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일반승용차의 편안한 여행을 추구 하는 사람은 아니다. 누구나 갈수 있고, 모든이에게 알려진 단순한 "관광지"만을 취재 한다면 필자보다 5.86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
필자는 대부분 4WD정도는 되어야 접근이 용이한 곳을 취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바로 그런 곳이 아직은 인간의 손길을 덜 탄 곳이며 좀 더 자연속에 접근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걸어서 가는 트래킹이 자연의 심장에 깊이 들어가는 방법이긴 하지만 자연과 문명속에서 어느정도 타협을 보아야 한다는 필자의 철학은 4WD를 고집 한다.
필자는 여기서 필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독자 분들에게 몇가지를 강요 하고자 한다.
"진정한 여행은 비경을 찾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경치속에서도 새로운 의미(시각)을 갖는 것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스쳐지나가는 도시 속에서도 의미만 갖는 다면 비경을 찾을 수도 있다는 뜻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 내공은 필자에게는 언감생심일 뿐이니, 일단은 비경속에서 의미도 함께 찾음으로서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자세가 필요 하다.
1. 그곳의 느낌을 표현할 수 하는 "글" 이나 "말" (대상은 자녀도 될 수 있고 팬도 될 수 있다) 2. 그곳의 비경을 "사진" 이나 "머리속에" 새김으로서 가끔씩 복기 하는 수단으로 둘 것 3. 그곳의 사전 "역사적 지식"("역사적" 만을 고집 하지는 말자. 때로는 지정학적, 지리학적의미도 상당한 가치를 발한다)
이제 준비된 분이라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뜻깊은 여정이 될 것이다.
본 글은 태백시 인근의 명소라 추천 할 만한 곳을 1박2일간의 여정을 가지고 필자와 독자분들이 함께 사이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구성 하였다. 필자가 2회에 걸친 태백 출장 내용을 1박2일에 알맟게 코스를 줄이고 생략 해서 1박2일에 알맟게 재구성 하여 본 것이다.
이번 여행의 의미는 비경도 비경이려니와 태백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에도 무게를 둔다.
본 기사의 여행 코스는 그리 한가한 편은 못된다 오히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차내에서 한끼 때울일도 생길 수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기 바란다. 짧지만 풍성한 여행을 위해서, 그리고 태백이 수도권에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님을 감안 한다면 미리 필자의 글을 충분히 읽고 시간을 맟추기를 권한다. 그렇치 않다면 필히 시간에 쫒기어 급한 여행이 되던지, 한두군데를 놓치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1일차 : 수도권에서 새벽4시정도에 출발하여 목표는 긴 여정 끝에 함백산정상에서의 일몰을 감상 하고(정상에서 야영하고 일출을 본다면 금상첨화) 태백에서 닭갈비드시고 하루를 푹 쉰후 2일차에 태백인근의 명소를 돌아 보고 귀가 하는 시나리오 이다. 1일차 여행의 백미는 함백산 일몰 이므로 일몰 한시간 전에 함백산 정상에 있을 정도의 시간을 준비 하여야 한다. 서울을 기준으로 4~5시간 정도면 정암사에 닿을 수 있다. "서울-엽기소나무-정암사-만항재-주목군락지-함백산-오프로드-태백선수촌-태백" 까지 예상 한다면 새벽5시 이전에 떠나는 것이 좋겠다. 중간에 생략을 한다면 엽기소나무와 오프로드를 생략 할 것을 권한다. 현지에서의 시간에 맟추어서 다른것도 생략해도 좋지만 함백산 정상만은 생략 하지 마시기를 권고 한다.
2일차: "황지연못 - 구문소 - 피재 - 풍력발전소 - 검룡소 - 용연동굴"이 2일차 여정이다. 모두 태백시를 기준으로 20km 이내에 위치하며, 매코스 마다 이동시간 포함해서 1~2시간 정도면 알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 6시부터 관광길에 나선다면 모든 코스를 다 둘러 볼수 있다.
