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심>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 손석희 > 오늘 하루가 생애 전부인 것처럼 살고 계신 이해인 수녀님의 시, <어떤 결심>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를 들으시면서 공감하시기도 하고 또 따뜻하게 느끼시기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1976년에 첫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를 내신 이후에 지금까지 이렇게 늘 맑고 고운 시어로 많은 사람들한테 행복과 또 희망을 전해주고 계신 이해인 수녀님 오늘 <토요일에 만난 사람>의 주인공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수녀님.
◎ 이해인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손석희 > 부산에서 오셨죠?
◎ 이해인 > 예, 기차 타고 왔습니다.
◎ 손석희 > 부산의 베네딕도 수녀원에 계시기 때문에.
◎ 이해인 > 예, 한번 오세요. 광안리. 제가 사는 곳에.
◎ 손석희 > 아, 광안리인가요?
◎ 이해인 > 예, 바닷가 쪽에.
◎ 손석희 > 가끔씩 이렇게 올라오십니까?
◎ 이해인 > 몇 달에 한 번 정기검진, 서울성모병원에서 검진이나 또 가끔 뭐 특별한 강의 같은 거 해야 될 경우에 이렇게 맞물려서 일정을 같이 겹쳐서 그렇게 오거든요.
◎ 손석희 > 이번에 올라오신 것은 <시선집중>만을 위해서 올라오신 건 그럼 아니시겠죠?
◎ 이해인 > 겸사겸사, 병원 일하고 또 경희의료원에 암센터를 위한 행사,
◎ 손석희 > 그러시군요. 완전히 건강하시지 않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 이해인 > 예.
◎ 손석희 > 그 얘기가 조금 이따 하도록 하죠. 약력을 소개해드려야 되는데요.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나셨습니다. 방년 67세, 소녀 같으셔서
◎ 이해인 > 마음은 17살 같습니다.
◎ 손석희 > 그래서 그렇게 불러드렸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서울에서 다니셨네요. 창경초등학교가 어디 있습니까?
◎ 이해인 > 서울대학병원 안에 지금 장례식장으로 쓰는 자리가 그 초등학교 자리예요. 그때.
◎ 손석희 > 그런가요?
◎ 이해인 > 예, 지금 다른 데로 옮겼고
◎ 손석희 > 그리고 풍문여중을 나오셨습니다.
◎ 이해인 >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김천으로 옮겨갔어요.
◎ 손석희 > 성의여고요?
◎ 이해인 > 예.
◎ 손석희 > 풍문여중은 지금도 거기 있습니다.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지난 번에 손숙 선생이 여기 나오셨을 때
◎ 이해인 > 같이 문예반 활동했어요.
◎ 손석희 > 그러신가요. 동기신가요?
◎ 이해인 > 그 언니가 한 학년이 위예요.
◎ 손석희 > 하나 위시군요. 문예반 출신이셨군요.
◎ 이해인 > 예, 문예반. 반효정이라는 탤런트 있죠. 그 언니도 같이 문예반. 그때 반만희 언니였는데 그때 시인을 꿈꾸셔서
◎ 손석희 > 반효정씨도
◎ 이해인 > 김을동, 김을동 그 언니도 손숙하고
◎ 손석희 > 분위기가 다르신 분인데.
◎ 이해인 > 같이 어쨌든.
◎ 손석희 > 그렇군요. 저희 누나도 풍문여중고를 나왔습니다.
◎ 이해인 > 그래요?
◎ 손석희 > 예.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 영문학과를 나오셨습니다. 왜 필리핀까지 가셨습니까?
◎ 이해인 > 그냥 거기 수녀원에서 한 학교가 있어요.
◎ 손석희 > 그래서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이군요. 이름도.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마치셨습니다. 열아홉 때 64년에 수녀원에 입회하셨습니다. 그리고 76년에 종신서원을 하셨고 성 베네딕도 수녀원 소속으로 최근까지 문서선교를 맡아 오셨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 이따 여쭙도록 하고요. 76년에 그러니까 종신서원하신 그 해에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내셨습니다. 요즘 곳곳에 카페이름도 이거던데
◎ 이해인 > 제가 먼저죠. 제가 먼저 그 책을 냈고 거기서 의자만 빼고 지 소장님이, 그런데 그 카페가 너무 유명해지니까 관련 있는 줄 그렇게
◎ 손석희 > 관련은 없으신 거죠?
