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頭陀淵)
사람이 조금은 모질고 독한 데가 있어야 살기가 편한데 나는 그렇지 못해 살기가 무척 괴롭다.
그리고 가볍게 버리고 잊을 줄도 알아야 속이 편한데 그렇지도 못해 항상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도 생태숲에서 소리나는 무엇을 보았는데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을 하지
않고 그냥 와버려 영 기분이 찝찝하고 속이 허전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무겁고 아프다.
그래도 나는 이제 두타연에서 비득으로 넘어가야 된다. 생태탐방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나 혼자 개인으로 온 것이 아니고 단체로 왔기 때문에 개인행동은 할 수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두타연에서 제일 먼저 보았던 열목어를 떠올리면서 관광안내 팜플릿을 보았다.
두타연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강산
가는 길목(금강산까지 32km)이기도 하다. 천혜의 비경을 가진 국내 최대의 열목어서식지 이고,
1천년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며, 휴전 이후 50여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개방되어 민통선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숲속 길)
DMZ 두타연, 볼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고 생각나는 것도 많아 좋기는 정말 좋더마는,
안내간판 하나 없는 뱅뱅 꼬인 길을 찾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뱅뱅 돌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넓고 툭 트인 길로 나와 속이 시원하다.
(숲속 길)
숲속 길이다.
산이 있고, 산밑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시원한 길이다.
(예술과 사색의 길. 해발 347m)
이어서 예술과 사색의 길이다.
예술과 사색의 길은 숲길 마지막 길로서 숲속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가시철망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그래서 그 어떤 길보다 여유를 가지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리게 걷는 길이다.
그러나 성질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산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뒤에서 보니 핑핑 날아간다. 인간에게 들킨 다람쥐처럼 볼볼볼볼 벼락같이 내뺀다.
단체생활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뛰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속도를 맞추어야 된다.
혼자 잘났다고 산에서 아네모네 찾고 찬송가 부르고 정치이야기 들고 나서면 행사 망친다.
혼자 처지지 않으려고 막 뛰었다.
뛰면서 까치발 들고 목 길게 빼어서 수풀속에 핀 꽃을 보고,
산속으로 난 새길 신작로, 군작전도로로 빠져 나왔다.
지금부터 숲길은 끝나고 해가 바로 내리쬐는 길로, 이 길을 따라서 끝까지 가면 비득이다.
(며느리밥풀꽃?)
숲속에서 줄 밖으로 고개 쏙 내밀고 핀 꽃, 고상하게 예쁘다. 이름이 며느리밥풀인가?
두타연안내소에 붙여 놓은 꽃사진과 맞춰보면 며느리밥풀이 맞는 것 같은데, 모르겠네.
(으아리)
요건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꽃 으아리 이다.
소매물도에서 처음 보고 알게 된 꽃으로, 여름만 되면 일찌감치 피어 더위를 식혀주는 꽃이다.
(금마타리)
이꽃은 금마타리 이다. 꽃도 예쁘지만 색깔이 황금색이라 마음이 끌리는 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걷는 데만 관심이 있지 꽃은 아무 관심도 없다.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꽃도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지 아무나 좋아하나, 나만 보고 가려다 그래도 보여주고 싶어서,
관심을 모아보려고 "금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무슨 돈다발이 떨어진 줄 알고 휙 돌아본다.
마타리를 가리키면서 "이게 금이요, 금마타리" 하고, 좀 보고 가라고 하니 다시 획 돌아가버린다.
사위가 해준 금목걸이 금반지 금팔찌 자랑하고, 딸이 보내준 외국여행 갔다온 이야기 하고,
영감 줌치 풀어서 외손자 장간감 샀던 이야기를 해야 귀가 쫑긋하고 눈이 번쩍거릴 사람들한테
금이 나오나, 은이 나오나, 아무 영양가 없는 꽃을 보고 좋다고 보라 했으니 무슨 관심이 있겠나.
(평화누리길)
지금 나는 강원도 양구 제21사단 비무장지대에 있는 군사작전도로 평화누리길을 걷고 있다.
(2011.11.11. 평화누리길 준공기념비)
휴전 이후 50여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2004년부터 개방이 되어 2011년11월11일에
평화누리길이 준공되었다.
도로 옆에 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에는 정자, 정자뒤에는 자전거보관대가 있다.
(두타연 전지역은 지뢰지대이므로 지정이외의 구역은 절대 출입금지)
그리고 닦아놓은 길외 다른 곳은 모두 지뢰위험지역이라고 "지뢰" 하고 붙여 놓았다.
모르고 밟았다가는 바로 펑,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죽는다.
그냥 두루두루 살지, 어찌하여 동족끼리 전쟁을 일으켜 이런 끔찍한 짓을 하는가 싶다.
고개 푹 숙이고 빨리 통일이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부산에서 같이 온 일행 중에 몸집이 크고, 뚱뚱하고, 얼굴이 넓덕한 50대 중반의 한 여자가
앞에 가는 나를 불러 "저기 지뢰라고 써서 달아 놓은 저곳에 진짜 지뢰가 있어요?" 라고 한다.
넓덕하니 주제넘게 생겨가지고 세상 속고만 살았나, 속이고만 살았나, 날 시험하는 건가,
진짠지 가짠지 혼자 아무도 없을 때 들어가서 확인하고 체험해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럼요, 군부대에서 국민에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하고 얼른 그 여자를 피했다.
계곡이 깊으니 다리도 많구나, 또 다리다. 그런데 DMZ안의 다리는 좀 색다르다.
흔해빠진 출렁다리도 아니고, 딱딱한 쇠다리도 아니고, 따뜻하고 푸근한 목재다리다.
먼데서 보니 액자 같기도 하고, 발밑의 느낌이 어릴적 학교 골마루 지나가는 기분이 난다.
