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아시나요?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이 창원 진동 공원묘지에 건립되어 있다. 이 건물은 경남 성시화운동본부와 도내 교회에서 성금을 모아 2010년 10월 2일 준공되었다. 부지 3천평에 단층 75평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호주 선교사들의 활동 내용과 각종 자료 1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건물이 진동공원묘역에 조성하게 된 것은 경남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호주 선교사 8분의 묘역을 조성하면서 추진되었다. 묘지 조성과 함께 건립된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기독교 전래과정과 경남의 기독교 전래에 대하여 요약 기술하고자 한다.
1. 한국의 기독교 전래
한국의 기독교 선교는 천주교에서 시작되었다. 천주교는 이승훈 선생이 중국에서 영세를 받은 후 지금부터 228년 전인 1785년 정조 8년에 처음 교회당이 세워지면서 천주교 전래 초기 100여 년간은 유교국이던 조선 조정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사문제로 야기된 신해박해(정조 15년), 정약용 선생 형제 등을 몰아내기 위한 신유박해(순조1년), 풍양 조씨와 안동김씨 간 세력 다툼에서 일어난 기해박해(헌종5년), 김대건 신부 등이 순교한 병오박해(헌종 12년), 흥선 대원군이 주도한 병인박해(고종 3년) 등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박해가 계속되었다.
반면 기독교는 선교사로 이 땅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미양요의 원인이 된 제너럴 셔먼호 사건 때다. 1866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 도착하자 평양 감사 박순규가 이 배를 불사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이 배에 타고 있던 토마스 목사가 다른 선원들과 함께 피살당했다. 이 사건이 기독교 전래의 시작이다.
그 후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 1885년부터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의 선교를 위해 입국하였다. 이때부터 미국 선교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기독교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다.
선교 초기에 이 땅에서 활동한 중요 선교사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전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 분들의 업적은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 대표적인 선교사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과 서울 정동교회를 설립하였으며 그의 큰 아들도 이 땅에 머물며 배재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장녀는 이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대를 이어 한국에 헌신하였다.
정동병원을 세운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선교사는 서울 상동교회를 설립하고 어머니인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Scranton)여사는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이화여자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언더우드(H. G. Underwood) 선교사는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여 이 땅에서 순교하였으며 그의 아들 3명이 모두 6. 25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 후손들은 계속하여 한국에 머물면서 4대에 걸쳐 119년 동안 기독교 선교와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서울 마포에는 언더우드(원두우) 목사님과 그 분의 아들과 손자의 묘소가 함께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 후손들은 대대로 한국을 위해 헌신한 귀한 가문으로 그 4대 째 손자 언드우드 목사는 2004년도 한국에서의 선교 사명은 완수되었음을 선언한 후 미국으로 철수했다.
게일(James Scarth Gale) 선교사는 캐나다 출신으로 부산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한 분이다. 이 분이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된 것은 한미통상조약 체결 후 우리나라 젊은 엘리트 민영익 선생 등 6명이 미국을 견학하기 위하여 見美團으로 미국에 입국했다. 이 때 열차 속에서 한복차림에 갓을 쓴 초라한 한국 젊은이들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때 묻은 한복의 젊은이들을 보고 게일은 이들을 깨우쳐야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을 설립한 알랜(Horace Newton Allen) 선교사,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고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한 에비슨(Avison, Oliver R) 선교사 등 많은 엘리트 선교사들이 활동했다. 감사한 일은 우리나라를 찾은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 선교사들에 비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 선교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활동이 한국사회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에 기독교 선교사 묘역이 있다. 이 땅을 다녀간 수많은 선교사 중 우리나라에서 순직하여 뼈를 묻은 선교사들의 묘지가 이곳에만 145기의 묘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분들 외에서 국내 곳곳에 선교사 묘지들이 산재되어 있다.
