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여정(브라티슬라바- 아이젠슈타트-멜크)-
-아이젠슈타트(Eisenstadt) 가는 길-
** 원자력을 지양하고 청정 에너지를 추구하는 오스트리아라서 인지 곳곳에 풍차가 많이 건설되었다.
오스트리아 뿐만이 아니고 앞서가는 나라에서는 청정에너지원 개발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다.
- 마을 초입에 남아있는 중세시대의 방어시설-
-아이젠슈타트(Eisenstdt) 중심가와 하이든 관련 시설 조감도-
**아이젠슈타트(Eisenstadt)는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Burgenland)주의 주도로 인구는 12,190명(2006년),
면적은 42,91 ㎢이다. 도시 이름은 독일어로 "철의 도시"라는 의미이며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을 지원한 헝가리의 귀족 가문인
에스터하치(Esterhazy)家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위의 요도에 표시된
갈보리 언덕 교회(Kalvarienberg Kirche), 에스터하치 성, 대성당은
아래에 소개가 된다.
-성 마틴 대성당(Dom St. Martin)-
** 13 세기에 건립된 주교좌 성당이다.
-성당 내부-
- 작은 파이프 오르간-
**대성당(Cathedral)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하고 단조로운 장식의 성당이다.
이 성당이 조셉 하이든이 안치된 성당으로 알고 찾아 갔으나 헛짚은 것이었다.
-에스터하치 城(Schloss Esterhazy)-
**에스터하치 백작(Count Esterhazy)이 바로크 양식으로 세운(1364) 성으로 그 후 고전주의 양식으로
복원하였고(1663-1672) 현재는 매년 9월 초부터 중순까지 오케스트라, 오페라 공연 등 문화행사가 열린다.
-에스터하치 로路(Esterhazy strasse)를 따라 하이든을 찾아 가는 길-
** 에스터 성으로부터 서쪽으로 이어진 도로는 에스터하치 路이다 앞에 보이는 첨탑에 겹십자가가
달려있는 흰색의 건물은 위의 요도에는 구빈(求貧)교회(Spitalskirche)로 표시되어 있다.
-자비의 형제 병원 과 약국(Krankenhaus u. Apotheke der Barmhezigen Brűder)-
** 구빈교회의 부속건물 벽 중앙에는 도움이 필요한 자를 부축하는 수도사의 부조가 있고
그 밑에 병원 이름이 있다.
-갈보리 언덕 광장(Kalvarienberg Platz)-
**갈보리 언덕 광장(Kalvarienberg Platz)은 오른편에 에스터하치路(Esterhazy strasse)와
왼편 교회길(Kirchen Gasse)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삼각형의 광장이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4각형 기단 위에 원주를 세우고 그 위에 성 모자(聖 母子) 상을 올렸으며 중간에는 테라스를
만들고 그 위에 고통받는 두 인물상을 올려놓은 특이한 양식의 탑이 서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원추형의 건물이 갈보리 언덕 교회((Kalvarienberg Kirche)이다. 이 곳은 언덕이라 부를 만큼
실제로 시가지 중심보다 지대가 상당히 높아 시가지와 저지대가 내려다 보인다
-테라스 위의 인물상-
-갈보리 언덕 교회 전경-
**갈보리 언덕 교회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교외의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은것을 기념하는 교회이다. 예루살렘 교외의 처형장인 골고타(Golgotha=히브리어)는
해골이라는 의미이고 라틴어로는 칼바리(갈보리=Calvary)로 예루살렘의 사형장을 해골로 불렀다.
-갈보리 언덕 교회 내부(입구)-
** 이 교회는 18세기 초 폴 에스터하치 공자(Prince Paul Esterhazy) 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건축양식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특이하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이며 천정은 돔(Dome)형태로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교회 내부 전면-
-제 대-
-돔 천정과 벽화-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의 묘-
**교회안으로 들어서면 왼편 복도 끝에 영묘 입구가 철문으로 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하이든은 100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고
70여 곡의 현악 4중주 등을 작곡하며 고전 기악곡의 전형을 만든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하이든의 석관-
** 고전주의 시대를 이끈 하이든은 40년 넘게 에스터하치 백작의 카펠 마이스터(궁정 지휘자)로
일했으며 1809년 77세로 비엔나의 그의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타계 후 10년이 지난 1820년
에스터하치 2세가 그의 가족 묘지로 하이든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하이든의 두개골이
도난 당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1932년 하이든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하이든의 유해는
갈보리 언덕 교회에 안치되었고 하이든의 두개골은 타계한지 154년 만에 돌아와 합장되었다.
유럽에서는 천재들의 두개골을 가지고 있으면 자손들의 머리가 천재처럼 된다는 속설이
있어 천재들의 시신은 매장 후에도 두개골을 도난 당하는 일이 있었다(필자 주)
-갈보리 언덕으로 가는길-
**갈보리 언덕 교회는 건물이 2중 구조로 되어있고 내벽과 외벽 사이는 통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 공간은 갈보리 언덕으로 가는길을 타임캡슐 같이 2000년 전, 예수수난을 재현해 놓았다.
죄인들의 처형장 주변 지형을 닮은 카키색의 거친 자연석으로 꾸며놓아 비극적 분위기를 더해 준다.
