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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 전으로 추정되는 이 흑백사진 속 예쁜 소녀는 지금은 잊혀진 존재일지도 모르겠지만 과거 전세계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여인으로 성장합니다
좀 더 성장한 모습은 이런데 고전영화팬들은 누군지 이제 감이 오실 겁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수, 해밀턴 부인,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안나 카레리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감동을 선사했던 비비안 리가 바로 그 주인공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하게 살았으며 쓸쓸하고 불운한 말년을 보내다 바람처럼 사라져간 존재
며칠 전인 5일은 바로 이 비비안의 탄생 100주기가 되는 날
그래서 비비안의 자료를 올려봤습니다
비비안은 1913년 11월 5일 인도 다질링에서 태어난다
본명은 비비안 메리 하틀리
런던 증권가 거물급 인사였던 프랑스계 영국인 부친과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어머니(저 맨 위 사진에서 아기 비비안을 안고 있는 부인이 바로 비비안 모친) 사이에서 외동딸인 비비안이 태어나는데 영국 국적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난 이유는 당시 비비안 부모가 인도 별장에 휴양을 취하러 갔다가 거기서 출산했기 때문이며 이 곳에서 비비안은 5살 때까지 유년시절을 보낸다
워낙 재력가인데다 외동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부친 그늘에서 자란 탓에 비비안은 어릴 때부터 콧대가 세었으며 유별나게 빼어난 미모로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아버지 덕에 견문과 예술감각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그 이유를 비비안 생전 인터뷰에서 추측할 수 있다
<`내 아버지는 정말 멋지고 존경스러운 분이셨어요
딸인 나를 위해 유년시절부터 절 데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을 다니며 무용과 악기연주 등을 익히게 해주었죠
그래서 그 때 수많은 세상에 눈을 뜨게 됐을만큼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에요`>
이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이 시기가 무려 100년 전인 20세기 초반이라는 사실
비행기가 대중화 되기 전이라 배를 타고 해외로 이동하던 시절에 여행이나 유람 목적으로 유럽 각지를 다니고 자녀 해외원정과외를 시켰다는 건 비비안 가족이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부유한 생활을 했다는 반증
그렇게 공주처럼 살던 비비안은 소녀 시절 연극에 매료돼 영국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 연기수업을 받고 이 때 변호사인 첫남편 `허버트 리 홀만`을 만나게 된다
비비안보다 12살이나 연상이었던 그는 이미 악혼녀가 있는 처지였지만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은 전부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비비안은 결국 그 약혼녀를 밀어내고 그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윗 사진들이 결혼 당시 비비안과 허버트의 모습이며 결혼식은 비비안이 19세가 되던 1932년 연말
그렇게 해서 비비안은 우리기 흔히 알고 있는 `비비안 리`라는 이름을 이 때 결혼으로 얻게 되며 이 이름은 그녀의 일생과 사후까지 쫓아다닌다
그리고 결혼 1년만인 1933년 딸인 수잔이 태어나는데 이 수잔은 비비안이 생전 낳은 유일한 자식이 된다
마지막 사진이 아기 때 수잔을 안고 있는 20대 초반 젊은 엄마 시절 비비안
이건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닌데 비비안은 보그지 발행 초창기 시절 모델을 한 적이 있으며 이게 바로 그 때 모습
패션지의 대명사 보그는 역사가 아주 오래 되었는데 비비안은 결혼생활 초기이자 막 연극배우로 출발하던 시절 보그지 모델을 하기도 했음
그렇게 유부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비비안은 연기에 심취해 각종 연극을 하게 되고 그 중 두번째 연극 출연작 미덕의 가면에서 절세미녀 역할로 연극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한다
바로 위는 그 시절 출연한 연극 한여름밤의 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영국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운명적 만남을 가지게 된다
첫눈에 서로에게 빠진 두 사람은 이미 각자 가정이 있었지만 점점 더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1936년 영화 무적함대(윗 사진)를 통해 첫연기 호흡을 맞추게 된다
이 당시 비비안에 대해 로렌스는 훗날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놀라운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닌 여인`이라고 회고함