◎ 이해인 > 전혀.
◎ 손석희 > 예를 들어서 한 달 수입의 몇%를 받으시고
◎ 이해인 > 없어요.
◎ 손석희 >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은 위로> 이런 시집을 내셨고 산문집도 많이 내셨습니다.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풀꽃 단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런 산문집을 내셔서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으신 바가 있습니다. 시집과 산문집은 지금까지 600만 부 이상이 나갔습니다. 600만 부라면
◎ 이해인 > 500만 부는 확실한데 600만 부는 대략 계산해본 거였거든요. 옛날에 대략.
◎ 손석희 > 옛날에 계산하신 거라고요?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지금은 또 700만 부일지도
◎ 이해인 > 모르겠어요. 그건.
◎ 손석희 > 그걸 그렇게 계산하신 것은 인세 때문에 하셨나요?
◎ 이해인 > 전혀 아니고 궁금해서. 인세를 모르니까 제가.
◎ 손석희 > 안 받으신다면서요?
◎ 이해인 > 통장을 본 적도 없어요.
◎ 손석희 > 그러면 그 인세는 다 어디로 들어갑니까?
◎ 이해인 > 수녀원공동체 재단법인 그리로 들어가니까 그냥 통장번호만 알고 있고 그냥 제가 궁금하면 이제 그해 얼마가 어디서 왔는지 보자고는 할 수 있어요. 복사해서 통장을 복사해서 저도 이제 궁금하니까 보고 거기서 얼마를 뭐 한다는 그런 건 우리는 무소유의 삶이니까 다 기차값도 타서 오거든요.
◎ 손석희 > 서울 오실 때요?
◎ 이해인 > 예. 우리는 집이니까 집에서 그렇게 월급 받고 그렇게 안 하잖아요.
◎ 손석희 > 다 똑같이 나눠쓰나요?
◎ 이해인 > 많은 사람들이 책이 많이 팔리니까 제가 두둑하게 챙기고 있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거든요.
◎ 손석희 > 저희도 그러시리라고 애시당초 안했습니다. 그 대신 부산에서 서울 올 때 KTX 특실을 끊어드린다던가,
◎ 이해인 > 전혀 아니에요.
◎ 손석희 > 그것도 아니에요?
◎ 이해인 > 내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누굴 부탁했을 때 그 사람이 가끔 알아서 환자니까 특실을 끊어줄 때가 있더라고요. 우리가 이렇게 할 때는 아주 전혀 그런 예외 없이.
◎ 손석희 > 그러시겠죠. 설마.
◎ 이해인 > 또 가난서원을 하고 가난하게 살겠다고 해놓고 그렇게 예외적인 것을 그렇게 하는 건 남 보기에도 안 좋고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부분이에요. 사실은.
◎ 손석희 > 아무튼 어렵게 이렇게 나와 주신 겁니다.
◎ 이해인 > 예, 그렇죠.
◎ 손석희 > 다른 일정도 많으신데.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아침에 특별히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 이해인 > 제가 또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니까 저도 마음이 동해서 온 것도 있어요. 사실.
◎ 손석희 > 정말이시죠?
◎ 이해인 > 정말이에요. 믿어도 됩니다. (웃음)
◎ 손석희 > 고맙습니다. 전 국민적인 사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이해인 >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던데 사람들이.
◎ 손석희 > 그러면 감사한 일이고요. 암 치료를 받으신지 4년째 되고 계십니다. 건강은 지금 말씀하신 것 보면 아주 좋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 이해인 > 제가 겉모습이 창백하고 몸도 많이 야위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이래서 암환자 같아서 동정을 하는데 너무 멀쩡해 보이니까 암환자인 줄 잘 모르는데 내면적으로는 고통이 있죠. 저도 있고 암 뿐만 아니라 파생하는 통풍이라든가 다른 따라오는 병들이 또 있어요. 이렇게 말 못하는 어떤 그런 것들이 큰 아픔보다 더 힘들 때가 있고 또 이렇게 정신적으로도 이렇게 좀 의기소침해지고 무력증이랄까 그런데로 빠질 때도 있는데 제가 명랑투병한다고 대외적으로 선포를 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느라고 저도 삶이 고달프답니다. 거기 맞춰서 살아야 되니까.
