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에 조금만 음직여도 땀이 삐질 삐질 솟는다. 습도도 높고, 쩍쩍 달라붙는 살갗은 찝찝하기 그지없다. 문을 열어놔도 방안에선 더운 열기가 가득했고 훅훅 내 뱉는 서로의 더운 숨결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날이 더워지자 파리고 모기고 각종 날벌레들이 들끓었고 골목가 구석구석 쌓여 치워지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 들은 마치 잔뜩 쌓인 구토액처럼 불결하고 기분 나쁜 국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뱉어낸 배설물처럼 말이다.
더운 날씨에 공무원들도 행정이 마비됐는지 이상하게 요 며칠 쓰레기 수거가 늦어지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대낮부터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쓰레기 국물을 그 누가 반가워 할리 없었지만 선뜻 누군가 나서서 치우지는 않는다.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다.
여름이었다. 유난히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계절이다. 각 가정에서 잠시나마 한눈을 파는 사이 밥이고 국물이고 모두 상해가고 있었다. 오후 한나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 쉬어가는 냄비들에선 뚜껑을 열자마자 시큼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모두 싱크대로 흘려보내고 남은 건더기들은 또 다시 거리로 내몰려 썩고 있었다. 골목 전체가 썩어가는 듯 했다.
창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를 틀어 막아야했다. 벌건 대로변에서 부터 진득하게 눌어붙은 악취가 골목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 골목들이 악취의 근원지였다. 각 가정에서 쏟아낸 배설물들이 골목 어귀마다 쌓여있었고 윙윙 날아다니는 파리 떼의 습격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었다.
창우가 골목을 향해 몇 걸음 내 딛는 순간 한켠에 쌓인 검은색 봉지 더미를 마주 해야 했다. 몇 군데 터졌는지 찢어진 옆구리에선 계속 해서 누렇고 찝찝한 국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말라붙은 다른 국물자국 위로 또 타고 흘러 골목가득 퍼진 그 진한 악취는 마치 생화학 무기로나 사용되던 암모니아 가스 같은 자극성으로 창우의 코끝을 '톡'쏘고 있었다. 한숨 들이키자 코끝부터 목구멍까지 얼얼해지는 게 몇 번 더 들이켰다간 허파가 썩어 버릴 것만 같다. 창우는 잽싸게 코를 틀어막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났다.
"으.. 더러워"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으며 창우가 생각하기에 사실 요즘 세상에서 썩어나는 건 저런 음식물 쓰레기뿐만이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야 매번 마주 할 때마다 더럽고 구역질나지만 그것 말고도 더러운 건 이 세상위에 얼마든지 있다. 단편적으로 모든 공사 발주권을 돈 받고 처리해 주는 창우네 구청 장과장부터 시작해서, 교통경찰 주제에 매번 단속 때마다 쑤셔넣은 뇌물로 경찰생활 6개월 만에 새 차를 뽑게 된 창우친구 진식이까지 세상 모든 게 썩어 있다.
몇 일전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자리에서도 이미 수백억의 돈이 오고 갔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고 매 학기 각 초등학교, 중학교 반장선거에서도 이미 수십 판의 피자가 교실을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연일 상한가를 치며 잘 나가는 주식시장은 불현듯 터져 나온 주가조작 파문이나 대기업 간부 탈세혐의로 한차례 큰 파문을 겪기도 했고 하나하나 일일이 말하기도 벅찰 만큼 세상은 썩어있다. 이 나라 전체가 그런 것이다.
이미 어릴 적부터 창우는 썩어빠진 세상을 수도 없이 경험해 왔다. 중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단 한 번도 두서와 같은 실력으로 입상해 본적 없는 창우는 3학년 겨울 방학이 다 되어서야 백일장 심사에 감춰진 비리를 알 수 있었다. 3년 내내 매번 상을 받는 녀석들은 교내 1,2등을 다투는 녀석들. 다들 공부도 잘했고 글도 잘 쓰는가 싶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백일장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이 써서 낸 글을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단다. 그저 잔뜩 쌓여있는 원고지 중에 전교 1,2등 하는 애들 꺼 몇 장 골라내 상장을 주고 단상에 세우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또 3년 내내 상을 받던 그녀석도 매년 같은 내용을 써서 냈는데 매번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3년 내내 최선을 다한 창우만 바보였다.
군 시절에도 본부중대 행정병으로 군무하면서 밤낮을 안 가리고 업무에 매진해도 휴가한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업무 공백'을 사유로 창우가 미칠 듯이 일에 매달리는 사이 시시 때때로 떨어진 각종 포상휴가는 중대에서 제일 뺀질거리는 애들이 다녀왔다. 다들 중대장 대대장한테 알랑방구껴, 평소에는 뺀질거리다 때만 되면 알아서 딸랑 딸랑거려 포상 휴가증을 따 냈다. 역시나 이번에도 병신같이 일만한 창우가 바보였다.
