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성찰 -소광희 외 13인 문예출판사

[벽 산]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소광희 외 13인, 2005, (주)문예출판사
 

<머리말> 영원한 수수께끼, 인간의 자기 인식
소광희(서울대 명예교수)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자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 '자기'가 무엇인지는 자신도 명확하게 모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이며 누구인지 확실하게 모르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1. <불교> 인간 - 그 염정(染淨)의 이중주
김종욱(동국대 불교학과교수)

  서양에서 인간에 관한 논의는 인간을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종속관계, 또는 같은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 사물 간의 우열관계에서 다루고, 중국에서는 인간을 천지의 도와의 도덕적 합일이라는 천인관계 속에서 다룬다. 그러나 불교에서 인간은 윤회와 해탈의 과정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루어진다.

  불교에서 인간은 창조신과 피조물, 하늘(天)과 땅(地)이라는 두 실재자 사이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마음가짐에 따라 미계(迷界)와 오계(悟界) 사이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존재는 단순한 부유(浮遊, 이리저리 떠돌아다님)가 아니라, 어리석음을 딛고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轉迷開悟)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인간을 미오(迷悟)의 이중적 복합성과 마음가짐에 따른 전미개오의 가능성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불교의 거의 모든 사상에 담겨 있다.

  인간의 상황이 미오(迷悟)의 이중적 복합성으로 되어 있고, 전미개오(轉迷開悟)가 오직 마음가짐의 전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교에서 인간의 탐구가 마음의 탐색으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이 비본래적 현실정과 본래적 가능성 혹은 염(染)과 정(淨)의 구도에서 수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을 염과 정의 구도에서 탐색하는 것은 서양에서 이성과 동물성, 유가에서 선과 악, 도가에서 정(靜)과 동(動)의 구도에서 인간을 보는 것과 대비된다. 불교적 인간관의 이런 구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심성본정 객진소염(心性本淨 客塵所染)"이다.

  '심성본정 객진소염'이 가리키는 상황은 비유하자면, 구름[번뇌]이 달빛을 잠시 차단하지만 구름이 지나가면 달[마음]은 도로 본래대로 밝게 빛나는 것과도 같다. 이럴 경우 달은 구름에 의해 가려지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원래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붓다란 법(法, dhama)을 보아 깨달은 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법을 본 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따라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 <노자> 인간은 인위적 교육과 무관한 자연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은해(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교육학은 가능한 인간의 실현을 위해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의도하는 학문이다. 반면에 노자는 가능한 인간의 실현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계획적 - 의도적 노력을 거부한다.
  종래의 교육은 현실세계에서의 적응을 돕는 일에 치중하고 인간성 회복에 소홀해왔다. 노자는 도를 받아들여 인간성을 회복하고, 도에 의거해 현실세계를 이해할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도에 대한 인식과 순응은 학문을 배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문하지 않음을 배움(學不學)"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노자가 현실세계에 대한 학습을 중시하고, 그 근원에 대한 사유를 경시하는 교육학적 경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학은 옛부터 항상 인, 의, 예와 같은 덕목을 강조하여왔다. 그러나 노자가 보기에 그러한 덕목은 단지 드러나는 행동이자 의도적 행동, 강요된 행동으로서의 하덕(下德)에 불과하다. 세상 문제의 원인이 상덕(上德)의 상실에 있다고 보는 노자는, 예의범절의 강조에 불과한 교육학적 윤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의 덕(上德)에는 드러나는 행위가 없고, 의도적인 행위도 없다.
  상위의 인(上仁)에는 드러나는 행위가 있으나, 의도적 행위가 없다.
  상위의 의(上義)에는 드러나는 행위가 있고, 의도적 행위도 있다.
  상위의 예(上禮)에는 드러나는 행위가 있고, 응함이 없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강요한다.

  교육은 옛부터 우둔 대신 지혜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때의 우둔에 대비되는 지혜는 사실상 남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게 하는 지식에 다름이 아니다. 노자는 이러한 지식이 속임수와 도적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오히려 일상적 관점에 의하면 지혜가 아니라 우둔에 불과한 것들인 현덕(玄德)과 지상(知常)의 필요성을 지적하다. 이러한 지적은 지적(知的) 강조의 교육학적 경향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종래의 교육학은 학생 스스로 이해할 시간의 확대보다 학생의 학습할 시간의 확대를 추구해왔다. 이는 사유보다 학습을 강조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노자는 지식과 언어의 한계를 지적함에 의해 학습의 강제보다 독자적 사유와 독자적 이해의 기회를 마련해 줄 필요를 밝히고 있다.

