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의 소 이야기 / 백석 (1912~1996)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보다 령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늬 오래된 절에서 칠십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마자락의 산山나물을 주었다
- 이동순 編 <백석시전집>
통영(統營) 2 / 백석 (1912~1996)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은銀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광원(曠原) / 백석 (1912~1996)
흙꽃 니는 일은 봄의 무연한 벌을
경편철도(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가정거장(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차(車)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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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첫 눈에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서
소월에 견줄 수 있는 시인 백석의 시 <광원(曠原)>이다.
‘광원(曠原)’이란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광야(曠野)라고도 한다. 그런데 문득 백석이란
시인의 이름과 함께 이 시가 쓰여진 때를 생각하면 그저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딘가 쓸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흙꽃이 이는 이른 봄의 무연한 벌이라 했다. 무연한 벌이라니 -
아득하게 너른 벌판이다. 이른 봄인데 너른 벌판에 봄꽃이
아니라 흙꽃 -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다. 배경부터가 심상치
않다. 그 벌판을 경편철도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단다.
‘경편철도(輕便鐵道)’는 궤도가 좁고 구조가 간단하게 놓인
철도로 이 시가 발표될 당대에는 용천에서 용암포 다사도까지,
안주(평남)에서 개천까지 그리고 황해도 사리원에서 해주를
거쳐 토성까지 등 북한 여러 곳에 있었단다.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경편철도 - 즉 역이 아닌 곳에서도 정차가
가능한 기차가 다니는 철도이고 노새의 맘이니 그만큼
느리다. 아닌 게 아니라 시 속에서도 ‘멀리 바다가 뵈이는 /
가정거장(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 차(車)는 머’문다.
정거장이 아닌 곳, 바다가 보이는 곳, 허허벌판에 기차가
서는 것이다. 그리고 내린 사람은 바로 ‘젊은 새악시 둘’이다.
같이 내렸거나 내려 준 사람 혹은 기다리던 사람은 없었을까.
맞다. 화자의 눈에는 오로지 새악시 둘만 보였다.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화자의 관심은 새악시에게 있었다. ‘젊은 새악시 둘’은
누구일까. 그렇다. 어쩌면 일본군에 끌려온 조선 처녀 -
위안부일지도 모른다.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허허벌판
가정거장도 없는 곳에 기차가 서고 내릴 새악시는 행복한
여인들이 아니리라. 그 시대가 그랬다.
분명 누군가 내려줬을 것이요 누군가는 그 둘을 맞았을
것이다. 다만 시 속 화자는 그런 것까지 묘사하지 않았을
뿐이다. 시 속 화자는 멀리서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정말
무심한 듯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내고 있지만, 그래서
어쩌면 한가롭고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민족의 특히 여성들의 수난사가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런 광경을 그런 수난을 이렇게 차분하게
조용하게 그려내는 시인 백석의 냉철함이 무섭다.
/ 이병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