골목가 썩은 냄새가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창우는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비록 허름한 옥탑 방이지만, 주택가 어디에도 그 썩어 문드러지는 악취를 피할 곳은 없는 판국에 그나마 집이 최고였다. 문을 닫아놓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으면 거기만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직 썩지 않은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몇 안 되는 공간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창우는 서둘러 에어컨부터 켰다. 얼마 전 인터넷을 뒤져 산 중고 에어컨이 창우는 그렇게도 고마울 수 없었다. 어디 공사장 컨테이너 박스 같은데 나 걸릴법한 이 에어컨은 그 흔한 리모컨 하나 없이 오로지 다이얼로 모든 작동이 이루어진다. 작은 TV만한 크기에 자취방 창문하나 뜯어 걸쳐놓으니 정확히 사이즈가 맞았다. 생각보다 상태도 좋았고 직접 실리콘까지 뿌려 설치해 놓으니 그 더운 여름날에도 창우네 자취방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샤워를 하고 TV를 켜자 뉴스에선 또 썩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전년도 대선 비리와 관련하여 경찰에 수사를 받던 **당 대표 박 의원이 어젯밤 자택에서"
죽었단다. 도대체 몇 백억을 처먹고 또 꼴아 박은건지, 죽기 전에 그 돈 자기나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다음 뉴스.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질병관리에 만전을 기하란다. 벌써 전국적으로 식중독 환자 수가 백만 명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이 계속되고 있단다. 이번에 죽은 **당 대표 박 의원의 사망과도 관련이 있는 이 바이러스는 지금껏 어떤 형태로든 학계에 보고된 적도 없으며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질병으로서 전염병인지 여부에 대해 방역당국이 조사 중이란다. 그리고 또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
사망이네, 바이러스네 온갖 불결한 소리만 늘어놓는 뉴스에 진저리가 날 때쯤, 누군가 창우네 현관문을 열고 벌컥 들어선다.
"야! 나왔다"
진식이다. 교통경찰 6개월 만에 새 차를 뽑았다는 진식이다.
"이런, 왜 또 왔어?"
전혀 반갑지 않다는듯한 창우의 대답. 요 며칠 날씨가 더워지고 부터 진식이가 자꾸 창우네 집을 들린다. 필시 에어컨 때문이다. 매일 밤 끈적이는 몸 상태 그대로 퇴근을 해 꼭 창우네 집에서 땀을 식히다 집으로 간다. 아주 웃기는 놈이다.
"왜 왔냐니! 몰라서 묻냐? 야 나 좀 씻는다"
진식이는 목욕탕으로 들어갔고 그가 문을 열면서 함께 딸려들어온 악취가 순식간에 창우네 집안을 가득 매운다.
"아.. 짜증나는 새끼"
문도 꽉 닫지 않아 냄새가 계속 들어온다. 창우는 재빨리 달려가 문을 닫아 버렸다. 아무리 친구 사이지만 버릇없이 구는 진식이가 별로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진식이는 오자마자 씻으러 들어가 벌써 다 씻고 팬티 바람으로 걸어 나왔다.
"아! 시원하다"
아예 몇 일전부터는 창우네 집에다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해 놓고 다닌다. 냉장고에는 맥주까지 채워놓고 샤워 후엔 꼭 맥주까지 한잔한다. 완전 제집인 것처럼 군다.
"야, 너 씻긴 씻었냐?"
진식이는 목욕탕을 걸어 나오자마자 맥주부터 한캔 했고 그가 걸어 나오는 순간 바로 인상을 찌푸린 창우가 한마디 했다.
"야! 내말 듣냐? 씻긴 씻었냐고?"
짜증 섞인 말투에 진식이가 겨우 대답을 한다.
"왜! 당연히 씻었지. 내가 저 안에서 무슨 엄한 짓거리라도 하고 나온 줄 아냐!"
"야, 근데 이게 뭔 냄새야! 짜증나는 새끼"
창우가 대놓고 짜증을 부린다. 진식이는 괜한 일로 트집을 잡는다 싶다.
"와.. 뭔 냄새가 난다고 그러냐? 이 새끼가 에어컨 있다고 별 생색을 다 내는구만"
팬티바람으로 걸어와 옆에 앉으려 하자 창우가 더 화를 낸다.
"야, 너 진짜 냄새 안 나냐? 이 독한 냄새가? 어휴, 더런 새끼. 너 정말 교통경찰 맞냐?"
"아, 이 새끼가 뭔 냄새가 난다고 그래?"
진식이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창우는 아까부터 냄새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처음엔 진식이가 문을 열어놔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가 씻고 나온 후 부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냄새의 근원은 진식이였다.
"야.. 뭔 냄새가 난다 그러냐?"
진식이는 코를 킁킁 거리며 자기 몸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별 이상한 점을 못 느낀다. 하지만 창우는 지금 생전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냄새를 바로 옆에서 맡고 있었다. 그건 흡사 겨드랑이에서 나는 암내 비슷하기도 했고, 오래 묵혀 썩은 양파에서나 나는 지독한 구린내 같기도 했다. 음식물 쓰레기 썩은 냄새와는 다르게 독하고 진한 구석이 있었다. 한번 들이킬 때마다 허파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야, 나가. 당장 나가!"
"야,, 왜 그래? 냄새나면 다시 씻을게"
창우는 주섬주섬 진식이의 옷을 챙겼다. 먹다만 맥주까지 한손에 챙겨 진식이를 내 보내기 시작했다.
"야..야. 옷 좀 입자. 왜 그래? 진짜 그렇게 심하게 나냐?"
