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 공간에 만남의 날 후기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저에게 2023년은 정말 잊을 수 없었던 해였던 것 같아요. MRKH 만남의 날이라는 행사의 개최.
예전부터 같은 증후군을 가진 환우들이 모여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저는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이런 모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소규모 모임은 있어도,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없으니, 환우분들께서도 저에 대한 신뢰도 없으셨을 것이고, 또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기에 저 또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MRKH 전문의이신 윤보현 교수님의 인연으로 작년에 상반기/하반기 2회의 만남의 날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MRKH 환우 모임 중 하나인 MRKH Day도 첫 개최 때는 12명만 모였었기에, 저와 교수님은 정말 기대없이 참가자를 기다렸었고, 상반기 하반기 모두 기대와 다르게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셔서 14명-17명의 환우 분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의 감정도 나누면서 위로의 시간을 받았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던 2023년을 보내고, 올해 2월. 상반기 MRKH 만남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데, 의료파업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고, 나와 만남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환우들은 혹여나 행사가 취소될까 걱정했었지만, 교수님께서는 '번복 없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저와 기획팀 분들을 안심시켜주셨습니다.
저와 함께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팀은, 이번 행사도 반응이 좋았던 지난 해 하반기 행사처럼 교수님의 MRKH 증후군 설명 세션 및 Q&A - 소규모 라운드 테이블 - 환우 개인 발표 등의 구성으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고요. 올해 주제는 MRKH 증후군과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답니다. 아무래도 5월은 성년의 날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욕구 중 하나인 성욕에 대해서도 터부시하시보다는, 우리가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더 행복한 성 생활과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갈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취지에서 정하게 되었어요.
이번 상반기 행사에는 의정 상황으로 인해 참가자 분들도 망설이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27명이 참여 신청을 해주셨습니다. 개인 신청 및 노쇼를 제외하고 19명의 환우 + 4명의 의료진이 참여하여 23명이 참여한 행사. 점점 행사를 거듭할수록 인원이 증가해서 이 자체로 너무 감사하고 뿌듯함이 가득했었고요. 게다가 새롭게 신청을 한 환우 분들이 19명 중 9명이었으니...! 정말 엄청난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는 작년 하반기 행사 때와 동일한 장소에서 개최가 되었고, 정말 어려운 상황이심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황송할 따름...*_* 마침 더운 날이라 차가운 아메리카노/디카페인 아메리카노/라떼 등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매번 이렇게 준비하시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으신데 준비해주신 교수님과 의료진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과의 경우, 이번에는 제가 이전부터 팔로우하고 있었던 작가님의 '셀레브레이션 케이크'를 주문하고 싶어 케이크를 주문하게 되었답니다. 교수님께서 만남의 행사 때마다 "이 행사의 주인은 환우 여러분이세요. 이렇게 행사에 참여해주신 것을 서로 축하해줍시다"라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이 말씀을 듣고, '우린 정말 축하받고, 만나서 서로에게 공감이 되어주는 것 자체로 축하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취지와 맞는 케이크라는 생각이 들어 셀레브레이션 케이크를 주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세미나실 세팅을 준비해주시던 의료진 분들께서도 케이크를 보고 너무 예쁘다고,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시기도 하셨고, 입장하시는 환우 분들께 한 조각씩 나누어 드렸을 때, 케이크가 너무 예쁘고 맛있다면서 어색할 수 있었던 그 순간에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를 바라보며 코 끝이 찡해졌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30분 정도 행사 시간을 늘린 대신, 시작 시간을 조금 늦게 지정하여 1시가 아닌 1:30에 시작!
마침 연세대학교 축제가 있어 길이 많이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19명의 환우 분들이 빠르게 도착해주셔서 시간에 맞춰 세션을 진행할 수 있었답니다.
