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다이아몬드로 남다> 故 정진혜 화가를 기리며
1다음 주에 진주 모교의 총동창회 모임이 있다. 대학 교정에 몇 년 만에 가 보는 건지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가는 길에 언니도 만나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아니 없는 번호란다. 전화기를 잃어버렸나?
2최근에 전시회가 어디서 열렸는지 알면 연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네이버를 검색했다. 예전 것만 있고 최근의 전시회 소식이 없었다. 다시 검색해보니 '故 정진혜' 라는 기사가 보였다. 잘못 봤겠지 싶어 확인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먹먹해서 울음도 나오질 않았다.
3그녀를 만난 건 대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학생운동에 얼치기로 들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지막 학년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그림을 좀 그린다고 생각했다. 미술학원을 다닌 적은 없었지만 더러 상도 받고 했기 때문이다.
4하지만 교대에 들어와 미술 수업을 해보니 그림의 기초를 배우지 못한 나에겐 데생은 너무나 어려웠다. 아그리파를 그려야 하는데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나왔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드디어 졸업반이 되어서야 개인적인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5그 미술학원을 어떻게 찾았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내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림도시 미술학원’ 은 중앙동 어느 건물 2층에 있는 학원이었다.
6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원 안에 있는 작은 방 같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긴 생머리와 이마 위로 짧게 앞머리를 자른, 눈이 아주 깊고 큰 작은 체구의 젊은 여자였다. 그 첫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냥 그 모습 자체가 ‘나 그림 그리는 여자예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예쁘다기보다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알고 보니 이제 갓 경남대 미대를 졸업하고 학원을 시작한 나보다 1살 많은 언니였다.
7첫 만남부터 언니의 매력에 이끌려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데생부터 시작하여 수채화, 유화까지 진주를 떠나기 전까지 그림을 배웠다, 그림이 좋았던 건지 언니가 좋았던 건지 거의 매일 미술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8학원에는 불도 들어오지 않은 나무 마룻바닥으로 된 작은방이 있었다.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같이 잠을 자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 공간에 퍼져있던 매캐한 유화물감 냄새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잊지 못한다. 작은 석유난로 위에서 언니는 김치찌개를 참 맛깔나게 끓였다.
9특히 언니가 전시회가 있을 땐 밤새도록 그림을 그리는데 그땐 나도 덩달아 같이 밤을 새웠다. 뭔가에 빠져 미치도록 열중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언니의 풍부한 감성과 자유로운 영혼을 부러워했다. 내가 너무나 닮고 싶었던 삶의 모습이기도 했기에 대리 만족하는 기쁨으로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10그녀의 곁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언니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진주 시내 골목 골목을 누비며 함께 마시던 술과 그 수 많았던 밤 향기를 잊지 못한다.
11나이는 1살 차이지만 그녀의 삶은 나와 너무도 다른 깊이와 넓이를 가진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았지만 내 속에 움츠려있던 감성과 자유로운 영혼을 깨워 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 한편으로는 가질 수 없는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12진주를 떠나 울산으로 발령이 나면서 낯선 삶에 적응해 가느라 언니와 자연스레 멀어졌다. 가끔 안부가 궁굼하긴 했지만 흔들리며 방황하는 나의 청춘을 살기에도 벅찬 시절이었다.
13그러다 결혼 소식을 들었다. 학원에 늘 꽃을 들고 찾아오던 웃는 얼굴이 맑고 순수한 사람, 문수 아저씨였다. 언니의 결혼으로 우리의 청춘은 잊혀진다고 생각했다. 나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맞벌이와 육아로 인한 바쁜 삶에 지쳐갔다. 연락처도 잃어버렸다.
142009년 3월의 어느 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그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언니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너무 좋아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
15다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그 해 여름방학 때 진주 이반성면에 있는 언니 집으로 이어졌다. 결혼 이후로 처음 아이를 떼어놓고 혼자 가 본 여행이었다,
16집은 주택이었는데 옆에 화실이 따로 딸려 있었다.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고 이혼을 한 상태였다. 결혼생활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힘들었던 것 같았다. 혼자서 그림 가르치는 강사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17 유화물감 냄새가 짙게 베여있던 작은 개인 화실과 학교의 폐건물을 이용해서 만든 정수예술촌에서 1주일간 우리는 옛날처럼 시간을 보냈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림 수업에도 따라다녔다.
18 그런데 가을부터 내가 몸이 아팠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또 잊고 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도 그때 몸이 아팠다고 한다.
19 2021년 1월, 지독하게 외로웠다. 사는 게 숨이 막혀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언니가 생각났다. 너무 보고 싶었다. 잊고 살았는지 잊고 싶었는지, 모른 척 살았던 날들이 가슴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서 꿈틀댔다. 그렇게 다시 연락의 끈이 닿아 진주에서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20자주 만나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닮은 결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예민한 감성이 가지는 어떤 외로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언니처럼 두려움 없이 온전하게 몸을 던져 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21 진주의 낡고 오래된 작은 원룸에서의 하룻밤은 다시 나를 대학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창문에 무심하게 툭 걸쳐놓은 진홍빛 천 한 장이 커튼인 소박한 살림과 낮은 침대. 언니는 늘 작고 낮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후미진 곳을 좋아했다. 아프고 슬픈 모습들을 사랑했고 그 속에서 찬란함이 나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언니에게서 그림은 슬픈 감정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카타르시스라고 했다.
22 언니한테는 내가 좋아하는 삶의 향기가 있었다. 전기 포트에 끓인 따뜻한 물 한 잔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언니가 어떤 삶을 살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나 사이엔 무언의 기류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특별한 애정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23 그해 6월. 루시다 갤러리에서 언니의 전시회가 열렸다. 언니는 진정한 초록의 계절인 유월을 좋아했다. 나는 샴페인과 케잌을 들고 날아갔다. 작품을 사고 싶어서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그 그림은 동백꽃이 짙은 어둠 속에서 피어 있는 ‘붉은 다이아몬드’ 라는 작품이었다. 반짝이는 보석처럼 살라고 하면서.
24 그리고 9월, 인사동 갤러리까지 나는 언니랑 동행했다. 인사동의 그 허름한 여관에서 2박 3일을 같이 지내면서 전시회를 지켜보았다. 화려한 작가의 삶 이면에는 가난한 현실이 있었다. 그 힘든 현실 속에서도 언니는 늘 당당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며 살았다.
25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끊임없이 포용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언니는 자신의 힘듦을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늘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쩌면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26 그리고 다시 봄이 왔지만 내 삶이 바빠서 만나지 못했고 카톡으로만 안부를 전했다. 아마도 이젠 언제든지 언니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날들이 많을 거라고.
27 “겨울 방학하면 진주 한번 와라 잘해줄게, 보고 싶다” 이게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카톡이다. 결국 언니는 겨울방학도 시작되기 전인 8월에 고인이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암으로 돌아가신 셋째 오빠와 그 충격으로 인해 생긴 엄마의 치매 때문에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28 문수 아저씨가 먼저 떠나고 언니도 뒤따라갔다고 한다. 지독한 슬픔에 지쳤던 것일까, 그들의 끈질긴 인연이 먹먹하게 가슴을 저몄다.
29 이 황망함을 어쩌란 말인가? 늘 거기에 있을 거라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나중으로 미루는 것. 나는 또 한 번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30 이제 진주에 가도 언니를 만날 수가 없다. 언니가 없는 진주는 너무 쓸쓸할 것 같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31 언니는 나에게는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다. 내 삶의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다. 언니와의 추억은 이제 붉은 보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