먹거리는 태백시내의 닭갈비를 추천 한다. 태백에는 유면한 음식점으로 태백한우고기 집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든 먹는 쇠고기 보다 태백의 닭갈비는 육수와 당면을 넣어 끓이는 것으로 이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색적인 것이다. SS패션옆의 닭갈비 집을 물어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태백의 1일차 태백명소기사는 여기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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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을 2번에 걸쳐 여행 하면서 느낀 단어는 위의 표제어 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였다. 물론 명색이 강원도이고 고원의 도시인데 절망하지 않을 정도의 비경이 없으랴 만은 그런 눈요기의 비경 보다는 "한반도의 중추"(여기서 "중추" 라는 것은 교통이나 행정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여행을 가져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고원의 도시 태백은 탄광개발 이전에는 국토의 오지중 하나였던 곳이고, 탄광산업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무터 다시 오지속으로 들어 갔던 곳이다.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쳐져서 지금의 태백시가 된 것은 1981년. 그당시야 석탄왕국으로 인구가 10만을 넘던 시절이지만 지금은 5만을 넘기기가 어렵다.
태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제 1의 광도(鑛都)이다. 일제 무렵,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조선총독부 보유 탄전의 광업권을 인수하여 장성의 석탄을 캐낸 것이 탄광의 시작이다. 태백의 연감을 들추어보니 1981년의 광부 수가 무려 19,375명에 달했다 한다. 집계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2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 1987년 태백의 석탄 생산량은 640만 톤이나 되어 전국 생산량의 30%에 이르렀다. 강아지들마저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광산촌의 영화. 그러나 그 영화는 이제 흉물스럽게 버려진 탄광과 빈집을 뒤로 한 채 저마다 진폐를 쿨룩이며 대처로 떠난 광부들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탄광산업의 사양화는 태백 전체를 절망의 도시로 만들었다. 태백의 힘이 되어 왔던 석탄의 몰락은 태백을 석탄 이전 보다 더욱 참혹하게 만들었다. 오지 답게 맑은 물과 수려한 산은 탄광으로 온통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고, 도로마다 깔린 흙조차도 시꺼멓다. 계곡을 적시던 옥수들은 탄광이 토해내는 녹슨물과 정화물로 붉거나 암회색을 띄기가 일쑤이다. 그와중에 하늘만이 제색깔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고려의 충신들이 들어와 살다가 태조에 의하여 불타 버렸다는 두문동은 "두문불출" 이 되었다. 두문동재부터 시작 되는 태백의 모습은 여러집 걸러 한집정도만 사람의 흔적이 있으며, 이 조차도 대낮부터 술에 취해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는 나이든 이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 삶의 활기를 찾기는 어렵다.
석탄이 아니었다면 강원도의 어느 마을 못지 않은 비경을 간직했으련만, 이제는 계곡의 물조차 중금속을 걱정 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진폐보다 훨씬 더 무섭고 몹쓸병이 되어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절망"
관광! 절망속에서 한줄기 희망이 된 것은 관광이란 단어였다. 하지만 그 조차도 태백주위의 영월, 봉화, 평창, 정선등의 쟁쟁한 경쟁상대를 이기기는 힘들었고 수십년 석탄의 흔적을 지우기 어려우니 관광인들 제대로 되기는 어려운일. 강원도에서 쉽사리 만나는 흔한 약수터 조차 이곳에서는 귀하다. 어쩌다 고원청정의 땅이 계곡수에 발한번 담그기조차 조심스러운 땅이 되었는지. 옛부터 척박하기 그지 없는 땅거죽에 의지하는 인간의 삶을 안타까이 여겨 자연은 땅속에 보물을 살며시 들추어 주었건만 인간은 제 발등 찍는 줄도 모르고 심하게 파헤친 결과가 아니던가.
태백의 절망은 길에 나뒹구는 소줏병과 진폐로 주름진 얼굴의 탄부 및 꼬리를 내린 강아지들과 그렇게 깊어만 간다. 그래서인지 인근의 관광지에 들르면 반기는 관계자의 모습이 여타 도시와는 다르게 적극적이기는 하다.