그렇게 아슬아슬한 인연을 이어가던 중 로렌스가 헐리우드 영화 폭풍의 언덕에 캐스팅 되면서 비비안의 인생에도 대전환점이 찾아오게 된다
그 무렵 헐리우드에서는 마거릿 미첼 원작의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기획 중이였고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을 대대적으로 공개모집했지만 딱히 적임자를 찾지 못 해 애를 먹다 결국 배우가 없는 상태에서 배우 얼굴이 나오지 않는 대형장면 위주 촬영에 돌입하게 된다
이 때 바람과... 를 책으로 읽으며 작품과 스칼렛 역에 매료된 비비안은 로렌스를 따라 도미하는데 이 미국행에는 연인 로렌스를 따라가려는 목적도 물론 있었지만 스칼렛 역 오디션에 도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야심만만한 비비안은 스칼렛 이미지에 걸맞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제작진을 찾아갔고 결국 선발돼 엄청난 인생역전을 하게 된 것
출세작이 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당시
이 영화는 당시 사상최고의 흥행기록수립 그리고 아카데미 석권과 함께 역사에 길이 회자될 무수한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그 중 내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몇 가지
1. 비비안이 된 이유는 미모도 한 몫 했다
당시 제작진은 미국 전역의 여배우 지망생들 외에도 찰리 채플린의 부인으로도 유명했던 존 베리 등 기성여배우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각종 테스트를 했지만 결정을 못 한 이유가 이들의 비주얼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
그러다 비비안으로 낙찰한 이유는 재능과 가능성도 있었지만 미모가 도전자들 중 유별나게 뛰어났기 때문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헐리우드가 미국의 자존심을 걸고 제작하는 초대작이고 이 영화가 오래도록 사랑 받으려면 여주인공 스칼렛의 미모가 빼어나야 한다는 계산을 했다` 이런 후문이 있음
바람과... 원작을 책으로 보면 알겠지만 내용 도입부 설명에 `스칼렛은 미인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사로잡는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녔다` 이런 식으로 미모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묘사됨
하지만 제작진측은 원작대로 평범한 외모의 여배우를 기용하면 작품이 성공하지 못 할거란 계산을 하고 비비안을 선택해 세기의 힛트를 기록한 것이니 이들의 선견지명과 판단력은 역시 흥행업자들답게 센스가 있었던 셈
2. 비비안의 대찬 주장이 통했다
비비안이 처음 스칼렛 역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사진과 이력 자료를 국제우편으로 제작진 측에 전송하자(윗 사진이 바로 당시 비비안이 바람과... 제작진 측에 보낸 스크린테스트용 프로필샷)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고 함
`스칼렛은 미국의 상징적인 여성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미국 출신 여배우여야 한다`고 못을 박으며 일명 `뺀찌`를 먹임
아무래도 그들로서는 비주얼과 연기력이 뛰어나다해도 인도 태생 영국 여성을 그것도 그 때까지 미국에 와 본 적도 없는 여인을 `아메리칸 걸`의 상징인 스칼렛 오하라로 변신시키는 건 무리였다고 판단한 모양
하지만 천하의 비비안답게 자신이 역을 맡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남북전쟁 당시는 지금의 미국처럼(1930년대 후반 미국) 해외이민자들의 후손보다는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들이 더 많은 시절이다
즉 그 시절 스칼렛 정도의 나이대들은 부모 세대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들의 2세가 아닌 유년시절 부모 따라 이주해온 그래서 아직은 본국에 대한 정취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니 굳이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말 일리가 있긴 함
남북전쟁 당시 미국은 본격적인 이주의 역사가 절정이던 시점이라 지금의 미국처럼 부모나 조상세대부터 미국인으로 산 게 아닌 가족들과 함께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등 각지에서 미국으로 막 넘어온 이들이 홍수를 이루던 시절
어쨌건 비비안은 이런 주장을 펼쳐 결국 제작진이 긍정적 검토를 하게 됨
3.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했던 사생활
비비안은 스칼렛 역 발탁 당시 이미 딸을 둔 유부녀였고 로렌스와 동거 중이었다
하지만 제작사 측은 그런 점이 역할에 도움 안 될거란 판단하에 비비안의 기혼사실과 혼외관계를 영화홍보기간 내내 철저히 비밀에 붙였고 대신 `극 중 스칼렛처럼 아일랜드와 프랑스 혈통의 여배우로 인도에서 성장했으며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넘나들며 교육 받았다`는 점만을 강조함