창우의 갑작스런 태도에 진식이는 연신 자신의 몸에서 냄새를 맡았지만 아무리 맡아봐도 방금 막 씻고 나온 비누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곁에 있는 창우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하고 괴로워하며 도저히 숨을 쉬기도 힘들다는 듯 겨우 한마디 건넸다.
"야. 너 병원 가봐라. 너 암내 있나 보다. 암내"
창우는 대놓고 콧구멍을 막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암내라니,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너무나 냉정한 창우의 태도에 진식이도 별수 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맡아봐도 자신에게선 비누냄새 뿐이었다.
"와. 이 새끼 너무하네."
창우는 가차 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평소에 농담도 잘 안 하던 녀석이 한 행동이라 진식이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탕
창우는 가차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정말로 암내가 나는 건가?'
문밖에 서서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 본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 맡아 보지만 별 냄새 안 난다. 오히려 골목가 썩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뿐이었다.
"아.. 뭐야 이 새끼.."
의아했지만 진식이도 어쩔 수 없었다. 치사했지만 곧장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골목가 썩은 냄새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질척거리며 길가에 쌓인 쓰레기들을 보면서 혹시나 저 냄새가 몸에 배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냄새가 난다 하더라도 설마 저 정도일까 싶다.
진식이는 코를 틀어막고 서둘러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다간 그 자리에서 토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달려가는 사이 누런 가로등 불빛아래 윙윙거리는 하루살이 때와 파리떼들이 자꾸만 얼굴에 부딪치고 있었다.
다음날 각자의 일터로 출근한 창우와 진식이는 어젯밤 진식이 몸에서 났던 그 지독한 냄새를 다시 한 번 맡아야 했다. 이번이 두 번째인 창우는 구청에서 자기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장과장에게서 그 냄새를 맡았다. 본격적으로 냄새가 나기 시작한건 장과장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고 나서 부터였다. 구청 건축과 과장으로 수시로 건축업자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장과장은 그날도 거하게 한상 얻어먹고 점심시간이 다 지나서야 자기 책상으로 돌아왔다.
"어.. 배부르다. 꺼윽..."
자리에 앉자마자 트림부터 하는 장과장. 식도를 타고 넘쳐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 트림과 함께 어젯밤 진식이에게서 났던 것과 똑같은 냄새가 창우의 코로 흘러 들어왔다.
"으……."
그 냄새다. 양파 썩은 냄새. 자기 상관이라 대놓고 말도 못하고 창우는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 부었다.
'이런 더런 놈의 새끼, 뭘 처먹은 겨'
쩝쩝쩝. 하지만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입속에 남은 찌꺼기들을 씹어 삼키느라 장과장은 정신이 없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사이에도 장과장은 계속 입맛을 다시며 쩝쩝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꺼윽~~"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부터 트림을 끓어 올린다. 분명 창우에겐 어제 그 냄새 그대로였다.
"어우,, 왜 이러지.."
연이은 트림에 장과장이 머쩍은듯 배를 문지르며 말을 꺼내지만 자신은 그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꺼,, 꺼윽~"
그리고 한 번 더 트림.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창우의 표정은 금세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참으려 애를 썼지만 이미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도저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양파 썩은 냄새. 악성 암내 환자 겨드랑이에서나 날법한 구린 냄새를 어제 오늘 벌써 두 번째로 맡고 있는 터라 창우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그 자리에서는 숨을 쉬기도 힘들어 장과장이 눈치 채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장과장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의 뱃살을 문지르며 또 한 번의 트림 뿜어냈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직원들도 서둘러 창우를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누군가는 말없이 창문을 열었지만 직원들의 단체행동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장과장은 계속 자기 똥배만 문질러 입맛을 다시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미 그러는 사이 사무실 안엔 썩은 양파 냄새가 가득했고 오로지 당사자인 장과장 혼자 그 냄새를 못 맡고 있는 듯 했다. 오히려 자꾸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는 것이 뱃속에 가득한 그 가스를 다시 한 번 뿜어낼 기세였다. 창우는 한동안 사무실을 비워야만 했다.
비슷한 시각, 야간 음주 단속을 나가기 위해 준비 중인 진식이도 드디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경찰서에 출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젯밤 그렇게도 창우가 진저리 치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어젯밤 자신에게서도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진식이 입장에선 여전히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오히려 냄새가 나는 몇몇 사람들은 정말 독하게 그 냄새가 나서 도저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게 이번에 식중독과 함께 퍼진 신종 전염병이라는데, 진식이 생각엔 독한 암내 냄새 같은 그것이 전염병이라니 참 불결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암내는 자기 자신은 아무리 맡으려 해도 그 독한 냄새를 못 맡는다. 어젯밤 창우가 그렇게 인상을 쓴걸 보면 자신의 병도 이미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더군다나 박 의원인가 뭔가 하는 비리 의원도 어젯밤 이 병을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내내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어이! 박순경"
한참을 고민 중일 때 1년 선배 차순경이 다가온다. 오늘밤 같이 근무를 서는 인원 중에 가장 냄새가 독한 사람이다.
"준비 다 했어? 나가자고"
친한 척을 하며 가까이 다가선다. 지독한 냄새가 콧구멍을 타고 흘렀고 진식이는 순간 인상을 쓸 뻔했다. 고작 한걸음 더 다가오는데 냄새가 장난 아니게 독해졌다. 냄새의 근원지가 차순경임이 확실해 졌다.
