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정림사지
첯번째 부자
조선시대 지금의 세종시에 편입된 연기군에 최부자가 천석군 부자로,
돈에는 환장해서 소작인들에게 온갖 못된짓은 다하면서 ,흉년이 들어
어려운 상황을 되어도 배려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다.
자기 재산을 후대에도 보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하여
인근 고을 비숫한 천석군 부자 이부자에 대하여 오대째 천석군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하여 직접 이부자한테 조언을 들고 싶어 이부자를 찿가가 보기로 하였다.
두번째부자
최부자가 이부자집을 찿아 이부자를 찿았으나 출타중이라고 하고 하인이
사랑에 안내만 하고 꼬빼기도 보이지 않고 저녁때가 되어서 달랑 물한껍만주고 가는것이 아닌가.
아니 아무리 구두세로 지독하다고 해도 자기보다 더하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다음날도 쫄쫄이 굻고 지독한 영감쟁이라고 욕만하고 자기 고을로 가는길에,
마을 정자나무아래 동내사람이 모여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동내 사람 얼굴이 자기고을
사람과는 딴판으로 편안하고 여유로운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않았다 , 저런 지독한 구두쇄 이부자한테 소작농으로
살려면 힘들것인데 이해가 가지않아 , 그사람들한테 이부자가 어떤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사람들이 하는말" 우리는 이부자 어르신때문에 먹고 사는데 걱정이
전혀없다고 한다.
이부자는 5대째 내려오는 부자의 방법은 천석까지만 이부자가 유지하고
열심히 한 소작인은 자기 재산으로 불려 일하는것도 보람있고 모든것이
여유롭다고하는것이 아닌가.
세번째 부자
미국의 최고 부자카네기가 55세쯤 몸이 이상이 있어, 병원에서 검진하니
앞으로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의사한테 듣고
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게 뭔가, 지금까지 앞만보고 재산을 모았고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
너무나 허망하였다.
이때 병원접수쪽에서 한 여인이 울부짖고 있었다
"제발 우리아이 치료 좀 해달라고" 이여인은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받으면
아기가 죽는다고 , 그러나 병원쪽은 병원비가 없으면 치료해 줄 수 없다고
하니 울부짖고 있는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때 카네기는 병원 입구에 써놓은 문구 "남에게 도움주는것이 이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준다"
카네기를 생각했다. 지금까지 최고의 부자가 되기 까지 남에게 가슴아프게 한일들이
주마등같이 뇌를 스치고 갔다.
그렇다 지금부터라도 살아 있는 동안 남에게 베풀면서 살자.
카네기는 비서에게 그여인의 병원비를 모두 지불케 하여 치료를 받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후에 치료후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카네기는 돈 벌때 느끼지 못한 행복함을 느끼고
," 아 이것이었구나" 하고 ,본격적으로 병원도 대학교도 건립하여 사회에 헌신하기
시작하여 최고의 부자이면서 자선 사업가로 이름을 남겼다.
네번째 부자
함흥에서 피난민배에 오르면서 임길순씨는 각오를 다졌다.
'앞으로 남은 인생 남에게 헌신하면서 살겠노라고'
이분은 진해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가 대전역에서 열차가 문제가 생겨
오래 정차하는일 발생하자. 아에 대전역에 하차하여 대전에 삶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대흥동 성당에서 구호품으로 밀가루 두포대를 받아, 끼니를 해결하고 남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대전역에서 팔기시작하였다.
나무 간판엔 "성심당" 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루에 빵 100개를 무조건 남에게
베풀고 그날 팔고 남을 빵도 어려운 이웃에게 주었다.
이렇게 시작한 성심당은 대전역에 매장을 오픈하고 , 새롭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대전의 명품으로 알려져서, 매출 년1천억이상
순이익이 300억이 넘어 전국 최고 많은 매장을 가진 빠리바게트를 넘어섰다
어곳은 일년 딴 한번 휴무하는데 ,직원체육대회 하루뿐이다.
네번째 부자가 진정한 부자인것 같다 .
첫댓글 첫 번째 부자를 제외하고는 3명의 부자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다들 괜찮은 부자들
같아요ㅡ어째거나 이 세상을 하직할때는
땡전 한 푼 못 가지고 가는 인생ㅡ
가능하면 베풀다가 가는 인생이 멋진
삶이라고 생각되네요~~~
자랑스런 우리 후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