사실 저 전략은 맞아 떨어졌고 적어도 저 혈통과 성장과정만큼은 한 치도 어김없는 사실이니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직후 감격해하는 모습, 두번째 사진의 남자는 제작자 데이비드 오 셀즈닉이고 세번째 사진에서 비비안 우측은 극 중 멜라니 역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셀즈닉은 비비안을 처음 보았던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비비안을 처음 본 날은 1938년 12월, 그 날은 바람과...의 하이라이트씬인 아틀란타 대형화재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 킹콩을 제작했던 셋트장을 활용해 찍는데 정작 여주인공인 스칼렛이 없어서 대역배우가 원거리샷으로 마차를 타고 불타오르는 아틀란타를 탈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 때까지 무려 2년 반의 기간과 5만 5천 달러를 소비하며 1천여명 이상의 지원자들을 테스트해 여주인공 물색에 전력투구 했지만 `18인치 허리에 여왕과도 같은 기품과 정열이 느껴지는 푸른 눈동자를 지닌 절세미인`은 결국 내 눈에 띄지 않았고 더는 제작을 미룰 수 없어서 일단 군중씬 대형신 위주로 촬영에 돌입했다
그러는 와중에 동생 마이론이 어떤 여성을 동행하고 내게로 다가왔다
동생의 첫마디는 `형, 스칼렛 오하라를 데려왔어요` 그래서 그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짙은 갈색머리가 촬영장 대형송풍기 바람으로 인해 흩날리고 있었고 그 머리카락 밑으로 유난히 새하얀 피부와 정열적인 푸른 눈동자, 신비하면서 개구진듯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특이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대단한 미인이라고 느꼈고 그 때 이미 스칼렛으로 정해진 게 아닐까 싶다`>
극 중 멜라니 역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스칼렛 오하라 역 비비안 리의 다정한 포즈, 극 중에서는 둘이 앙숙지간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코드가 잘 맞아 촬영 내내 단짝으로 지냈다고 한다
서로 나이대도 비슷하고 아시아 태생 영국 여배우라는 점도 그렇고(비비안은 인도 태생 영국인, 올리비아는 국적은 영국이지만 일본에서 업무를 보던 부모를 둔 덕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성장한 영국인) 죽이 참 잘 맞았던 모양
왼 쪽부터 비비안 리, 클락 게이블. 마거릿 미첼(바람과... 원작자). 데이비드 오 셀즈닉(제작자),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이렇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역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종료 직후 출연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 역은 로렌스고 줄리엣은 당연히 비비안
영화는 말 할 것도 없이 공전의 힛트를 기록했고 이후 이 연극 역시 연극으로서는 스칼렛 오하라 역 못지 않은 초유의 대성공을 기록
그 시절만 해도 연극에서 줄리엣 역은 40대 이상 중년여배우가 주로 맡았었는데 당시 26세의 비비안이 역대 최연소 줄리엣을 맡아 열연을 펼쳐 엄청난 호평과 관객동원에 성공함
셀 수 없이 수많은 여배우가 줄리엣을 맡아왔지만 영화 속 줄리엣의 영원한 대명사가 올리비아 핫세이듯이 연극 버전 줄리엣의 대명사는 이 비비안이라고 보면 됨
바람과... 이후 비비안에게 이런 질문이 연신 쫓아다녔다고 한다
<`스칼렛 오하라 이후 차기작으로 어떤 영화를 선택할 것인가?`>
그 해답이 바로 지금도 멜러영화의 영원한 대명사이자 고전걸작으로 손꼽히는 바로 저 작품 애수
여기서 비비안은 비운의 발레리나 마이러 역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향수를 선사했고 이 영화 속 배경음악 `올드랭사인`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음
이 영화는 비비안의 존재를 국내팬들에게 최초로 알린 작품으로도 기록된다
바람과...가 먼저 제작 되었지만 바람과...는 정확히 1955년 당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충무로 소재 스카라 극장에서 국내최초 상영되었고 이 애수는 그보다 3년 전인 52년 한국의 비극사 6.25 발발 기간에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최초상영
즉 국내개봉순서가 뒤바뀐 셈인데 이 때 한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피난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있는 부산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피난길에 헤어진 가족이나 친지들 생각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쏟았고 극 중 비비안과 남자주인공 로버트 테일러의 비극적인 이별을 지켜보며 깊은 공감을 얻었다고 기록됨
그리고 비비안의 존재를 국내팬들에게 처음으로 확실히 각인시키기도
전쟁으로 인한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묘사한 희대의 명작 애수에는 조금 아이러니한 후문이 있으니 당시 비비안은 남자주인공을 연인 로렌스가 맡길 원했지만 불발돼 로버트가 되었고 그래서 다정한 커플이었던 영화 속 두 사람 모습과는 달리 촬영장에서 로버트를 괜히 미워했다고 함
이유는 단 하나, 로렌스가 아니어서
이 때 비비안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사랑을 쟁취했다