◎ 손석희 > 명랑해지시다 보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고
◎ 이해인 > 그래서 제가 의학적인 판정을 받은 것보다는 훨씬 지금 잘 버티고 있어서 주치의가 많이 기뻐하시고 저를 많이 격려해주시죠.
◎ 손석희 > 지난번에 제가 다른 일로 통화 몇 번 드렸을 때도 워낙 목소리도 힘차시고
◎ 이해인 > 글쎄 말이에요.
◎ 손석희 > 그래서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 이해인 > 저보고 오래 살겠대요. 한의사들이 보고 아직... 그대로 살아 있고 너무 일찍 죽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을 믿어보려고요.
◎ 손석희 > 그래도 처음에 이렇게 진단을 받으셨을 때는 굉장히 충격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 이해인 > 그럼요. 다른 사람만 걸리는 건 줄 알았지 암이라는 것 자체는. 막상 탁 나한테 그런 것이 오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되겠다 하면서 모든 걸 정리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모든 인간관계라든가 물건이라든가 주변에 모든 것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확 내려가는 마음이 되면서 겸손이라는 단어도 떠올리면서 내가 진짜 수도자들의 본모습을 보여줄 때가 왔구나, 이런 것이 동시에 이렇게 지나갔어요. 두려움과 함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좀 있었고,
◎ 손석희 > 두려움도 생기고 또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뭔가 극복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어떻게 극복을 하셨을까요?
◎ 이해인 > 그러니까 수도생활의 내공인 것 같아요. 40몇 년을 사니까 그동안 어깨 넘어 본 것, 들은 것, 기타 등등 간접체험, 직접 체험 합해서 진짜 이왕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인데 이왕 하려면 암세포하고도 잘 지내고 내가 다스리면서 기쁘게 지내야 되겠다, 남은 날들을.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다 보면 굉장히 간절하게 감사하고 순간순간을 더 충실하게 사는 그런 연습을 진짜 실제적으로 할 기회가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제 저를 길들이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극복이 되고 함께 가면서,
◎ 손석희 >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잘 견뎌 오신 것 같습니다.
◎ 이해인 > 네, 그랬어요.
◎ 손석희 > 베네딕도 수녀원에서는 문서선교를 담당하셨다고 제가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 이해인 > 예.
◎ 손석희 > 문서선교라는 것은 역시 글로 써서 선교하시는 활동?
◎ 이해인 > 97년부터 30여 년 동안 독자들이 지금은 디지털 이메일 같은 것들 하지만 손편지를 그렇게 많이 저한테 많이 보내주고 그러니까 그게 성당 하나 사무실 분량이었어요. 사무실에 보관하는 자료, 그걸 제가 똑같은 그 일정 안에서 감당하기엔 너무 다른 사람들한테 폐가 되는 것 같아서 그걸 소임으로 일로 떨어뜨려서 주면 내가 갈등 없이 일할 수 있겠다, 이런 그 제언을 총회에다 해서 대의원들이 임시총회에서 이걸 통과시켜가지고 이제 달리 명칭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문서선교라고 일단 편지 쓰고 사소한 것까지 어떤 수녀님들이 내일모레 내 조카가 결혼하는데 수녀님 덕담 좀 써줘, 그러면 카드 갖고 와서 축하카드 써주는 것부터 비롯해가지고 누가 돌아가셨는데 묘비에다가 돌아갈 말이 마땅치가 않은데 묘비에 들어갈 말 써달라고 그러면 참 갑자기 떠올라요? 그래도 그런 것까지 대서방같이 그런 글심부름이 많아요. 제 창작하고는 거리가 먼. 그래도 내가 한탄하고 푸념하지 말고 살아서 이런 것도 다 하는 거니까 기쁘게 해야지, 그래서 그런 독자들의 편지와 또 제 글도 가끔 쓰지만 부탁, 심부름을
◎ 손석희 > 그게 다 문서선교에 들어가는
◎ 이해인 > 그러니까 예쁜 메모지, 편지지 그런 데 제가 욕심이 많은 게 그런 걸 보낼 때가 많으니까 그래서 문서선교가 너무 딱딱하다고 수녀님들이 요즘 해인글방, 이렇게 붙여놨어요 민들레글방, 해인글방,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 손석희 > 다 대부분 손편지로 답장을 써주십니까?