"어휴.. 이게 뭔 냄새야? 박순경 옷 좀 빨아 입어, 땀 냄샌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되려 차순경이 인상을 쓴다. 진식이에게서 냄새를 맡은 것이다. 경찰서 내에서 평소에도 구리기로 따지면 따라올 자가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에 인상을 쓰고 있으니 진식이 입장에서는 조금 어이가 없다. 진식이가 6개월 만에 차를 샀다면 차순경은 1년 만에 집을 샀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비리도 제일 많고 뒷구멍으로 챙긴 돈도 제일 많은 놈이 이제는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맡지도 못하면서 자기보다 덜했으면 덜할 진식이의 냄새를 지적하고 있다. 진식이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어휴,, 요즘 왜이래? 여름이라서 그런가 다들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
차순경은 코를 틀어막고 손을 내 저었다. 자기 주변에 나는 진식이의 냄새를 물리치려는 듯 손을 내 저으며 부채질을 했지만 진식이 입장에선 독하디 독한 차순경의 냄새가 더 활발하게 자기 쪽으로 퍼져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우웩"
이젠 거의 헛구역질을 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자 차순경이 등까지 두드리며 박순경을 나무란다.
"어휴, 그러니까 좀 씻어"
코를 막고 진저리를 치며 돌아서는 차순경을 보면서 진식이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기 냄새도 저렇게 독할까 싶어 차순경을 바라보는데 탈의실을 걸어 나가며 계속 해서 이리저리 손을 내 젓는 차순경에게 진식이는 뭐가 이상한걸 발견했다. 냄새 때문에 정신이 없어져 눈까지 어지러워지는가 싶었지만 분명히 또렷하게 그걸 확인했다.
차순경이 좌우로 손을 흔들 때마다 이상하게 살갗이 조금씩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살찐 체격도 아닌데 그가 손을 흔들 때마다 그의 손은 마치 물을 먹은 물 풍선처럼 미묘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도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처져있었는데 살가죽이 흘러내리듯 아주 미묘하게 그의 볼살과 콧등이 아래로 처져있었다.
진식이는 잠시 동안 자신의 눈을 의심하 고 있었다.
그날 밤 단속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음주단속이지만 교통량도 적었고 시 외곽 이차선 도로에 밤늦게까지 음주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너 명 정도 결리기는 했지만 음주량이 얼마 되지 않자 차순경이 돈 몇 푼 받고 돌려보내 버렸다. 여름밤이지만 바람도 선선했고 진식이와 차순경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인지 모기새끼 한 마리조차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파리 떼 한 무리만 그들 주위를 맴돌았고 평소보다 확실히 널널하고 여유로운 단속이었다.
단속인원은 총 3명. 차순경을 중심으로 진식이와 김순경이 각각 도로 하나씩을 막고 오고가는 차를 단속하고 있었다. 단속을 하는 중간에도 진식이의 신경은 자꾸만 차순경에게 쏠려 있었다. 그러다 몇몇 단속차량에서 차순경과 똑같은 냄새가 나는 운전자를 발견하고 가끔씩 깜짝 깜짝 놀라고만 있었다.
차순경은 오늘따라 확실히 이상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점점 서있는걸 힘들어 했고 이상하게 자꾸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도 자꾸만 숨을 헐떡이며 힘에 부쳐했고 줄줄 흐르는 식은땀은 벌써 온몸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 진식이가 자꾸 신경 쓰는 부분은 그 얼굴이었다.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독해지면 독해질수록 차순경의 얼굴은 점점 아래로 처지고 있었고 이제는 누가 봐도 확실히 얼굴 가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간간히 바람 방향이 진식이 쪽으로 바뀔 때마다 그 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대고 있었다. 더 이상 그 냄새를 맡았다가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착각에 자꾸만 차순경을 바라보지만 차순경은 아까보다 훨씬 더 힘들어 했다.
언제 날아들었는지 차순경 주위를 맴도는 파리 떼가 쉴 새 없이 윙윙 거리고 있었고 힘에 부처 팔을 휘두르는 차순경의 모습은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 같지 않았다. 이미 코와 입술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져 있었고 힘겹게 아래로 늘어진 눈꺼풀이 눈을 반이나 덥고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탱탱하던 이맛살은 벌써 주름이 서너 개 곪아가고 있었고 언제부터 그랬는지 힘겹게 쳐진 아래 눈꺼풀은 아예 붉은 속살을 뒤집어 벌겋게 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늘어난 살가죽을 뒤집어 쓴 것 마냥 축축 늘어난 그의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는 듯 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늙은것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죽어가고 있는 듯 했다. 아까부터 파리들은 자꾸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파리를 쫓기 위해 손을 들지만 축 처진 어깨위로 더 이상 손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로 힘겹게 서있는 엉거주춤한 그의 자세가 출렁거리는 팔뚝 살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서 친구를 부르는 살아있는 시체 같아 보여 더욱 기분이 나빴다.
차들이 지나 갈 때마다 비추는 차수경의 실루엣은 더욱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축 늘어져 처진 어깨에 엉거주춤 풀린 그의 다리는 영락없는 B급 호러 영화 속 저예산 좀비를 연상 시켰다. 그를 맴도는 파리 떼와 지독한 냄새와 더불어 이미 헐거워진 살갗에 조금은 커 보이는 그의 근무복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 경찰 같아 보였다.
