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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in 캠프] ‘그림자’ 자처한 불펜 포수, 배팅볼 투수들의 야구 인생2018.02.10 오전 10:01 | 기사원문
해외야구 이영미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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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의 훈련 보조원들. 왼쪽부터 불펜 포수인 박성언, 배팅볼 투수 신상철, 불펜 포수 안다훈이다. 모두 프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 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야구를 놓지 못한 끝에 훈련 보조원을 택했다. 그들한테도 야구는 전부였고 인생이었다.(사진=이영미)> “나이스 볼!” “아주 좋아!” “퍼펙트!”. NC 다이노스가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 투손 전지훈련장 불펜에선 투수의 공을 받은 불펜 포수들의 추임새에 훈련장 전체가 들썩거렸다. 똑같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포수들과 불펜포수들의 신분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포수들이 선수단 일원이라면 불펜 포수는 구단 직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로 뛰기를 소원하며 성장을 거듭하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 유무에 인생이 갈린 그들. NC 다이노스 불펜 포수들과 배팅볼 투수들을 만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야구 스토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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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포수 박성언. 야구 선수로 뛰고 싶어 일본 독립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오기도 했다.(사진=이영미)> 일본 독립리그까지 갔다온 불펜 포수 박성언
서른 두 살의 불펜 포수 박성언은 28세에 처음으로 불펜 포수란 타이틀을 달게 됐다. 프로에 지명 받지 못한 상황에서 야구를 이어가고 싶었고, 그 기회가 불펜 포수로 찾아왔다.
“제가 마산 출신인데 용마고에서 야구를 했거든요. 그러다 강릉고로 전학가게 됐어요. 이유요?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이후 한민대학교에서 포수랑 외야수를 같이 봤어요.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프로 지명을 받을 수 없었어요. 야구만 해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때 NC에서 불펜 포수를 구한다기에 지원해서 야구단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불펜 포수를 하면서도 박성언은 ‘혹시나’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혹시나’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이듬해 NC를 나와 일본 독립리그 오사카 06불스에 입단했다.
“홍성용(kt 위즈) 선수의 소개로 06불스에 입단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한 시즌을 치르고 귀국했죠. 선수로 뛰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일들의 반복이 한계를 느끼게 했던 것 같아요. 결국 독립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선 다시 NC 구단의 문을 노크했습니다. 이번에는 2군이 아닌 1군 불펜 포수로 재입사를 할 수 있었어요.”
스프링캠프 동안 박성언이 하루에 받는 공은 200개에서 250개 정도. 캠프가 진행될수록 공의 개수는 늘어난다.
“불펜 포수를 처음 했을 때는 불펜만이 아닌 그라운드 포수석에서 투수의 공을 받는 포수들이 정말 부럽더라고요. ‘나도 그 자리에서 공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어린 시절 야구를 열심히 하지 못한 부분이 후회더라고요. 그때 좀 더 참고 최선을 다했더라면 ‘불펜 포수’가 아닌 ‘포수’가 돼 있었겠죠. 어차피 야구를 해도 은퇴 수순을 밟게 되잖아요.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사회 생활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의 길만이 아닌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지금은 팀을 떠난 에릭 헤커와 현재 NC에서 뛰고 있는 임창민은 박성언에게 고마운 선수들이다.
“NC 선수들은 불펜피칭을 마친 후 항상 제게 다가와 ‘수고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요. 말 한 마디뿐인데 그 말이 참 정감있게 들리더라고요. 특히 해커와 임창민 선수는 이런저런 선물을 안겨주곤 했어요. 해커는 종종 용돈도 쥐어줬고, 창민이 형은 밥을 사주거나 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따로 챙겼다가 우리들에게 건네주곤 했었죠. 물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 투수가 예민해졌을 때는 불펜 포수의 서러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일부이고, 대부분은 잘 챙겨줍니다. 불펜 포수라고 해서 무시하는 선수들은 없어요.”
지금은 불펜 포수란 직업에 만족한다는 박성언. 바람이라면 가급적 오랫동안 불펜 포수로 NC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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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투수들로부터 공을 잘 받는다고 칭찬이 자자한 불펜 포수 안다훈. 그는 이후 지도자를 꿈꾸고 있었다.(사진=이영미)> 300개의 공 받으면 손바닥이 퉁퉁 부어 올라
박성언과 함께 NC의 불펜 포수를 맡고 있는 안다훈(26)은 뛰어난 미트질을 자랑한다. 박성언 조차 “다훈이가 투수들 공을 잘 받아 인기가 높다”고 말할 정도이다.
