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 인생
2022년 5월 8일 시 8:4, 눅 15:20
1. 노란 리본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젊은 남녀 세 쌍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플로리다 해변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로리다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고, 재잘거리던 이들도 이내 곧 조용해졌습니다. 버스 앞자리에 한 사내가 앉아있는데, 커다란 사이즈의 헐렁한 옷을 입고,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줄곧 착잡한 표정으로 묵묵히 창밖만 보고 있었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고, 또 밤을 새워 달리는 동안,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는 이 사내에 대해 승객들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던 선장일까?’, ‘아내와 싸우고 집을 나온 건가?’, ‘전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인인가?’ 별의 별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커피를 전해주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사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인데, 죄를 짓고 뉴욕 교도소에서 4년형을 받아 복역하다가 이제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갈 때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오랜 기간이므로 만일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든지, 혹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든지, 혹은 혼자 사는 것이 괴롭고 고생이 된다면 나를 잊고 재혼해도 좋다.” 그리고 3년 반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래 전부터 아내에게선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빙고도 물론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간 가석방 결정이 나자 빙고는 다시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4년형을 받았으나 3년 반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되었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데, 당신이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브런스위크’ 우리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 두오. 만일 노란 리본이 참나무에 걸려 있으면 나는 집으로 찾아갈 것이고, 만일 안 걸려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조용히 떠나겠소.”
버스 안의 승객들은 아주머니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앞자리에 앉은 저 아저씨의 일이지만, 그 사정을 듣고 보니 이제 남의 일이 아닌 겁니다. 이제 버스는 브런스위크에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브런스위크 20킬로, 10킬로, 5킬로… 버스가 그 마을에 다가가자 버스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습니다. 숨 막히는 긴장이 버스 안을 사로잡았습니다. 빙고는 흥분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지만 그의 모습에서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 안에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마을 어귀의 참나무가 온통 노란 리본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장, 50장, 아니 수 백 장은 될 만한 노란 리본들이 온통 가지에 묶여 휘날리고 있었던 겁니다. 자신은 참으로 자격 없는 남편이라고 자책하며 혹시 나를 받아준다면 그땐 정말로 새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그렇지만 받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더 이상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아내는 혹여 못 볼까봐 리본으로 참나무를 노랗게 물들인 겁니다.
성도여러분, 노랗게 물든 참나무를 봤을 때 이 사내의 심정을 짐작하실 수 있지요? 그야말로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감격이죠. 바로 이 심정, 이 감격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오늘 설교는 끝입니다. 다 된 겁니다.
2. 시편 8:4, 누가복음 15:20
(1)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히브리어 평행법입니다. 두 가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반복하므로 강조하는 겁니다. ‘도대체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돌보아주십니까?’ 하는 겁니다.
바로 앞의 3절입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하늘과 달과 별을 보니’란 말은 ‘우주의 창조질서를 보니’, ‘세상의 오묘한 조화를 보니’,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크신 하나님을 뵈오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주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가! 참으로 작지 않은가! 우주에서는 내가 보이기나 할까!’ 이렇게 생각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돌보며, 사랑해주신다고?’ 감격하는 겁니다. 뭔가 뜨거운 것이 속에서 올라오지요.
(2) 누가복음 15:20
누가복음 15장에는 불효 막급한 한 자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미리 유산을 달라고 하여 외국으로 나가 다 허비해버린 부잣집 둘째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제 다 탕진한 후에 다른 사람의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먹을거리가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다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집으로 가서 아버지한테 빌어야겠다. 이제 차마 아들로는 자격이 없고, 집에 품꾼들은 많으니 품꾼들 가운데 하나로 삼아 달라고 하면 써주시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모자란 둘째 아들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눅 15:20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그를 발견했을까요? 아버지는 늘 동구 밖에 나와서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아들이 잘못했다고 비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소리를 다 듣지도 않고 온 집안에 선포합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리고는 잔치를 벌입니다. 혹여 이 모자란 둘째 아들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아들로서의 자격을 시비할까봐 아버지는 못을 박아두는 겁니다. ‘이는 내 아들이다. 누구도 시비하지 말아라.’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정말 바보 같은, 둘째 아들 같은 탕자인 우리를 이렇게 받아주신다는 겁니다.
