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심진희 집사 ▶시편찬송 시편74편 다같이 ▶경 독 시편74편 고린도전서9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예배부름과 송영 시편136편 * 사도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10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 시편찬송 시편57편 헌 상 심진희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요일2:12-17⑧ 요한일서 강해(30) 주의만찬 출16:4-9 다함께 * 찬 송 찬송가 481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 오후 교리공부: “성경과 교리”(56) 교리와 함께 읽는 야고보서 본문연구 |
제2부 인간의 구원 제9주일 하나님 아버지에 관하여 제27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 섭리란 하나님께서 항상 지니고 계신 전능하신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꽃잎과 풀잎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번영과 궁핍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애로운 손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성찬본문/ 출16:4-9
▶『 (출16:4-9)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나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 지니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아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아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리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아꼐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아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으니라. 』
▣설교본문/ 요일2:12-17⑦
『 (요일2:12-17)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난 시간에 요한일서의 중심주제가 ‘사랑’이라는 점은 상기시켜드렸습니다. 요한에게 사랑은 ‘사랑이신 하나님’(요일4:16)하나님에게서 파생된 윤리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신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성부 하나님의 신적 사랑에 대한 지식과 신뢰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에 관한 개념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진위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이노니아(koinwniva)와 코스모스(kovsmo")
요한은 그의 회중들에게 성숙을 독려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신앙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을 각각 그 신앙의 다층적 성숙의 상태를 보이는 ‘아이들’(믿음), ‘아비들’(소망), 그리고 ‘청년들’(사랑)으로 대비시킵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설명은 곧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요일2:13)......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2:14)......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
▶요한이 묘사하는 ‘사랑’은 배타적이고 유일한 신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요한이 가르치는 사랑은 분리와 저항과 반대와 거절의 이미지로 가득합니다.2) 사도 요한은 청년들에게 악한 자와의 타협 없는 싸움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설레는 소풍 같은 느낌이 아닙니다. 차라리 어떤 가수의 노래처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가득한 ‘전쟁 같은 사랑’인 것입니다.
▶요한이 그의 회중을 향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했을 때 그는 ‘독생자를 주신 사랑’(요3:16)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유일한 아드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그야말로 ‘거칠고 불안한 전쟁같은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시고 그 승리의 노획물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죄와 칭의와 성화와 영원한 구원의 기업에 관한 모든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화도상에 있는 신자(청년들,neanivsko")에게 편안하고 즐겁고 안정감 있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청년들을 묘사하면서 전쟁이미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3)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려함에는 누구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 지를 아는 이른바 아군과 적군(彼我)을 구분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요한은 먼저 세상에 대해 조명합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모든 사랑은 ‘연합과 사귐’(코이노니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우리자신과 연합해있고, 그리고 그와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사귐’이 있는 관계입니다. 참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며, 쇠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참되고 영원한 사랑에는 항구적인 ‘연합’과 ‘사귐’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신적인 것이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는 어디서도 참되고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참된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배타적인 사랑의 대상인 ‘교회와의 연합’(에클레시아)와 그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코이노니아)(고전1:9)이라고 설명합니다. 참된 믿음, 그리고 참된 교회의 지체로 존재하는 일 외에는 이 세상 어디서도 이런 ‘신적사랑’(언약적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가르치는 사랑에 관한 교훈은 ‘명령’과 ‘금령’으로 구성됩니다. 요한은 앞에서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따라 형제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요일2:7-11) 그리고 지금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금령을 주고 있습니다.(요일2:15-17) 이 두 명령 사이에 성장과정에 있는 신자의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요일2:12-14)
앞에서 언급한 아이들은 죄로 인해 부패한 ‘자기성’(죄성과 죄인됨)에 대해 눈을 뜬 신자들이라면 청년들은 마귀의 지배와 질서 안에 있는 반역적 ‘세상성’에 눈을 뜬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중생한 신자의 탯줄을 끊고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더 나아가 세상과 그 배후인 마귀와 맞서 싸우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코이노니아)를 깨뜨리고 붕괴시키려는 거대한 음모가 세력화 된 곳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청년들에 대한 교훈에 이어 곧바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15-17)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이 싸움의 종국은 절대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요한이 청년들에게 ‘악한 자를 이기었다’고 완료형으로 쓰고 있는 이유는 이 싸움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기초해 있기에 결코 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럴지라도 신자의 현실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싸움은 투쟁과 저항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싸움은 모든 죄의 종식을 알리는 ‘죽음’의 문을 넘을 때에야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수들이 완전하게 패망하고 승리한 신자들의 발 앞에 엎드리게 되는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재림하시는 날, 그분의 발등상위에 놓이게 되는 날이 될 것(히1:13)입니다.
▶청년들은 사랑하라는 계명을 따르는 자들로(요일2:7-11) 사랑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질서들을 저항하는 전장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사랑하기 위해 참으로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참된 연대와 사귐(코이노니아)을 파괴하는 원수들을 향한 적개심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로 연대한 교회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신기루 세상, 애굽을 동경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하는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세워져 있을까요?
