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句】2수
●江碧鳥逾白 / 강이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 산이 푸르니 꽃은 불타는 듯하다.
今春看又過 / 올 봄도 보고 또 지나가니
何日是歸年 / 어느 날이 이 돌아갈 해인가?
▶두보 53세[광덕 2년, 764년]시 작. 가족을 데리고 떠돌다 成都 교외에 잠시 머물던 때였다. 두보는 전체 1450수의 시 중, 율시가 가장 빛나나 절구 중에서도 위와 같은 명편이 몇 수 있다.
●遲日江山麗 / 긴긴 해 강과 산이 아름답고
春風花草香 / 봄 바람에 꽃과 풀이 향기롭다.
泥融飛燕子 / 진흙이 풀리니 제비가 날고
沙暖睡鴛鴦 / 모래가 따뜻하니 원앙이 존다.
【復愁】12수
●人煙生處僻 / 인가의 연기는 궁벽한 곳에서 나오고
虎跡過新蹄 / 범의 자취는 새 발자국이 보이네.
野鶻翻窺草 / 들판의 매는 날개 번득이며 풀 숲을 엿보는데
村船逆上溪 / 마을의 배는 시내를 거슬러 올라간다. (1)
●釣艇收緡盡 / 낚싯배에 낚싯줄 다 걷으니
昏鴉接翅歸 / 저녁 까마귀 날개 나란히 돌아간다.
月生初學扇 / 달이 생기니 처음에는 부채를 닮았고,
雲細不成衣 / 구름이 가늘어 옷을 이루지 못한다. (2)
●萬國尙戎馬 / 천하가 아직도 전란이니
故園今若何 / 지금 쯤 내 고향은 어떨까? [쑥대밭이 되었으리.]
昔歸相識少 / 전날 돌아갔을 때도 서로 아는 이 적었지.
蚤已戰場多 / 일찍부터 참 전란도 많았으니까. (3)
▶두보가 고향이라 생각한 곳은 낙양. 장안 두 곳이나 여기서는 낙양.
▶두보가 華州 지방에서 벼슬 살 때 낙양에 갔다. [건원 원년. 758]
▶蚤已가 早已로 된 판본도 있다. / 萬國尚防寇로 된 곳도. ▶大歷 2년, 767년, 두보 나이 56세시에 成都를 떠나 江陵으로 가려고 三峽 어구인 夔州에 잠시 묵었다. 이때 ‘復愁’ 시 12수를 지었다.
●身覺省郎在 / 이 몸은 간관 벼슬로 있었음을 깨닫고
家須農事歸 / 집에서는 농사 지으러 오라고 하네.
年深荒草徑 / 해마다 깊어지는 황초의 길
老恐失柴扉 / 늙어 집 문 못 찾을까 두렵구나. (4)
●金絲鏤箭鏃 / 금실로 화살촉에 드리우고
皂尾制旗竿 / 말 꼬리에 깃대 달았다.
一自風塵起 / 한 번 세상 어지러워지니
猶嗟行路難 / 행로난 탄식하누나. (5)
●胡虜何曾盛 / 오랑캐가 어찌 그리도 성했던고,
干戈不肯休 / 일찍이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네.
閭閻聽小子 / 여염의 어린애들 말을 들어보니,
談話覓封侯 / 담소하면서 봉후를 취했다 하누나. (6)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혹은 칠십이 되도록 유세를 해도 의기투합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고, 혹은 잠깐 담론한 끝에 봉후가 되기도 한다.〔或七十說而不遇 或立談而封侯〕”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공명을 아주 수월하게 성취함을 의미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무신들은 喜亂樂禍의 심리가 조성되며 이러한 분위기는 兒童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杜甫는 이런 풍조를 개탄하고 있다.
●貞觀銅牙弩 / 정관은[당 태종은] 구리 화살을 쏘고
開元錦獸張 / 개원은[당 현종은] 오색 짐승 문양의 활을 사용했다.
花門小箭好 / 꽃 문양의 작은 화살촉은 아름다웠으나
此物棄沙場 / 그런 물건이 모래사장에 버려졌네. (7)
●今日翔麟馬 / 오늘 날아오르는 기린마,
先宜駕鼓車 / 먼저 북수레 타는 것이 마땅하구나.
無勞問河北 / 하북 군사들을 물어 위로하지 않고
諸將覺榮華 / 여러 장수 영화만 좋아하네. (8)
▶唐太宗 탄 열 마리의 천리마 중에서 아홉 번 쩨가 翔麟紫였다.
●任轉江淮粟 / 강회의 군량 수송에선
休添苑囿兵 / 대궐 동산의 병사를 보태지 말라.
由來貔虎士 / 예부터 날래고 용맹한 병사들
不滿鳳凰城 / 봉황성에 가득차지 않았다네. *(9)
▶由來는 自古以來。貔虎士는 精兵。鳳凰城은 長安城,뒤에 서울을 鳳城이라 칭했다. 당시 당나라 代宗은 宦官魚朝恩을 신임하여 통감에선 “百姓挼穗以給禁軍”이라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通鑒》卷二百二十三)。 杜甫의 이 시는 實際로 宦官이 병권을 장악하고 조정을 挾制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杜甫가 創作上에서 自己要求에 대해 嚴格함을 보여준다.
●江上亦秋色 / 강가엔 가을 풍경이나
火雲終不移 / 불 구름은 종래 옮겨가지 않누나.
巫山猶錦樹 / 무산엔 아직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南國且黃鸝 / 남국엔 또 누런 꾀꼬리로다. (10)
●每恨陶彭澤 / 매번 한스러운 건 도 팽택이,
無錢對菊花 / 돈이 없어 국화를 대한 것이네.
如今九日至 / 이제 중양절에 이르니
自覺酒須賒 / 나도 술을 외상 해야겠다 싶네. (11)
●病減詩仍拙 / 병이 나아가니 시는 오히려 졸하고
吟多意有餘 / 자주 읊으니 뜻이 유여하네.
莫看江總老 / 강총을 늙었다 말하지 말라.
猶被賞時魚 / 오히려 魚袋를 상으로 받았거늘 (12)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강총이 7세에 고아가 되어 외가에서 양육되었는데, 외숙인 오평후(吳平侯) 소려(蕭勵)가 자기보다 더 저명한 인물이 될 것이라면서 그를 격려하고 보살폈다. 《陳書 卷27 江總列傳》初仕梁、陳,陳破入隋,後複歸老江南。總亦工詩,故以自比.
●八陣圖 / 杜甫
功蓋三分國 / 공업은 삼분한 나라를 덮었고
名成八陣圖 / 이름은 팔진도에서 이루어졌네.
江流石不轉 / 강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데
遺恨失呑吳 / 다만 한스러운 건 오를 삼키지 못한 것.
▶夔州奉節縣에 여덟 가지 진의 그림인 팔진도가 물가에 자갈들을 모아 그린 그대로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武侯廟 / 杜甫
遺廟丹靑落 / 남은 사당은 단청이 떨어졌고
空山草木長 / 빈 산엔 초목만 우거졌네.