3. 감격 인생
(1) 신앙은 감격
신앙은 감격입니다. 신앙은 규칙이 아닙니다. 훈련이 아닙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신앙은 감격입니다. 이방에서 방탕하게 생활하다가 아버지를 찾아가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빌려고 했건만, 아버지는 그 못난 자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잔치를 벌이는 겁니다. 옥가락지를 끼워주는 겁니다. 이때 아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달려 있을까? 안 달려 있을 거야. 기대하는 내가 염치없는 놈이지.’라며 체념하고 있는데, 노랗게 옷을 입은 참나무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겁니다. 이 사람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주님의 위대한 창조의 솜씨, 달과 별들을 보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경탄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참 정말 사람이 뭐라고, 도대체 미천한 이 몸이 뭐라고 돌아보십니까?”라며 감격의 노래를 부르는 신앙 선배의 심정을 짐작하실 수 있지요?
신앙생활이란? 이 심정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 가운데, 몸 둘 바를 모르는 두렵고 떨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야말로 감격 인생입니다.
(2) 합병10주년기념주일
7월 3일의 합병기념주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2년 7월 1일에 두 교회가 하나가 되었으니 1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가정교회로 시작한 때로부터 보면 하늘샘교회는 20년이고, 양돈마을에서 시작한 역사로 보면 영은교회는 35년입니다. 참으로 긴 세월인데, 이 세월동안 이 작은 신앙공동체가 없어지지 않고 살아나왔네요.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고 그 안의 교회도 철거되어 예배장소가 없어졌으면 사라질 만도 하건만, 담임목회자가 교회에서 쫓겨나면 그만이건만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가난한 살림을 이어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야말로, 말 그대로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합병기념주일을 준비하는 가운데 두 교회의 창립시절부터 목회했던 목사님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만 특별히 합병1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 두 목사님들이 생각났습니다. 목회가 본래 어려운 일이고, 목회자는 모두 힘들지만, 특별히 개척교회의 목회자들은 더욱 힘듭니다. 얼마나 힘들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라는 말이 목이 네 개라서 목사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 너무 많다는 말씀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어려웠던 일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만, 한창 어려운 때는 그야말로 죽을 지경일 때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목이 네 개쯤 돼야 합니다. 오용식목사님, 김종수목사님 두 분은 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입니다. 특별히 그분들의 젊은 시절, 중년의 그 귀한 시기를 이 교회에 바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합병10주년기념주일이 이 두 창립목사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에도 기회가 없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감사패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오시라고 두 분 목사님에게 연락드렸습니다. 두 분 모두 오신다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영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옥에 수감된 소위 양심수들을 후원하기 위해 모금을 하는 ‘후원의 밤’ 행사였습니다.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는 유명인들이 출연료 없이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공연 말미에 인순이라는 가수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가 무대에 서서 했던 인사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제가 기억합니다. 자기가 이 후원의 밤 행사에 출연을 요청받고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노래를 부를지 등등.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진 의상 가운데 가장 화려한 의상을 골라 입고 왔다고 했습니다. 왠지 오늘 밤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가장 신나는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었다고, 마음껏 즐기시라고 했습니다. 그 특유의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후원의 밤 행사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화려한 무대를 선사했습니다. 그런데요,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날 인순이의 마음이 지금 제 마음입니다. 합병10주년기념주일 예배와 축하행사가 정말 감사와 기쁨의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유연미집사님에게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빵 크게’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어려운 목회를 열심히 감당하신 두 목사님께, 그리고 이 어려운 교회를 붙들고, 붙들고 떠나지 않은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이 날의 행사가 감사와 위로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감격입니다. 신앙이 뭐라구요? 감격입니다. 사랑하는 하늘샘교회 성도 여러분! 하루, 하루 감격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