진식이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응급차라도 부르려 했다. 가만히 두고만 보다가는 먼일이 벌어져도 벌어질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차량도 없었다. 진식이는 냄새가 났지만 코를 틀어막고 한걸음, 차순경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제 피부로 느껴지는 그 독한 냄새는 더 이상 처음 맡을 때 같은 진한 암내 냄새나 양파 썩은 냄새수준이 아니었다. 틀어막은 콧구멍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밀고 들어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역겨웠다. 무언가 썩어도 제대로 썩은 듯해서 냄새를 맡는 당사자의 코까지 썩어 문드러 질것 같았다. 냄새가 타고 들어가는 콧구멍, 목구멍을 포함해서 결국엔 허파 깊숙한 곳까지 누렇게 썩어버릴 기분이었다.
진식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냄새 때문에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밀려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걸음 내 딛으려는데 어두운 밤길 속에서 뭔가 작은 날벌레 하나가 진식이의 얼굴을 스쳐갔다. 아주 잠깐 바로 오른쪽 눈가 아래로 스쳐가는 그것은 온몸이 진녹색 광택으로 뒤덮인 금파리. 건너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마주치자 그 진녹색 광택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파리. 썩은 고깃덩어리에만 알을 낳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가 숨을 잃어 바로 죽은 세포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정확히 1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날아와 알을 낳는 녀석이다. 대략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방금 막 죽은 고깃덩어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지구상에 있는 곤충 중에 가장먼저 시체에 접근한다는 그 금파리가 방금 막 진식이의 얼굴을 스쳐간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차순경을 향해 맞은편에서 비춰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무시하고 정면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진식이는 고개를 돌렸다. 금파리의 동선에 잠시 시선을 뺏긴 사이 맞은편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등장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차순경을 바라봤다. 밝은 불빛 하나가 차순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느린 동작으로 그 불빛을 피해보려 움찔거리는 차순경의 몸짓과 진식이쪽에서 차순경을 향해 날아가던 조그만 금파리. 그리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의 불빛 이 세 가지가 정면으로 일진선상에 서는 순간 진식이의 머릿속엔 '아차'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순식간에 달려든 자동차 소리처럼, 미처 대처하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불길한 예감이 진식이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그 순간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퍽!
무언가 터졌다. 둔탁한 타격음 대신에 무언가가 일순간에 터져 날아들었다. 진식이의 눈앞은 순식간에 진녹색 진액들로 가득 찼고, 동시에 한층 더 강해진 역한 냄새가 사방 군데로 퍼져 나갔다. 차순경이 차에 치어 버렸다.
-끼이익~
차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노면을 미끄러져 갔다. 차순경을 치고 너무 놀라 멍하니 서있던 진식이의 곁을 아슬 아슬 하게 스쳐 그대로 도로가 밖으로 밀려나가 버렸다.
-꽝
가로수를 들이 받고서야 차가 멈췄다. 사고가 터진 것이다.
"박순경! 박순경!"
진식이는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멀찍이 서있던 김순경이 진식이를 부르며 달려오지만 너무 놀라 서있는 진식이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차순경이 차에 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에 치인 차순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분명 진식이는 차순경이 차에 치이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 다음엔 무언가 진녹색 진액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우웩~"
진식이는 극심한 구토감이 밀려왔다. 놀라서가 아니라 냄새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자신도 온몸에 그 진액을 둘러쓰고 있었고 가로수를 들이 받은 사고 차량 보닛위에도 진녹색 진액이 가득 뿌려져 있었다.
차순경이 서있던 자리부터 가로수를 들이받은 사고차량 쪽으로 길게 퍼져나간 그 녹색 진액. 마치 녹즙을 갈아다 뿌린 것처럼 간간히 건더기도 보였고 흩어진 진액 사이사이로 차순경의 손가락이나 팔목, 뒤틀려 찢겨나간 다리 같은 살점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악취. 진식이는 그 자리에 서서 현장을 둘러봤다. 주저앉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여전히 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도 차순경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어! 차순경!!"
김순경의 목소리다. 사고차량 옆에 서서 차순경을 부르고 있었다. 진식이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질척이는 도로 위를 달려가 멍하니 서있는 김순경 곁으로 달려갔다. 김순경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사고차량 옆에서 그대로 굳은 채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 옆에선 진식이도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차순경을 찾았다. 그 자리에 늘어진 차순경을 찾고 말았다.
차순경은 사고 차량과 가로수 사이에 끼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붙어 있었다. 마치 바람 빠진 튜브처럼 온 몸 안에 들었던 그 무언가가 빠져 나간 모습으로 축 늘어진 살갗만이 차에 붙어 있었다. 복부가 터졌는지 찢겨 져 나간 옆구리 사이로 진녹색 진액, 아니 토사물 들이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딪히는 순간 떨어져 나간 듯 한 팔다리는 각각 한 짝씩 잃어버려 도로 위를 나뒹굴고 있었고 차순경의 몸뚱아리는 질척거리는 모습 그대로 차에 붙어 있었다.