猶聞辭後主 / 아직 들리누나, 후주 하직하고도
不復臥南陽 / 다시 남양에 가 눕지 못했네.
【解悶】12수
●草閣柴扉星散居 / 초가집 사립문이 별처럼 흩어져 있고
浪翻江黑雨飛初 / 물결 일렁이는 강은 검고 빗방울 날릴 때이네.
山禽引子哺紅果 / 산새는 새끼 이끌어 붉은 과일 먹이고
溪女得錢留白魚 / 냇가 여인은 돈 받자 백어 두고 가네. (1)
▶대력大曆 원년(766), 기주夔州에 있늘 때 쓴 연작시로, 번민이 있을 때마다 한 수씩 쓴 가벼운 필치의 시. 기주의 풍경으로부터 시작.
▶江黑 : 날 흐리고 먹구름 낄 때 강물은 시커멓게 보인다. ▶浪翻 : 물결이 파도 침. *溪女 : 근처에 五溪(지명)가 있고, 그 곳엔 색무늬의 옷을 입는 蠻族이 살았다. 蠻族의 여인. 돈을 받으면서 값을 따지지 않았으니 물고기가 싸다는 것을 알겠다는 말.
●商胡離別下揚州 / 호족 상인과 헤어지고 양주로 내려가니
憶上西陵故驛樓 / 서릉의 옛날 역참 누각 오르던 일이 생각나네.
爲問淮南米貴賤 / 물어보자, 회남의 쌀값이 비싸오? 싸오?
老夫乘興欲東流 / 노부는 흥을 타고 동쪽을 노닐고 싶으니. (2)
▶두보가 기주를 떠나 오 지역에서 노닐고자 한 것을 적고 있다. 당시 서역 상인이 양주로 내려가면서 작별하러 찾아왔기에 그 일을 말한 것. 상인이 자신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淮南 : 양자강 배후 지역으로 곡창지대. *商胡 : 당나라 때는 파미르고원 서쪽 출신을 商胡, 또는 昭武九姓 胡人이라 칭함.
●一辭故國十經秋 / 한 번 고향을 떠나 열 번 가을 지나가니
每見秋瓜憶故丘 / 매양 가을 참외를 볼 때면 고향 언덕 떠오른다.
今日南湖采薇蕨 / 지금 남호에는 고사리 캐기 한창이겠거니
何人爲覓鄭瓜州 / 누가 나를 위해 정과주를 찾아 줄까. (3)
▶정심을 그리고 있다. 고향에는 참외를 심던 모래섬이 있어 바로 비서감 정심이 거주하던 곳이다. 지금은 이미 南湖로 폄적, 거주하고 있어 이제는 방문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의 쓸쓸한 삶을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十經秋 : 대력 2년부터 건원 원년까지 거꾸로 헤아리면 도합 10년.
▶유배 중에 고향에 다시 못 가고 죽을 수도 있는 신세를 한탄하는 것으로 이 시를 인용하곤 한다. ▶南湖는 호수 이름. 당나라 정건의 조카인 정심이 폄적 당해 거주하던 과주촌을 말한다. *남은 동으로 된 판본도 있다.
▶鄭瓜州 : 鄭審을 말함. 정심은 당 현종시 비서감을 지낸 두보의 친구. 유명화가인 鄭虔의 조카. 장안 남쪽 과주에 별장이 있어 고로 정과주라 칭한다. ▶薇蕨 : 고비와 고사리. 백이 숙제의 고사와 관련이 있는 말로 은거를 상징.
●沈範早知何水部 / 沈約. 范雲은 일찍이 수부랑 하손을 알아주었으나
曹劉不待薛郎中 / 조식과 유정은 설거를 기다리지 못하였네.
獨當省署開文苑 / 혼자 상서성을 맡아 문단을 열더니
兼泛滄浪學釣翁 / 겸해 창랑수에 배 띄우고 조옹을 흉내 내겠지. (4)
▶두보가 경사에서 친분을 맺었던 수부낭중 설거를 그리고 있다. 설거도 수부의 관원을 지냈으나 동지가 없었다. 그래서 애석해 하는 것이다. 郎中은 상서성 소속으로 각부서의 실무를 관장을 벼슬 이름. ▶何遜 : 沈約. 范雲처럼 북조 양나라 사람. 상서성 휘하에서 수리사업을 관장하는 수부랑을 지낸 적이 있다. 薛郎中. ▶曹植과 劉楨 :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 ▶滄浪은 한수의 지류 이름. 이 구는 지금은 형초지역에서 객이 되었다는 말.
●李陵蘇武是吾師 / 이릉과 소무는 나의 스승이라는
孟子論文更不疑 / 맹 선생의 의론을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네.
一飯未曾留俗客 / 한끼 식사에도 세속적인 손님 머물게 하지 않았으니
數篇今見古人詩 / 그대의 시 몇 편에서 이제 고인의 시를 본다오. (5)
▶교서랑 맹운경을 그리고 있다. 맹의 시 격조가 유독 한나라 때의 격조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고풍이 있다는 것.
●復憶襄陽孟浩然 / 다시 양양의 맹호연을 생각해 보니,
清詩句句盡堪傳 / 청려한 시구가 구절마다 전할 만하여라.
即今耆舊無新語 / 지금은 기로들 사이에 새로운 시구기 없으니
漫釣槎頭縮頸鯿 / 그저 뗏목으로 가둔 사두축경편만 낚을 거로세. (6)
▶축경편(縮頸鯿) : 사두축경편(槎頭縮頸鯿)의 준말, 사두편(槎頭鯿)이라고도 한다. 등이 활처럼 휘고 청색을 띠고 있다. 머리가 편평(扁平)하고 목이 오그라든 형상의 물고기로, 방어(魴魚) 종류이다. 회 맛이 특히 좋기로 유명.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현담작(峴潭作)〉과 두보(杜甫)의 〈해민(解悶)〉에서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사두축경편(槎頭縮頸鯿)은 특히 한수(漢水)에서 난 것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맹호연(孟浩然)의 〈현담작(峴潭作)〉 시에 의하면 “시험 삼아 낚싯줄을 드리웠더니, 과연 사두편을 낚았네그려.[試垂竹竿釣 果得槎頭鯿]”라고 하였다. /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그리워한 고사가 있기 때문에 이 물고기를 거론한 것이다. /
▶맹호연을 그리고 있으며, 2구는 그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耆舊. 耆老. 老人.
●陶冶性靈在底物 / 마음 단련은 무엇에 달려 있나?
新詩改罷自長吟 / 새 시를 고쳐 끝내고 스스로 길게 읊조리노라.
熟知二謝將能事 / 사령운과 사조가 거의 能事임을 익히 알고 있지.
頗學陰何苦用心 / 시 짓느라 고심한 음하를 자못 배웠노라. (7)
▶陰何 :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시인 하손(何遜)과 진(陳)나라의 시인 음갱(陰鏗)의 병칭이다. 둘 다 고심하여 시를 짓는 그 태도를 깊이 배우고자 하였음. ▶底物 : 何物. ▶將 : 用의 뜻. ▶能事는 능력. 여기서는 시 잘 짓는 재주.