  노자의 인간관이 앞으로의 교육에 대해 시사하는 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수의 활동이 아니라, 인간 형성의 활동이라면, 교육은 언어적, 강제적 학습이 아니라, 무언의 솔선수범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
  ② 교육은 학생이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것에 앞서 현실세계를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도모해야 한다.
  ③ 교육은 인간의 욕망 대신 천지의 도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④ 교육은 인, 의, 예, 지와 같은 덕목보다는 현덕을 우선시 해야 한다.
  ⑤ 교육은 경쟁의 능력으로서의 지식보다 사람 및 사물과의 공존의 능력을 도모해야 한다.
  ⑥ 교육은 개인중심이나 인간중심의 사유경향에서 벗어나서, 개체와 전체의 균형의 방도를 사유해야 한다.

3. <유학> 이이 - 예(禮)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봐야 하는 인간
정원재(서울대 철학과교수)

  지각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여러 이해 방식 중의 하나이다. 지각(知覺)이란 외부의 대상에 대해 반응하고[知] 이 반응의 결과를 의식하는[覺] 능력이다. 곧 지각설에서는 인간의 정서적 반응, 나아가 인간의 활동 전체를 외부의 자극[感]에 대한 반응[應]으로 파악한다. 이에 따르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생겨난 정서적 반응들은 희노애락의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며, 이것들은 다시 외부 대상을 좋아하고[好] 싫어하는[惡] 두 가지로 단순화시켜 볼 수 있다. 그리고 외부 대상을 좋아하는 반응은 다시 그 대상을 가까이 하려는 욕구로 나타나며, 외부의 대상을 싫어하는 반응은 그 대상을 밀쳐내려는 욕구로 나타난다.

  지각설에서는 인간 외적인 자극을 먼저 고려하는 까닭에, 도덕적 실천의 계기가 인간의 본성 안에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 실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외적 자극에 의해 산출된 특정한 반응이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를 판정할 수 있는 외적 기준의 도입이 요청된다. 현실적으로 이 기준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규범의 체계, 구체적으로는 예(禮)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된다. (...) 따라서 지각설에서는 인간의 정서적 반응, 나아가 인간의 행위는 본래적으로 선과 악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이 되는 규범 체계에 들어 맞는지 여부에 따라 그 선악이 결정된다.

  이렇게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 각 개인의 정서적 반응이 옳고 그른지 살필 때, 이는 그 반응의 결과를 의식하는[覺, 察, 識] 것이기도 하다. 이 의식의 결과 어떤 반응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정되면, 인간은 이 반응이 유도하는 욕구대로 계속 행위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문제는 이 선택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구가 항상 도덕적인 방향으로 흘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잇으려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여 예를 좇아 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각설 계열의 철학에서는 도덕 실천의 여부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의지[志]우■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4. <플라톤> 인간, 이성과 반이성의 복합적 존재
최 화(경희대 철학과교수)

  플라톤에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대비해서 볼 때 이성성이 그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는 하지만 결코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자는 아니었고 육체와 결합되어 있는 존재자였으며, 그 이성마저도 진정한 신적 이성이 아니라 불순한 중간적 이성이었다. 따라서 인간을 플라톤적으로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신과 짐승의 "중간적 존재자" 또는 영혼과 육체의 "복합적 존재자" 정도로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너무나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따라서 그것을 정의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마도 진실에 가장 가까운 판단일 것이다.
  플라톤에게 인간은 결국 영혼과 신체의 결합체로서, 영혼의 각 부분인 이성, 기개, 욕망이 신체의 머리, 가슴, 배에 대응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들의 집단도 영혼의 세 부분과 동일한 구조를 가질 때 가장 잘 기능한다.
  국가를 지도하건 개인적 수양을 하건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은 결국 이성을 발현하는 것이다. (...) 이성의 궁극적 지향점은 최고의 형상이 되며, 불변의 본성에 대한 명상이 인간의 최대 목적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대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기반을 다진 후 존재 자체의 본성을 탐구하여 결국에는 모든 존재에 빛을 던져주는 선의 이데아를 파악함으로써, 영혼을 정화하고 우주의 질서에 가능한 한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국가를 지도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나머지 시간은 우주의 질서를 사색한다. 그러한 영혼은 죽은 후에도 천상으로 올라가 신들과 함께 노닐 것이다.
 

