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신 형 호
KTX열차 차창으로 빗살무늬처럼 번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출발한 시간은 아침 9시 정각이었다.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자유와 행복과 무병장수를 꿈꾸며 살아가는 풍류인.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가 주최하고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열리는 “김삿갓 탄생 200주년 기념 풍류대전”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대전에서 이남천 회장님을 비롯한 대전지역 문우님, 그리고 강원지부 회원들과 합류하여 서울에서 출발한 본진 일행이 탄 전세버스에 12시 조금 지나 동승을 할 수 있었다. 개막식이 열리는 화순군민회관 입구에는 우리 회원들의 낭만과 정서가 녹아든 시화액자들이 단정하고 맑은 얼굴로 전시되어 있었고, 벌써 많은 주민들과 참여문인들의 숨결이 여름더위보다 더욱 짙게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개막식 행사는 ‘풍류선언문 낭독’ ‘김삿갓 일대기 소개’, 축하공연으로 진행된 ‘한량무’ ‘인도 전통악기 연주’ ‘소프라노독창’ ‘진도북춤’등이 행사를 더욱 살찌게 도와주었고 ‘김삿갓 시낭송’에 이어 민용태 교수님의 ‘풍류도 특강’을 통해 우리 모두가 시나브로 풍류인이 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자연과 사람, 만남과 어울림을 통해서 즉흥과 대화가 이루어지고 집단창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풍류인! 자신이 독자이고 독자가 자신이 되는 모든 것의 완성된 것 보다는 그 완성을 향하여 살아가는 과정, 창작되는 과정과 즐기는 과정으로 행복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 풍류인의 자세! ‘달맞이흑두부식당’에서의 만찬시간은 모처럼 만난 문우들과의 부딪치는 술잔들 소리가 도곡 밤하늘의 별들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시간이었다. 약간 달작한 동동주 한잔과 곁들인 흑두부버섯찌게와 보쌈, 식당 중앙에 지금도 자라고 있는 느낌을 주는 아름드리 팽나무의 위풍과 아름다움. 수몰지역에서 직접 견인하여 식당내부에 장식하고 나서 건물을 지었다는 주인의 설명을 듣고 모두가 야외의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로 한층 아늑한 자연 속에 빠진 정취에 잠겼었다.
‘도곡온천관광호텔’ 525호실에 한수종편집주간님, 성선모시인님과 함께 여장을 풀었다. 고즈넉한 온밤이 풀벌레 소리와 익어가고 있을 즈음, 한수종주간님이 며칠 전 도서관에 들렀다가 복사해 오셨던 자료라며 심심하면 읽어보라고 건네주신 프린트물 자료집.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라는 제목의 ‘서정윤시인’이 편찬한 시해설집이었다. 시인들 작품마다 붙은 시인의 해설보다 아찔한 제목에 더욱 매료되었다. 갑자기 이 견딜 수 없는 사랑이 우리 문학바탕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하고 생각되었다. 어디서 솟아나는 지도 모를 끊임없이 분출되는 활화산의 용암덩어리 같은 열정과 용기로 행사를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곽혜란 대표의 문학바탕을 사랑하는 정신, 그리고 그 패기와 사랑에 감동을 받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이끌어 가시는 이남천 회장님과 이성규 고문님, 이은옥 총무이사님과 문우님들의 문학바탕에 대한 사랑! 이런 사랑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이라도 절대로 견디지 말아야 할 사랑일 것이다.
둘째 날 아침은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산더덕 냄새 같은 여명이 창을 두드리기도 전에 햇살이 지천으로 누운 개망초의 허연 꽃송이에 앉아 그네 타며 시작되고 있었다. 광주에서 온 눈망울이 유난히 해맑고 아름다운 아가씨 박해소 ’화순문화 해설사의 1호차 동승으로 김삿갓 발자취 따라가는 둘째 날 순례투어가 막을 열었다.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와불(臥佛)이 바로 서는 날 세상은 뒤집어져 농민들이 사는 여기가 서울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다는 전설과, 하루 낮 하룻밤에 안에 만들어야 하는 공사가 힘겨운 동자승이 그만 닭울음소리를 낸 탓에 공사를 하던 천인들이 모두 하늘로 날아가 버려 미완의 공사로 그치고 세상의 중심도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 전설의 성지 운주사! 천불 천탑으로 이루어졌다는 운주사! 독특한 양식으로 부처님을 모신 감실이 있는 석조불감. 바위에 느긋이 기댄 석불. 그리고 원형으로 이루어진 다층석탑을 뒤로하고 산 중턱에 올라 참배한 누워있는 두 부처님. 운주사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 와불을 세우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설 속 장길산도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영화 속에서도 그러했건만, 나란히 누워있는 두 부처님은 예나 지금이나 솔바람과 풍경소리를 안고 그 옛날처럼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독경소리를 듣고 계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순고인돌군은 아쉽지만 시간관계상 차창으로만 살짝 둘러보고, 아름다운 모후산에 포근히 안기고 사찰음식으로 이름난 비구니스님의 절집인 유마사를 찾았다. 