◎ 이해인 > 그렇죠. 그렇죠.
◎ 손석희 > 그럼 이메일이나
◎ 이해인 > 이메일로 하더라도 그걸 프린트해서 이메일로 가면 너무 썰렁하니까 거기다 예쁜 꽃카드라든가 책갈피를 넣어서 그렇게 공을 들여서 보내요. 말하자면.
◎ 손석희 >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런 건 안 하시나요?
◎ 이해인 > 글쎄 나는 스님들이나 더러 트위터, 페이스북 하는 분들 너무 이렇게 존경스러워요. 어떻게 한정된 시간 안에서 수행하고 또 그것까지 하는지. 그래서 참 그것도 이 시대에는 필요한 건데 저는 궁금하면 트위터라고 친 데 가서 제 이름을 쳐봐요. 이해인, 그러면 제 글을 퍼다가 말하자면 거기에 인용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 궁금할 때 들어가서 그거 이 구절은 참 괜찮네, 제가 쓴 거지만. 그거 갖다 카드에다 쓰고 그렇게 인용을 해요.
◎ 손석희 > 문자도 자주하시나요?
◎ 이해인 > 전자파가 암환자한테 해롭다고 핸드폰 주는 조건으로 문자만 하라고. 그래서 문자속도가 제가 빨라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문자를 빨리 하냐고 놀라는데 연습하다 보니까 문자를 즐겨하는 편이에요.
◎ 손석희 > 그래서 제가 아까 드린 문자에 대해서는 왜 답변을 안 주셨습니까?
◎ 이해인 > 너무 썰렁해서 너무 사무적이어서. 제가 정감 있게 보낸데 대해서 딱 한 줄 했잖아요. ‘금방 지금 오세요’ 반갑다는 말도 안하고 그러니까 내가 답을 안 했죠.
◎ 손석희 > 그러셨군요.
◎ 이해인 > 그럼요. 감성이 들어가야지. 이렇게 정감 있게
◎ 손석희 > 제가 뒤에 흘린 표시도 하고 나름 했는데 그게 안 통하는 모양이군요.
◎ 이해인 > 경상도 오빠 같더라고. 무뚝뚝해. 그러니까 겉모습은 안 그런데 좀 무뚝뚝하신 것 같아요.
◎ 손석희 > 다음부터 문자 보낼 때는 하트 표시
◎ 이해인 > 하트 3개.
◎ 손석희 > 알겠습니다. 이렇게 참 재미있으신 분이십니다. 열아홉에 수녀원에 입회하실 때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입회를 하셨나요?
◎ 이해인 > 그냥 이렇게 거창하게 내가 뭐 이렇게 그런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제 제 언니 수녀님이 먼저 수도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언니 만나러 어렸을 때 방학 때 놀러 다니다가 미래를 꿈꾸면서 좀 더 사랑을 하되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어떤 그 넓고 큰 그런 봉사의 삶을 살면서 청춘을 바치는 것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또 언니가 그렇게 많이 언니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니까 영향을 줘서 남보다 일찍 시작을 했죠.
◎ 손석희 > 그렇군요.
◎ 이해인 > 변함없이.
◎ 손석희 > 그때 처음에 입회하실 때 그 생각, 지금도 변함없이 또 그대로 다 이렇게 실천하셨다고 생각을,
◎ 이해인 > 물론 제가 덕이 출중하거나 남보다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그건 아니지만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받아온 신앙을 수도생활과 연장선상에서 한 마음으로 참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제 스스로 대견할 때가 있다니까요. 초심을 그래도 잃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렵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어려운 시절이 저한테도 있었지만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자기가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고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이렇게 지내면서 마침내는 암까지 걸려서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그런 삶을 살면서도 기쁜 거예요. 그게 또 감사하더라고요.
◎ 손석희 > 연세가 이렇게 드셔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 참 부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굉장히 뭐랄까,
◎ 이해인 > 빨리하죠?
