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끝난 ‘지리산’(16부작)은 tvN창사15주년기념 특별기획 드라마다. 뭐, tvN이 창사 15주년이라고? 그렇다. 예능과 드라마 위주의 케이블채널 tvN이 지난 10월 9일 개국 15주년을 맞았다. tvN은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했다. 가령 “시청률은 7.4배 증가했다. 콘텐츠제작비도 5.7배 투자하고 있”(스포츠서울, 2021.10.14.)는 tvN이다.
지상파 방송을 위협하는 채널이 된 지도 오래다. 실제로 tvN 드라마들의 대박 시청률은 이제 일상이 된 느낌이다. 지상파들이 가뭄에 콩나듯 방송하는 이른바 대작도 tvN에선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종영한 MBC ‘검은 태양’이 150억 대작이라며 떠들썩했지만, ‘지리산’은 그 두 배인 30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왕국’이란 수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지상파들을 제치고 축구 중계권까지 획득했다. 국가대표팀의 2022카타르월드컵 예선 경기를 tvN에서 보게된 것도 그래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만 해도 스타들에게 tvN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출연하고 싶은 채널로 자리매김했다”(앞의 스포츠서울)고 말한다. 실제 많은 톱스타들이 tvN 드라마에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지리산’만 해도 그렇다. ‘지리산’은 ‘시그널’ㆍ‘킹덤’ 등을 히트시킨 김은희 작가의 신작인데다가 ‘태양의 후예’ㆍ‘도깨비’ㆍ‘스위트홈’의 이응복 PD가 연출을 맡아 큰 기대를 모았다. 전지현(서이강 역)과 주지훈(강현조 역)을 비롯 오정세(정구영)ㆍ성동일(조대진)ㆍ조한철(박일해)ㆍ고민시(이다원) 등 스타급 라인업까지 완성해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기대는 10월 23일 1회의 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 넘는 시청률에서 일단 확인된다. 2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10.7%)로 올라선 ‘지리산’이지만, 그러나 더 이상 나가지 못한 채 주저 앉아버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9.2%를 약간 웃돌았다. 따라서 2회에서 찍은 10.7%가 최고 시청률이 됐다. 최저 시청률이 7.5%로 나타났으니 나름 흥행한 드라마다.
사실 ‘지리산’은 본방사수하던 다른 드라마들과 시간대가 겹쳐 보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다른 지면에서도 더러 말한 듯한데, 지상파 방송의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는 인기로 인해 tvN 드라마를 보게 되곤 한다. 게다가 ‘지리산’은 남원시 협찬이 대대적으로 홍보된 드라마다. ‘지리산’을 외면하기 힘들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관련 보도를 잠깐 종합해보자. 남원시는 지리산을 비롯한 지역 명소를 알리기 위해 드라마 제작에 약 20억 원의 예산 투자와 세트장 건립까지 행ㆍ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9개월간 남원 시내, 광한루원, 백두대간생태교육전시관, 산동초등학교, 공용버스터미널 등 주요 관광지 35개소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남원 흥부골 자연휴양림에는 해동분소(건물 1동 252.92㎡), 무진분소(건물 1동 82.85㎡), 비담대피소(건물 1동 93.15㎡) 등 세트장을 지어 촬영하기도 했다. 가령 16회를 보면 광한루와 오작교에서 정구영이 이양선(주민경)과 데이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15회까지 본 적 없는 회상 장면이긴 해도 그 낯익음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남원시 지원을 받아 마지못해 끼워 넣은 인상을 풍기는데, 마치 정구영이 주인공인 듯한 장면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와 함께 태풍으로 불어난 계곡물, 굴러떨어지는 암석 등 어색한 CG와 함께 과도한 PPL 따위가 도마에 오른 것도 아쉬운 점이다. 가령 15회에서 과태료 부과받는 등산객이 준 영양제를 먹는 레인저 모습은 그 절정이라 할만하다.
초반부터 쏟아진 지적인데도 종영까지 그런 논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지만, 먼저 기억해둬야 할 게 있다. 어느 드라마인들 그러지 않을까만 배우들과 스탭진 노고(勞苦)가 그것이다. 촬영 상당부분을 지리산에서 했으니 영화 ‘봉오동 전투’처럼 배우들의 연기가 두 배 이상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드라마사적 의미가 폄하되어선 안될 것이다.