●不見高人王右丞 / 고상한 분 왕우승을 볼 수 없고
藍田丘壑漫寒藤 / 별장이 있던 남전의 구학에는 차거운 등나무 줄기만
最傳秀句寰區滿 / 뛰어난 싯구 잘 전해져 온 세상에 가득 하고
未絕風流相國能 / 풍류 끊기지 않아 相國[왕유의 동생 왕진]이 시를 잘 짓네.
▶《抱朴子》:“知名之高人,洽聞之碩儒。”라고 하였다.
▶《舊唐書·王維傳》:乾元中에 尚書右丞되었다. 晚年에 藍田別墅를 얻으니 별서는 輞口에 있었다 물이 집 아래를 둘렀고 竹洲花塢하였으며 裴迪과 舟를 띄워 往來하며 嘯詠終日하였다. 시집을 《輞川集》이라 하였다。▶《晉書·謝安傳》:“放情丘壑。”이라 하였고 庾信詩:“寒藤抱樹疏。”이라 하였다. ▶鍾嶸《詩品》에 “奇章秀句,往往警遒。”이라고 하였다. ▶王洙曰:代宗時,縉為宰相,帝求維文,縉集上之。《金壺記》:玉維與弟縉,名冠一時。時議雲:論詩則王維、崔顥,論筆則王縉、李邕,祖詠、張説不得與焉。
●先帝貴妃今寂寞 / 선제[현종]의 귀비는 이제 적막하기만 한데,
荔枝還復入長安 / 여지는 여전히 다시 장안으로 들어오누나.
炎方每續朱櫻獻 / 남방에서 매양 붉은 앵도에 이어 바쳐왔으니,
玉座應悲白露團 / 옥좌에서 응당 방울진 이슬을 슬퍼했으리.
▶남방의 과실인 여지 열매를 생전에 매우 좋아했던 양 귀비(楊貴妃)가 죽은 뒤로, 당 현종(唐玄宗)이 여지를 볼 때마다 양귀비를 생각하며 슬퍼했을 정상을 읊은 것이다.
●憶過瀘戎摘荔枝 / 돌이켜 보면 노주와 융주를 지나며 여지를 딸 때
青楓隱映石逶迤 / 청풍 보일 듯 말 듯 한 곳에 돌길이 구불구불하였지.
京中舊見無顏色 / 경사에서는 분명 빛깔 잃은 모습 볼 터
紅顆酸甜只自知 / 붉은 알이 새콤달콤한지는 그저 절로 알았으리.
▶양귀비에 바친 여지의 생산지는 기존에는 부주라고 하였으나 노주 융주 설이 맞을 듯. 여지를 딴 사람일 경우 서울 도착 후엔 제 빛깔이 아닌 것을 알았으리라. 맛이 변하였음을 먹었던 양귀비는 알았을 것이리라.
●翠瓜碧李沈玉甃 / 비취빛 참와와 푸른 자두는 우물에 담겨 있고
赤梨葡萄寒露成 / 붉은 배와 포도가 차가운 이슬 받아 익네.
可憐先不異枝蔓 / 애석타, 원래 가지와 덩굴이 [여지와] 다르지 않건만
此物娟娟長遠生 / 이 과일[여지]만이 먼 곳에서 여리고 곱게 자란다네.
▶玉甃는 우물의 미칭 . 甃는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담장.
▶赤梨 : 일본에서 나는 과일의 일종.
●側生野岸及江蒲 / 여지는 머나먼 물가 언덕과 강마을에서 나지,
不熟丹宮滿玉壺 / 궁중에서 익지 않았으나 궁궐 안 옥항아리 채웠네
雲壑布衣駘背死 / 구름 골짝 사람은 복어 등을 하고 죽는데
勞人害馬翠眉須 / 사람을 고생시키고 말을 해침은 미인이 원해서라네.
▶側生: 과일명. 여지荔枝를 가리킨다. 좌사左思는 「촉도부蜀都賦」에서 ‘旁挺龍目, 側生荔枝(옆에는 각각 용목과 여지가 자라고 있다).’라고 했고, 장구령張九齡은 「여지부荔枝賦」에서 ‘靈根所盤, 不高不卑, 陋下澤之沮洳, 惡層崖之嶮巇, 彼前志之或妄, 何側生之見疵(영기를 지닌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 물에 젖는 낮은 땅과 가파르고 험한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데, 앞에 적은 것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여지가 곁가지에서 나는 것을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다. 이후 ‘側生’이 여지의 별칭으로 쓰였다. 여지는 땅에 수분이 충분하고 온도가 높으며 기온 차이가 많이 나는 곳에서 잘 자란다. 주산지는 광동廣東, 광서廣西, 복건福建 및 대만臺灣 등이다.
▶ 江蒲: 물가에 있는 초가집을 가리킨다. ‘蒲’는 초가집을 가리킨다. 유희劉熙가 ⟪석명釋名⟫에서 ‘草團屋曰蒲, 又謂之庵(초가집을 ‘蒲’라 하는데 초막을 가리키기도 한다).’이라고 했다.
▶ 駘背: 늙은 낙타의 등을 가리킨다. 나이 들어 늙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勞生: 힘들고 지친 삶을 가리킨다. ⟪莊子⋅大宗師⟫에서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俟我以老, 息我以死(대지는 내게 몸을 주어 사는 동안 힘들여 일하게 하고 늙는 것으로 편안하게 하며 죽는 것으로 안식을 준다).’라고 했다. ▶ 害馬: ‘重馬’로 쓴 자료도 있다. 30리 간격으로 설치된 驛마다 보유한 파발마를 이용하여 지방에서 난 여지를 나르느라 말을 많이 잃은 것을 가리킨다. ▶ 翠眉: 미인美人의 별칭이다.
【漫成】
●江月去人只數尺 / 강의 달은 오직 몇 자 거리
風燈照夜欲三更 / 펄럭이는 등불 밤 비추어 삼경이 되려하네.
沙頭宿鷺聯拳靜 / 모래 밭에 자는 백로 떼지어 조용한데
船尾跳魚撥剌鳴 / 배 꼬리엔 물 고기 발랄하게 뛰는 소리.
▶孟浩然詩曰 : 「江淸月近人.」 杜子美云 : 「江月去人只數尺.」 羅大經以爲, 「浩然渾涵. 子美精工.」 余謂「子美此句. 大不及浩然.」 《鶴林玉露》 卷13
【房兵曹胡馬】
●胡馬大宛名 / 호마는 대원의 명마,
鋒稜瘦骨成 / 칼끝 같이 마른 골격 갖추었네.
竹批雙耳峻 / 대나무를 벤 듯 두 귀는 쫑긋하고,
風入四蹄輕 / 바람이 든 듯 네 발굽은 가볍네.
所向無空闊 / 향하는 곳 넓다 할 곳 없어,
眞堪托死生 / 진실로 생사를 맡길 만하네.
