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청소재지인 구월동을 소래산의 주안봉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한 구릉을 이루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거북이와 같다 하여 구산이라고 불리웠으며, 또한 마을 언덕이 반달과 같이 휘어져있어서 구산의 '구'와 반월의'월'을 따서 구월리라고 하였는데, 1903년에는 구월리가 되었다가 1936년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정지정이 되었다. 1946년 다시 구월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구월동은 1970년까지만 해도 구릉지와 야산에서 배와 채소등을 가꾸는 근교 농촌지역이었으나 1980년대의 들어서면서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실시 신시가지가 조성됨으로써 크게 발전하였다.
구월동은 규모가 커지면서 1982년 7월 23일에는 구월1동과 구월2동으로 분동되었고, 1991년 8월 5일에 구월1동이 구월1동과 구월3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3년12월 1일에 구월1동이 구월1동과 구월4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 1월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1동, 구월2동, 구월3동, 구월4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구월동은 원래 인천부 주안면에 속해있던 성말, 구월말, 못윗말, 전재울, 뱅(뱀)골,주먹거리, 독정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 성말
인천부 주안면 소속의 성말은 1903년 인천부가 관할 동리명을 확정할 때 성리였다가 1906년에는 전재리로 개칭되었고, 1914년 이후에는 구월리에 편입되었다. 성말의 근원에 대한 것은 두가지 정도가 전한다. 하나는 마을에 성이 있어서 성리가 되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성씨가 있었던 골짜기라 해서 성말골이라고 불리워왔다는 설이다. 지금의 인천 소방본구(남부소방서) 남쪽으로 큰 연못이 있었고, 그동편으로 백성말들과 서쪽으로 앞성말들이라는 마을보다는 들의 이름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성말이 있었고, 성말 사람들이 농사짓던 농토가 바로 백성말들과 앞성말들이 아닐까 싶다.
▶ 구월말
'구월'이 이 지역의 땅 모양이 거북이 모양과 반달 모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의 구월동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인천부 주안면 소속의 구월말은 1903년 인천부가 동리명을 확정할 때 구월리가 되었고, 1906년에 지상리를 편입하고, 이어 1914년에 전재리마저 통합하여 구월리가 되었다. 인천소방본부 북쪽 길 건너가 바로 대구월, 동쪽이 소구월, 구월4동 모래내시장 근처가 큰 구월이다.
▶ 전자울
인천남부경찰서 남족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그린벨트 지역내 '전자울'이라는 옛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의 유래는 조선 중기에 '전재리'에 줄을 잘 타는 재인(광대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줄타기의 명수인 김씨 성의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조선조 헌종때 그 재주가 발탁되어 헌종이 '상봉'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김상봉은 전재리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전부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하여 그 마을을 전재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전자리라고 불리우다가 1906년 5월 인천부의 동명 변경으로 다시 옛이름인 '전재리'로 바뀌었고, 1914년 4월 1일 구월리에 통합되었고 현재는 구월동 '전자울'이라는 자연부락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인천에는 무인이 많고 또 그들이 사는 집단거주지로 무인촌이 여러곳에 있었는데,대표적인 곳이 바로 구월동의 전재리, 운연동의 연락골, 도림동의 여무실리이다. (운연동의 연락리 참조)
지금의 전자울을 30여호의 작은 마을로 마을 뒤에는 수령 500여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매년 음력 7월 초 하루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이때 돼지를 잡아 고사를 지내는데, 이것은 언젠가 한번 소 머리로 고사를 지냈더니 동네에 질병과 우환이 많아 돼지로 바꾸어 지낸 후, 무탈하여 그리 되었다는 김용문 할아버지의 증언이었다.
전자울 부락 뒤편(북쪽)에 서낭당(성황당)고개가 있는데 이고개에 서낭당(성황당)이 있었던 것 같으며 그 서낭당은 당시 전재리와 관련이 있는 기복신앙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성황목이 약으로 많이 쓰이는 엄나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엄나무를 보고 약으로 쓰기 위해 잘라가려고 했지만 그 나무가 바로 성황목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함부로 자르지를 못한다고 한다.
다음은 전재리 출신인 줄타기의 명수 김상봉에 관한 이야기이다.
약 200년전에 인천 전재리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줄타기 명수인 김가가 있었다. 헌종 때 궁중에 경사가 있었는데, 그 때 전국에서 재인들을 뽑아들여 각가 묘기를 부리게 하였다. 김상봉이 줄을 잘 타자 헌종은 그의 기술을 칭찬하고 "우두머리"라는 뜻의 상봉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김상봉은 근세 줄타기의 중시조이다. 그는 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그 중 최가인 제자는 왕으로부터 천상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천상이란 줄타기의 윗사람이란 뜻이다. 최천상은 한양의 김관포와 광주의 이풍운에게 전수시켜 줄타기가 근래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감상봉의 줄타기 기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평지에 줄매기를 한다. 13m 거리의 양편에 가위 사복으로 약 7m 기둥을 양쪽에 세운다.줄은 "8부" 삼끈줄을 늘여 양쪽 말뚝에 단단히 매어 진동이 조금도 없게 한다. 줄을 탈 때에는 부채를 들고 버선발로 줄에 올라 줄 위에서 갖은 재담을 부리며 줄을 탄다. 그의 묘기는 1.앞으로 걸어가기, 2.뒤로 걸어가기. 3. 앞으로 종종걸음, 4.뒤로 종종 걸음, 5.채비, 6. 앉아 좌우로 돌기 7. 닭의 훼치기, 8.닭의 훼타고 좌우로 하기, 9.외홍채비, 10.외홍채비 풍치기, 11. 양다리 외홍채비 12.쌍홍채비 13.겸쌍홍채비 14. 옆쌍홍채비, 15.옆쌍홍태비 거중틀기 16.쌍홍채비 거중틀기 17.외무릎 희기 18.외무릎 치기 19. 외무릎 가새트롬 20. 외무릎 황새 두렁넘기21. 무릎희기 22. 무릎 치기 23. 두무릎 풍치기 24. 두무릎가새트름 25. 두무릎 황새 두렁넘기 26. 두무릎 종종 희기 27. 책상다리 28.책상 풍치기 29. 책상 가새트름 30. 책상다리 황새 두렁넘기 31. 앞쌍홍채비 뒷쌍홍채비 32. 칠분뭔장 33. 앞칠보 뒷칠보 34. 챌보 다래치기 35. 칠보 거중틀기 36. 허공재비 37. 앵금 뛰기 38.종급굽 붙이기 39. 칠보 보십배기 40. 깃발 붙이기 41. 배돛대 서기 42. 살판 43.얼음지치기 등 43가지나 되었다 한다. 이 43가지의 묘기를 부리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줄을 타는 것이다. 김상봉의 43가지 묘기는 오늘날에도 전수되어 내려오고있다. 김상봉은 인천의 큰 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