◎ 손석희 > 빠르신 편이네요.
◎ 이해인 > 예, 제가 의식을 하는데도 원래가 습성이 빠르게 이렇게
◎ 손석희 > 원래가 그러시죠?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제가 처음에 시를 잠깐 읽어드릴 때에 모든 시가 그렇습니다만 뭔가 차분하게 이렇게 가라앉은 그런 느낌을 대개 주는 시나 산문을 써오셨는데 말씀하시는 것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처음 만나 뵙는 분들이 산문이나 시 분위기하고 다르십니다,
◎ 이해인 > 네, 너무 활달하고 씩씩해서 당황스럽다, 시에 있는 이미지하고 너무 다르다 이래서 저는 또 제 나름대로 노력해서 된 부분이라고 나도 얼마든지 더 차분하고 묻는 말만 대답하고 우아하게 할 수 있지만 너무 사람들이 이런 제복을 입고 사는 삶 자체가 어렵고 다가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씩씩하게 이렇게 하다 보니까 내가 터프하게 그렇게 돼서 여러분을 당황시키나보다, 그렇게 얘기하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암을 투병하면서 명랑하고 씩씩한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얌전하고 차분한 이미지보다. 그건 제가 만들어서 할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차분하고 얌전한 이런 거,
◎ 손석희 > 그건 저희가 바라지 않는 거구요.
◎ 이해인 > (웃음)
◎ 손석희 > 여기까지 말씀 듣고 광고를 들어야 될 것 같습니다. 광고 듣고 이해인 수녀님과의 <토요일에 만난 사람>을 더 진행하겠습니다.
<눈물의 만남>
내가 몸이 아플 때 흘린 눈물과 마음이 아플 때 흘린 눈물이 어느 새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네 / 몸의 아픔은 나를 겸손으로 초대하고 마음의 아픔은 나를 고독으로 초대하였지 / 아픔과 슬픔을 내치지 않고 정겹게 길들일수록 나의 행복도 조금씩 웃음소리를 냈지
◎ 손석희 > <눈물의 만남>이라는 시를 이해인 수녀님께서 직접 낭송을 해주셨습니다. 시를 낭송하실 때는 정말 아까 저희가 광고 나가기 전에 나눴던 말씀대로 차분하고 우아하시고
◎ 이해인 > 맞아요. 아까 어떤 결심이라고 처음에 읽은 시하고 세트, 짝 같아 가지고 비슷한 내용 같아서 제가 한번 읽으니까 그때 느낌도 되살아나고 그것하고 이거 읽을 때 항상 눈물이 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되더라고요.
◎ 손석희 > 저희가 가끔 시인도 모시고 그래서 이렇게 시낭송하는 시간도 특집 때 가끔 하곤 하는데요. 얼핏 나중에 낭송자로서만 이렇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이해인 > 감사합니다.
◎ 손석희 > 많이 와 닿습니다. <눈물의 만남>이라는 시였습니다. 지으신 시를 왜 가곡으로 만들어서요. 연가곡으로 만들어서 편지라는 제목으로 음반이 하나 나왔더군요. 이번에. CD가
◎ 이해인 > 며칠 전에
◎ 손석희 > 아, 며칠 전에 나온 건가요?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연가곡집 편지> 여기는 수녀님께서 쓰신 시에
◎ 이해인 > 가을 편지 시리즈인데 너무 가을 편지하면 한정적인 것 같으니까 그냥 편지로 제목을 해서 국악방송 본부장으로 계시고 PD도 하셨던 박경규라는 분이 곡을 쓰고
◎ 손석희 > 작곡가 박경규씨요.
◎ 이해인 > 예. 바리톤 송기창인가 그분이 저는 아직 받기만 하고 들어보진 않았는데요. 20몇 년 전에 제가 이 시를 그분 드린 걸 26년 만에 한 한 달 반에 걸쳐서 곡을 쓰셨나 봐요.
◎ 손석희 > 이번에 쓰신 시가 아니군요.
◎ 이해인 > 아니에요. 그전에 써놨던 걸 연가곡 형태로 곡을 언젠가 써보고 싶다고 해서 제가 그걸 드렸었는데 저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분이 이렇게 이번에 하셨더라고요.
