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부터 잠가야한다.
<노인복지법과 (유료)노인복지주택 관련 글입니다>
지금 젖소가 도랑에 빠졌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젖소부터 건져내야 할 일입니다.
그다음에 물에 빠진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향후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파이프라인 어딘가에 무언가가 새고 있다면, 그것이 가스, 오염물질 무엇이든 간에 중요하고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했다면 무슨 일부터 해야 맞습니까?
당연히 밸브부터 잠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듯 쉽게 생각하면 될 일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에 빠진 젖소부터 건져 올리지 않고 원인을 분석하고 누구 잘못인지부터 따진다거나 가스밸브부터 잠그지 않고 걱정하고 원인을 찾고 허둥지둥하는 그런 일처럼......
노인복지법 중에는 노인복지주택 항목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이미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작은 일이 아님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밸브를 잠그지 않고 책임 있는 사람들은 대책회의만 수년째 하고 있습니다.
2004년경 경기도 파주시 그린벨트 지역에 대단지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기 좋고 서울보다 분양가도 싸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1,2차 합쳐서 약 1,000세대였고, 누가 봐도 분명한 아파트단지였습니다.
노인복지주택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령자들이 살기 편한 아파트 정도로 인식했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이런 설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외형은 아파트지만 법적으로는 아파트(공동주택)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주택법에 따라 지어진 일반 아파트가 아닌 노인복지법에 근거한 노인복지주택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노인복지주택은 주택이란 말이 들어가 있지만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노인복지주택은 주택법의 주택이 아닌 복지관계법의 복지시설중 하나라는 점
-입소(입주가 아닙니다)자격은 60세 이상 자립가능한 자만 가능(다만 배우자는 60세 이하라도 가능)
-자녀나 기타 친척은 같이 입소 할 수 없음
-주택이 아니므로 역모기지론 등의 대상이 아님
-재산세, 양도소득세, 증여세 등 세금 문제는 세법 등에 의해 일반 주택과 동일하게 적용
-공동주택이 아니므로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있을 수 없음
-그렇다면 분양 후 운영은 누가 하는가?
-일반 아파트와 달리 사업주가 운영주체가 됨(혹은 사업주가 운영권 양도 시 운영주체로 사회복지법인, 개인, 주식회사 등이 될 수도 있음)
-분양받은 후 양도(매매), 임대(전세, 월세)시 60세 이하인 자에게 하게 되면 1세대당 1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원 이하의 벌금(2007년8월 노인복지법 개정)
-기타 등등
이러한 설명 없이 분양했다면......그 결과는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그 곳은 약 80%가 60세 이하인 사람들이 세입자나 소유자 자격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이 문제로 인해 행정 소송 등 법적인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노인복지주택을 분양받은 사람들의 문제 중 하나는 분명 자기 앞으로 재산을 등기는 했지만, 재산권 행사는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세를 줄 때도 매매를 할 때도 다 6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 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향후 노인복지법 등이 바뀌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입소자격 자체가 없으므로 언제 강제로 쫓겨날 지도 모릅니다.
법적으로는 노인복지시설임이 분명한 노인복지아파트에 노인은 거의 없고, 복지서비스도 없는, 그렇다고 일반 아파트로 변경해 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곳이 전국적으로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곳이 가장 큰 규모의 시설이지만, 보통 200세대 정도 되는 노인복지주택이 그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지어지고 분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현재 공중에 붕 뜬 상태(공중부양!?!?)라는 겁니다.
사업주(건설회사 등)입장에서는 이 모든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면 분양이 잘 안 될 것이고, 전체 물량을 자격자에게 분양해야만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라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분양받든지 이후 매매 등을 통해 이 시설에 입소(입주가 아닙니다)하게 되면 이 노인복지주택은 복지시설로 설치신고가 되지 않습니다. 또는 설치신고가 취소됩니다. 그렇다고 일반 아파트(공동주택)로 전환되는 것도 아닙니다.
해결 방법이 현재로서는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새고 있는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누군가가 지금 당장 잠가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긴급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수년간 대책회의만 하고-그 결과가 벌칙규정을 추가한 2007년 노인복지법 개정입니다 - 그래도 답이 없으니 복지부는 이 문제의 연구용역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노인복지의 파이프라인 어딘가 한 군데에서 균열이 생기고 계속 새고 있는데도 새는 쪽의 파이프라인 밸브는 열어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지금 당장 올 스톱시키고 나서 그 문제점을 알아보고 검토하든지 연구용역을 맡기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실버타운이라고 불리는 노인복지주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것이 우리나라 노인주거복지의 답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고령자가 혼자라면 식사문제 등이 어려움이 많을 수 있는데 그 문제부터 해결 가능하고 주위에 비슷한 어르신들과도 사귈 수 있고 간호사도 매일 순회하면서 건강을 체크해 주는 등 좋게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노인복지주택을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현실은 좀 다릅니다.