남편이었던 허버트와 이 때 정식으로 이혼했고 로렌스도 부인과 이혼해 각각 돌싱이 된 이들은 곧바로 결혼식을 올려 드디어 정식부부가 된 것
하지만 세간의 이목을 염려해 둘은 스타배우 특유의 호화결혼식 대신 결혼증인 2명만 초청해 언약식 정도의 아주 조촐한 예식을 치룸
그리고 때마침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함으로써 비비안은 생애 최고의 행복을 연달아 맛 보게 된다
정식부부가 된 직후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영화 해밀턴 부인
18세기 말 실존했던 영국의 절세미인 엠마 해밀턴과 전쟁영웅 넬슨 제독(당연히 로렌스가 맡음)의 불꽃같은 러브스토리 실화를 영상화한 1941년작 영국영화로 비비안으로서는 애수의 차기출연영화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극 중 타이틀롤 엠마 역 비비안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스칼렛을 능가했을 정도로 눈부셨고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국영화`라고 극찬한 작품이기도 함
비비안이 32세 되던 45년 출연한 영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 하면 흔히 리즈 테일러를 연상하지만 이 영화가 먼저이며 이 때 당시 비비안에 대해 비비안 주변인들은 `클레오파트라 출연 당시 비비안이 생애 가장 아름다워 보였으며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음
하지만 이 때부터 비비안의 불행이 싹트기 시작
원래부터 성격이 급하고 예민하고 불 같았던데다 허약체질이었던 비비안은 로렌스의 아이를 가지길 원했지만 이 때 번번히 유산을 함
그런 탓인지 이 영화 출연 무렵부터 촬영장에서 자주 히스테리를 부려 스텝과 동료배우들을 난처하게 만듬
비비안이 30대 중반이 되던 47년 출연한 영화 안나 카레리나, 이전인 35년 제작된 그레타 가르보 버전 안나 카레리나에서 그레타와는 색다른 비비안만의 안나 카레리나 이미지를 선보임
이후 소피 마르소 등 숱한 여배우들이 이 역할을 거쳐갔지만 비비안 버전을 능가하지는 못 함
비련의 여주인공 역에 이 비비안만한 적격자가 없다는 증거
말론 브란도와 공연한 1951년작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에서 불혹을 코 앞에 둔 비비안은 혼란스러운 정신세계의 여주인공 블랑쉬 뒤보아로 열연, 전세계 영화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다
퇴폐적이면서 매혹적인 분위기를 지닌 매력 넘치는 여인이지만 히스테릭하고 불안정하고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비관적인 블랑쉬의 모습은 당시 비비안의 실제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으며 이 영화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실내조명을 일부러 어둡게 하는 설정이나 `내가 원하는 건 리얼리즘이 아니야! 난 단지 환상을 쫓아갈 뿐이라고!`라는 극 중 명대사는 비비안이 아니면 정말 실감나게 하기 어려웠을 듯
결국 이 역할로 비비안 생애 두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하지만 이건 그녀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영화성공작이 된다
이후 몇 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지만 이 욕망이라는... 성공에는 모두 미치지 못 함
같은 시기인 1951년 로렌스와 또한번 호흡을 맞춘 연극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중에서
이 때가 사실상 이 커플의 마지막 행복기였음
비비안이 갓 불혹이 되던 1953년 출연한 영화 거상의 길
인도 홍차왕의 실화를 다룬 파라마운트사 대작으로 이 영화는 비비안에게 반쪽짜리 작품이 되고 만다
전체촬영분의 30% 가량을 진행한 상황에서 비비안이 노이로제 및 신경과민 과로 등이 겹쳐 쓰러지는 바람에(아래 사진이 촬영 도중 쓰러져 긴급후송되는 비비안의 모습으로 초췌해진 모습을 노출하기 싫었는지 얼굴을 꽁꽁 덮음) 제작이 중단됨
비비안의 병세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제작사 측은 부득이하게 리즈 테일러를 긴급대타로 기용해 제작을 마친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이미연이 최명길로 중간교체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됨
당시 리즈 테일러는 MGM사 전속배우인데다 그 무렵 리즈가 20대 초반으로 여배우로서는 최절정기 시점이어서 워낙 바쁘다보니 출연교섭이 쉽지 않았지만 거상의 길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가 MGM에 긴급도움을 요청해 어렵사리 대타로 기용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리즈가 비비안과 무척 흡사한 용모여서 그만한 다른 대타적임자가 없었던 것
(두 여배우는 정말 닮은 꼴인데 둘다 아일랜드와 프랑스 혈통을 이어받은 영국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 당시 7세였던 리즈는 단지 비비안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극 중 비비안의 딸인 보니 버틀러 역 섭외를 받기도 했음
리즈 부모의 반대로 출연은 결국 불발 됐지만
그리고 리즈는 배우활동 당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여배우로 이 비비안을 첫 손 꼽기도 함)