119 구조대원들의 산속 구조활동을 그린 KBS 2TV ‘포레스트’(2020.1~3)가 있긴 하지만, ‘지리산’은 서이강ㆍ강현조ㆍ정구영 등 국립공원 레인저들의 활약상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다. 물론 산이 배경인 드라마는 1989년 ‘지리산’, 1997년 ‘산’ 등도 있지만, 전국 국립공원에 있는 2,500여 레인저들의 활약상을 본격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한겨레(2021.11.20.)에 따르면 “<지리산>은 레인저들한테 고마운 작품이다. <지리산> 덕분에 탐방객들이 레인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김효정(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출신 레인저-인용자)은 “예전에는 저희들과 마주치면 슬쩍 보고 가시곤 했는데, 요즘은 ‘전지현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드라마의 영향이 엄청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많은 경험담을 제공했다는 서상원 레인저는 “탐방객들도 친절하게 대해주니 우리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속 조대진 같은 존재이자 레인저들의 고참인 권욱영 단장까지. 현실의 이강과 현조들은 “<지리산>으로 레인저라는 직업이 알려진 것이 가장 기쁘
다”(앞의 한겨레)고 말한다.
물론 작품성은 별개의 문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경계에 있는 땅”이란 류승룡 멘트를 깔며 시작한 ‘지리산’ 제1회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열혈 레인저 이강이 복직신청했다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가하면 현조는 아예 코마상태라며 병원에 꼼짝않고 누운 모습이어서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 그런 상태여서 종영까지 어떻게 끌고 갈지 확 궁금증을 갖게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아니나다를까 이후 드라마는 과거를 회상하며 펼쳐진다. 그런데 과거 2018년과 2020년 현재가 혼재하면서 복잡해진 서사 전달이 자꾸 터덕거린다. 빨치산이며 굿거리 등 역사 삽입은 그럴 듯하지만, ‘생령’이니 살인사건 이야기가 마구 섞여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고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드라마’를 표방한 ‘지리산’인데, 오히려 그게 패착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은 그냥 산일 뿐”이라면서 왜 의문의 살인사건 이야기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조난자 구조, 산불 진화, 수해 대처 등 레인저 활동에만 집중했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작가의 의도와 서사 전개가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 하지 못한 연출이다. 쉽게 말해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섞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리게 한 이야기 전개라는 것이다. 과연 시청자들중 이 ‘미스터리 드라마’를 온전히 이해한 이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진다.
편집도 매끄럽지 못해 보인다. 가령 8회를 보자 이강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이세욱(윤지은) 시신을 발견하는데, 현조 도움으로 화마에 휩싸인 창고를 탈출한 아이들이 숨은 동굴에 직방 가있는 식이다. 이강의 그런 모습을 통해 레인저들의 헌신적 구조활동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좀 억지스럽다.
전개상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가령 15회 마지막 장면을 보자. 이강이 김솔(이가섭) 집에 가 “네가 범인”이라며 끝나는데, 16회 첫 장면에서 그게 아닌다른 내용이 이어지는 식이다. 물론 1991년 회상 장면이 필요하긴 하지만, 회차가 바뀌면서 전회 마지막 내용이 바로 이어지지 않는 건 집중도를 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로또녀’ 최희원(박환희)이 1회성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은 것도 나로선 의아하다. 2회에서 당첨금 14억 원이 확인된 로또 복권은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그걸 찾아나선 소동까지는 그렇다치자. 희원은 5회에도 등장한다. 마침내 13회에서 복권을 찾지만, 폭우에 고립된다. 그리고 행정직원인 양선이 레인저로 출동, 그녀 구조에 나선다.
그러나 양선은 희원을 구하려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순직한다. 먼저 이게 말이 되나? A4 용지보다 얇고 카드 단말기 영수증 같은 종이인데, 로또 복권이 그렇듯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서다. 작가도 그걸 알텐데, 왜 그런 설정을 했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16회에서 희원이 레인저 면접시험까지 보는 걸로 나오니 이건 또 어떻게 봐야할지 난감하다.
결말 역시 애들 장난같아 당혹스럽다. 단순히 제 부모가 겪은 참혹한 일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김솔이 산사태 바위에 깔려 너무 싱겁게 죽는 것(혹 천벌이라 강변할 지도 모르겠다.)도 그렇지만, 멀쩡해진 이강과 현조가 지리산 일출을 보는 등산객들 속에 있으니 식은 죽 먹기식으로 사자(死者)가 살아 돌아오던 ‘펜트하우스’라도 참고한 것일까?
한편 300억 대작 ‘지리산’도 “비슬(빚을→비즐) 갚으라고”(2회), “창꼬(창고)에다 정리해둬”(6, 8회), “유슬(윷을→유츨) 던질 때”(11회) 등 발음상 오류를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6회에서 ‘창고’라 제대로 발음했던 현조가 8회에선 ‘창꼬’라 말해 실소와 함께 배우들의 대사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깨닫게 해 씁쓰름함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