驍騰有如此 / 용맹하고 날쌔기가 이와 같으니,
萬里可橫行 / 만리라도 마음껏 달릴 수 있다.
▶胡馬 : 호지 생산의 말. 호는 주로 새외의 서북 지역을 지칭.
▶大宛 : 한나라 때 서역 지방의 나라 이름. 대월지(大月氏)의 동북쪽에 위치. 이 곳의 말은 良馬로 평가됨. 붉은 땀을 흘리며 日行千里의 汗血馬는 유명. ▶驍騰[효등] : 방병조를 찬양하는 말. ▶각 연의 출구 끝자가 名-평성, 峻-거성, 闊-입성, 此-상성이렇게 4성을 골고루 배합하는 것을 4성체용이라 하고 두보가 가장 먼저 사용함. (上尾와 관련). ▶경련까지는 말에 대한 묘사이고, 미련은 전환을 이루어 이 말을 타는 사람에 대한 내용인데, 이렇게 급작스런 전환을 이루는 것을 돈좌라 하고, 이런 경우 앞과 뒤의 시상의 단절이 문제되는데, 전환을 이루면서도 시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는 것이 6구의 眞堪托死生 이다. 이런 장치를 과맥(過脈)이라 함
【畵鷹】
●素練風霜起 / 흰 비단 위 바람과 서리 일어 나는데
蒼鷹畵作殊 / 푸른 매 그림 정말 특수 하다.
㩳身思狡兎 / 몸은 꼿꼿이 새우고 약은 토끼를 노리는 듯
側目似愁胡 / 곁 눈길 하는 양이 수심에 찬 오랑캐 같구나.
絛鏇光堪摘 / 잡아맨 끝은 번쩍이어 손에 잡힐 듯 하고
軒楹勢可呼 / 헌영[처마와 기둥]에 있는 그 기세가 불러 낼 만한데,
何當擊凡鳥 / 어느 때에나 뭇 새[참새와 같은 보통의 새] 들을 쳐서
毛血灑平蕪 / 털과 피를 평원[*蕪는 황야]에 뿌릴까?
▶당시의 사악한 무리와 부패한 시대 풍조를 미워하여 바로잡고 싶어하는 마음을 기탁한 시. ▶素練 : 흰 비단. 여기서는 그림 그린 비단.
▶蒼鷹 : 창백색의 매. ▶㩳身(송신) : 몸을 우뚝 세우다. 㩳은 竦과 같다. ▶側目 : 곁눈질하다. 눈을 옆으로 흘겨보다. 似愁胡 : 매의 움푹 들어간 눈언저리의 모습이 오랑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설에는 오랑캐가 碧眼이므로 하는 말이다. ▶絛鏇光堪摘 : 絛[도]는 실. 鏇[선]은 轉軸. 光堪摘 : 실과 전축이 광채를 말하는 모습이 마치 실물인 듯하여 보는 사람이 이를 잡아 떼어낼 수 있을 듯하다는 말.
【春日憶李白】
●白也詩無敵 / 이백 그대는 시의 무적이요
飄然思不群 / 표연한 생각이 무리와 같지않고
淸新庾開府 / 청신한 맛은 六조의 문인 유신과 같고
俊逸鮑參軍 / 준일한 품은 [도연명과 겨룬] 포조(鮑照)와 같네.
渭北春天樹 / 이곳 위수 북쪽은 봄 하늘의 나무,
江東日暮雲 / 그곳 강동에는 해 질 무렵의 구름
何時一樽酒 / 어느 때나 한 동이의 술로
重與細論文 / 다시 한번 그와 자세히 글을 논할까?
*庾開府=六조시대의 문인 인 유신(庾信)개부(벼슬이름)
*鮑參軍=도연명과 같이 뛰여난 문인 포조(鮑照)참군(벼슬이름)
▶천보 5년 두보가 장안으로 돌아와서 강동에 있는 李白을 생각하며 지었다. 이백을 이야기한 시 중 첫 번 째 것. 두보는 이백보다 12살 아래. *也가 주어 아래 쓰이는 어기사이기도 하나, 然과 대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위북 : 위수 북쭉. 두보가 있던 장안 일대. ▶春天樹는 두보가 본 실경이요, ▶江東 : 이백이 머물던 長江의 동남쪽. ▶日暮雲 : 그대는 해질 무렵의 구름처럼 떠돌겠구나, 는 두보가 상상하고 있는 이백의 모습. ▶庾開府 : 庾信. 자는 子山. 南陽 新野 사람으로 庾肩吾의 아들이다. 徐庾[*徐는 徐陵]로 병칭되기도. 梁 元帝시 西魏에 사신 가 있는 동안 양이 망하여 어쩔 수 없이 서위의 수도 長安에 머물렀다. 그뒤 北周에서 開府儀同三司 벼슬을 하여 세칭 柳開府. 초기의 작품은 기려하고, 北朝에서 생활하였던 후기의 것은 청량한 풍격 속에 망향의 정과 망국의 비애가 잘 나타나 있어 두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鮑參軍 : 鮑照. 자가 明遠. 동해 사람. 어려서 집이 가난. 자라서는 관직에서 不得志. 한때 臨海王 劉子頊의 前軍參軍을 지내 세칭 포참군. 謝靈運 顔延之와 더불어 元嘉 3대 시인. 그의 시에는 불우함에 대한 비분. 부패한 사회에 대한 풍자가 표출되어 있다. 樂府歌行에 뛰어난 솜씨를 발하여 이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陪鄭廣文遊何將軍山林】10수
●不識南塘路, 남당[지명, 위곡 근방]의 길 알지 못하다가
今知第五橋. 이제야 제오교[다리 이름]를 알게 되었네.
名園依綠水, 이름난 원림은 푸른 물에 의지하고
野竹上靑霄. 들판의 대나무 푸른 하늘로 오른다. [자라고 있다. 솟다.]
谷口舊相得, 곡구와는 오래전부터 서로 마음 맞아
濠梁同見招. 호수 다리에 함께 초대되었거니와
平生爲幽興, 평생의 그윽한 흥취를 위해서라면
未惜馬蹄遙. 멀리 말 타고 가는 것 아끼지 아니하였다. (1)
▶여름날 정건과 함께 하장군의 원림에 놀러가서 본 경물과 감회를 읊은 것. 천보 12년 여름의 일. 정건은 광문관박사로 두보의 지인. 원림 속에 산이 있어 산림이라고 한 것. 제1수는 연작시 전체의 서두에 해당. 남당에서 제오교로 가는데, 제오교 가장 자리에 하장군의 원림이 보이고, 원림 중에 대나무가 있다는 묘사의 층차에 유의. ▶第五橋는 第五琦가 만들었기에 제오교라 함. ▶谷口 : 지명. 西漢 말의 高士 鄭樸은 자가 子眞으로 장안 남쪽 子午谷에 입구, 즉 谷口에 살았다. 여기서는 鄭虔을 가리킨다. 濠梁 : 濠梁의 다리. 濠水는 안휘성 봉양현에서 발원하여 淮河로 흘러 들어가는 두 개의 물 줄기로 동호수와 서호수로 나뉜다. 여기서 濠梁은 하장군의 산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장군 산림의 물경치가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莊子 至樂>에 莊子와 惠子의 호량에서의 대화가 나온다. 이 구는 장자와 혜자로서 두보가 정광문을 모시고 가는 상황을 비유한 것.