그렇게 한줄기의 희망조차 어두워 지더니 불현 듯 카지노가 들어 서면서 활기를 찾기 시작 하였다. 살다보니 도박장 따위에 목을 메야 하는 신세가 되 버린 태백에게 "도박장 따위.." 로 외면해 버리는 필자의 단어는 복에 겨운 소리일 뿐일 것이다.
강원랜드 덕분인지 몇 년전 들렀던 태백의 모습과는 다르게 태백의 경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는지 도로를 장식하는 나무들이 정갈하게 늘어져 있고 시내 쪽에는 활기에 찬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 한다
석탄이 물러가기 시작한지 4~5년이 되어가는 태백은 놀라운 자연의 정화능력으로 본디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길에 깔린 검은빛의 돌더미들은 좀더 시간이 필요 하겠지만 파헤쳐진 산은 푸른 숲들이 그 영역을 조금씩 확대 하고 있었다.
아무리 석탄에 짓눌린 태백이지만 고원의 도시답게 곳곳에 이국적인 풍광을 가지고 있으며 비경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태백은 "높다" 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역 - 추전역. 가장 높은 동굴 - 용연동굴 가장 높은 포장도로 - 만항재 414번 도로(기사 보기) 가장 높은 학교 - 두문동 대성 초등교 가장 높은 우물 - 용정
대충 추려도 이정도 이다.
자동차 여행을 즐기는 분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걷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속성은 걷기는 것을 싫어 한다기 보다는 되도록 자동차로 가까이 다가가서 걷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서 빠른시간에 좀더 많은 곳을 둘로 보고자 하는 습관으로 봐야 할것이다.
이러한 자동차여행객들의 속성에 맟추어서 절경 함백산과 연계되고 차에서 내려서 걷는 거리가 1시간 이내인 태백의 명소들을 정리 하여 본다.
구문소의 전설이 무릉도원으로 가는 석문이라는 전설도 있으니, 여길 지나 들어가는 태백시가 무릉도원이 될 수도 있겠다. 태백을 무릉도원처럼 생각 할 수 있는 신비한 장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연못이다.
태백시내에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이 있다. 태백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 연못은 하루에 5000톤의 물을 뱉어내고 이 물줄기는 낙동강 1300리 긴 여정을 가면서 한반도의 남쪽을 적시게 된다.
먼 옛날에 이곳에는 황씨성을 가진 부자가 살았다. 어느 날 시주를 받으러온 스님에게 거름을 퍼주었고 이를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로 다시 시주를 하였다. 이때 스님이 "이 집은 운이 다 하였으니 나를 따라오되 뒤를 보지 말거라" 하여 며느리가 스님을 따라가다 보니 뇌성벽력이 집에 떨어지면서 집은 없어지고 집터에는 연못이 생겼으며, 이를 뒤돌아본 며느리는 돌이 되었다고 한다(돌이 되는 전설이 너무 흔하다 ^^). 황지연못은 1년에 한두 번 흙탕물로 변하는데 이는 이무기가 되어 황지연못에 갇힌 황부자가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한다.
연못이 있는 곳은 공원화가 되어서 상당히 정갈하게 잘꾸며져 있다. 시내 한가운데에 이런 연못이 있다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태백의 자생 나무도 일부 모아 놓았으니 잠시 짬을 내어 한번 들러 보길 권한다.
지하수가 하루에 5000톤이 용솟음 친다. |
낙동강 1300리 여행을 준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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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에서 35번국도를 따라 약 10분정도 내려가면 장성을 지나자마자 구문소에 닿는다
태백 구문소(求門沼)는 석회동굴이 땅위에 드러난 구멍으로 철암천으로 흘러들어오는 황지천 하구의 물길 가운데 있다. 구문(求問)은 구멍·굴의 옛말이며 ‘굴이 있는 늪’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도참서 정감록에는 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凶年)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향(理想鄕)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그 오복동(一名 午腹洞)은 지금의 낙동강 발원지가 있는 황지, 장성 땅인 태백시 일원을 말하고 석문은 낙동강이 산을 뚫고 지나간 뚜루내(穿川)인 구무소의 크고 둥근 구름다리 형상의 석굴(石窟)이 바로 석문(石門)인 것이다.
