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기동사단 포병여단은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제8기동사단 예하 부대로, 제50포병대대 · 제95포병대대 · 제228포병대대 · 제231포병대대를 예하 부대로 두고 있다. 여단 본부는 천보대에 제50포병대대 · 제95포병대대와 함께 위치한다.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화포인 K9자주포(155mm)와 K-55자주포(155mm)를 운용하고 있다.
26사단이 8사단으로 개편되면서 26사단 포병여단에서 제8기동사단 포병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별칭은 사단 개편 이전까지는 제26기계화보병사단의 별칭이었던 불무리를 활용한 불무리포병에서 8사단 포병연대의 별칭이었던 산하진으로 바뀌었다
해체된 옛 8사단 포병연대는 제50포병대대 · 제73포병대대 · 제75포병대대 · 제9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있었으나, 8사단 포병연대의 해체와 함께 모두 해체되었다. 다만 오랜 역사를 가진 제50포병대대와 제95포병대대는 명칭을 각각 제222포병대대와 제631포병대대에 남겨주었다
ㅡ편제ㅡ
1. 여단 직할대
2. 제50포병대대 풍익
3. 제95포병대대 명중
4. 제228포병대대 화랑
5. 제231포병대대 백호
ㅡ 제50포병대대 풍익
1949년 2월 10일, 서울 영등포에서[2] 대한민국 국군 최초 포병대대 6개 부대 중 하나인 포병 2대대로 창설되었으며, 당시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은 M3(105mm 견인포) 15문을 운용하였다[3]. 국군 포병의 전설적 인물인 김풍익 대위가 초대 대대장을 맡았던 부대로, 김풍익 대위는 한국전쟁에서 적 전차를 직사운용하는 등 전과를 올리고 산화할 때까지 대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했다[4]. 최초 야전포병단 예하 2대대로, 포병학교 교도지원 대대였으며 이후 8사단에 예속되었다[5]. 제26기계화보병사단이 8기동사단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제50포병대대는 해체되고, 제222포병대대가 옛 50포병대대의 명칭을 물려받았다. 다만 청룡포병이라는 별명도 사라졌고, 옛 50포병대대의 풍익대대라는 별명을 함께 이어받았다.
ㅡ제95포병대대 명중
1953년 5월 11일, 서울 용산에서 제631포병대대로 창설되었으며, 창설 초기부터 105mm 화포가 아닌 M1(155mm 견인포)을 운용하였다[6]. M1 견인포의 경우 당시 국군에서 유일한 155mm 화포로써 군단을 지원하거나 사단 일반지원으로 활용되는 화포였다. 이후 미2사단, 15사단, 6군단, 26사단 예속을 거쳤으며, 1953년 6월 8일부터 정전시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화포는 창설기 M114견인포에서 K-55(155mm 자주포), K-9(155mm 자주포)로 차례로 전력화되었다. 26기계화보병사단이 8기동사단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주둔지를 옛 65사단 본부로 옮기고, 해체된 제95포병대대로 고유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른다. 제631포병대대에서 사용했던 명중포병이라는 별명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8보병사단 시절 95포병대대 명칭을 사용했던 부대는 1952년 창설되었으며[7], 1952년 6월 16일부터 정전시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8보병사단과 함께 해체되는 시기에는 철원군에서 KH-179(155mm견인포)를 운용하였다. K-9 자주곡사포(155MM자주포)를 운용하였다
ㅡ제228포병대대 화랑
26사단의 228포병대대가 그대로 8사단 228포병대대로 개편되었다. 위치는 이전과 동일.
연천군에 위치하며 고문리 8포라고 불림
사단 내에선 비교적 신막사이며 장구류 보급이 잘나오는편
ㅡ제231포병대대 백호
위의 228포병 대대와 마찬가지로 26사단의 231포병 대대가 8사단 231포병 대대로 개편되었다. 위치는 동일. 신막사이다. 2015년 8.20 완전작전을 수행해 낸 부대로 용사들의 주특기나 체력 수준이 우수하다. 아주 넓은 대대 부지를 소유하고 있어서 제설이나 제초 작업을 할 때 굉장히 힘들다. 부대 바로 옆에 28사단 신교대가 있다.
ㅡ과거부대ㅡ
제73포병대대 (해체)
제75포병대대 웅비(해체)
첫댓글 잘 정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