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1
네이버블로그/ 남의집 { 쉽게 차를 즐기는 다도체험 }
⑤ 낙원
그대가 만들라.
자유로 뼈대를 세우고 평화로 회칠하라.
분노의 감정이 드나들지 못하게
자아 포기를 방벽으로 치라.
알람이 울린다. 이웃에 차를 마시러 가기로 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참 좋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켠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스트레칭을 하고 깊은 호흡도 몇 번 한다.
대나무 숲에 멧새 몇 마리가 날아와 왜 빨리 안 가고 꾸물거리느냐며 나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장을 넘어온 나무 잎사귀를 툭툭 치며 딴전을 피우다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하얀 구름으로 퍼즐도 맞추어 본다. 빨랫줄에 날개를 접고 앉은 노랑나비에게 몇 마디 말도 건넨다.
아래쪽으로 두루마리 펴지듯 바다가 펼쳐져 있다. 가랑잎처럼 떠 있는 배 두 척이 눈에 들어온다. 고요하다. 물이 빠지는 시각에 맞춰 바닷가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걸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꼬마 게나 조개, 소라, 갯강구 등의 작은 생물을 보면 이곳이 지구의 한 귀퉁이임이 실감난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문 밖으로 나간다.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담장 아래로 도랑이 있고 그 위에 돌다리가 놓였다. 집과 세상을 이어주는 돌다리가 오늘따라 더욱 정겹다. 도랑은 비가 올 때마다 졸졸졸 종알거리며 숲의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차 마시러 가는 집까지는 천천히 걸어 삼사 분 걸린다. 먼저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나의 모습이 보이자 돌담 길 따라 피어 있는 풀꽃병사들이 열병식을 준비한다. 살짝살짝 향기를 풍기며 몸가짐을 바로잡는다. 품속에는 나팔수로 임명한 작은 곤충들을 숨겨 두고 있다.
어깨를 쭉 펴고 장군이 된 듯 씩씩하게 걷는다. 가끔씩 손을 뻗어 수고한다는 뜻으로 병사들의 얼굴을 만져 준다. 장군의 손길을 느낀 병사들은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다. 손길을 거두면 고개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우리의 친교는 매일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돌담 사이에서 등딱지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곤충 한 마리가 나팔수의 역할을 포기하고 기어 나와서 자신은 사열단에 참여하겠다고 한다. 손을 번쩍 들어 허락의 뜻을 표한다. 녀석은 기쁨으로 몸을 떨며 휘이익 날아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짧은 열병식을 끝내고 조금 내려가서 샛길로 접어든다. 여기엔 풀이 무성하여 헤치고 걸어야 한다. 엉겅퀴, 인동덩굴, 마삭줄, 구절초, 들국화, 머위, 쑥, 명아주, 비름 등이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다. 햇볕이 더 필요한 녀석들이 경쟁적으로 고개를 빼는 바람에 걷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되었다.
섬에서 유일한 예배당을 지나 몇 발짝 내려가면 언덕 아래 아담한 목조 건물이 있다. 외양이 섬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바다와 산기슭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있는 거실도 있다. 거기가 내가 차를 마시러 가는 집이다.
오늘 마시기로 한 차는 헛개나무차다. 차에 별로 관심이 없어 스스로 끓여 마시지는 않지만 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한때는 품위 있게, 우리 고유의 차인 녹차를 다도에 따라 즐겨 볼까 하다가 다기를 다루는 게 번거롭게 여겨져서 그만두었다. 차 마시는 즐거움이 번거로움이 대한 저항감을 넘어서지 못했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맛을 본다. 헛개나무 향이 참 개운하다. 사람들은 이런 맛 때문에 습관적으로 차를 마시는 건가 했다. 하지만 차 한 잔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보니 나 자신이 그런 습관에 매이고 싶지는 않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의 일부터 대화가 시작되어도 가끔씩 큼직한 사상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사상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자칫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분류하고 분석하여 비판하는 방법을 피해가면 복잡하지 않게 대화를 끌고 가서 간결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주인 내외의 가치관은 한마디로 ‘그냥 살아간다’다. 어떤 특별한 계획도, 아무런 욕심도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고귀한 삶을 무책임하게 대면하는 것 같아 보여도, 이야기가 깊어지면 결국 그것이 가장 높은 차원의 가치임을 인정하게 된다. 본질적인 삶 이외의 곁가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단호하고 말끔하게 제거한 순수한 상태가 환히 보인다.
나 또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겠다는 다짐을 한 지 오래되었다. 그 후에 아주 조금씩, 비늘이 벗겨지듯 마음 안에 깊이 자리한 욕심들이 떠나갔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흡족해했던가. 좀 더 노력하면 이런 태도가 골수로부터 우러나와 삶의 어떠한 상태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대화는, 잘 이어져 나가다 생의 마지막 부분 즉, 약해지거나 병드는 시점에 이르러서 단절되곤 한다. 그때 필요한 경비를 비축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것이 함정이다. 생각을 바꾸어 늙고 병들면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그냥 버티다가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가겠다고 치부해 버리면 훨씬 자유로워진다.
차를 마시고 대화도 나눴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들레꽃을 따서 홀씨를 입으로 후후 불며 걷는다. 낙하산처럼 동동 떠가는 이 씨앗들은 운명이 요구하는 대로 땅 위에 안착하여 새로운 민들레꽃을 피워 낼 것이다. 방금, 선한 대화를 통해 내 가슴에도 씨앗이 뿌려졌으니 이 녀석들도 곧 싹을 틔울 것이다.
차를 마시러 가곤 하는 집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밝고 희망적이며 세련된 이름이면 좋겠다. 어떤 이름을 붙여 주면 그곳은 이름에 어울리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꽃도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도 있지 않은가.
여러 가지 이름을 끌어와 어떤 것이 어울리나 의미를 새기며 꼼꼼하게 살핀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한 이름이 가슴에 꽂힌다. ‘낙원’, 정말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낙원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아주 쉽다. 그 안에 자유와 평화를 가득히 채우면 된다. 가장 방해되는 것이 분노의 감정이다. 이 녀석을 안에 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완벽하게 포기해야 한다. 자기 포기는 자유와 평화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낙원에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목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사실 인간의 첫 세상도 낙원이었다.
어쨌든 내가 이름을 붙여 주어 그 집은 정말로 낙원이 되었다. 이제 차를 마시러 낙원으로 갈 것이고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의 자격으로 낙원의 모든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마음이 뿌듯하다. 이름 하나 붙여 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흡족해지다니! <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홍기, 도서출판 그루, 2023.)’에서 옮겨 적음. (2023. 7.19. 화룡이) >
첫댓글 낙원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아주 쉽다.
그 안에 자유와 평화를 가득히 채우면 된다.
진시황은 검으로 천하는 얻은 것이 아니라
화평으로 제국을 이루고
백성을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초 시인님이 농부시인으로 사시는 까닭도
자신의 터전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겠는지요.
고맙습니다.
낙원으로 차 마시러 가는 홍기님이 넘 부러워요.
저도 함께 데려가주시면 안될까요?
망고 시인의 작품 세계도
온통 낙원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