계곡물도 너무 맑다. 면경알이다.
이 조형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속눈썹이 긴 눈이다.
야, 정말, 골도 엄청 깊고, 물도 엄청 맑다.
이 물이 흘러 내려가서 한반도지형도 만들고 두타연폭포도 만들었던 것 아니냐.
꽃도 평화누리길에 핀 꽃은 더 예쁘네!
(하야교)
같은 DMZ안의 다리라도 하야교는 액자모양 대신 아치모양으로 만들었다.
다리를 건너보는 기분을 내라고 그랬을까, 옆에 길이 있는데도 다리를 또 놓았네.
옆에 꽃나무도 만들어서 심어놓고, 아무튼 심심찮게 길을 잘 닦아 놓았다.
빨리 평화통일이 되어 평화를 누려야 할텐데 "평화누리길"
(금강산가는 길, 민간인 출입금지)
금강산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민간인 출입금지다.
(금강산가는 길)
금강산 가는 길은, 수도권에서 금강산 장안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양구 읍내에서 금강산 장안사까지는 약 50km, 두타연에서는 30km 정도.
분단 전에는 양구에서 금강산까지 나들이로 소풍을 다니던 길이었다.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 갈 수 없다니, 내 땅을 내맘대로 밟을 수 없다니, 가슴아픈 일이다.
같이 금강산 가는 길을 보고 있던 한 여인이 "평길 30km면 하루만에 가겠네 뭐" 라고 한다.
"그럼요, 하루만에 갈 수 있고 말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갈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다.
길가엔 가시 철조망이 비닐에 싸여 동글동글 무슨 조각품처럼 놓여 있다.
담장헐기운동으로 담장도 헐어버리고 사는데 DMZ에는 가시철망이 대기하고 있다.
(하얀 점 두개는 빗방울)
아침부터 따끔따끔 어지간히 쪼아부치더니 오후가 되니 그만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비를 준비했다가 기상대 말만 믿고 짐 된다고 도로 빼놓고 왔더니 그만 비가 내린다.
없는 비옷이 생겨날 리도 없고, 그렇다고 이 더운 날에 남의 우산속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냥 맞자. 오히려 잘됐다. 계곡물이 저리 좋아도 들어갈 수 없으니 비를 계곡물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고 비를 맞았더니 야, 진짜, 비가 어찌 그리 시원하냐, 빗물이 얼음물이다.
옷이 몸에 척 달라붙고 바지가랑이가 휘휘 감겨서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더위가 확 가셨다.
저 뒤에 헉헉거리며 급히 오는 두 사람. 숨소리가 얼마나 센지 폐렴걸린 돼지숨소리 같다.
뒤에 졸졸 따라오는 아가씨, 두타연에서 혼자 설명할 때 설명 안 듣고 계곡에 양치하러 내려갔다가
길을 잃어, 회장님이 다시 두타연까지 뛰어 내려가서 찾아가지고 데리고 오고 있다.
두타연 관광지는 길이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 반듯한 이정표도 없고 정확한 팻말 하나 없다.
DMZ 안이라 전화도 안 된다. 무전기도 사용할 수 없다.
해설사가 해설을 해주는데 해설만 잘하지, 길에 대한 설명은 할줄도 모르고 해주지도 않더라.
그래서 특히 두타연에서는 가이드 말을 잘 듣고 따라야지, 개인행동을 하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회장님은 아가씨 찾아 이리뛰고 저리뛰고, 아가씨는 길을 찾아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일행을 잃은 우리는 쓸개없는 노루마냥 가다가 획 돌아보고, 가다가 획 돌아보고, 또 획 돌아보고.
(비무장지대 두타연 평화누리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식겁했다.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마라톤까지 하고 나니 비가 엄청 고맙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두타연에서 비득까지 9km, 우리는 아직 이 정도의 거리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
그런데 해설사할머니는 자기 수준에 맞추어서 날 더운데 거기를 왜 가냐고 무안을 주더라.
그래서 그런지 트레깅족은 우리 뿐이고, 공휴일이라 군부대안에서 군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얼룩씰룩 높이 쌓은 이 담벼락은 무엇인가, 전쟁이 나면 폭파하여 적을 막는 담벼락이다.
(원추리)
이제 비득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원추리가 마중나왔다.
철이 철인지라 가는 데마다 원추리가 마중을 나온다.
무척 반갑다. "안녕, 나의 친구 원추리씨"
(철조망)
다시 담장 높은 철조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진짜 다 왔나 보다. 아, 아쉽다.
두타연에 들어서자 마자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에 흥분을 하고,
거기다 쉴새없이 이것저것 본다고 뱅뱅 돌아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어 좋은 것을 좋은 줄 몰랐다.
이제 다 와서 보니 길목길목 놓여 있었던 사랑벤치도 너무너무 아름다웠고,
찰찰찰 흘러가는 계곡물소리도 너무너무 경쾌하고 시원하였고,
백 번을 말해도 빼놓을 수 없는 맑은 공기는 답답한 가슴 복잡한 머리를 단방에 확 풀어주었다.
(적에게 전율과 공포를 주는 최강 21사단)
적에게 전율과 공포를 주는 최강 21사단이라고 한다.
여기는 제21사단 비득안내소이다. 다왔다.
부산에서 강원도 양구까지 길이 만리 아니냐, 그 먼길을 달려와서 다시 9km를 걸었다.
다른 여느 길과 다른 길, 군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DMZ 안에 있는 평화누리길.
뿌듯하다. 언제 다시 한번 날을 잡아서 누리면서 걸어보아야 되겠다. "평화누리길"
비를 맞아 물이 줄줄 흘러 내리는 채로 다시 버스를 타고 점봉산 밑에 있는 설피마을로 간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