사도가 경계하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악의 삼위일체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요한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진단합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실제하지 않는 허상의 욕망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던 광야를 보십시오. 그곳은 그가 통치하는 세상의 속살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광야는 혼돈과 공허가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그곳에는 원천적으로 생명이 없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 사단은 그리스도를 교묘히 속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하고(경제적 기만), 성전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라고 시험합니다(종교적 기만). 세상의 신기루 같은 영광을 보여주고 경배하라고 유혹합니다(정치적 기만).
광야에서 이 멋진 세상을 그려내는 사단의 기만술을 보십시오. 바람과 모래와 타는 목마름과 허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는 멋진 세상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신기루 같은 세상의 모습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과실을 보면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이라는 마귀가 제안하는 ‘가능성의 신학’, 곧 ‘신기루 신학’에 설득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을 기망하는 이 천하만국의 영광의 모습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한 저 출애굽 1세대들이 본 신기루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대한 악평을 늘어놓으며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대한 악의적인 상상력으로 불행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빠져나온 애굽의 기억은 과대망상적으로 과장되었고, 왜곡되었으며 심지어 미화되었습니다.
▶(민11:0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애굽은 그들을 학대했고 미워했으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애굽적 삶의 방식을 동경했고 사랑했습니다. 한순간도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없었어도 그들이 애굽을 향한 집착과 사랑은 400여년 동안 길들여진 것이었던 것입니다. ☞기혼자들이 현재의 결혼생활에 불만족하거나 권태감을 느낄때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답니다. 그리고 그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완벽하고 무결한 경험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됩니다. 기억의 창고안에 아름답게 포장해서 담아두는 것입니다. 이런 기억의 왜곡은 결혼생활에 대한 권태감이나 실망감이 주는 일종의 백일몽(白日夢)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애굽 400년의 기억은 그렇게 왜곡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삶에 대한 탐욕적 욕망이 주는 결핍과 실망감은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언약공동체(교회)와 언약 안에서의 사귐들(은혜의 수단들)에 대한 싫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의 회중을 일깨웁니다.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뿐입니다. 세상은 오직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부패한 본성으로 말미암는 욕망(ejpiqumiva, 동경/금지된 것을 향한)이 좇아가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 세상이라는 신기루는 ‘모든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담배로 망친 건강, 홍삼으로 회복하자!”
이 모순된 구호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담배인상공사 사옥에 붙은 표어라고 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모순이지만, 이 세상은 놀랍게도 이런 질서 안에서 욕망하고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달콤한 죄를 주고, 죄가 가져다 줄 비참한 삶과 죽음의 종국을 피할 다양한 구원의 길들을 제공합니다. 술과 마약, 쾌락과 같은 말초적인 수단으로부터, 돈, 권력, 명예와 같은 지속가능해 보이는 수단들을, 나아가 종교나 철학과 같은 항구적인 구원의 수단들까지 말입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이 세상을 허영의 도시로, 세상성을 ‘허영의 시장’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을 지나는 ‘크리스천과 신실’에게 허영의 시장의 상인들이 묻습니다. ‘그대들은 무엇을 찾습니까?’ 크리스천은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고 싶습니다.”(잠23:23) 상인들은 분노합니다. 왜냐하면 이 허영의 시장에 없는 유일한 것을 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진리는 이 세상의 허상성을 고발하고, 찰라 같고, 잠시 후 없어질 안개 같은 삶을 드러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와 정욕이라는 구매욕이 있어서 이 허영의 시장의 물건들이 잘 팔렸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는 죄인으로 하여금 죄와 정욕을 정죄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달려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골고다 언덕에서 열린 영원한 소망의 문을 봅니다.(호2:15) 그리고 세상을 떠날 별세(출애굽)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백성을 잃는 것을 분노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여행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 신기루 같은 세상을 본 후로는 더 이상 세상에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까페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나훈아씨의 ‘테스형’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무 생각없이 듣다가 후렴구 때문에 이 노래를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사도요한의 가르침과 중첩되어 들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이 노래는 평생을 세상의 영광과 인기를 구가하며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던 노(老)가수가 그의 인생의 말년에 깨달아버린 신기루 같은 세상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모든 젊은이들에게 고하는 회고록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이 와서 고맙다만 또 오고야말 내일이 두려운 세상, 제비꽃도 들국화도 예쁘게 피어나지만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인생의 진실을 잊고 살았던 나를 꾸짖습니다. 저 세상을 모르겠고, 천국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누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에 부르짖습니다. ‘테스형!’, ‘테스형!’
▶여러분, 이 고뇌에 빠진 가인은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답을 알고 있는 여러분은 그 같은 고뇌를 경험해 본적 있습니까? 이 모순과 왜곡과 기만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해 많이 고민해본 적 있습니까? 그리고 삶, 인생, 가치들, 영원한 것에 대한 참된 동경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습니까?