마침 화순 군청에서는 몇 해 전부터 모후산을 ‘숲 가꾸기 시범지역’으로 선정하여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숲길조성과 더불어 ‘숲 나무 솎아주기’로 산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군수님을 따라 걸은 숲길 체험을 통해 심신을 더욱 맑고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었다. 신을 벗고 깨끗한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만 근심을 풀 수 있는 ‘해우소’를 가진 유마사에서의 점심 공양은 소박함과 깔끔함 정결함의 결정체였다. 산뜻하고 풋풋한 야채와 담백한 산나물 비빔밥은 도시에서 찌든 위장을 새롭게 채워 주었다. 난고 김병연선생이 생을 마감한 종명지에는 김삿갓선생을 기리는 비석과 화순지역을 시로 읊은 친필비석이 아직 복원을 다 마치지 못한 기와집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후에는 새롭게 단장을 마칠 예정이란다. 수령이 약 1300년이라는 야사 은행나무는 어른 대 여섯 명이 두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만큼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원래 은행나무는 암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수정을 하여 은행을 맺는 나무이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가 근처에서 찾아 볼 수도 없건만 매년 많은 양의 은행을 수확하여 작년에는 약 7가마니의 은행을 땄다고 동네 어른이 자랑도 하신다. 수나무가 없는 데 어떻게 은행이 열렸을까 궁금하여 여쭈어보니, 은행나무 옆의 개울에서 그림자만 보고 수태를 한다는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신비한 설명도 곁들여 주신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인 적벽을 찾았다. 적벽이 시작된다는 물염 적벽에는 얼마전에 복원 단장한 ‘물염정’이 우리 문인들을 첫손님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살겠다는 선비의 단아한 의지가 집 이름이 된 물염정(勿染亭). 정자 앞쪽에 한 줄로 줄을 선 김삿갓 시비에는 한문과 한글로 음각을 해 놓았고, 대리석으로 조각된 김삿갓동상 앞에는 기념촬영으로 발걸음이 분주하였다. 굽이굽이 비포장 산길을 감고 돌아 올라가 도착한 화순적벽. 기묘사화 후 동복에 적거중이던 최신두가 중국의 적벽에 조금도 모자랄 것이 없다고 하여 적벽이라고 이름 지어지고, 시선인 김삿갓이 여러 차례 적벽 선경에 떠날 줄 모르고 끝내는 이곳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오는 화순 적벽! 지금은 화순의 젖줄이 된 동복호가 산자락을 감싸고 펼쳐진 적벽. ‘망향정’이라는 수몰주민들의 한을 달래기 위해 적벽을 바라보고 날아갈 듯이 지어진 정자에서는 문인들의 즉석 백일장이 이루어졌다. 마침 판소리 동편제의 명창인 송순섭선생의 ‘적벽가’소리 한 자락을 듣는 영광도 누리면서, 소리 속에 잠겨 글을 짓는 모든 문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신선이 되고 학이 되어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임술지추에 칠월기망이라. 소자범주유어 적벽지하할세.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이라. 거주속객하고 송명월지시할세 ...... 백로는 횡강하고 수광은 접천이라......’ 소동파의 ‘적벽부’가 귀를 통해 눈앞에서 펼쳐진다. 적벽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하늘과 물과 절벽에 취해 있다가 생각을 가다듬는다.
“적벽강 입질하다” -신 형 호-
화순군 절경 따라 문학바탕 기행길 밤마다 신선들이 멱 감고 시를 읊던 적벽강 푸른 물 따라 우주가 입질하네
백아산 감아 돌다 숨 한번 고르더니 운주사 석불미소 문우들 어깨치고 동편제 소리 한마당 적벽산이 껑충 뛰네
비껴가는 햇살이 산허리를 감고 물그림자로 비칠 무렵 백일장도 끝나고 ‘김삿갓 탄생 200주년 기념 풍류대전’도 적벽강 아래로 잠겨들고 있었다. 문학바탕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한 풍류대전을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학창시절 김삿갓의 시를 처음에는 재미있게 접하다가 그의 일생과 시가 수록된 책을 구입해 읽고는 한없이 안타깝게 생각한 일. 우리의 인생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실려 가는 삶이니 자유와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풍류대전의 주제. 이 모든 것이 수 억 년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문학바탕을 만나 인연을 맺고 많은 문우들과의 정신적이 교감을 나누게 된 것도...... 흘러가는 물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들. 말없이 하늘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는 저 적벽의 물이 섭리대로 고였다 흘러가듯 우리네 삶도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자연의 가르침이 핏줄 속에서 콸콸 솟아나온다. 갑자기 뭉클해진 심장소리에 눈가에서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구르고 있다.
-붙임- 처음부터 한 올의 어긋남이 없이 기획하시고 진행하신 곽혜란 대표님, 민용태 교수님, 이남천 회장님, 이성규 고문님, 이은옥 총무이사님과 진행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 드립니다. 문학바탕에 대한 끝없는 사랑은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할 뿐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이 글은 2007.07.2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