5. <기독교> 인간은 신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
강학순(안양대 철학과교수)

  철학적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의 빛"에 의해 인간을 탐구하고자 한다. 반면에 기독교적 인간관에 있어서는 "신앙의 빛"에 의해 인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신앙의 빛이란 신의 계시와 말씀인 성서를 진리로 믿는 데서 출발한다. 즉 성서에 기록되어 잇는 인간에 대한 증언들을 진리로서 믿는 것이다.
  그러면 성서는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인간 존재는 모두 신에게 반역하여 "악"과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죄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죄는 종교적 의미로서, 그것은 신에게로 정향해 있지 못하고, 신과 어긋나 있는 즉, 올바른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른바 죄를 범하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의 상태에 있기에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신에게로의 근본적인 전향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는 철두철미 인간 안에서 또는 이성의 빛 안에서 궁극적 구원과 희망을 두지 않고, 신이 주시는 은총의 빛과 신앙의 빛 안에서 인류의 구원을 설파하고 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은 유한한 것이고 사멸할 것인 반면에, 신의 나라는 영원할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제 인간은 신의 형상을 상실하여 신과 불화 상태에 놓인 "옛사람"(비진리와 어두움과 죄의 노예)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를 통한 신과의 화해상태에 놓인, 즉 신의 형상을 회복한 "새사람"(진리와 사랑과 빛의 자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궁극적인 인간의 존재론적 전향에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달려있음을 성서는 증거하고 있다.

6. <칸트> 인간은 유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 위대함을 꿈꾸는 형이상학적 존재다.
이선일(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인간은 유한한 존재자이다. 하지만 인간은 식물과 동물 같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유한자가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이러한 유한성을 뛰어넘어 무제약자(無制約者)와 하나가 되고픈 동경을 간직한 형이상학적 존재자이다.

  칸트가 사고방식의 혁명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인간의 자화상은 자신의 유한성을 심려하는 인간이 아니라, 유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위대한 인간이다. (...) 사고방식의 혁명의 목적은 유한성에 대한 심려가 아니라, 유한성의 극복이다. 자연의 입법자, 도덕의 입법자, 자연의 합목적성의 정점으로서의 인간은 계몽적 근대인이 추구하던 이상을 정초하기는 하되, 인간 이성의 유한성의 본질은 여전히 비밀로서 남겨 놓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한하다. 존재의 밝음에로 탈출하는 한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인간의 유한성의 본질은 존재와의 관련이다. 인간의 사유는 결코 이성의 자발성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이 존재의 밝음에 근거하는 한, 인간의 사유는 존재에 의한 사유요, 그러기에 존재를 위한 사유가 되어야 한다. 존재자의 한복판에서 존재자에 의존한 채 실존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 안에서 그때마다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드러나는 관계 맥락, 다시말해 존재를 심려하면서 존재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유한한 인간이 위대해 지려고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유한성으로서 기꺼이 떠맡아 유한성을 심려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비로소 확보된다.

7. <셸링> 인간과 자연은 모두 근본적으로 자유롭다.
박 진(동의대 철학과교수)

   셸링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을 지양함으로써 자연과 정신을 동일한 자유의 원리에 의해 근거지우러 시도한다. 절대자를 자연 안에 내재하는 생산적인 힘에서 찾고자 했던 자연철학의 시기와 더 나아가 정신과 자연, 주관과 객관, 관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동일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동일철학으로의 전개과정은 자유의 원리를 자연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 시도요, "자유"라는 궁극적인 원리에 의해 자연과 정신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연철학과 동일철학의 시기에 이르러는, 자아만이 절대자요 자유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자아, 양자 모두 동일하게 절대적인 주체요 자유라고 간주된다. 그런 한에서 자연은 말하자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정신이요, 정신은 깨어나 스스로를 의식하는 자연이다. 셸링의 자연철학에서 말해지는 자연은 기계적인 필연성이 지배하는 죽은 자연이 아니라 자유를 원리로 하는 생동하는 자연이다. 따라서 자연과 자아 양자의 궁극적인 근거는 동일한 절대자요 자유다.
 