건더기가 섞여 꿀렁 꿀렁 흘러나오는 그 진녹색 토사물. 썩은 냄새가 어느 때보다 심했고 아까 진식이를 곁을 스쳐갔던 금파리들은 각자 질척이는 도로위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사이에도 이미 발아래 퍼져있는 썩은 냄새가 질퍽이는 걸음걸이를 따라 코끝까지 타고 오르고 있었다.
"우웩, 우웩"
진식이는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김순경 뒤로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웩, 우우웩"
진식이의 입에서도 바닥에 흩어진 것과 비슷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도 차순경의 몸에서 나온 그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해 주저앉고 싶었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이미 그 일대 전체는 진녹색 토사물로 가득했고, 진식이의 몸에도 상당량이 묻어 있었다.
숨을 들이킬 때 마다 그 냄새가 온전하게 코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진식이는 그제서야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맡아본 적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그 냄새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시체 썩은 냄새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곪아 썩은 진녹색 시체 냄새였던 것이다.
그날 밤 창우도 집에 돌아와 TV를 켜자마자 정말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긴급 속보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며 발표한 내용은 이른바 '부패증후군'에 관한 이야기였다.
"에. 이번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 부패 증후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에.. 사람이 살아있는 체로 몸이 썩어가는 이 병은..."
'뭐! 산 사람 몸이 썩어가!'
복지부 장관의 말에 순간 창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TV볼륨을 더 높여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에.. 몸이 썩어가는 이병은 아직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증상은 증세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 사람 몸에서 시신이 부패했을 때와 동일한 악취가 난다는 것입니다. 증세가 심할수록 냄새가 독해지는데, 발병 후 3일정도 지나면 온몸이 흘러내리듯 피부가 처지는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병입니다"
충격적인 이야기다. 한나라의 보건 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온 소리가 도저히 일반 상식적인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추가적인 설명을 하고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도 당황한 듯 말을 잊지 못한 기자들이 별다른 질문을 건네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말 최악의 당혹스런 상황이었다.
국내에서 이병의 최초 발병자는 **당에 박 의원이라는 사람. 자택에서 발병 나흘 만에 위의 증상으로 사망을 했고,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국내에서도 그 병이 보고가 됐다는 것이다.
산사람이 썩어 간다. 몸 안에 내부 장기들이 불과 사흘 만에 썩어 들어가고 터지면 물이 돼서 흘러넘칠 만큼 묽어진단다. 병의 잠복 기간도 없다. 별다른 치료 방법도 없다. 이미 박 의원이라는 사람을 시작으로 수백 명의 발병자들이 사망에 이르렀고 그중에는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들도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발병원인도 알 수 없고 전염 경로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병을 연구해온 나라들이 있었고 정부는 외교라인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국내에서도 치료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에 현재까진 방법이 없지만 발병이 의심되는 사람들은 가까운 병원을 찾아주길 바라고 국민들은 당황하지 말고 정부를 믿어주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마지막 당부였다.
창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병은 있는데 치료책은 없으니 우선은 기다려 달라는 정부의 설명이다. 아직 방법은 없지만 당황하지 말라고 한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시체 썩은 냄새, 시체 썩은 냄새...'
창우는 문득 진식이가 생각났다. 사망자 중에 경찰도 있다고 했고 분명 그가 맡았던 냄새는 썩은 냄새가 분명했다. 시체 썩은 냄새였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아무도 받질 않고 몇 차례 더 걸어보지만 아무도 받질 않았다.
창우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날 구청으로 출근한 창우는 희안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사무실이 텅텅 비어있던 것이다. 장과장을 중심으로 구청에 과장급 이상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고 구청장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실 가득 향수 냄새가 가득했다. 어제부터 배어있던 썩은 냄새를 없애려고 누군가 잔뜩 뿌려놓은 것 같지만 오히려 냄새가 섞여 더 구역질이 났다.
퇴근길에도 길거리엔 기묘한 냄새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냄새를 감추려고 각자 향수부터 방향제까지 있는 대로 뿌리고 발라댔으며 길거리를 누비는 많은 사람들 사이엔 누군가의 시체 썩은 냄새나 각종 향수냄새까지 기묘하고 추잡하기 짝이 없는 악취의 향연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후각 세포가 완전히 마비될 지경이었고 창우도 연신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려 킁킁 거렸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자신의 몸에서 그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다. 냄새에 대해서 더 정확히 알고 싶었다. 컴퓨터를 붙잡고 불안한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연신 자신의 몸에 냄새를 맡았고 불안한 마음에 모니터로 시선을 집중했다.
엄청났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정리된 방대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다. 아직 발병 원인이나 정확한 감염경로는 밝혀내지 못했어도 병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여러 가지가 인터넷에 나돌고 있었다.
첫 번째. 이 병의 발병률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의 조사에 따르면-그 사람은 미국의 무슨 보건 기관이 조사 했다고 한다 ― 병이 최초로 발병한건 이미 1년 전의 일이고 남미의 어느 내전국가에서 최초로 발병했다고 한다. 그 후 동시 다발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병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병의 발병률이 각 국가의 청렴도 결과와 정확히 반비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가 부패하면 부패 할수록 병의 발병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병이 발병하는 직업군이 대부분 고위 공직자나 기업 간부, 그리고 공무원들에게서 병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고 병이 발병해도 당사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스스로 내리기 힘들다고 했다.