그런데 이 영화가 워낙 대작이다보니 이미 너무 많은 제작비를 초과한데다 병들어 출연을 못 하게 된 비비안에 대한 예우도 감안해 영화사 측은 맨처음부터 다시 찍지 않고 비비안이 미처 찍지 못 한 씬들 중 얼굴 클로즈업 장면만 따로 찍는다
즉 비비안이 찍은 씬들 중 원거리 장면은 그대로 극장상영에 활용하고 얼굴이 드러나는 장면과 비비안이 찍지 못 한 장면만 리즈가 맡은 셈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을 멀리서 잡은 장면은 비비안이고 가까이에서 잡은 장면은 리즈로 나옴
20세기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두 여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영화가 바로 이 거상의 길이며 저 위 컬러영상 캡쳐가 바로 리즈가 대타로 등장한 거상의 길 극 중 장면들
그리고 이 때 확실해진 사실이 있으니 `비비안은 지는 태양이고 리즈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것
이 무렵 비비안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여배우로서는 본격적인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대 초반 활짝 핀 리즈는 헐리우드 탑여배우로 본격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
그 무렵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딸 수잔이 첫아이를 출산해 할머니가 된 비비안은 손자를 보기 위해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딸과 전남편 허버트와 재회한다
사진 속 모습은 평범한 여느 가족들처럼 화목하고 다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함
수잔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떠나간 엄마를 지독히 증오했고 그 결과 이 모녀는 좀처럼 만나지 못 했다고 전해진다
저 때 어렵사리 상봉을 했지만 이후 수잔이 거부해 비비안은 성장한 손자의 모습을 죽을 때까지 보지 못 했다고 함
그리고 허버트는 비비안을 정말 사랑했는지 비비안과 이혼한 후 얼마든지 재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재혼을 거부하고 평생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떠났음
또 비비안이 세상을 떠났을 때 수잔을 데리고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식도 진행함
그 정도로 비비안을 열렬히 사랑했던 것 같은데 왜 비비안은 이런 남편을 버렸을까? 아무리 로렌스가 좋았다지만
더구나 이 허버트마저도 엄연히 약혼녀가 있는 남의 남자를 낚아채 결혼한 건데...
그리고 비비안 사망 직후 수잔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어머니의 30대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발견하는데 이걸 고물상에 팔아버리고 만다
그 이유를 수잔은 이렇게 설명했다
`전 이런 걸 보관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는 평생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영화 연극을 위해서만 살았을 뿐 딸인 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전 이런 걸 가질 이유가 없어요`
그 정도로 수잔은 엄마가 어지간히도 원망스럽고 증오했나보다
영원히 화해하지 못 한 모녀지간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릴린 먼로가 공연한 1957년작 영화 왕자와 무희 당시 각각 로렌스 비비안 부부와 먼로 아서 밀러 부부
당시 먼로는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등으로 천재작가의 대명사로 등극한 밀러와 부부가 된 직후였는데 이 때 비비안은 먼로를 질투했다고 한다
왕자와 무희 극 중 먼로 역을 자신이 맡고 싶어했는데 먼로가 하는 바람에
하지만 이 때 비비안은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이라 하고 싶어도 이 배역을 맡을 처지가 못 되었고 급속도로 나이들어 가고 있었다
예전 욕망이라는... 출연 때 극 중 블랑쉬와 같은 처지가 되었고 바람과... 당시인 39년도에 26세였으니 이 때는 더이상 히로인을 맡기엔 무리였던 상황
거상의 길 출연 당시 로렌스의 정성어린 간호로 겨우 회복한 비비안은 이 때를 기점으로 갈수록 성격이 날카로워져 걸핏하면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보이거나 발작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결국 로렌스와도 사이가 점차 멀어지고 저 왕자와 무희 당시 둘은 사실상 쇼윈도우 부부가 되었음
그리고 결국엔 1960년, 둘은 남남이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저 사진 속 이 부부와 포즈를 취한 먼로-밀러 커플 역시도 같은 시기 파경을 맞았다는 사실)
이 때 비비안은 그에게 헤어지지 말자고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하루에도 수십번 변덕을 부리고 신경질 부리는 비비안의 모습에 완전히 지쳐 등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혼자가 된 비비안은 연극과 영화에만 전념했지만 이전과 같은 성공은 더이상 거두지 못 하고 그 무렵 본격적인 노화가 진행돼 아름다움과 매력을 자부하던 자신감도 크게 상실하는 등 실의에 빠진 날들이 거듭된다