8. <헤겔> 인간은 인정받기를 원하는 존재다.
강순전(명지대 철학과교수)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의식이다. 인간은 자기의식을 갖기 때문에 수치심을 가질 수 있고 자존심 상해한다. 헤겔은 인간이 자기의식으로서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존재라고 보며, 사회를 자기의식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인간들이 벌이는 인정투쟁의 장으로 본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돈을, 다른 사람은 권력이나 명예를 꼽는다. 하지만 그들이 각기 다른 대상을 추구하더라도 그들이 이 대상들을 수단으로 하여 추구하는 목적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인정을 갈구하는 자이고 인생은 인정투쟁의 장이라는 헤겔의 통찰은 우리에게 심오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자의식을 갖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쓴다. 특히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하루 동안의 일을 반성하면서,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생각하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를 후회하며 남이 자신에게 행한 행위에 대해 자존심 상하여 분개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예속을 용인하고자 하지 않으며, 자신이 상대와 동등하게 인정받지 못할 때 진정으로 상대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으로 타인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만이 그 자신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9. <마르크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이자 계급적 존재다.
손철성(경북대 윤리교육과교수)

  인간은 창조적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대상화시키며 또한 이러한 대상화된 세계에서 자기를 직관하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 그래서 인간은 '의식적'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인 노동을 통해서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보여주며, 이러한 노동을 통해 생산된 대상 속에서 자기를 의식한다. 노동은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유적 본질을 실현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장이자 계기인 것이다.

  시대에 따라 물질적 생산 조건 및 사회 관계가 변화하면 이에 다라 인간은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의식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시대의 한 사회에서도 개별 인간들은 사회관계, 특히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나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 개인이 어떤 계급에 속하는가는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나 생산관계에서의 지위 등에 의해 결정되며 이에 따라 그 개인의 인격적인 측면도 결정된다. 즉 개인의 본질적 측면이나 특성은 사회관계, 특히 생산관계에 의해 조건 지워진 계급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소수에게만 자아 실현의 기회를 부여하고 대다수에게는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소외시키는데 비해,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개인이 풍부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소외의 관점에서 지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전면적인 자아실현이 가능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10. <니체> 인간은 자신을 초극해야 하는 존재다.
박찬국(서울대 철학과교수)

  타인들에 대한 진정한 지배는 자신에 대한 지배에 기초한다.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남을 지배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란 이러한 의미에서 무엇보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힘에의 의지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양하는 것, 즉 자신을 보다 높은 단계로 올리고 자신에게 보다 큰 폭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초극(超克)'이 힘에의 의지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이 약할 때 자신의 현실을 스스로 개척할 의욕을 갖지 못하고 신이나 피안 혹은 미래의 이상 사회란 신기루를 만들고 그것이 자신의 현실적인 고통을 햐결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 그러나 진정한 힘에의 의지란 자기 강화와 자기 극복에의 의지이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는 의지다. 이러한 진정한 힘에의 의지는 지상의 무상함과 간난(艱難)을 피안이나 먼 미래의 이상사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며, 이는 힘에의 의지 자체의 극도의 강화에 의해서 일어난다.

  예술가의 창작행위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뿐 도덕적으로 선하고 악한 것은 없다. 예술은 도덕과 다른 척도를 갖는다. 어린이의 유희라는 것도 흥미있는 유희가 있고 재미없는 유희가 있을 뿐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적 비난도 질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생성의 무구(無垢)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경우 무구하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와 무죄라는 범주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선악의 피안에 서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의 삶도 예술가의 창작행위와 어린이의 유희와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란 힘들의 유희이다. 인간은 서로의 힘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유희하다가 미련없이 사라진다. 인간의 삶이란 바다가 자신과 행하는 유희와 다르지 않다. 바다는 잔잔하게 사그라지다가 다시 파도를 일으키고 다시 사그라진다. 이러한 삶의 유희에는 어떤한 목적도 의미도 없다. 유희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인간은 이러한 삶의 유희에서 어떠한 목적도 따지지 않고 지금 여기서의 유희에 몰두할 뿐이다.

