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측한대로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었는지 오전 8시쯤 기상하였을 때 밖을 보니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몰아쳤다. 숙소 앞에 주차해 놓은 스텝차량에 물건을 가지러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이 세찼다. 대원들과 함께 급하게 논의를 진행한 결과 별도의 시민전을 하기에는 기상조건이 좋지 않을뿐더러 거리에 시민도 없을 것 같아 숙소 내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어제 귀가한 권인자 대원(충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사무국장과 함께 막걸리와 분식을 사와서 대접했다. 대원들은 다함께 모여서 처음으로 사적인 얘기와 관심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싱거운 농을 서로 건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황화성 전 충남의회 의원도 지지방문을 했다.
저녁에는 어제에 이어 인애학교 문제로 충남교육청 장학관과 장학사가 우리의 숙소를 방문하였고, 이영석 대장 및 이권희 대원과 간단히 간담을 나눴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만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제2기 국토대장정 팀이 천안에서 하루 머문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에게 간담회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간담내용이나 형식도 어색했다. 마치 상부기관에 보고하듯 문서 몇 장을 들고 와서는 사건경과와 교육청의 대처경위에 대해 브리핑하였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영석 대장과 이권희 대원은 매우 당황했다. 이번 인애학교 사건의 진상규명, 피해자 구제,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마련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기관이 뜻을 같이 하는 우리 국토대장정팀의 좋은 의견과 제안을 경청하거나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분위기라기보다 자신들의 그동안의 노력을 늘어놓고, 인애학교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국토대장정 팀이 문제를 더 이상 크게 번지지 않도록 조용히 넘어가 달라는 취지의 협조를 구하는 분위기로 느껴졌다. 명분은 하나였다. 만일 이 문제가 크게 사회적 문제로 번지게 되어 인애학교가 문을 닫게 된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당장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영석 대장은 그 자리에서 제2기 국토대장정의 취지와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을 사회와 격리수용하는 시설의 문제점을 전국에 알리고, 특히 구체적 문제가 드러난 사건이 해당 지역사회에서 이슈화되어 분명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물론 인애학교 사건만을 위해 국토대장정을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인애학교 사건은 천안지역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하며, 우리 국토대장정 팀은 여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하고자 한다는 입장도 덧 붙였다. 오히려, 교육청이 인애학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으므로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되 피해자의 입장에서, 인권적 측면에서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의 경우는 이미 검찰이 기소하여 1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으니 그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나, 피해자 구제라든지, 재발방지를 위한 부분은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교육청과 지역 시민사회의 몫이며, 나아가 전국의 인권단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니만큼 우리 국토대장정팀 또한 인애학교 사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이슈화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한국DPI 조대희 팀장이 스텝으로 오늘부터 결합하였다. 스텝조직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던 참이었는데 내일부터 한껏 기대된다.
아무쪼록 오늘의 이 태풍이 빨리 지나가 내일 평택으로의 행군에 지장이 없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