이건 아주 희귀자료인데 말년의 비비안이 전설의 그룹 비틀즈 멤버였던 링고스타와 함께한 사진
당시 영국의 국보와도 같던 명우 비비안과 팝스타의 전설 비틀즈가 한컷에 등장한 모습
비슷한 시기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가스등처럼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전설의 여배우 버그만과 비비안이 중년시절 다정한 포즈를 잡음
프랑스의 불세출 명여배우이자 이브 몽땅의 부인으로도 유명했던 시몬느 시뇨레와 함께,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두 여인은 영화 바보들의 배를 통해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가 바로 1965년작 바보들의 배
극 중 비비안의 모습으로 당시 52세였던 그녀는 극 중에서 늙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 해 몸부림 치는 중년여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그건 그녀의 실제상황이기도 했는데 출연 당시 이미 건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어렵사리 촬영을 이어갔고 시몬느 등 출연동료들이 격려를 해주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유작이 되고 만다
이 영화 출연 2년 뒤인 1967년 7월 7일(또는 8일) 그녀는 자택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향년나이 54세
비비안의 사망일자는 포털마다 어떤 곳은 7일 또 어떤 곳은 8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사망시각이 정확치 않기 때문
비비안의 마지막 남자였던 배우 존 메리벨이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건 8일 이른 아침
사인은 폐결핵(그럼에도 그녀는 평생 골초였을만큼 지독한 애연가였고 말년에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흡연량이 더 늘었다고 함, 그래서일까? 이런 까칠한 성격과 기질 탓인지 결코 살이 찌지 않아서 죽는 날까지 161cm에 45kg 정도의 체격을 줄곧 유지했다고)
발견 당시 비비안의 입에는 소량의 객혈이 엉켜 있었으며 아마도 각혈을 하던 중 나쁜 피를 토해내지 못 해 기관질식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었고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는 처지라 목격자가 없다보니 전날밤 운명했는지 아니면 당일인지 확인이 불가능했던 것
그렇게 화려했던 세기의 대여배우는 너무나도 불운한 말년을 보내다 몹시 허무하고 쓸쓸하게 홀로 세상을 떠났고 사망 직후 런던의 모든 극장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일제히 조명을 끄는 일명 추모소등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말년의 비비안, 아름다움과 특유의 고고한 기품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하지만 눈빛과 표정이 몹시 쓸쓸하고 우울해 보임
그로부터 며칠 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고 이 자리에는 사랑했던 로렌스와 마지막 남자 존, 그리고 허버트 이 세 명의 남자가 모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그리고 비비안이 투병 중 했던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 되었고 어느 호수에 유해가 뿌려진다
(그래서인지 비비안을 기념하는 팬들은 그녀의 무덤이 따로 없다보니 영국에 가서 추모를 할 때 무덤 대신 그녀가 마지막까지 생활하며 운명을 달리했던 런던 생가를 찾아가 헌화하고 묵념한다고 함)
이 곳이 바로 비비안의 생가로 그녀의 생몰일을 담은 표식이 눈에 띄며 저렇게 관광객들과 팬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이기도 하다고
화면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도 우울했고 죽는 날까지 로렌스만을 그리워하다 간 어떻게 보면 참으로 지고지순한 여인
생전 가장 아름다웠던 전성기 시절의 모습들
그녀의 영원한 해바라기였던 로렌스와 다정한 부부시절 초기 때 모습과 말년기의 모습
아마도 어쩌면 그녀는 하늘로 떠난 이후에도 줄곧 로렌스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요즘 여배우들은 전반적으로 뭔가 여배우다운 맛이 부족한 것 같다
저 비비안 같은 여배우로서의 포스와 자세 열정이 부족하달까?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움과 연기력 개성은 물론이고 인생까지 불꽃처럼 뜨거웠던 그 누구보다 `클래식한 여배우`의 정석이 바로 이 비비안 리가 아닐까 싶다
철저하다 못 해 처절하기까지 할 정도로 지독하게 치명적으로 살다간 여인이자 여배우의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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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아주 예날 영화 이야기 얄미우리만큼 아름다웠죠
잠시 추억에 잠겨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