-제 1 처處(1.Station)-
** 가톨릭 교회의 기도 중에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서 사망할 때까지의 과정을 14개 시제(時制)로 설정하여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 갈보리 언덕교회에는교회에서 정한 14개처處(14 Station)와 상관없이 24개처處(24 Station)로
재현 해 놓았다. 이 사진은 제 1처(1 Station)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제대를 설치하고 그 뒤에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예수가 체포되기 전 기도하던 동굴인 이 1처의 예를 들면 "제 1처, 예수가 감람산에서
죽음의 공포속에서 기도하다 ( 1 Station, Jesus betet in Todesangst auf dem Őlberg)"등으로
설명이 붙어 있다(사진 右下).
-제 5처, 예수 헤로데(Herodes)앞에 끌려 나옴-
-제 6처, 예수 옷 벗김을 당함-
-제8처, 예수에게 면류관(가시관)을 씌움-
-제 10 처, 예수 빌라도(Pilatus)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음-
** 이 장면에 보이는 크고 작으며 다양한 모양의 자연석으로 돌붙임한 돔 천정이 얼마나 세심하고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유추할 수가 있다. 단일 크기의 재료를 평면에 붙이는 모자이크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며 바르셀로나의 구엘(Guell)공원의 자연석 작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제 12처, 베로니카(Veronika)가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음-
-제 13 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감-
- 성모 마리아-
**십자가의 길에서 우리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단의 고통과 비통함이 연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착한 사람이 무고로 사형 선고를 받고, 가시관을 쓰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을 만난 그 어머니의 심정,
형장으로 가면서 슬퍼하는 여인들을 위로하는 죄수, 기력이 다하여 세번이나 엎어지자 제자가 대신
지고가는 십자가, 죽을 죄인의 얼굴을 닦아주는 여인 베로니카, 십자가에 매달려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는 아들, 죽은 후에도 창에 찔려 두 번 죽는 예수, 이 모든 장면은 비 할 데 없는 극적인 연출이다.
-제 15처,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힘-
** 출구 가까이에 있는 조형물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다.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돔 지붕 위로 올라가는 계단-
-돔 지붕 전망대에서 촬영하는 여행팀 멤버-
-돔 지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갈보리 언덕 광장-
** 구빈교회 첨탑이 도로 끝에 보이고 시내 중심가는 언덕 아래여서 보이지 않는다.
- 교회 남쪽 저지대 풍경-
** 노란 풍향기가 달려있는 작은 첨탑은 이 교회의 작은 종탑이다.
멜크(Melk)
멜크는 오스트리아 남부 주州(Lower Austria)의 도시로 면적 25.71 평방 km에 인구 5,257명(2012년)으로
바카우(Wachau) 계곡과 다뉴브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베네딕또 수도회의 멜크 수도원(Melk Abbey)이다.
-멜크(Melk) 시가지 파노라마(2 컷)-
** 멜크 수도원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다.
-멜크 수도원 전경 조감도-
**표고 213 m 의 노두(露頭)위에 건설된 멜크 수도원은 다뉴브 강과 바카우 계곡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원에는 스토커라우의 성 콜로만(St. Coloman of Stockerau)의 묘가
안치되어 있고 오스트리아 최초의 왕조인 바벤베르크(Babenberg) 가家의 몇몇 인물도 묻혀있다.
--멜크 수도원(Melk Abbey) 과 주변 시가지(자료)-
-요새의 정문-
** 수도원의 위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방어시설이 보강되어 위의 요도에서 보면 정문은
완강한 옹성(4번)이 구축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높다란 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입구 아취 위에는 1718년(ANNO MDCCXVIII) 연도 글씨가 새겨져 있다.
-수도원 첫째 입구-
** 수도원 정문으로 아취 양 옆에는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앞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와 같이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오른편에 높다란 흰색의 감시탑이 보인다.
-정면에서 본 아취-
**아취 왼편에는 사도 베드로, 오른 편에는 사도 바오로의 상이 세워저 있다.
-성직자의 궁정(Prelate's Courtyard)-
** 정방형의 궁정(宮庭) 한 가운데에 분수가 있다. 정면에 보이는 문 중 왼편 문이 방문객이
수도원 성당이나 수도원 관람을 위해 출입할 수 있는 문이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은 전시실,
박물관,수도원 교회, 도서관 등 일부분이다.
-18세기 건물에 현대의 추상화(?)-
** 건물의 중간, 지붕의 처마 위에는 박공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레코-로만 양식으로는
대개 조각으로 채워져 있는데 멜크 수도원에는 현대화 풍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도원이 설립된것은 1089년 오스트리아의 후작 레오폴드 2세(Leopold II)가
그의 성채 하나를 베네딕또 수도회에 기증 함으로서 이루어졌다.
현재의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은 1702~1736년 어간에 건설되었다.
-전시실로 가는 현관에 세워져 있는 조각-
-전시실 천정 프레스코 벽화-
-9 만 여권의 장서와 많은 고서를 소장한 도서관(자료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자료사진으로 대신함(구굴).
- 수도원 성당(16번)-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양쪽 돔 중앙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붙들고 있다.
그 밑 원형 창문 양쪽으로 왼쪽에는 열쇠를 든 베드로, 오른 쪽에는 바오로 사도가 검(劍)을 짚고 서 있다.
-수도원 성당 앞 발코니(15번)-
-바로크 정원 정자-
** 요도에서 1시 방향(21번)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크 정원 정자 전경-
-정자 내부 천정-
-정자 내부 프레스코 벽화-
-정원 산책로-
-수도원 북쪽 강건너 마을-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 계단은 한 갈래로 내려오다가 가운데에 섬에서 양쪽으로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마지막에는 세 갈래의 계단이 된다.
-수도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공동묘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