●百頃風潭上, 백 경 넓이 못 위로 바람이 불고
千章夏木淸. 천 그루 큰 나무 푸르니 여름이다.
卑枝低結子, 낮은 가지로 나지막하게 열매 열매 맺히었고
接葉暗巢鶯. 잇닿은 잎새 사이 둥지 튼 꾀꼬리 어렴풋하다.
鮮鯽銀絲膾, 신선한 즉어[붕어의 일종]는 은실 같은 횟감이 되고
香芹碧澗羹. 향긋한 미나리는 푸른 산골 시냇물로 끓였다.
翻疑舵樓底, 갑자기 의심이 든다. 舵樓[큰 배의 누각] 아래에서
晩飯越中行. 월 땅을 가다 저녁을 먹는 것인가 하고. (2)
▶章은 큰 나무 ▶翻은 오히려. 도리어. 갑자기. ▶越中行 : 월 지방 여행. 두보는 20세 때 오월 지역을 유람한 적이 있다.
●萬里戎王子, 만리 먼 곳에서 온 융왕자[*타국에서 유입된 꽃 이름]
何年別月支? 어느 해 월지국[고대 서역의 국명]을 떠났나?
異花來絶域, 기이한 꽃 먼먼 고장에서 와
滋蔓匝淸池. 무성한 덩굴이 맑은 못을 둘렀다.
漢使徒空到, 한나라 사신은 다만 헛되이 갔을 뿐이고
神農竟不知. 신농씨도 끝내 이 꽃 알지 못했다.
露翻兼雨打, 이슬이 뒤집고 동시에 비가 때리니
開坼漸離披. 열리고 터지고 점차 이리저리 흩어진다. (3)
▶露翻 : 이슬이 뒤집다. 이슬이 맺혀서 꽃봉오리가 벌어진다는 말.
▶開坼 : 열려 터지다. 꽃이 피는 것을 말한다. ▶離披 : 이리저리 흩어지다.
●旁舍連高竹, 옆집까지 고죽 이어져 있고
疏籬帶晩花. 성근 울타리 저녁 꽃을 둘렀다.
碾渦深沒馬, 연애 소용돌이 깊어 말도 빠질만하고
藤蔓曲藏蛇. 등나무 덩굴 굽어 뱀이 숨은 듯하다.
詞賦工無益, 사부가 아름다워도 무익하고
山林迹未賖. 산림에 대한 [나의] 자취 아직 멀어지지 않았으니
盡捻書籍賣, 책을 다 집어 내다 팔아서,
來問爾東家. 그대 동쪽 집 물색하러 오겠노라. (4)
▶旁舍連高竹 : 하장군 산림의 고죽이 부근의 집까지 연이어 있음. *<두시언해>에서는 ‘옆집까지 대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로 보고 있다. ▶晩花 : 저녁 울타리에 꽃이 피어 있음. ▶碾渦 : 碾磑[연애]의 물 소용돌이. 碾磑는 물레방아로 움직이는 맷돌. ▶東家 : 하씨의 원림 동쪽에 있는 다름 원림. *원래 東家는 東家丘에서 온 말로, 공자 살던 동쪽 집에서 공자를 몰라보고 그냥 ‘동쪽 집에 사는 구’라고 하였다한다.
●剩水滄江破, 남은 물 푸른 강을 터오고
殘山碣石開. 남은 산 우뚝 솟은 돌처럼 펼쳐내었다.
綠垂風折笋, 푸르게 드리운 것은 바람에 꺾인 죽순이며
紅綻雨肥梅. 붉게 터진 것은 비에 살찐 매실이구나.
銀甲彈箏用, 은갑은 쟁 타는 데 쓰고
金魚換酒來. 금어를 잡혀서 술을 바꾸어온다.
興移無灑掃, 흥이 옮겨가니 물 뿌리고 쓰는 일도 없이
隨意坐莓苔. 마음 내키는대로 이끼에 앉는다. (5)
▶하장군의 호방하고 허물 없는 응대를 묘사. ▶剩水 : 남은 물. 하장군의 산림에 있는 인공 호수를 지칭. ▶滄江 : 푸른 강. 큰 강. ▶破 : 여기서는 강물을 끌어들인 것. ▶殘山 : 남은 산. 끄트머리 산. 여기서는 호수 속의 가산을 지칭. ▶碣石 : 碣石山. <한서. 무제기> ‘至碣石’의 주에 의하면 碣石在遼西海邊. 碣은 우뚝솟은 모양. ▶金魚 : 황금 魚符. 또는 魚袋.
●風磴吹陰雪, 바람 부는 돌길 어두운 눈 불어대고
雲門吼瀑泉. 구름 낀 문에 폭포가 울부짖는다.
酒醒思臥簟, 술이 깨어 대자리에 누우려다
衣冷欲裝綿. 옷 차가워 솜을 덧대고 싶어진다.
野老來看客, 시골 늙은이 客[두보 일행]을 보러 와서는
河魚不取錢. 강 물고기 돈 받지 않는다.
只疑淳樸處, 다만 의아한 것은 소박한 곳에
自有一山川. 절로 한 산천[*별천지]이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6)
▶酒席을 파하면서 구름 낀 산문을 유람. 그 곳이 지대가 높아 시원하다는 것과 그 곳 민심이 순박함을 찬미.
▶風磴 : 바람 부는 돌길. 돌계단 길
▶裝綿 : 옷에 솜을 두다. 솜을 덧대다. *欲裝綿 : 솜옷이 생각난다.
●栜樹寒雲色, 색나무는 차가운 구름 빛이요
茵蔯春藕香. 인진쑥[사철쑥]은 봄 연뿌리처럼 향기롭다.
脆添生菜美, 부드러움은 생채의 맛을 보태고
陰益食單涼. [색나무 숲] 그늘은 먹는 자리의 서늘함을 더한다.
野鶴淸晨出, 들녘의 학은 맑은 새벽[이른 아침]에 날아오르고
山精白日藏. 산도깨비[산의 귀신]는 대낮에 숨었노라.
石林蟠水府, 석림은 수부[물 밑의 세계. 水神의 거처]에 서리어
百里獨蒼蒼. 백리에 걸쳐 홀로 푸르구나. (7)
▶石林의 새벽 경치의 그윽함을 노래 하면서 새벽 음식에 대해 묘사.
▶食單 : 식사시의 布單. 즉 자리에 까는 베.
▶野鶴淸晨出은 그 곳이 탁 트인 곳임을 / 山精白日藏은 그 곳이 幽深함을 말한다.
