이다. 리모델링 하기 전인 2~3년 전에는 토요일 이 시간이면 차례를 기다리는 등산객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한가하다. 다 서울을 빠져나가서 그런가? 그건 아닌 거 같고?! 어쨌든 식당으로 들어가니, 파장 분위기나 빈 식탁은 하나밖에 없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들어 메뉴를 잠깐 봤다. 2월 북한산행[산행기] 후 왔을 때와는 차림표 자체가 다르다. 와중에 주인도 바뀐 듯하다. 직원이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지키고 서 있어, 차림표 보는 걸 중단하고 일단 나는 순댓국을 마누라는 순대만을 주문했다.
내가 원하는 건 ‘얼큰 순대국’인데, 그게 메뉴에 없어 당황했던 거다. 일단 주문 후 다시 차림표의 메뉴를 하나하나 살펴봤다. 순대국이라는 메뉴는 없다. 대신 '모둠 순대국'과 ‘순대만 순대국', '살코기 순대국', '내장 순대국'이라는 생소한 메뉴가 눈에 띄고, 얼큰은 아예 없어졌다. 일단 새로운 메뉴를 확인했다. ‘모둠 순대국’이 과거의 순대국이다. 지난 목요일 남해 망운산행 후 돼지국밥 집에서 순대국 주문했다가 낭패를 봤는데, 이제는 부속 고기와 순대가 같이 들어 있는 메뉴는 '모둠' 또는 '섞어'다. 그리고 고기만은 '살코기 순대국', 순대만은 '순대만 순대국'으로 표준화한 듯하다. 손님과 주인이 메뉴를 두고 논쟁할 필요가 없으니 좋아진 건가? 물론 와중에 가격은 올랐다! 그러기 위해 음식이 달라진 건 없어도 메뉴판을 바꾼 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 걸 보고, 처음에는 우리가 주문을 잘 못했나, 주인장이 잘못 들었나 헷갈렸다. 마누라가 주문한 순대만 순대국은 순대가 국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순대는 따로 나왔다. 그걸 국에 넣으면 순대국이되는 거다. 그 외는 주인이 바뀌기 전과 달라진 건 없다. 얼큰이야 메뉴에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라, 양념장과 깍두기 국물로 얼큰 순대국을 만들어 그걸 안주로 빨갱이를 마셨다. 그런데, 곰배령에서 이슬이 한 병을 비우기는 했으나, 빨갱이 한 병을 비우는 게 쉽지 않아, 1/5 정도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확실히 최근에 술이 잘 안 받는다. 그리고 집으로 향해, 9시경 도착하는 거로 곰배령 산행을 최종 종료했다.
예정 시간보다 산행 시작은 늦었지만, 산악회 계획대로 '점봉산 산림생태 관리센터 → 강선마을 → 곰배령 → 곰배령끝집 → 생태탐방센터 → 주차장'의 12.65km(산길샘) 구간을 3시간 38분 동안 탐방했다. 이동 2시간 53분, 휴식 45분!
예상대로 천고지가 넘는 고개까지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로 올라가는 즐거움 외에는 더 기대할 게 없는 곰배령 탐방이다. 천상의 화원이라 하지만, 대한민국의 천고지 산이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야생화다. 정말 천상의 화원을 누리고 싶다면 태백의 대덕산, 금대봉을 추천한다.
힘든 산행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울창한 숲에서 녹음과 계곡을 만끽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지다. 다만, 야생화 성수기에는 도떼기시장이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기대를 버린다면, 오히려 초겨울 눈 산행이 한가하고 볼 게 더 많아 보이는 곰배령이다.
개인적으로는 숙제처럼 꺼림칙하게 남아있던 천고지 곰배령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만족한 탐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