교수님의 MRKH 정보 안내 - 라운드 테이블 - 환우의 개인 발표 - 설문 조사 등으로 이루어진 이 시간. 교수님의 MRKH 정보는 이전의 행사와 동일한 내용이었지만, 들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마치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번 반복해서 봤을 때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을 발견하는 것처럼. 교수님의 세션을 들을 때마다 또 느끼는 것은, 교수님께서 정말 환우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어떻게 해야 환우들이 용기내어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는데요.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Support Group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셨는데, 그 이유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나오는 연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더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 게다가, 진단 후 환우들에게 현재 심정이 힘든 것에 관계 없이, 꼭 정신과를 방문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어쩌면 '진단'이라는 것으로 인해 놓칠 수 있는 우리의 내면을 통찰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1시간이 넘는 세션에서 많은 분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었고, Q&A 세션에서도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 자궁경부암 검사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필요 여부 외에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안심을 시켜주시는 모습에 우리가 더 안심하고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를 더 공감하고 이해시켜주시기 위해 교수님의 많은 노고를 알 수 있었어요.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다음 세션인 라운드테이블! 이번 주제는 'MRKH와 성관계(를 하게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각자 돌아가며 질문지에 적힌 내용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사실 라운드테이블은, 주제가 정해져 있더라도, 질문의 답변이 끝나면 각자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주제는 5월이니 성인이 된 후, 자신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느꼈던 감정, 관계를 맺을 때 걱정되는 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각 테이블마다 랜덤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각자 이야기하는 감정이나 분위기는 달랐지만, 제가 참여했던 테이블에는 분위기메이커신 환우분이 계셔서 우리가 각자 힘들거나 좌절스러웠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서로 웃고 "아니 당당하게 해야지 뭘 또 위축돼요!"라는 말에 함께 참관하셨던 선생님도 한바탕 웃고 찐텐션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ㅋㅋㅋㅋ(첫 만남부터 함께 참여하신 4년차 선생님과 동갑이라는 것을 아시고 "우리 친구네? 의사 친구 생겼다!"라고 말씀하셔서 너무 웃겼습니다ㅋㅋㅋㅋ)
그 외에도 다른 멤버분의 진료 상황, 진단을 받으면서 느꼈던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 이런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공감하다보니 약 90분의 시간이 흘렀고 쉬는시간까지 반납하고 이어진 질문과 의료진 분들의 답변. 또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시면서 '정말 대단하고 용감해!'라고 말씀해주시는 교수님까지. 웃음이 나오면서도 몽글몽글한 이 상황 자체가 그냥 멈추기만을 바라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순간이 멈추기를 바랐던 그 마음.
라운드 테이블 이후에는 개인 환우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번 발표를 맡으셨던 환우분께서는 자신이 진단을 받으면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지내는 이야기를 공유해주시는 시간이었어요. 노홍철 짤과 자신이 진단을 받았던 곳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무리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는 MRKH가 전부가 아닌, 가족의 일원, 회사의 일원, 누군가의 여자친구, 누군가의 친구로서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말고 자신감을 갖고 지내라는 그 말 자체가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몰라요. 저도 이제는 인생에서 전부가 아닌 일부로 생각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MRKH를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순간은 자신이 성장하기 위한 일부에 불과하다고. 이미 그대들은 성장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는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답니다.
개인발표 후 설문지와 단체 사진을 찍고 마무리한 이번 행사. 행사 후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과 간단한 식사 & 음료 한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MRKH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해서, MRKH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사회에서, 집안에서 살아가면서 각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와 지금 현재는 어떤 것들이 변화되었는지. 각자 직업에서 힘들었던 것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그 시간.
게다가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시길, 너무 따뜻했고, 위로를 받았다고. 나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굳이 설명하지 않다로 공유할 수 있어 너무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이 말씀 하나하나가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모임이 진행될 수 있을까? 정작 참가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매번 빠지지 않고 참여해주시는 분들, 항상 참여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환우, 첫 만남때는 위로받아 눈물이 났지만, 이번에는 서로 공통점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한 미소가 나왔다는 환우, 모임에 갈 때보다 끝나고 나서 더 행복했다는 환우. 많은 분들의 몽글몽글한 피드백을 받고 나 또한 힘을 내서 이 모임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인간 "나"로서와 모임 기획자 "나"로서의 간극이 크고, 저 또한 어찌보면 상대방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거나, 나와의 관계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떻게 언행을 해야할지 생각을 하곤 합니다. MRKH 만남의 날 행사는 나에게 있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첫번째라면, 두번째로는 더 나은 나로서의 성장, 한 환우로서 나 또한 어떻게 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하게 하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어디선가 읽고있을 누군가에게, 부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재차 전하며,
더 행복해진 모습으로 하반기에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We are not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