“원주고에서 홍익대에 입학했다가 2학년 초에 자퇴했어요. 방황을 많이 했었죠. 원주고에는 선수가 많지 않아서 계속 시합을 뛰었거든요. 그러다 대학 입학 후 포지션 경쟁에 놓여 포수를 봤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 내야수를 맡고 있더라고요.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싶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더욱이 장채근 감독님이 오신 후 운동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참고 견뎌냈어야 했는데…. 많이 후회됩니다.”
안다훈은 고교시절 자신보다 실력이 뒤떨어졌던 선수가 프로팀 신고선수가 되거나 10라운드에 지명 받는 걸 보고 절망을 곱씹기도 했다. 대학 진학이 결정된 상황에서 신인 드래프트를 지켜봐야 했지만 현실로 부딪혔을 때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프로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게 한처럼 남았어요. 그래서 불펜 포수로 간접 경험을 하게 된 것이고요. 지금은 충분히 만족합니다. 불펜 포수도 나름 보람이 커요. 투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마치 제가 잘 던지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안다훈이 스프링캠프 동안 받는 공은 300여 개 정도. 손바닥이 붓고 통증을 느껴도 그는 항상 우렁찬 목소리로 투수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한다는 게 NC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안다훈은 남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바로 지도자였다.
“메이저리그에선 불펜 포수 출신이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도 틈틈이 공부하고 있어요. 코치님들에게 많은 걸 묻고 조언을 들으며 야구 보는 눈을 키우고 있습니다. 선수로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도자가 돼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요. 불펜 포수 출신의 지도자, 근사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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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와 NC, 그리고 대표팀에서도 배팅볼 투수로 활약한 신상철. 프로 선수로 이름을 날리진 못했지만 배팅볼 투수의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는 배팅볼 투수입니다”
배팅볼 투수인 신상철(28)은 원래 KIA 타이거즈에서 일했다. 2012년 KIA의 배팅볼 투수로 활약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16년 마무리 캠프 때부터 NC 다이노스와 인연을 맺었다.
“김해고에 입학했을 때 3학년 학부모들이 감독님을 내보내려고 시위를 했어요. 그때 저도 감독님과 같이 학교를 나와 부산공고로 전학을 갔었죠. 대학은 광주 동강대 출신입니다. 드래프트요? 물론 참가했어요. 실력 부족으로 지명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배팅볼 투수가 된 것도 자랑스러워하세요. 남들은 유니폼을 돈 주고 사서 입는데 구단이 제공하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서요.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계시는 거죠. 야구하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셨을 때는 나름 기대를 부풀리셨을 텐데 제겐 내색하지 않으셨어요.”
신상철이 하루 던지는 투구스는 약 150개 정도. 어깨가 뭉칠 때는 따로 보강 운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도 수술 받은 적은 없어요. 어깨는 아직 괜찮고요. 왼손잡이라 구단에서 더 필요로 했던 것 같습니다.”
신상철은 지난해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2017대회를 떠올렸다. 대표팀의 배팅볼 투수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프로팀과 또 다른 분위기더라고요. 선수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김하성, 류지혁 선수의 파워와 타격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상대팀이었던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상철은 언제까지 배팅볼 투수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어깨가 버텨줄 때 까지”라고 답했다.
“어깨가 아프지 않아야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요. 어깨는 소모품이라 오랫동안 이 일을 하긴 어려울 거예요.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제가 있는 동안 NC 다이노스가 우승을 차지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배팅볼 투수를 그만둬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시카고 컵스의 마이크 보젤로 코치는 불펜 포수 출신이다. 뉴욕 양키스 시절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완성시켰고, LA 다저스에서 만난 켄리 잰슨한테도 ‘리베라표’ 커터를 장착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이후 시카고 컵스로부터 포수, 전략 코치 자리를 제안 받았고, 지금까지 컵스의 코칭스태프로 활약 중이다. 불펜 포수 안다훈이 품고 있는 길이 마이크 보젤로의 길과 흡사하다. KBO리그에서는 배팅볼 투수로 빙그레 이글스에 들어갔다가 정식 선수가 된 한용덕 한화 감독 사례도 전설처럼 소개되고 있다. 불펜 포수, 배팅볼 투수 등 조력자의 길을 걷는 훈련 보조원들. 프로 선수들과 똑같이 야구를 시작했고, 좋아했고, 야구를 놓지 못했다. 승부의 세계에 놓인 선수들 뒤에서 ‘그림자’ 역할을 맡아 동고동락하는 이들한테도 야구는 삶이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2F380%2F2018%2F02%2F10%2FsptPostArticleImage-13463.jpg%3Ftype%3Dw647) <다시 이름을 불러본다. 왼쪽부터 박성언, 신상철, 안다훈. 불펜 포수와 배팅볼 투수로 NC 선수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소중한 조력자들이다.(사진=이영미)>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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