2.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이렇게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초기 선교사들은 서양식 병원과 신식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의료 및 교육 사업을 주로 전개하였다. 지금 서울의 명문학교의 전신인 배재학당, 이화학당, 연희대, 숭실학교 등이 이 당시 설립되었으며 최초의 병원 광혜원도 선교사 알랜이 설립하여 우리나라 병원의 시초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YMCA와 YWCA를 조직 육성하여 신문명 운동과 양반과 상놈제도 폐지를 위한 반상(양반과 상놈)철폐 운동, 여성지위 향상, 농촌계몽활동, 미신타파, 금연 금주운동 등 사회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당시 저작된 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수원 샘골에서 활동한 YWCA회원 최용신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으로 당시의 사회운동의 실상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해방 후 6.25 전쟁이 발발되자 전쟁으로 발생한 수많은 고아와 과부들의 구호 사업이 기독교 선교사를 통한 미국 교회들의 지원으로 전개되었다. 1985년 본인이 경남도청에 근무하면서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할 때만해도 경남도내의 고아수용시설인 육아원 30개 중 29개가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이들 육아원 대부분이 외국 교회의 원조 물자에 의존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교회를 중심으로 교육, 의료, 선교 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의 생활향상 및 의식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3. 경남의 기독교 선교
경남의 기독교 선교는 1890년대부터 1913년까지는 미국 북장로교(PCUSA) 선교부와 호주 장로교(PCV) 공동 선교지였다. 그후 1913년 말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부산경남 지방에서 철수하였기 때문에 1914년 이후는 호주 선교사들이 주로 담당했다. 그것은 한국 선교 초기에 각국에서 경쟁적인 선교활동이 산발적으로 전개되자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의 중첩을 방지하기 위해 선교지역을 분할했기 때문이다. 경남은 호주 선교사들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선교지 분할 내용은 경남은 호주교회, 충청도와 전라도는 미국 남장로교, 경기도는 감리교, 황해도와 평안도는 미국 북장로교,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서울은 각국에서 자유로이 선교토록 내부적인 교통정리가 이루어졌다.
호주에서 경남선교를 위해 처음 방문한 선교사는 호주 교회의 조셉 헨리 데이비스(Rev. Joseph Henry Davies) 선교사이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호주 멜본 대학을 졸업하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을 하다가 한국 선교의 뜻을 가져 호주 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도착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1889년 10월 2일 배를 타고 부산으로 입국하였다가 인천을 거쳐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5개월간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등 현지 적응 훈련을 받은 후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1890년 3월 14일 서울을 출발하여 20일을 걸어서 4월 4일 부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4월 5일 과로와 풍토병으로 돌아가셨다. 제대로 복음 사역도 펼치지 못하고 한국 도착 6개월 만에 데이비스 선교사가 순직했다는 소식이 호주 장로교회에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호주 장로교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불쌍한 미개지역인 한국을 구해야겠다는 선교 열기가 더 높아졌다. 1890년 7월 23일 호주 장로교회는 집행위원회를 소집하여 한국에 선교사를 다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또 1890년 창립된 장로교 여전도회 연합회도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결과 1891년, 청년연합회의 파송을 받은 메카이 목사(Rev. James H. Mackay) 부부와 여전도회 연합회의 파송을 받은 세 사람의 미혼 여선교사인 멘지스(Belle Menzies, 민지사), 진 페리(Jean Perry), 메리 퍼셋(Mary Fawcett) 등 3명의 여성 선교사를 포함하여 모두 5명의 선교사들이 약 40일 간의 항해를 거쳐 1891년 10월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아무런 사전 준비나 연고도 없이 ‘주님의 인도와 보호만 믿고’ 내한(來韓)했다. 부산에 도착한 이들 선교사들은 부산진에 주택(선교관)을 마련하고 한국인과 접촉하면서 전도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 3개월 후인 1892년 1월, 메카이 선교사의 부인 사라 메카이(Sara Mackay) 선교사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호주 장로교회의 두 번째 희생이었다. 사라의 유해는 부산 앞바다가 굽어보이는 복병산 데이비스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이렇게 미개국이던 한국에 목숨을 건 선교활동이 계속되어 60년대 까지 호주 선교사로 124명이 경남을 찾아 왔다.