11. <베르그송> 영화처럼 사는 인생
차건희(서울시립대 철학과교수)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이 그렇듯이, 험난한 인생 여정은 한 순간의 장면으로 묘사되고, 스치듯 지나친 인연이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들로 일생동안 아름답게 기억되는 그런 이미지의 삶을 우리는 '영화처럼 사는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며 산다. 내가 아닌 수많은 내가 다양하게 겪는, 도무지 실제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극적인 삶들을 누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삶 자체가 아닌가?
  인간은 자신의 지속을 의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심지어 인간이 자신의 지속과 구분될 수 없다고 본다면, 인간은 그 자체 의식적 지속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에 불확실한 미래를 부단히 예견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그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인간은 지속하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그 지속을 의식하기 때문에 불안한 동물이다.

  동물은 지속하지 않는다. 동물은 자신의 지속을 의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삶을 살지도 않는다. 보편적인 지속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지속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흘러갈 분이다. 동물들은 순간을 살고 순간을 향유하는 존재이다. 동물에게는 보이는 불안의 부재와 종적 안정성 내지 반복성은 영속적인 변화와 창조로서의 생명의 진화 기재가 더 이상 작동하고 잇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지칠 줄 모르게 휘날려야 할 생명 진화의 깃발은 오로지 인간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인간만이 스스로의 지속을 의식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부에서 들여다볼 때, 의식적 존재로서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며, 거기서 동일한 두 순간이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 상태가 부단히 변화하는 이유는 기억이 아닌 의식이란 없기 때문이며, 현재의 감정에다 지나간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 첨가되지 않으면 한 상태의 계속적 흐름이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의식이 기억이라면 인생은 흘러가는, 즉 늙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한다는 것과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상태 그 자체가 이미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는 절대로 분할 불가능하고 지침대가 필요없으므로 우리의 의식상태들을 가지고 변화를 결코 재구성할 수는 없다.

12. <후설> 인간은 사실인의 차원을 넘어선 지향성의 주체이자 세계구성의 주체다.
이남인(서울대 철학과교수)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은 현대를 위기에 처한 시대로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에 의하면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병들게 되었으며 이처럼 병든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진 현대문화 역시 병든 문화이며 현대인은 더 이상 참다운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실존적인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 현대가 처한 이러한 위기의 일차적 원인은 현대과학이 병들어서 그 본래적인 기능을 상실한 채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는 데 있다. (...) 후설은 현대의 위기를 낳게 된 과학의 위기의 최종적인 원천이 바로 철학의 위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 후설은 20세기에 접어들어 실증주의가 발호하면서 철학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의 필생의 철학적 작업은 바로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현대과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참다운 의미의 철학인 현상학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후설은 인간을 다양한 유형의 영혼 활동을 지니고 있는 주체로 간주하고 더 나아가 이처럼 다양한 영혼 활동들 각각은 인간의 인식 및 삶 전반에 있어 나름의 고유한 의미 및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물리주의적 실증주의가 인간을 물리적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달리 후설은 우리가 인간을 파악하는 태도가 다름에 따라 인간이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파악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우리는 인간이 물리적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아니라, 동시에 지향성의 주체요 더 나아가 의미로서의 대상 및 세계를 구성하는 초월론적 주관이라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13. <하이데거> 인간은 존재의 진리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수정(창원대 철학과교수)

  하이데거는 거울에 비친 우리 인간의 모습은 '존재를 아는 자' '묻는 자' '물음을 받는 자' '특별한 자' '실존자' '던져진 자' '던지는 자' '드러내는 자' '초월자' '나가-서는 자' '죽을 자' '사유자' '말하는 자' '열린자' '거주자' '고향 잃은 자' ...... 등 넓고도 깊은 것이었다. 이 말들 속에는 분명한 우리의 실상이 있다. 어쩌면 이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들이다. 그렇기에 이에 관한 하이데거의 진지하고 거창한 논의가 오히려 의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겸허하게 귀 기울여보면, 너무도 당연한 그 사실들이 실은 너무도 중요한 근원적 진리임을 그는 깨닫게 해준다. 당연한 것의 놀라움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극히 철학적이며, 따라서 훌륭한 성과로 인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