이 병은 특이하게도 증상이로 나타나는 것이 몸에 나는 악취뿐이지만 자신이 스스로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후각의 예민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몸이 썩어가고 있다는걸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스스로가 확인하는 방법은 한가지뿐이라고 했다.
그것은 피를 살펴보는 것이다. 많은 양도 필요 없이 한 방울만 있어도 된다고 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살짝 찢어 흰 종이위에 떨어뜨려 보란다. 그리고 피의색이 정상적인지 그리고 시체 썩은 냄새는 나지 않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창우는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책상에 굴러다니던 하얀 메모지 한 장을 가지고 주방에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바닥에 종이를 깔고 싱크대에서 제일 날카로운 놈으로 식칼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왼손을 찌르기로 했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날카로운 칼끝은 가져갔고 확실히 알아보고 위해 칼끝을 조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으..."
손가락에 칼이 파고들었고 피가 떨어졌다. 하얀 종이위로 정확히 피가 한 방울 떨어졌고 창우는 곧바로 피를 문지르며 혹시나 피의 색깔이 변했나 확인해 봤다.
변하지 않았다. 피의 색깔은 온전히 붉은 색 이었고 창우는 안심했다. 그리고 냄새. 이제 냄새를 맡을 차례였다. 창우는 피가 흐르는 왼손을 그대로 코로 가져갔다. 조심스럽게 코끝으로 가까이 가져와 냄새를 맡았다. 최대한 숨을 깊숙이 들이마셔 냄새를 정확히 맡으려 했다.
"흡"
조금 더 정확히 냄새를 알아 내기위해 정신을 집중한다. 인상을 쓰며 냄새를 맡으려고 애를 쓰는데, 난다. 냄새가 났다. 썩은 냄새다 어디선가 시체 썩은 냄새가 풍겨나와 창우의 여린 후각을 다시 한 번 자극하고 있었다.
-킁, 킁
당황한 창우는 킁킁대기 시작했다. 더욱더 가까이 손가락을 가져와 냄새를 맡는데, 이상하게도 냄새의 근원지는 거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비릿한 것이 산뜻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이 냄새는 어디서 난단 말인가. 창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현관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쾅, 쾅
"문 열어! 창우야 문 열어!"
현관이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창우를 부르고 있었고 재빨리 달려 나가 문을 열자 문밖에는 진식이가 서 있었다.
"창우야, 나 어떻게 해? 창우야"
연신 창우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는 진식이. 문을 열자마자 진한 악취가 진동을 했고 진식이의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는 곧바로 현관문을 통해 창우의 방안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진식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썩은 냄새는 물론이고, 이전보다 한층 독해진 냄새는 도저히 산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자기도 냄새가 나는지 왼손으로 코를 가리고 울먹이는 눈가는 심하게 늘어져 있었다. 병세가 악화되면 피부가 늘어난다는데 창우는 지금 눈앞에서 그걸 목격하고 있었다.
"창우야...어떻게 해 냄새나지? 나 냄새나지?"
진식이는 계속 헛소리만 하고 있었다. 막상 문은 열었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창우에게 계속 울먹이며 헛소리만 하고 있었고 자신도 자기의 냄새 때문에 미쳐버리겠다는 듯 괴로워하고 있었다.
"창우야. 이것 봐, 나 이렇게 하면 냄새 안 날줄 알았는데 이상해, 냄새가 더 난다고. 냄새가 더나!"
울먹이던 진식이는 순간 코를 가리고 있던 왼손을 치워 버렸다. 그리고 거기엔 응당 있어야할 그 무언가가 사라진 체 뜯겨나간 살점 아래로 거의 진녹색에 가까운 진식이의 피가 말라가듯 붙어 있었다.
"어떻게 해, 어떻게!!!!"
거기엔 코가 없었다. 진식이가 스스로 뜯어버렸는지 거기엔 코가 없었다.
진식이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창우도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심장이 녹아 내리는 듯 했다. 진식이는 울고 있었고 늘어진 눈꺼풀 사이로 구린 악취를 풍기는 진녹색 눈물이 진액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흉하게 뜯겨나간 콧잔등의 자리위에 휑하게 뚫린 두개의 구멍과 처참하게 말라붙은 썩은 살점은 역시 산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썩은 시체에서 뜯겨나간 살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창우는 문을 닫으려 했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었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단지 이제는 더 이상 친구도 뭐도 아니게 되어버린 저놈을 더 이상 자신의 공간속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말이 없는 창우의 태도에 진식이도 뭐가 눈치를 챈 듯하다.
"안 돼, 안 돼 그러지마! 그러지마 창우야!"
창우는 잽싸게 문고리를 잡고 끓어 당겼다. 미처 진식이가 손을 뻗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려 한 것이다. 진식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다는 듯 손을 뻗어 막아보려 했지만 창우가 더 빨랐다. 빠르게 닫히는 문틈사이로 왼손을 내밀었고 결국 손가락이 끼어 잘려버리고 말았다.
"으아 악!!"
진우는 비명을 질렀지만 창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문을 닫아 버렸다. 닫힌 문틈에 손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갔고 역시나 물컹하게 녹아내린 썩은 속살이 그대로 들어났다.