▶石林 : 바위가 모여 있어 숲처럼 보이는 것. / 바위 위의 나무 숲 / 나무 숲이 있는 바위/ 다 해석이 가능하다.
●憶過楊柳渚, 생각난다. 양류저[못 이름. 위치 미상]를 지나
走馬定昆池. 정곤지로 말 달리던 일을.
醉把靑荷葉, 취하여 푸른 연잎을 잡았고
狂遺白接䍦. 미쳐서 하얀 접리를 잃어버렸지. [*遺는 버려두다.]
刺船思郢客, 배 잘 젓는 초 땅 사공을 생각하다가
解水乞吳兒. 물 익숙한 오 지방 아이 요구하고
坐對秦山晩, 앉아서 진산[종남산]의 저녁을 대하니
江湖興頗隨. 강호의 흥취[뱃놀이 하는 흥취]가 자못 따르는구나. (8)
▶물이 많은 산림 주변을 유람하던 일을 생각하면서 느낀 강호의 흥취를 묘사하고 있다. 4구 까지가 회상하는 내용이다.
▶定昆池 : 못 이름. <新唐書 諸帝公主列傳>에 의하면 중종의 딸 安樂公主가 昆明池를 개인 소유지로 달라고 하였으나 부득지하자 스스로 정곤지를 팠다고 한다.
●床上書連屋, 책상 위의 서책 지붕까지 이어지고
階前樹拂雲. 섬돌 앞 나무[*우수한 자제 비유]는 구름을 스친다.
將軍不好武, 장군이 무력을 좋아하지 않으니
稚子總能文. 어린 아이들 모두 글에 능하구나.
醒酒微風入, 술이 깨니 미풍이 들어오고
聽詩靜夜分. 시 읊는 소리[누구인지는 미상]듣다 보니 고요한 밤이 깊었다.
絺衣掛蘿薜, 칡베 옷 등라 벽려에 거는데
涼月白紛紛. 서늘한 달 맑은 빛이 [옷 위에] 흩날린다. (9)
▶산림에 숙박하면서 겪은 일과 운치. 하장군의 문아함과 밤경치의 맑고 그윽함을 보여주고 있다.
▶蘿薜 : 藤蘿와 薜荔. 초목 이름.
●幽意忽不愜, 그윽한 정취가 갑자기 즐겁지 아니하니
歸期無奈何. 돌아갈 기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라.
出門流水住, 문을 나서니 흐르는 물 멈추고 [*멈추려한다.]
回首白雲多. 고개 돌려보니 하얀 구름 많기도 하구나.
自笑燈前舞, 등 앞에서 춤추던 일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거니와
誰憐醉後歌. 취후가를 [하장군 말고 이제] 누가 어여삐 여기겠나.
只應與朋好, 그저 벗[정건]과 더불어
風雨亦來過. 비바람에도[무릅쓰고라도] 또한 와서 들리리. (10)
▶연작시의 총결에 해당.
【重過何氏】5수
●問訊東橋竹,동교의 대나무에 대해 물었더니
將軍有報書。장군[하장군]이 보낸 답서가 있어서,
倒衣還命駕,옷 거꾸로 입고 다시 수레를 몰게 하여 와서
高枕乃吾廬。베개를 높이 베니 바로 내 집인 듯하다.
花妥鶯捎蝶,꽃이 떨어지는 것은 꾀꼬리가 나비를 잡는 탓
溪喧獺趁魚。시냇물 떠들썩한 건 수달이 고기를 좇는 탓.
重來休沐地,쉬며 목욕하는 땅에 다시 와 보니
真作野人居。진정 야인의 거처로구나. (1)
▶두보가 천보 12년 여름에 하장군 원림에 들렸다가 다음해 봄에 재차 방문하여 이 시를 지었다. 전후 모두 15수이니 오언율시 연작시의 백미. ▶報書 : 답신. 두보가 다시 방문하고싶어하자 하장군이 이를 허락하는 내용의 답신, ▶倒衣 : 답신을 받고 좋아 못견뎌하는 두보의 모습. ▶花妥鶯捎蝶 : 花妥[화타]는 꽃이 떨어지다. 蝶[소]는 잡다. 스쳐 지나가다. ▶野人 : 하장군이 아니라 두보 자신을 칭하는 말이다.
●山雨樽仍在,산에 비 내려도 술 동이 그대로 있고
沙沉榻未移。모래에 묻혀도 걸상이 옮겨지지 않았다
犬迎曾宿客,개가 일찍 묵었던 손님 맞이하고
鴉護落巢兒。까마귀는 둥지에 낳은 새끼를 지킨다.
雲薄翠微寺,구름 엷어진 취미사[종남산 위에 있던 절],
天清皇子陂。하늘 맑은 황자피. [위곡 서쪽에 있는 저수지]
向來幽興極,지금껏 그윽한 흥취 지극하여
步屣過東籬。나막신 신고 걸어 동쪽 울로 향한다. (2)
▶犬迎曾宿客,鴉護落巢兒 : 개는 본 적 있는 손님을 반기고 까마귀는 낯선 이를 경계한다는 말. *落巢兒 둥지에 낳은 까마귀 새끼
●落日平臺上,평대에 해 지고
春風啜茗時。봄 바람에 차 마실 때
石欄斜點筆,돌 난간에서 비스듬히 붓을 적셔
桐葉坐題詩。앉아서 오동 잎에 시를 쓴다.
翡翠鳴衣桁,물총새는 衣桁[옷을 걸어둔 횡목] 나무 끝에서 울고
蜻蜓立釣絲。잠자리는 낚싯줄에 서 있다.
自今幽興熟,지금부터 그윽한 흥취 익으니
來往亦無期。 오고 감에 또 때가 없다. (3)
▶平臺 : 평평한 대지. ▶啜茗 : 차를 마시다. 茗은 늦게 딴 차. ▶無期 : 기약이 없다.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다.
●頗怪朝參懶,조회에 게으름을 자못 괴이하게 여겼더니
應耽野趣長。분명 들 정취 유장함을 탐하신 탓.[한가함을 즐기시다보니]
雨拋金鎖甲,빗속에는 금실로 얽은 갑옷 버려져 있고
苔臥綠沉槍。이끼 위엔 파란 칠을 한 창이 눕혀져 있다.
手自移蒲柳,손수 갯버들을 옮겨 심어 놓으셨고
家才足稻粱。집안의 양식은 겨우 족한 정도
看君用幽意,보아하니 그대는 그윽한 뜻을 가져
白日到羲皇。대낮에도 희황에 이르시겠다. (4)
▶野趣 : 田野의 정취.
●到此應常宿,여기서 늘 묵어야 할 것이니
相留可判年。머물게 해주신다면 한 해[判年]라도 보낼 수 있다.
蹉跎暮容色,뜻을 잃어 시든 낯빛으로
悵望好林泉。좋은 산림을 슬프게 바라본다.
何日沾微祿,어느 날 조그만 녹에 젖게 되어
歸山買薄田? 산에 돌아가 척박한 밭 사려나?
