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사(鶴林寺)는 수락산에 있는 절이다.
예전에는 학림사를 경유하여 수락산 오르는 등산로가 힘들고
또 위험하여 피하였는데 지금은 마치 둘레길처럼 잘 정비되어
용굴암 거처 수락산을 오르는 들머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학림사는 옛적에 찾아갈 때는 마치 토담 길을 걸을 때 느끼는
영혼의 향수 같은 감흥을 주는 절이었는데 사세가 좋아져서 당우들이 늘어서서 그런지
지금은 사뭇 다른 감이 드는 것은 어언 30여 년이 흘러간 세월 탓인가...
학림사(鶴林寺)는 671년 신라 11대 왕인 문무왕 때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사찰이라고 하지만옛 흔적을 말해주는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학림사(鶴林寺) 사찰 안내서에서 따르면「학림사는 鶴이 알을 품고 있는
鶴之抱卵(학지포란)의 형국이므로 鶴林寺라 명명했다.」라고 했으나
불교에서 <鶴林> 은 다른 뜻이 있다.
중인도 구시나가라 밖 니련선하가에 있던 사라쌍수의 숲을 일컫는 말로,
일명 鶴林이라고 하는데 세존께서 이 숲속에서 열반하실 때에
이 숲이 일시에 꽃이 피어 숲색이 백색으로 변하여 마치 흰 학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하므로 후세에 이것을 학림이라고 하였으며,
또 숲이 고사(枯死)하여 부처님의 열반 뜻으로 쓰인 말이다.
『涅槃經一』에 보면 「그때 구시나서 娑羅樹林(사라수림)이 白色으로 변하여
마치 흰 鶴들이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 라고 하였고,『止觀一上』에 「처음엔 鹿苑(녹원),
중간엔 鷲嶺(취령),맨나중에 鶴林이다」 라고 하였으며,
同七上에 「鶴林은 부처님의 施化(시화)가 이미 具足하였고,
중간에 榮苦 하였다가 열반에 드신 곳이다.」라고 하였다.<
자료출처: 한국불교대사전/ 명문당>
수락산 학림사라는 편액이 걸린 이 건물은 수락산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안에는 사자 등을 타고 있는 문수동자와 코끼리 등에 올라탄 보현동자상을 조성해 놓았다.
월출산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의해 탈문을 모본으로 한 것인지는 몰라도
금강역사가 없는 것만 다르다.
보현동자
문수동자
옛적에 없는 2층 건물로 청학루가 조성되어 있다.
앞은 청학루, 뒤에는 설법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일 층은 종무소를 겸하고 있다.
오백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하는 전각을 응진전,나한전이라고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불과 십육 나한을 모신 경우는응진전(應眞殿)이라 하고
석가삼존을 중심으로500인의 아라한을 모신 것을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등으로 분리하는 것이 전각의 일반 예다.
그런데 학림사의 오백나한전의 주불은 약합(藥盒)을 지닌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불이 아닌 약사불로 보인다.
좌우 협시로는 대개 가섭과 아난, 또는 정광여래나 노사나불 미륵불을 모시는 예도 있는데,
보관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래는 분명한데 두 분 협시가 정광여래인지 미륵불인지 알 수 없다.
범종각범종각에는 다른 전각과 다르게 학을 조성해 놓은 것이 색다르다.
사명이 학림사라서 학을 조성해 놓은 모양이다.
대웅전
수미단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협시로 관음보살,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모셨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두지만,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두는 예도 있다.
대개 아미타불을 본존을 모시는 경우 우협시를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두는 경우가
사찰에 따라서 종종 있는데 석가모니불의 협시로는지 장보살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웅전의 경우 본존을 석가모니불이 아닌 아미타불로 보는 경우가 많다.
용문산 용문사의 대웅전을 보면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본존으로 석가모니불을 두고 있는데 이는 용문사가 신라 때 창건된 사찰임
알리기 위함인데 통일신라 시대는 아미타불을
석가모니불의 화신내지 같은 여래로 보았기 때문이다.
칠성탱
지장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