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열기 조삼순(71) 씨는 코피를 매일같이 콸콸 쏟았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잃는 일도 잦았습니다. 많은 병원을 전전하며 수혈과 콧속을 지지는 치료를 거듭했지만 병명조차 모르는 치료는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쏟아질지 몰라 두문불출한 채 20여 년을 보냈습니다.
2013년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장용주 교수를 만나면서 ‘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받아온 치료가 오히려 혈관을 증폭시키고 더 큰 출혈을 불러일으켜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비중격의 구멍이 크고 예민해진 상태여서 일반적인 치료법으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너무 늦었구나!’ 크게 낙심할 때 장용주 교수가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떤 방법이라도 찾겠습니다.” 이제껏 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약속이었습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교수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여러 의료진이 모여 코 안의 모든 점막을 제거하고 팔의 조직으로 대체시키는 국내 최초의 수술을 고안했습니다. 코 안의 울퉁불퉁한 구조에서 모든 혈관을 잇는 시도는 의료진은 물론 환자에게 두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이 담긴 수술은 12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삼순 씨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코피가 멈추면서 한글을 배우고 가족·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참 살맛 난다!”라는 혼잣말도 부쩍 늘었습니다. 오래 아프고 많이 외로웠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리얼스토리 희망을 나눕니다] 멈추지 않는 출혈, 멈추고 싶은 인생 40대 중반부터 코피가 터지면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2~3일 간격으로 몇 시간이고 코피를 콸콸 쏟다가 정신까지 잃고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처음엔 혼자서 식당 일을 하며 삼남매를 키우는 일이 고되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출혈은 더욱 잦아졌고 일을 그만두고 누가 볼까 두려워 집 앞 외출도 삼갔습니다. 그렇게 20여 년을 보내니 대인기피증과 우울증까지 뒤따랐습니다. “엄마 오늘은 코피 안 났어?” 자녀들은 시골에서 혼자 사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매일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삼순 씨는 미안한 마음에 별일 없다고 둘러대면서 혼자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곤 했습니다. 응급 상황마다 달려오는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병원 침대도 불편했습니다. 이쯤에서 인생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도 여러 번. 실행에 옮길 때마다 어김없이 코피는 쏟아졌고 맥없이 쓰러졌습니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구나….’ 삼순 씨는 그저 눈물만 삼켰습니다. 희망이 되어준 약속 2013년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장용주 교수를 만나면서 ‘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들었습니다. 코피가 심하게 나고 얼굴, 입술, 손가락 말단 등이 붉게 변색되는 증상의 유전병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삼순 씨가 받아온 치료들은 오히려 혈관을 증폭시키고 더 큰 출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장용주 교수는 같은 질병의 환자를 많이 치료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순 씨만큼 심각한 환자는 없었습니다. 이미 비중격의 구멍이 크고 예민해서 모든 치료법을 동원해도 치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너무 늦었구나!’ 서울아산병원을 마지막 병원이라 여겼던 삼순 씨와 가족들은 크게 낙담했습니다. 장 교수는 삼순 씨의 병실을 조용히 찾아와 “힘든 상황이지만 제가 어떤 방법이라도 찾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이제까지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누구도 들려주지 않은 약속이었습니다. 그 순간 삼순 씨는 오랜 고통과 상처를 위로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뭘 하시던지 1%의 희망만 있으면 따르겠습니다.” 서로의 간절함 끝에 몇 달간의 고민 끝에 장 교수는 코 안의 모든 점막을 제거하고 팔의 조직으로 대체시키는 수술을 고안했습니다. 코 안은 굉장히 울퉁불퉁한 구조여서 혈관을 전부 잇기가 쉽지 않고 엄청난 출혈이 예상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으로 수술에 임했습니다. 수술은 12시간 만에 끝이 났고 코피가 멈춘 삼순 씨의 일상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삼순 씨는 한글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울릉도 여행을 가보고, 얼마 전엔 가족과 칠순을 맞아 근사한 식사도 나눴습니다. “요즘 참 살맛 난다!”라는 혼잣말이 부쩍 늘었습니다. 오래 아프고 많이 외로웠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