▶소크라테스 같은 현인들 중 아무도 이 진실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老) 사도요한은 그의 회중들에게 이 세상에 속한 삶과 인생에 관하여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으며, 세상에 속한 어떤 것들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우리를 영원하게 살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과 사귐을 계속하는 삶은 세상과 함께 망할 것이고 영원한 파국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시몬에게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지어다!”(행08:20)라고 저주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다 지나가는 나그네(pavroikoi,파로이코이)들입니다. 우리의 손때 뭍은 물건들도 다 한시적이고, 찰라적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마음을 주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면 이 세상이 소멸될 때 우리들의 삶의 의미도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향해 이 땅에 속한 것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헛된 욕망과 희망을 거절합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들을 위해서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거두기 위해 썩지 않을 것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은 변화산 정상에서 홀연히 변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가져올 영원한 나라를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마17:1-8) 어리석게 초막을 짓고 그 나라의 지상적 성취를 상상했지만, 그러나 그들이 본 영광은 이 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변화산위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홀연히 변하신 그리스도와 논의했던 것은 예루살렘에서 ‘별세’(탈출,출애굽)하실 것에 관한 것(눅9:31)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예루살렘으로 대변되는 이 세상은 신자가 탈출(별세)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애절한 권고를 합니다.
▶(벧전0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고후0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약0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골03:0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군입대를 앞두고 시영이가 주변정리를 했습니다. 아끼던 스쿠터도 팔고, 아이패드도 팝니다. 고작 2년도 안 되는 시간을 떠나있지만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정리합니다. 머리를 밀고, 입대일을 기다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작 20개월 군 생활을 하는데도 가족과 친구들과 손때 뭍은 물건들과 이별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성에 관하여 유일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사도는 우리들에게 다시 이 진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청년들로 묘사되는 성장하는 신자들은 전투하는 신자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던 것처럼(출12:41) 지상에 구원받은 모든 신자는 여와의 군대입니다. 군대는 필멸의 주적을 대항하여 죽이고 멸하는 연습을 하는 합법적 폭력집단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을 군인이라고 하고 교회를 여호와의 전쟁을 위한 소집된 군대라고 묘사할 수 있다면 사도의 명령은 훨씬 무게 있게 들릴 것입니다.
“세상을 결코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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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절과 14절은 모두 ‘완료형’이다. 13절의 완료형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가져다 준 객관적 승리와 관련되며, 14절의 완료형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가져온 실제적인 영향력과 관련된다. 청년신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그들이 ‘강한 자’가 되었다. 사단은 신자의 머리털 하나도 임의로 상하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가짐으로 영적․도덕적 분별력은 가지고 악한 자에 대한 승리를 체화하는 신앙의 실제적 진전을 경험한다. 요한은 성화와 성숙의 여정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
2) ‘믿음’이 구원과 심판이라는 대조적 반응을 일으키고, ‘소망’도 영생과 영벌이라는 두 운명을 예고하듯 ‘사랑’도 사랑과 미움의 대상을 날카롭게 구분한다.
3) ‘청년들’이라는 호칭자체가 ‘징집연령에 속한 세대’를 염두하고 있고(시110:3참조), ‘악한 자를 이긴다’는 표현도 역시 전쟁이미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안에 거하시며’라는 표현 역사 유일한 공격무기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을 떠올리게 한다.
▣말씀의 반추를 위한 생각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75편
1.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지한 믿음으로 당신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항상 임재하시기 때문임, 또한 그들에게 탁월한 은사들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임재를 명백히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감사드리는 까닭은 황송하게도 당신이 우리 무리로부터 교회를 불러 당신에게로 모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당신이 다스리시고 당신의 권능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하므로, 당신이 거기에서 불 경건을 쳐부수길 뿐만 아니라 순결과 경건을 떠받쳐 주시기를 우리는 절박하게 간구합니다. 세상 혹은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지상적인 일들이 신속히 녹아 없어지길 기원합니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당신의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강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선택된 의인들이 강력한 기둥들처럼 강해지게 하시고, 지상적이며 당신의 이름과 교훈에 거슬러 싸우는 자들은 구부러지고 붕괴하게 하옵소서. 선하신 아버지여, 어리석은 자들이 그들의 어리석음을 적절한 때에 중단하도록, 그리고 불의한 자들이 당신의 거룩한 교회와 경건에 반대하기 위하여 끌어들인 세력들을 남용하는 짓을 결국 그치도록, 당신이 특별히 살펴보아 주시도록 우리가 엎드려 간청합니다. 그들의 거친 장광설, 격노한 모욕들, 반역적인 신성모독들이 그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여기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바에 관심을 기울이지 마옵소서. 우리의 죄악은 심각하여, 우리가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긍휼로써 그것을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그 죄악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진노의 쓴 잔을 다 마실 수 밖에 없습니다. 불의를 찾아다니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그 마지막 한 방울 까지 말끔히 다 마시게 하셔서 교회로 하여금 당신의 심판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의 뿔이 부러지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정의와 경건에 헌신한 사람들이 어떻게 올곧고 안전하게 서는지 볼때, 당신께 진지한 찬양을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