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카와 여행3 - 온천 마을 산속 깊은 계곡에 있는 야마미즈키 온천에 가다!
11월 7일 벳푸에서 규슈횡단버스를 타고 유후인 을 거쳐 온천으로 유명한 구마모토현
구로카와 黑川溫泉(흑천온천) 마을에 도착해서는.... 와카바 여관에 체크인
을 하고는 1,200엔 짜리 온천 사용권 뉴토테가타 入湯手形(입탕수형) 를 구입합니다.
구로카와 마을의 명물 뉴토테카타 入湯手形(입탕수형) 는 온천여관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3곳의 노천 온천 을 아침 8시 30분 부터 밤 9시 까지
자유로이 이용할수 있다기에 우선 야마비코 여관 노천 온천 부터 이용합니다.
온천욕 후에 다시 마을로 들어서서는 어느 골목에서 "얼굴에 온천 수증기를 쏘이는"
"카오유" 를 보는데 발의 아시유 나 손의 떼유 는 많이 보았어도 이건 처음 보네요?
그러고는 그 바로 앞 가게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기로 들어가 보니.....
떡파는 가게 라, 모찌 를 400엔어치 사서 마눌과 갈라 먹습니다.
그러고는 뉴토데카타를 2번째 사용하기 위해 야마미즈키 온천료칸 으로 가야 하니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는... 카제노야 로 향하는 이고자카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갑니다.
이고자카 가파른 언덕길은 목조 기와 일본 전통집들 도 아름다울 뿐더러
단풍이 고운 데다가..... 길에는 은행잎이 떨어져 운치 가 있습니다.
그릇이며 골동품 같은걸 파는 가게를 지나고 단풍이 붉게 물든 모퉁이
를 지나 위로 올라가니..... 마침내 넓은 광장 이 나옵니다!
여기에 바로 종합 안내소 인 카제노야 風の屋(풍노옥) 가 있어 안으로 들어
가서는 야마미즈키 온천 가는 봉고 버스 타는 정류소 장소 를 물어 봅니다.
카제노야 여직원 이 지도에 표시해 주는대로 밖으로 나와 산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50미터 쯤 더 걸어서 올라가니..... 알려준 가게 가 보입니다.
야마미즈키 山みず木 온천여관은 여가 마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좀 떨어진 산속 외진
곳 에 위치하니... 여관 셔틀 봉고차 가 15분내지 30분 간격으로 운행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봉고가 없어졌으니 택시가 아닌 걸어서는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이윽고 도착한 12시 45분 출발 봉고 버스 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는 데....
산쪽에는 곧게 자란 스기 나무 와 대나무가 울창한 것을 봅니다.
봉고차는 마을을 빠져나가 큰 도로를 만나더니 다시 산속 으로 난
꼬불꼬불한 가파른 길 을 10분을 올라 산속 공터 에 섭니다.
그런데 버스가 모퉁이에 섰기로 미처 야마미즈키 여관의 정면 을 보지 못하고는 숲속에
건물 옆 모습만 보이니... 온천여관은 어디 있는지 어리둥절 하는데 오른쪽 길로
조금 걸으면 되고 왼쪽 언덕 아래에는 미야마산소(심산산장) 라는 다른 료칸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산속으로 난 좁은 산길 50여미터 를 걸어서 들어가니 거기에
건물이 한 채 보이길래 안으로 들어가니 조그만 기념품 숍 인데
외부에서 온 사람의 뉴토데카타를 확인 하고는 지도를 보이며 설명 을 하는데....
여관 투숙객들이 사용하는 본관과 온천 은 이용할수 없으니 남자는 노천탕 한곳만
이용 하라네요?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실내탕등 모두 3곳 을 이용하라고
말하길래 여기 온천은 혼탕은 아니라서 마눌과 헤어지며 한시간후 만날 약속을 합니다.