호주 선교사들은 경남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부산의 유명한 일신 산부인과의 전신인 일신병원과 진주의 배돈병원을 개설하였다. 교육사업은 마산의 창신학교, 부산 동래여고 등을 설립하는 등 경남지역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4. 호주 선교사 묘역 및 선교기념관 건립
호주 선교사 중 경남 부산지역에서 순직한 선교사가 8명이었다. 이들의 묘소는 도시개발 과정에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방치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미혼 여성으로 경남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어 의신여고 교장 등 일평생을 독신으로 헌신하다가 56세에 별세한 맥피(Ida McPhee) 선교사의 무덤이 무학산 기슭 공동묘지에 있었다. 그런데 그 묘지 터가 개인에게 불하되어 땅 소유주가 묘지 이장을 권고하는 경고판을 세웠다. 이를 알게 된 경남 성시화운동 본부에서 묘지 이장을 위해 묘지 터를 구하는 과정에서 호주 선교사 묘역 조성사업으로 발전 하였다.
이 당시 창원진동공원묘원 신성용 이사장이 이 소식을 듣고 진동공원묘지 안에 부지를 1천평을 희사하여 도내에 산재해 있던 8기의 선교사 묘역 조성이 추진되었다. 2009년 9월 19일 부지 1천평 부지에 묘역 300평 공원 700평으로 호주 선교사 묘역이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이 묘역에는 최초의 호주 선교사인 조셉 헨리 데이비스, 아서 윌리엄 앨런, 아이다 맥피, 윌리엄 테일러, 앨리스 고던 라이트, 거트루드 네피어, 앨라이사 애니 애덤슨, 사라 매케이 선교사 등 8분의 호주 선교사 묘지가 설치되었다. 이와 함께 국내 순교자로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최상림 목사, 이현속 전도사 등 4분의 묘역도 함께 조성되었다.
이 묘역 조성이 준공되었을 때 입국한 호주 장로교 관계자들은 묘역 조성에 감사하면서 선교사들의 유품을 기증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로 인해 유품을 보관하고 호주 선교를 기념할 호주 선교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었다. 이 기념관 건립에 신성용 이사장이 부지 3천평을 추가로 기증하고 경남도내 각 교회의 헌금과 교인 1인 1만원의 성금 모금 운동으로 자금을 조성하여 경남선교 120주년이 되는 2010년 10월 2일 경남선교 기념관이 준공되었다.
5. 글을 맺으며
100여년전 미개했던 대한민국과 우리 경남지역의 근대화에 기독교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다. 마산만 보더라도 창신학교를 비롯하여 사회복지시설 인애원 애리원, 영신원 등 많은 시설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되어 운영하면서 많은 인재를 육성시켰다. 특히 초기의 사회복지 제도는 그 자체가 기독교의 박애정신으로 체계화되었으며 미국 교회의 원조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나는 경남 도청에 근무할 때 일선 마을을 많이 방문한 경험이 있다. 마을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교회가 있는 마을에는 그 마을 출신자 중 대학교육을 받은 분이 많은 사실을 알았다. 교회를 통해 신문명 교육을 장려하고 여러 선교기관에서 우수한 학생을 도와준 영향이었다.
그 시초가 된 선교사들의 활동을 기념하는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지금은 진동 공원묘원에 소재하여 일면 으스스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찾아가서 100 여년전 우리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경남선교 기념관이 도심지로 옮겨져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적 기념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 참고문헌 생략 : 이 글은 선교 12주년 기념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책자와 자료 등
을 종합하여 요약한 설명문이기에 참고 문헌을 생략함.
글쓴이 : 박 권 제
(전 경남도청 감사관, 고성 부군수, 창원한빛교회 은퇴장로, 창원향토사 연구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