◎ 손석희 > <그대의 편지>, <물들지 않고는>, <가을 편지>, <우물가에서> 이런 곡들 시들, 18편의 시가 노래로 아름다운 노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연가곡집 편지, 이거 아무리 발매가 많이 되셔봤자 또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 이해인 > 조금밖에 안 찍어가지고
◎ 손석희 > 다 들어갈 것이고, (웃음) 그런데 아까 잠깐 말씀하실 때에 다 스님들이나 또 수녀님들이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도 마찬가지고, 다 바쁜 분들이잖아요.
◎ 이해인 > 네.
◎ 손석희 > 이 가운데에서 이렇게 글 쓴다 라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 이해인 > 그러니까 하나를 더 하는 거죠. 원래 가는 그 일정, 기본적인 일정 외에 또 자기가 뭘 하고 저도 또 제가 시를 써서 시집도 세상에 빛을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독자들이 많이 반응을 보여줘서 또 책이 나오고 나오고 이렇게 될 건 예견하지 못했죠. 제 본래 주민등록 이름도 사실 밝을 명, 맑을 숙 명숙이라는 이름인데 그냥 제가 장난삼아 광안리 바다를 보고 바다 해자, 이렇게 공자의 인사상이 좋아서 어질 인자 하나 붙여볼까, 이래 갖고 가톨릭 잡지에 제 글을 투고할 때마다 이해인이라는 이름을 쓰다 보니까 필명이 자연스럽게 됐어요. 그래서 도장도 이렇게 몇 개가 있어야 되고 그렇더라고요. 쓰는 어려움이 눈치도 보이고 가끔은. 그래서 이렇게 항상 주머니에 메모지를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짬짬이 떠올리는 생각들을 쓰고 소임에 관계없는 쉬는 시간, 그럴 때 이제 이렇게 정리를 하는 편이에요. 조그마한 메모지를.
◎ 손석희 > 지금도 가지고 계시네요?
◎ 이해인 > 이런 식으로 해야 될 일과
◎ 손석희 > 잠깐만 봐도 될까요?
◎ 이해인 > 아닙니다. 이건 주로 할 일에 대해서 주로 많이 적지만 너무 귀엽죠. 메모지가.
◎ 손석희 > 그러네요. 제가 이걸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아쉬운데 이는 한 7cm, 폭이 2cm짜리
◎ 이해인 > 그것밖에 안 돼요.
◎ 손석희 > 이거 만드신 겁니까? 이런 건 안나올 거 같은데
◎ 이해인 > 우리 언니 수녀님이 만들어줬어요. 가르멜 수녀원에 계시는 언니 수녀님이 만들어서 보내줘요. 자투리 이용해서.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 손석희 > 이게 한 권이 아니라 굉장히 많겠군요.
◎ 이해인 > 버리죠. 다 차면. 버리고.
◎ 손석희 > 보관해두시면 좋은 기념이 될 것 같기도 한데.
◎ 이해인 > 그럴까요? 앞으로는. 그래서 이렇게 몰래 몰래 떠오르면 기도하다 말고도 꺼내서 이렇게 마침 제가 앉는 자리가 2층이기 때문에 눈에 많이 안 띄어요. 사람들한테. 구석에서 이렇게 쓰고 생각을 놓치면 다시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어려움이 좀 있죠. 공동체 안에서 맨날 저희는.
◎ 손석희 > 몇 십년 만에 이렇게 뵙는 것이지만 처음으로 뵙는 것이지만 늘 이렇게 가까운 분이라는 그런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쓰신 시나 산문이 사실은 뭐랄까,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잖아요.
◎ 이해인 > 예.
◎ 손석희 > 치유하는 것, 이해인 수녀님의 시나 산문이야말로 바로 그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힐링의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작년에도 <작은 기도>란 제목의 시집을 내셨습니다.
◎ 이해인 > 네 기도시만 따로 모아서.
◎ 손석희 > 그 시집의 끝부분을 보니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내가 꼭 하고 싶은 것들, 적어놓으신 게 있습니다.