여긴 깊은 산속 외지고 한적한 계곡 인데 11월 늦가을 인데도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무척 많은 데다가 또 조그만 폭포 도 하나 보이고......
계곡의 경사가 급하니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를 때리니 소리도 요란 합니다!
노천탕 은 계곡에 약간 높직히 바위를 쌓아 만들었는데 11월 늦가을이라
좀 춥기는 해도 넓어 여유가 있으며 더욱이 강변에는 단풍 이
곱게 들어 그 경치 마저 아름다우니 마치 신선 놀음 을 하는 것도 같네요?
일본의 깊은 산골 에서 장년의 일본인과 함께 벌거 벗은채 단풍 드는 계곡 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무심히 온천욕 을 즐기다 보니......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인 김영랑 의 “오매, 단풍 들겄네” 하는 시가 떠오릅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서울의 휘문의숙에 다니던 영랑 은 1919년 3월 1일 3.1 선언문 을 품에 숨기고
고향 강진 으로 내려오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 를 치르는데,
옥살이를 한 몇년 후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 아오야마 학원 에서 공부를 합니다.
간토 대지진 으로 귀국한 후에는 1930년 시문학 을 통해 등단 합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위대한 무용가 로 먼 훗날 월북
하게 되는 최승희 와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지기도" 했던 시인 영랑 은...
낭만파 청년 으로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을 끝내 거부했지만 해방후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하루 전날에 서울로 진격하는
군대가 쏘았을 것으로 보이는 포탄에 맞아 숨집니다. 아군의 손에?
일제시대에 최남선 이며 박영효, 이광수, 윤치호, 최린, 서정주, 노천명, 김활란,
김동인, 주요한과 모윤숙, 유치진, 쵀재서, 김기진, 홍난파, 현제명이며....
김동환, 김상용, 유진오, 채만식, 정비석등이 차례 차례 "친일파로 변절" 했습니다.
3.1 기미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도 상당수가 변절 했으니 해방후 국회에서
설치한 “반민 특위”에 잡혀온 춘원 이광수 는 구구히 변명하는 다른사람 과는 달리
“천황 폐하가 우리 조선인을 폐하의 적자 로 받아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읍할 뿐 이다."
"하여 우리 혼과 뼈와 살도 조선을 버리고 철저히 일본인 이 되어야 한다”
며 일본 군대에 징병을 독려한 이유 를 재판관이 물으니......
“일본이 저리 허망하게 망할줄 모르고 백년을 갈줄 알았다" 라고 했던가요!
일제시대 일본순사의 앞잡이 조선인 밀정 들은 해방후 도망쳤다가 미군정이 이들을 경찰로
특채해 우대하니 이승만도 이들을 비호 했는데, 반민특위가 종로경찰서장등을 체포하자
경찰은 1949년 6월 총을 들고 반민특위를 습격해 무력으로 해산 시키니 이승만은 내란을
벌인 친일파 경찰을 두둔 하고 국회의원까지 간첩 으로 몰았으니 친일파 청산은 실패 합니다!
당시 좌익과 우익이 대립했으니 이 대통령은 우선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는게 급하다고
보았는데 이들은 좌익 공산주의자들을 저지하고 6.25 때는 북한군과 싸우다가 대거 죽게
됩니다. 영랑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일제 말기에 현실에 안주하여 타협 하는 길 을 택하지
않고 죽음으로 맞서겠다는결연함을 다지는 저항시 를 지었으니 바로 “毒(독) 을 차고” 입니다!!!
내 가슴에 독(毒)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마저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디!” 독(毒) 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변절해 친일하지 않고 목숨 걸고 지조 를 지켰건만 아군의 포탄에 맞아 죽을 줄이야?
그러고는 다시 둘러보노라니..... 노천 온천에 몸 을 담갔으니 아랫도리는
따뜻한 데 늦가을 단풍이 든 물소리 우렁찬 깊은 계곡에 드러낸 윗몸은 서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