斯遊恐不遂,이 노닒 이루어질 수 없을까 염려하여
把酒意茫然。술 잔을 잡으니 생각 아득해진다. (5)
▶蹉跎 : 발을 헛디디어 미끄러져 넘어지다.
【上韋左相二十韻】
●鳳曆軒轅紀,봉력이 헌원의 시대를 기록한 후
龍飛四十春。용이 나신지 40년이 되는 해.
八荒開壽域,이 세상 위에 장수하는 고장을 여시고
一氣轉洪鈞。한 기운으로 천지를 다스리셨네.
霖雨思賢佐,단비 같은 어진 신하 생각하시고
丹青憶老臣 한나라에 공신을 그려놓았듯이 노신들 아끼시네.
應圖求駿馬,그림을 따라 날랜 말을 찾듯이 현인을 구하시니
驚代得麒麟。일세를 놀래킬만한 기린 같은 분 얻으셨네.
沙汰江河濁,몰래 일어 강물이 흐려지듯 관계를 정화하기에 힘쓰셨고
調和鼎鼐新。솥 안의 음식을 조화하듯 정치를 쇄신하셨네.
韋賢初相漢,위현이 옛날 한나라 재상이 되었듯이 재상이 되시었고
范叔已歸秦。범수가 진나라로 돌아갔듯이 나라에 공을 세우셨네.
盛業今如此,이루신 위업이 지금 이와 같으시고
傳經固絕倫。경서를 전하심에 있어서도 비할 데 없이 뛰어나셨네.
豫樟深出地,위좌상의 인물은 예장나무 깊은 땅엥서 난 듯하고
滄海闊無津。창해 넓어서 나루터 없는 듯하네.
北斗司喉舌,북두성이 하늘의 목.혀인 것처럼 천자의 조칙을 지으셨고
東方領搢紳。필공(畢公)처럼 신하들을 거느리시네.
持衡留藻鑑,저울대처럼 공평하게 인물을 평가하셨고
聽履上星辰。발소리 듣고 사람을 알아보듯 궁전에 드나드셨네.
獨步才超古,독보적인 재능은 옛 사람들을 능가하고
餘波德照鄰 좌상의 덕의 여파는 이웃 나라에게까지 비추네.
聰明過管輅,총명하기 管輅보다 더하시고
尺牘倒陳遵。편지의 글은 진준을 압도하네.
豈是池中物,어찌 용이 못되고 못 속의 물건이 되고 말까?
由來席上珍。줄곧 학문을 닦고 불러주기 기다렸네.
廟堂知至理,조정에서는 지극한 도리를 아셨으니
風俗盡還淳。풍속이 모두 순박하게 변하였네.
才傑俱登用,재능이 뛰어난 이들을 모두 등용하시니
愚蒙但隱淪。어리석은 자들만이 초야에 묻히었네.
長卿多病久,사마상여처럼 병이 많이 든지 오래이고,
子夏索居貧 자하처럼 쓸쓸한 삶은 가난하네.
回首驅流俗,회고해보면 세상 속사에 몰리어서
生涯似衆人。생애는 일반 백성들과 비슷하네.
巫咸不可問,무함같은 점장이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鄒魯莫容身。공자가 노에서 맹자는 추에서 몸 둘 곳이 없었던 것 같네
感激時將晚,이처럼 감격하고 있는 사이에 때는 저물어 있고
蒼茫興有神。아득히 흥 속에 신묘함이 있네.
爲公歌此曲,공 위하여 이 노래 하노라니
涕淚在衣巾。눈물이 흘러 옷과 수건을 적시고 있네.
*老臣이 直臣. 舊臣이라 된 판본도 있다.
*餘波德照鄰이 餘陰照北鄰이라고도 하였다.
▶두보가 천보 14년 봄에 쓴, 좌상 韋見素(위현소)에게 추천을 바라면서 바친 干謁詩이다. *천보 15년에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위현소가 두보를 등용할 생각이 있었다 해도 그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韋見素(위현소) : 자가 회미. 문부시랑을 역임한 후 양국충에 의해 발탁되어 무부상서,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제수되었다. 공평무사한 인사로 많은 이의 칭송을 받았으므로 두보도 기대는 마음이 컸다. 두보는 수많은 유력 인사에게 간알시를 바쳤으나 별무소득하였다. 장안십년시기에 바친 많은 간알시 중에 거의 마지막 시기에 창작된 것으로 생활의 어려움과 절박함이 잘 드러나 있다. ▶鳳曆 : 少皞[황제의 아들]의 시대에 鳳鳥氏를 曆正으로 삼았으므로 후세에 曆을 鳳曆이라 한다.▶軒轅 : 黃帝가 살았던 곳. → 황제를 지칭. ▶軒轅紀 : 봉력을 쓴 것은 소호이나 그가 황제의 아들이므로 ‘헌원’이란 말을 쓴 것으로 보임. ▶龍飛 : 현종이 재위한 것을 의미 *개원원년 ~ 천보14년은 43년이나 槪數로서 40년이라 함. ▶一氣 : 천지 간에 가득찬 큰 기운, ▶洪鈞 : 큰 녹로가 원의. 하나의 큰 기운이 하늘을 운행함. 태평스러운 세상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 ▶霖雨 : 3일 이상 내리는 비. 장마. *<書經 說命>에 傅烈을 칭하여 ‘그대를 큰 가뭄에 霖雨로 삼겠소.’하였다. *혹은 천보 13년 가을의 계속된 장마에 민심이 소란해지자 황제가 陳希烈을 물러나게하고 위현소를 재상에 등용한 것을 말한다고 보기도. ▶鼎鼐 : 가마솥. *<서경 열명>에 “고종이 傅說에게 ‘국을 만들 때 그대는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시오.’ 하였다.” ▶范叔 : 범雎.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 숙은 그의 자. 秦나라 昭王에게 遠交近攻策을 제시. 客卿에 제수되었으며, 얼마 후 재상이 되고 應侯에 피봉 ▶韋賢 : 한나라 鄒 사람. 자가 長孺. 魯詩를 익혀 학문에의 뜻이 돈독하였다. 鄒魯大儒라고 칭해졌다. 昭帝時에 光祿大夫에 이르렀고 霍光등과 함께 宣帝를 옹립. 후에 蔡義를 대신하여 재상이 되었고 扶陽侯에 피봉. ▶沙汰 : 쌀을 일어 모래를 가려냄. 위현소가 재상이 되어 혼탁해진 정사를 바로잡음. ▶應圖 : 그림에 맞는 말을 구함. ▶應代 : 應世. 한 시대를 놀라게 하다. ▶盛業과 傳經 : 盛業은 범숙과 관련된 일이고, 傳經은 韋賢과 그의 아들 韋玄成이 經書로서 승상까지 이른 것을 말한다. ▶예장 : 큰 나무 이름. 위현소의 학문이 뿌리가 있음을 의미. ▶喉舌 : 왕명을 출납하는 재상을 지칭. <후한서 李杜열전>에 ‘지금 폥에게 상서가 있음은 하늘에 북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북두는 하늘의 喉舌이요 상서는 또한 폐하의 喉舌입니다.’