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가 되어
김윤선
오십대 이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편과 전국 명산을 다녔던 순간이 삶의 명약이 되었다.
날이 새면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밤이면 집안일 공부 한 달에 두세 번 서울 남대문 평화시장을 다니며 내일은 꼬리를 물고 서 있었다. 평생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일만 반복하며 왜, 나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날개를 꺾고 살아야 하나 생각속에 늘 우울 하였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신경성 위장병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넷 낳았지만 직장생활이라곤 약 5년 고작, 평생을 아프다고만 했다. 결혼 전부터 몸이 건강하지 못한 남편은 첫아이를 낳고부터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3년에서 5년 동안 종합 진찰을 해왔다. 검사 결과 신경성 위장병이라고 하니 신약은 먹기 힘들어 약탕기를 들고 있었다. 직장에서 상사가 잘못을 지적하면 자존심이 송곳처럼 돋아 먹은 것이 올라오고 자신에게 과한 일이 생기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분을 다스리지 못해 늘 아파하니 약 20년 동안 일 년에 3개월 아내는 약탕기를 들고 있었다. 이약 저약 좋다는 약을 다 먹었지만 수시로 남편의 아픈 모습에 견딜 수가 없었다. 오래 동안 고민을 해 보다가 산으로 가면 몸이 좋아 진다는 생각에 주말마다 도시락을 준비해 남편을 산으로 보냈다.
그 때 부터 남편은 산으로 가면서 흥미를 느끼더니 혼자서 4. 5년을 철없이 뛰어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어느 산악회 회장이라는 명찰을 달고 혼자서 즐기고 있었다. 20대 청소년처럼 가정이 있는지 없는지 아들 넷을 낳기만 해놓고 아내는 혼자서 안팎으로 장사를 하며 아들 넷 도시락과 가정 살림 양가 부모님의 양육까지 정신이 없었다. 약을 달이며 너무 힘이 들어 산으로 등산을 보냈더니 철없는 사춘기 청소년이 되어있었다. 가장이라는 사람은 종일 아내가 장사를 해 놓으면 돈 가지고 은행가는 일과 가게 문열어주는 일 밖에 하는 일이 없었다. 아들 넷이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참 사춘기 시절 아이들의 교육비며 장래 진로 문제며 정성을 다 바쳐야 했던 시기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식들은 아예 신경을 꺼놓고 사춘기 소년처럼 젊은 오빠라는 명칭을 달고 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명품 등산복을 사러 다니며 모두 젊은 오빠로 통하고 전국을 다니며 좋은 것 먹고 하산을 하면 뒤풀이를 다니기도 했다. 사시사철 때로는 몇 박 며칠을 전국으로 다니고 있었다. 주말이면 철없는 아내는 집행부들 먹을 도시락까지 싸서 보내다가 약 5년이 지날 즈음 나도 산으로 가자는 결심을 했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절에서 철야 정진으로 기도에 몰두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남편의 행위가 심상치 않고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남편을 용서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늘 시장에서 온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었다. 남들은 부부끼리 등산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내가 왜! 혼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내 모습이 한심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을 시기하고 미워하면 내가 아프고 나를 죽이는 행위였다. 때로는 용서 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고 절망의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엄습한 죽음의 공포까지 분노가 일어날 때 죽을 용기로 절을 해보자 그때부터 시작한 삼천 배 절은 나를 새 사람으로 환생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내가 살 수 있는 궁리를 하다가 찌던 생활 속에서 탈피를 해보자 당신이 즐기며 노는데 나도 해보자, 모든 일을 밀쳐두고 한 달에 한 두 번 휴일 남편을 따라 등산을 다녔다.
첫날 산으로 갔을 때 온 산에 진달래 개나리 꽃이 저들 잘났다고 뽐내고 있었다. 달곰한 향기에 도취해 한참을 걷다 발밑을 내려 보니 땅에 납작 붙은 희고 노란 야생화가 별처럼 반짝이며 나도 여기 있다고 반기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커녕 발길에 밟히고 버림받은 자식처럼 구석구석 자리한 앙증스러운 생명들에게, 그래 너희들도 어린 것이 모진 추위에 죽지 않고 살아 있었네, 어떻게 참고 살았니? 예쁘고 참 아름답다. 멍하니 작은 생명에 반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은 멀리 쫓기듯이 달려가는데 높은 산을 전문 등산인들 따라가기가 힘이 들었다. 남편은 앞장을 서서 많은 사람들의 안내를 하고 그들과 함께 가면서 아내가 좀 늦으면 눈을 부라리며 못 걷는다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산은 나를 어머니 품처럼 포옹을 하니 화학 먼지에 찌던 숨통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주말마다 철야 정진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 백 번에서 삼천 번의 절을 하며 나를 다스려 왔다. 오랜 기도는 나를 하심하게 만들었고 분노를 사랑으로 생각을 바꾸어 남편을 따라 산을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은 나의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내가 산을 즐기며 좋아하니 어느새 남편이 산악회에서 탈피하여 아내와 함께 등산을 즐겼다.
회갑이 되면서 오래하던 장사를 접고 휴일이면 밥을 싸서 산으로 가면 계곡의 물소리에 도취되고 있었다. 주말마다 제주도를 시작하여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 오대산 계룡산 매화산 소백산 전국 명산을 다 섭력했다. 오랜 산을 즐기면서 가까운 천성산을 더 많이 다녔다. 교통 좋고 개인이 갈 수 있어서 약 십년동안 천성산을 다니면서 선녀가 되었다. 여름이면 모두 바다를 가는데 우리 부부는 산으로 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을 오를 때 야생화들과 온갖 풀벌레들이 함께 놀자고 유혹을 한다. 우거진 숲 사이로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성산 제 2봉까지 오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정상에 올랐을 때 상쾌한 기분은 무엇으로 표현 할 길이 없다. 하늘아래 천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사시사철 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들 때 짜릿한 쾌감에 황홀해 진다. 핏줄처럼 갈래로 이어진 길 따라 산은 골골이 병풍처럼 수를 놓고 깊은 골을 따라 굽이굽이 첩첩 어깨를 껴안은 산 아래로 네온사가 보이고 원효암, 흑용사, 안적사, 미타암, 크고 작은 사찰이 몇 십개 였던가, 1봉으로 거처 무지개 폭포까지 큰 바위아래 떨어지는 계곡 물소리는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준다.
땀이 물처럼 흘러던 순간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나는 선녀가 되기도 한다. 청정 약수를 한껏 마시며 물고기와 함께 세상의 모든 짐 다 내려놓고 물속에서 나뭇꾼과 선녀가 된다. 계곡 양쪽 숲이 터널을 이루는 사이 매미소리와 물소리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감상하는 시간이다. 큰 물줄기에서 작은 바위로 박자를 맞추어 새들과 함께 화음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분노도 미움도 찌든 때를 씻어내며 용서하는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묶어놓고 용서 못할 수많은 잔재들이 세상의 벼랑 맨 끝자락까지 위협으로 몰았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이승과 저승의 두 갈래 쌓였던 아픔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실크로드를 타고 무지개를 건너 하늘을 나는 선녀가 되었다.
신선들이 먹는 그 음식의 맛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밥이다. 휴일마다 보약을 몸속에 저장을 해 놓고 오늘도 선녀가 되어 그날을 즐긴다. 부처님의 기도가 쓰러져가던 나를 일으켜 세워 기도 속에 산은 모든 잡념들을 정화시켜 계곡의 물속에 빠져버리던 그날들, 나무꾼과 선녀가 되어 환희의 순간들이 나를 행복한 구름나라로 이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