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루카 신부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8,18-20 마태오 20,17-28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마태오20,19-20)
'예수님의 눈물!'
우리는 지금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전부를 바치신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큰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묵상하면서, 그 사랑에 보다 더 깊이
동참하고자 하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의 모습을 보면, 그것과는 별개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 모습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오 20,25-28)
예수님의 눈물!
예레미야 예언자의 눈물!
낙태아들과 죄 없는 아기들의 눈물!
수많은 순교자들의 눈물!
의인들인 참 그리스도인들의 눈물!
이 눈물과 죽음 저 너머에서 맞이하게 될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면서,
제대로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와 삶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일부 형제자매들이 신부님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달라고 말하지만, 정치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정치입니다.
"정치는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입니다."('복음의 기쁨', 205항)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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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만 안젤로 신부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8,18-20 마태오 20,17-28
마태오 복음 16장 21절부터 20장 34절까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사건,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준비하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맞으실 비극적 사건을 세 차례에 걸쳐
직접 예고하십니다(16,21; 17,22-23; 20,18-19 참조).
그 가운데 세 번째 예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에 이어서 ‘섬김’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예수님께 아들들의 영광을 요청하자, 이 말을 들은 다른 열 제자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세상의 통치자들이 지닌 권세의 남용을 지적하십니다(20,25 참조).
이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통치자가 지켜야 할 지침을 제시하십니다(20,26 참조).
이 지침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권력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 곧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들이 드러내는 무능을 보여 주시면서,
대조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윤리적 덕목을 실천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제자들이 ‘섬기는 사람’, 곧 ‘종’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서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 섬기시는 분이셨고, 많은 이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20,28 참조).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 줍니다. 섬기는 종이 되라는 예수님의 요청은 우리에게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고 우리의 종이 되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에서 희망을 봅니다.
수원교구 정진만 안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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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8,18-20 마태오 20,17-28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속담에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발 계획을 미리 알고 땅을 사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보를 넘겨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가끔 그런 경우를 봅니다. 봉사하고, 기도하고, 나누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친교와 잔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친교와 잔치 이전에 봉사와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비슷한 의미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 먼저 마신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선출된 공직자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리는 공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이 앞서서 자리를 마련하면 조직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조직은 부정과 부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신문에 나오는 비리와 부정은 대부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거든 내 아들들에게 예수님의 오른편 자리와 왼편 자리를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묻습니다.
‘너희도 그런 자리를 원하느냐?’ 제자들은 ‘예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10제자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영광의 자리를 원하였습니다. 잿밥에 먼저 마음을 두는 것은,
김칫국 먼저 마시려는 태도는 제게도 있었습니다.
인사이동 명단을 보면서 부임지의 성당을 살펴보게 됩니다. 주로 외적인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본당의 크기를 보았습니다. 신자의 숫자를 보았습니다.
본당의 재정 상태를 보았습니다. 보좌 신부님이 있는지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역에 어려운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봉성체를 원하는 분은 얼마나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쉬는 교우들은 얼마나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사목계획을 보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와 청년들의 현황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뜻과 세상의 기준으로 가려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길은 섬김의 길입니다. 그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오늘도,,,
역시나 주옥 같은 말씀의 옹달샘물
잘 마시고 머물다 가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