하였다. ▶開壽域 : 태평한 시대를 엶. ▶持衡 : 저울을 지니다. 인재 선발을 담당하다, ▶藻鑑 = 品藻鑑別 = 藻鏡 : 관리 선발시 밝게 살핌. ▶上星辰 : 별에 오르다. 위현소가 황제의 신임을 얻어 황제의 측근에서 정치를 보좌하게 된 것을 의미. ▶德操隣 : 덕이 이웃을 비추다. *韋氏와 杜氏 집안의 세교로 보는 경우도 있다. ▶才超古 : 재주가 고인을 초월하다. ▶청리 : 신발 끄는 소리를 듣다. 황제에게 인정 받다. *<漢書 鄭崇傳>에서 “동생 정립이 高武侯 傅喜와 동문수학하여 우의가 좋았다. 부희가 대사마가 되어 鄭崇을 추천하니 哀帝는 그를 발탁하여 처음에는 그의 말을 채용하였다. 정립이 매번 알현시마다 가죽신을 끌었으므로 임금은 웃으며 ‘나는 정상서의 신발 끄는 소리를 안다.’하였다. ▶時將晩 : 때가 장차 늦으려 함. 노쇠함. ▶管輅 : 삼국시대 위나라 평원인.자는 공명. 길흉을 판단하고 관상 등에 정통하였다 한다. *<당서>에 “숙종이 지덕 원년 10월에 묘성을 범한 별이 있었다. 위현소가 아뢰었다. ‘안록산이 장차 죽을 겁니다. 복이 응하는 것은 덕에 있고, 화가 응하는 것은 형벌에 있습니다. 묘성은 불을 기피하는 데, 운행하여 불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묘성이 저녁 무렵 南中하는 것이 바로 이때입니다. 명년 정월 병인에 안록산은 아마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뒤 모두 징험함이 있었다.“ ▶回首 : 회상하다. ▶流俗 : 부미한 세속. 혹은 세속의 이치를 좇아 자기 뜻을 버리고 같이 흘러감.
▶巫咸 : 무당 季咸. <列子 黃帝>에 “신통한 무당이 鄭나라에 와서 거하였다. 계함이라 불렀는 데, 사람의 생사 존망 화복 수명을 알았다.”하였다. ▶興有神 : 흥이 일어나 마치 신이 깃든 것 같다. ▶廟堂 : 종묘와 명당. 조정의 의미. ▶陳遵 : 한나라 두릉 사람. 자가 孟公. 성품이 호탕. 분방. 好酒하고 글씨를 잘 썼다. 그의 편지 글을 받은 사람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하여 잘 보관하였다 한다. 위현소가 멋진 글씨로 편지를 잘 썼음을 의미.
▶東方領搢紳 : 홀을 띠에 꽂고 대대를 띤 사대부들. “書經 康王之誥에 ‘필공이 동방 제후들을 거느리어 應門으로부터 들어와 오른편에 섰다.”하였다. 畢公이 동방의 제후들을 거느리듯 韋見素가 여러 현신들을 거느리었음을 말한다.
【官定後戱贈】
●不作河西尉,하서위를 맡지 않는 것은
淒涼爲折腰。처량하게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이었지.
老夫怕趨走,늙은이[*두보 자신] 분주히 뛰어다닐까 두려웠는데
率府且逍遙。솔부는 그런대로 한가로우리.
耽酒須微祿,술을 즐기려면 적은 봉록이나마 필요해서
狂歌托聖朝。미친 듯 노래하며 성스런 조대에 몸을 기탁하니
故山歸興盡,고향 산천에 돌아갈 흥취 다하여[흥취가 그만 사라져]
回首向風飆。고개 돌려 돌개바람 바라본다.
▶원주에 ‘당시에 하서위 직을 면하고 우위솔부병조가 되었다.[時免河西尉 爲右衛率府兵曹]라고 하였다. 천보 14년 10월 경의 일이다. 戱贈은 장난삼아 자신에게 준다는 뜻.
▶河西尉 : 河西縣의 縣尉.
▶折腰 : 도연명의 고사 참조.
▶率府 : 관서명. 秦나라 때 五率府가 있었다. 左.右.前.後.中率府가 그것이다. 당나라에 와서는 十率府가 있었다. 左右衛率. 左右司禦率. 左右淸道率. 左右監門率. 左右內率이 그것이다. 모두 태자의 속관으로 동궁의 兵仗. 儀衛. 門禁. 徼巡. 斥候 등의 일을 맡았다. 솔부의 지위는 河西尉보다는 조금 위인 정팔품하에 속한다.
【月夜】
●今夜鄜州月 오늘 밤 부주의 달을
閨中只獨看。규중에서도 홀로 보겠지.
遙憐小兒女,멀리서 어린 아이들을 가여워하나니
未解憶長安。장안을 그리는 줄 모르리라.
香霧雲鬟濕,향기론 안개는 구름 같은 머리카락을 적시고
清輝玉臂寒。맑은 달빛에 옥 같은 팔은 차가우리라.
何時倚虛幌,어느 때나 빈 휘장에 기대어
雙照淚痕幹 함께 달빛 아래 눈물 자국 말릴까.
▶안록산의 난 때 두보는 장안이 함락 되기 전 가족을 부주에 피난시키고, 부주에서 행재소로 가다가 도적에게 잡혀 장안에 연금 되고 말았다. 이 시는 천보 15년 그 무렵 장안에서 부주에 있는 처자식을 그리며 지은 것. ▶鄜州 : 오늘날의 섬서성의 富縣 일대. 당시 두보 가족은 부주의 서북 30리에 있는 羌村에 있었다. ▶憶 : 그리다. 걱정하다.
▶虛幌 : 피난 가고 사람 없는 고향집의 빈 휘장. ▶雙照 : 마주하여 달빛을 쬐다.
【春望】
●國破山河在 나라 깨지고 산하만 남아
城春草木深 봄이 온 성에는 초목이 짙구나.
感時花濺淚 시절을 느꺼워하니 꽃은 눈물을 뿌리게 하고
恨別鳥驚心 이별을 한하니 새는 마음을 놀래킨다.
烽火連三月 봉화는 석 달을 이었는데
家書抵萬金 집의 편지는 만금에 달한다.
白頭搔更短,흰 머리는 긁을수록 더욱 짦아져
渾欲不勝簪。아주 비녀를 이길 수 없구나
▶천보 15년 7월 안록산 반군이 장안을 함락하자 현종은 촉으로 몽진하고 황태자인 숙종이 장안 북서쪽 영무에서 행재소를 열고 즉위한 후 군대를 정비한 후 반군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보는 가족들을 인솔하여 부주 강촌에 안돈시킨후 숙종이 있는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이 시는 장안에 억류된 이듬해인 지덕 2년 봄에 지어진 것. 국가. 가족. 자신의 신세에 대한 깊은 시름과 탄식이 다층적으로 결합된 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