분양형이든 임대형이든 노인복지주택은 ‘주택’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한마디로 잘못된 만남의 출발점입니다.
서울이나 그 근교에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중 잘 하고 있은 곳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인복지법 그 자체의 모순점에 의해 실제로는 입주민(입소와는 어감이 다르지 않습니까?)의 지위와 권리를 가져야 할 어르신들이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복지부에서 잘 된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 실버타운(몇 억 단위의 보증금 또는 5억 이상의 분양금을 지불해야 입소할 수 있는)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시설은 낙후되어가고 서비스는 점차 나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운영에 대해 불만이나 문제점을 제기하면 한마디로 나가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입니다. 이 때에도 임대형으로 들어오신 분은 그나마 좀 낫습니다. 적어도 보증금은 받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중산층 어르신들도 이런 고급시설에는 들어가기 어려운데, 부유층만이 입소(?)할 수 있다는 이 시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국내노인복지주택은 임대형은 최저 6,000만원부터 있고 분양형은 최대 40억까지 있습니다.2009.10월 현재 인터넷 뉴스 검색)
중간 중간에 관리비, 식비 등 비용을 일방적으로 올려도 적절히 제재할 방법도 없습니다. 운영주체가 사회복지법인이 아닌 영리법인이거나 개인일 수도 있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운영주체가 되는 공동주택도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비싸도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한 노인복지주택은 한 마디로 주택이 아닌 (복지)시설일 뿐입니다.(※주 노인복지주택내에서도 운영위원회 등 형식적인 조직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입주자대표회의를 규정한 주택법 시행규칙과 달리 법적인 근거와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말함)
한 밤에 비상호출 벨을 눌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 당초 약속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얘기해도 싫으면 나가라는 답을 듣기 십상입니다. 이 또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비교적 잘 되고 있다고 알려진 실버타운에서 말입니다.
자기 재산이지만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60세 이상에게만 팔아야한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 운영에 대해 개선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도 담보되지 않습니다. 바로 법의 문제입니다. 10억을 내고 입소해도 무료양로원에 입소한 노인과 권리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식과 같이 살고 싶거나 가족이 옆에서 수발해야할 이유가 생기더라도 같이 살수도 없습니다.
나가고 싶어도 어르신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소멸되는 보증금(전세보증금과는 다른, 사업주에 귀속되는 생활보증금)이 만만치 않거나 매매 또한 쉽지 않습니다. 외형상 주택(공동주택, 아파트)이지만 그 내용을 잘 안다면 법적으로 주택이 아닌 복지시설이기에 거래하기가 쉬울 리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곳에 계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경제력이 있기에 그런대로 일정부분 포기하고 자기비용으로 하자보수해가면서, 자기 일에만 집중하면서 잘 지내실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면 슬쩍 넘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더 큰 문제는 파주시 모 아파트(노인복지주택)의 예처럼 중산층 또는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정말 한숨밖에 안나옵니다. 대책을 마련해서 공동대응하기에도 벅찹니다. 약 1,000세대의 의견을 다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법적인 다툼을 해야 합니다. 진행 중인 행정소송의 결과가 궁금합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임대형도 운영주체가 신뢰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한 얘깁니다.
지금도 여러 군데서 이와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는 분양을 할 것이고 분양을 받을 겁니다. 쉬쉬하면서 말입니다.
복지부는 노인복지주택에 대해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는 얘기를 그동안 해왔습니다.
그 특혜는 다름 아니라 그린벨트 등 개발제한 구역에 건축허가를 해주었고 취, 등록세를 조례에 따라 50%정도 감면해준 사실을 말합니다. 이는 따지고 보면 건축주(사업주)입장에서의 특혜는 될지언정 입소하시는 어르신 입장에서는 별 혜택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본권(사유 재산권과 거주의 자유) 침해가 있을 뿐입니다.
노인복지주택(복지시설)은 고령자친화주택(주택법, 또는 특별법-예, 가칭 고령자주거안정법-에 의한 주택)으로 그 정책 추진을 국토해양부(구 건설교통부)로 넘기고 복지부는 어르신들의 복지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지금이라도 먼저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의 진행을 막아야합니다. 우선 응급조치를 취한 후 여러 대책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복지부를 비롯해서 책임 있는 분들에게 새고 있는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빨리 잠글 것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