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1.6시간인 데 비해 독서시간은 26분에 불과하다”면서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한 도서관·
출판업계·서점가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북지역 독서인구의 인프라 중 입지가 좁아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지역의 강소서점이다.
△골목 상권 진출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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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독자들을 위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제공하는 전주 경원동 홍지서림 본점. |
1963년부터 시작된 홍지서림은 지역의 향토서점 그 이상의 문화적 자산이다. 창업자 천병로씨가 전주시 경원동에 연 홍지서림은 당시 마땅한 서점 하나 없던 전주지역에서 단비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소설가 양귀자·은희경·고(故) 최명희 등 전주의 문청(文靑)치고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책읽기’를 해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 서점은 2000년대 초반 양귀자씨가 인수하면서 북카페를 만들어 문화사랑방 역할을 선도했다가 적자로 문을 닫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홍지서림과 비견되는 서점은 바로 민중서관이다. 1969년 조정자씨가 문을 연 민중서관은 전주의 역사와 함께 울고 웃었다. 1980년대 군부통치에 저항한 시위·집회,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등 시대의
목소리와 호흡해왔다. 2011년 경영난으로 본점이 폐쇄되기 전까지 민중서관은 40여 년 간 한결같이 전주의 역사를 기록해온 관찰자였다.
창업자들조차도 “지역민들이 키웠다”고 인정할 만큼 두 서점은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성장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1994년 최홍석 대표가 종합서점으로 연 호남문고도 책을 읽지 않는 소비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다.
반면 2003년 문병호 대표가 개업한 참고서·
자격증 서적을 위주로 파는 문화시험정보센터는 문화서적의 전신이다. 민중서관 맞은 편에 있었던 문화서적은 독자층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03년 8월 전북대로 이전한 뒤 자격증 전문서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객층 공략 차별화
현재 전북지역 서점가는 중대형 서점(홍지서림)과 중소서점(민중서관·호남문고·웅진서적·문화서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번화가였던 전주시 경원동·고사동 일대에 위치한 홍지서림·민중서관을 비롯해 웅진서적·호남문고 등은 서신동·평화동·인후동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 중심에 속속 입점했으며, 골목 상권 중심의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홍지서림은 본점과 효자점·아중점·송천점 등 분점으로 골목 거점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본점은 40~60대 고정 방문층, 분점은 초·중·고 참고서와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려는 30~40대 학부모·학생 층으로 분류됐다. 현재 홍지서림의 회원은 8만 여명. 양계영 홍지서림 대표는 “본점엔 언론에 보도된 서평을 보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책을 구입하는 40~60대가 꾸준히 찾는다”면서 “이들은 홍지서림이 문 닫는 걸 싫어하는 고정 팬들”이라고 밝혔다.
홍지서림은 매월 본점·분점의 판매부수를 근거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든다. 양 대표는 “홍지서림만의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전주지역 독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있는 셈”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또 신아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지역 문인들의 책을 구비하고, 전북 출신 소설가 신경숙·은희경, 시인 김용택·안도현씨(가나다 순) 등을 신경써서 진열하기도 한다.
민중서관도 2011년 본점은 문을 닫았지만, 서신점·평화점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서신점은 초·중·고 참고서와 베스트셀러 구입하는 층들이 비교적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 출판사와 연계하는 단행본 할인행사가 이어지는 반면 평화점은 2012년에 이전하면서 고객들의 발길이 많이 끊긴 탓에 참고서 위주로 판매된다.
2003년 8월 전북대 앞으로 확장·이전한 문화서적은 전북지역 취업 준비생·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격증 전문 서적이다. 하지만 초·중·고 참고서는 물론 베스트셀러 등 다양한 인문학 서적도 구비되어 있다. 문병호 문화서적 대표는 “일대 어학원을 찾는 대학생·일반인들과 다양한 취업서적을 원하는 취업 준비생들이 많이 찾는다”면서 “2005년부터‘10% 할인+5% 적립’, ‘10% 할인+3% 적립’ 등과 같은 서비스는 물론 매년 1~2회 출판사와의 단행본 30~40% 할인 행사 등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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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호남문고가 마련한 ‘책 읽어주기 행사’에서 유치원생들이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있는 모습. |
인후점·서신점 등에 자리잡고 있는 호남문고의 최홍석 대표는 ‘책 읽어주는 아저씨’로 통한다. 최 대표는 지역서점의 활성화는 주민들의 관심과 도움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 일대 아파트 단지·유치원 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어린이도서연구회(이하 어도연)와 동화 읽어주는 행사를 기획한 최 대표는 “어도연과 함께 아동에 초점을 맞춘 추천도서 목록도 제시하고, 어도연은 정가로 책사기 운동을 펼치는 등 지역서점 살리기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 [타지역 서점 혁신 성공 사례] 시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책의 가치' 주목
서울 '땡스북스'·'길담서원' 대구 '해맑은 어린이서점' / "
대형서점 축소판으로는 성공 못해"…독자와 소통 적극"
지역 동네서점들의 하락세는 10년 넘게 지속됐다. 이에 맞서 틈새시장을 파고들며 차별화된 변신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서점들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공 사례는 서울 홍대 앞에 위치한 ‘땡스북스’다. 2011년 3월 문을 연 뒤 신사동 가로수길에 2호점까지 확장하는 기적을 일궜다. 땡스북스의 대표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 이기섭씨다. 일본·
유럽 여행 중 만난 작고 개성 있는 서점들을 부러워하던 그에게 한 미술 애호가가 선뜻 제안한 것. 그러나 이 대표는 대형 서점의 축소판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그의
매장은 대형 서점에 비하면 비교도 못할 작은 공간이지만, 세련된 동네 사랑방으로 꾸며 차별화를 꾀했다. 대표의 책 안목이 드러나는 도서들을 선별하고, 직접 디자인한 노트·필기구·카드 등을 진열했다.
자기계발서와 선거를 겨냥한 정치 서적은 일단 배제하는 반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예술서, 홍대생들이 제작한 독립 잡지를 구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대표는 “좋은 책의 가치는 시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땡스북스가 필터링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위치한 ‘해맑은 어린이서점’은 어린이 전용 서점이다. 1층은
놀이기구가 설치된 아이들 놀이방, 2층은 서적매장이다. 엄마와 손 잡고 찾아온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타고 공을 굴리는 등 신나게 놀다가 책 구경을 하게 되는 구조다. 커피자판기·공기
청정기·컴퓨터 등이 갖춰진
카페에서는 젊은 엄마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음껏 수다를 나눌 수 있다. 2004년 개점한 이 서점은 본점 외에 3개의 체인점, 통합브랜드
마케팅 일환으로 지역별 분점이 운영 중이다. 전주 효자동·평화동에 위치한 분점에는 카페 분위기를 갖춰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인문학 전문서점 ‘길담서원’은 서점 창업의 성공케이스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청소년 인문학 교실,
프랑스 어문
공부모임, 영어책 읽는 콩글리시 모임 등 다양한 공부 모임들이 책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특별
강연,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동시에 열리면서 서점을 찾는 독자들 간 소통의 장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