◎ 이해인 > 네, 지금 뭐라고 썼는지 확실히 생각이 안 나는데 동화를 쓰고 싶다던가 그런 정리하는 얘기를 아마 했을 것 같은데요. 괜히 그렇게 써 갖고 사람들이 동화 언제 나오냐고 이러니까 괜히 가만히 있을 걸 써가지고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되고 그러는데
◎ 손석희 > 일종에 버킷리스트잖아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기억은 잘 안 나신다고 하지만.
◎ 이해인 > 정리, 거기서 내가 몇 가지를 동화 외에도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이 지금 여기 없어서 그러는데 오늘을 내 남은 생애 첫날 같이 살고 싶고 기쁘게 살고 싶고 그래서 다 주변 정리도 시작하겠다,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정리를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신문에서 인상 깊어서 오려뒀던 기사들, 고운 말에 대한 기사들, 이런 것 다 이렇게 하고 법정스님이 하신 말 중에 죽고 나면 그 물건에도 혼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네가 누구한테 뭘 주고 싶으면 살아 있을 때 물건이 빛을 발할 때 주라, 그걸 제가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좀 물건 같은 것도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누구한테 더 어울리겠다 싶으면 이렇게 주고 하는데 제가 우러나서 줄 때는 기쁜데 저쪽에서 미리 눈치 채고 가서 달라고 하면 약간 못 마땅한 그런 게 또 인간이 이렇게 참 그렇구나, 마음이 이렇게 욕심을 비운다는 게 어렵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살아서 모든 걸 내가 주변에 정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제 기억의 서랍 속에 다 이렇게 챙겨 줄 게 너무 많아서 그것 때문에 제가 움직이는 선물의 집처럼 오늘은 누구한테 이걸 주고 막 그렇게 하니까 삶이 바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그래서 이런 것도 그렇잖아요. 누굴 만나면 그 사람한테 뭐를 좀 어울릴까,
◎ 손석희 > 오늘은 제가 사실 받았습니다. 책은 물론 받았고요.
◎ 이해인 > 박완서씨 책이죠. 거기 제 얘기도 나오니까 꼭 한번 읽어보세요.
◎ 손석희 > 네,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찻잎을 주셨는데요. 꽃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네요.
◎ 이해인 > 우리 수녀님들이 한 거라서 뜻 깊은 것 같아서 기도 좀 하시라고, 그 차 마시면서 기도 좀 하시라고 제가 갖고 왔어요.
◎ 손석희 > 고맙습니다. 저도 아무튼 받는 사람에 끼어서 기쁩니다.
◎ 이해인 > 네.
◎ 손석희 > 치료도 잘 받으셔야 되겠으나 이제 4년 동안 잘 견뎌 오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견디실 것 같습니다.
◎ 이해인 > 이제 두 번 만, 내년 1월하고 8월인가 7월에 해서 10번, 5년을 채우면 그래도 조금 안심할 수 있다, 이런데 재발하려면 5, 6년만에도 할 수 있는 거고
◎ 손석희 > 대개 5년 정도면
◎ 이해인 > 완치는 어렵더라도 암세포가 다른 데로 튀어서 전이되지 않는, 더 나빠지지 않으면 저는 그걸로 감사하기로 했어요. 완치라는 건 감히 바라지도 못하겠고 그냥 현상유지, 일상생활 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생각해요.
◎ 손석희 > 주변에 그런 기운도 많이 퍼뜨려주시고요.
◎ 이해인 > 네, 그래서 그 행사에도 가서 암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진, 보호자, 이렇게 세 부류를 다 이해할 수가 있는 거예요. 환자도 돼 보고 보호자의 보호도 받아보고 의료진의 진찰도 받아보니까 세 사람의 입장이 다 다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그래서 제가 이번에도 겸손한 마음과 사랑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죠.
◎ 손석희 > 잘 알겠습니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멀리서 이렇게 다른 일도 많으실 텐데 저희 <시선집중>에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여태까지 말씀드렸습니다만 저희들을 위해서라도 늘 건강해주시고 좋은 말씀을 또 늘 퍼뜨려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해인 > 덕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력할게요. 더 건강해지도록.
◎ 손석희 >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운 손님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 이해인 > 예, 감사합니다.
◎ 손석희 >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한 <토요일에 만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