-쾅! 쾅! 쾅!
"으아악!! 문 열어, 문 열어 창우야 문 열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창우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말없이 문틈이 끼어 잘려나간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저걸 어떻게 치워야 할까 고민 중이었다. 이미 방금 전에 칼이 찔린 자신의 손가락에서 흐른 붉은 피와 진식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묽은 진액이 창우의 문틀을 흘러 현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불결하고 어지러운 광경이었다.
"끼야악!! 문 열어, 문 열어!!!"
진식이는 더욱 발악을 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창우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욕실로가 락스를 가져왔고 잘린 진식이의 손가락 세 개는 주어다가 변기 물에 넣고 내려 버렸다.
문밖에서 비명을 지르는 귓가를 거슬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방안에 가득한 이 냄새를 어떻게 없앨까 고민 중이었다. 락스로도 안 없어지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는 수밖에 없다.
바로 '시체 썩는 냄새 처리하는 법'으로.
그사이 진식이는 손가락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미칠 듯이 손가락을 찾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다. 약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사태는 잠잠 해졌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정부가 드디어 해결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곧바로 병에 대한 치료법과 약물을 확보해 전국 지정된 병원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모두 두 가지 약이었는데, 환자용과 예방용 백신 두 종류였다.
정부가 자체 개발한 건지 미국에서 들여온 건지는 확실치는 않다.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먼저 사용하기 전에 우리나라에게 시험하는 조건으로 미리 물량을 제공한 것이라고도 했다. 무슨 감기 백신처럼 주사로 맞는 이 약들은 환자용과 예방용 백신 두 종류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만 두 가지 약물이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접종자의 후각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린 다는 것.
어차피 치료용으로 나온 약물도 환자의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병의 진행을 단지 조금씩 늦추는 것뿐이라는 소문이 있다. 차라리 모두가 냄새를 못 맡아 버리는 편이 서로에겐 편리한 부분인 것이다.
창우도 곧바로 주사를 맞았다. 구청 직원이라 다행히 우선적으로 접종 이 됐고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차분히 다시 업무에도 집중 할 수 있었고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의 예전과 같은 생활로 조금씩 돌아갈 수 있었다.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정부의 발 빠른 조치가 초기에 사태를 진정시켰고 이 사회가 다시 안정적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여론은 이미 죽을 놈들이 다 죽고 나니까 사회가 안정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 했으며 정부를 믿고 기다려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대통령의 말에는 콧방귀도 안 꼈었다.
혹자는 이번에 정부에서 발 빠르게 보급한 백신들이 사실 아무런 약효도 없고 단지 접종자의 후각만 완전히 파괴시켜 버리는 약물이라고 했다. 당연히 접종을 거부했고 또 당연히 일부에선 그와 상관없이 백신의 접종권을 놓고 모종의 뒷거래가 오고가고 했다.
창우는 관심 없었다. 그딴 백신 약효가 있건 말건 냄새만 안 나면 그만이었다. 그날 창우의 현관 앞에선 터져간 진식이의 악취 때문에 지옥보다 더한 한 달을 겪었다는 사실에 몸서리 치고 있을 뿐이었다.
약효는 무척이나 빠르게 퍼져갔고 몸의 변화도 그만큼 빠르게 일어났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 받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각을 잃어버렸다. 각자 냄새를 못 맡는다.
만일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전혀 약 효과가 없이 병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속이 또 곪아 터져가고 있을 것이고, 냄새를 못 맡으니 사회전체가 당분간은 묵인할 것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통령은 접종을 거부하는 일부 여론 때문에 생방송에 나와 직접 주사를 맞는다. 그 뒤로 보건 복지부 장관이 기다리고 있고, 정부 각처의 공직자들이 차례대로 서서 주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주사를 맞고 나자 아주 개운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창우는 방송을 보다가 문득 대통령의 볼살이 작년 선거 때에 비해 조금은 아래로 처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별일 아니다. 이 병의 최초 발병자는 박 의원이었고 박 의원은 대선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사람 아닌가.
대통령의 처진 볼살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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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재도 익숙한 듯 신선하고 문장도 깔끔하니 좋았습니다.
안으로 부터 썩는다...아주 재밌었습니다. 이 글을 국회로 보냅시다~~ ^^
섬뜩한데다 일관된 주제에 풍자성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근데 전 읽으면서 왜 자꾸 소설 향수가 생각났을까요?...ㅋㅋ
새로운 느낌!
신선했습니다...잼나게 잘 읽었어요
알게모르게 속이 시원한 글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잔인하죠 ;;...이글보면서 속이 울렁댓어용...이상황이 실제라는 생각이 드는건 ..
이상하게 속시원하네...
재밌어요.. 속시원하고.
잔인해도..............속시원한느낌이듭니다!
나라가부패할수록 부패율이높다 무섭군요 역시 무섭군요 거기다가 발생자가 박의원.. 실제라면 정말 무서운
독특한소재에비평까지좋네요...
상상력 최고...!
아....진짜 이런 세상이 있었음 하는 생각은 너무 위험한 생각인가요??? 우리나라 윗대가리들 썸찟하겠네요,,
독특한 소재...상상력이 대단하네요^^
good
재밋네요 잘 읽엇습니다~
고맙습니다~~좋은글 읽게 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