구문소는 구무소의 한자식 표기이다. 구무는 구멍·굴의 고어이다 또다른 말로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한다. 주위가 모두 석회암반으로 되었으며 높이 20~30여m, 넓이 30m정도로 동양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환선굴입구보다 몇배나 더 크다. 이 특이한 도강산맥(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5천만년에서 3억년전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이상향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기이한 석문이 있다고 하는데 낙동강을 따라 오르면 낙동강 발원지 못미쳐 기이한 석문이 있으니 태백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구무소의 석문이 대표적인 이상향의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구문소 바로 옆에 자동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인공(人工)으로 뚫은 석굴(石窟)이 있다. 폭 약 4m, 높이 약 6m의 이 석굴은 3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장성에 석탄광산이 개발되면서 왜인들에 의해 단기 4270년에 뚫은 것이다.
태백 구문소 부근의 석회암에는 건열, 물결자국, 소금흔적, 새눈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하부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또한 동굴을 관통하며 흐르는 황지천 하류의 물길은 현내천과 함께 하천 물길의 변천을 연구하는데 학술상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구문소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고문서에 천천(穿川:구멍 뚫린 하천)으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다양한 전설과 함께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태백 구문소의 고환경 및 침식지형은 퇴적구조, 침식지형 등 다양한 지형, 지질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부 고생대의 고환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천연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천연기념물 417호)
왼쪽의 굴은 인공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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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천과 구문소 근처는 화석이 상당히 많이 있다. 인근의 자연사박물관에 잠시 들러도 좋다. |
동굴로 흘러 들어가는 물. 구문소는 최근의 조명공사로 야간의 경치가 아름 답다. 실제 보면 아름답다기 보다는 상당히 "전설의 고향"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
태백시내에서 북쪽방면의 임계로 향하는 35번 국도를 타고 약 7km쯤 올라가면 피재에 닿는다. 이 피재는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이 피재는 삼수령이라고도 부른다. 이 이름에는 꽤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피재는 매봉재의 한 자락으로 높이는 920m이다. 또 이곳은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三江:한강·낙동강·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원한 주위의 풍광과는 별도로 참으로 의미 있는 고개 이다.
이 피재에서 좌측을 보면 산 저 꼭대기에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5개가 보이면서 유혹을 한다. 요즘 들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풍력 발전이지만 시원스레 펼쳐진 고랭지 채소 밭과 멀리 동해의 운무, 서쪽의 함백산을 감상 하기에 좋은 곳이니 지나치지 말도록 하자.
실제 바로밑에서 발전기의 날개가 돌아 가는 소리를 들어보면 하늘에 비행기 소음으로 착각(필자는 "오늘 웬 비행기가 이리 많이 날라다니나" 하고 생각 했었다.)할 정도로 대단한 소리를 내며 돌아 간다.
널찍이 벌려진 매봉산과 함백산, 태백산을 감상하고 가슴 한가득 시원한 바람을 담기에 좋은 곳이고 발전소의 바람개비도 쉽게 볼 수는 없는 경치 이므로 꼭 한번 들러 보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고랭지 채소밭과 조화 된 발전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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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관문 두문동재가 멀리 보인다 |
사진의 빈공간을 채워주는 모델도 되어주고, 잠도 재워주는 애마와 함께 |
풍력 발전소에서 시원한 바람을 가슴깊이 담았다면 이제는 한강의 발원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검룡소는 낙동강발원지인 황지연못과는 다르게 숲속 깊이 숨어 있다. 진행방향(임계 35번국도)으로 피재에서 5km를 더 가면 검룡소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지판을 따라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잰걸음으로 약 20분, 쉬엄쉬엄가도 30분거리면 충분한 1.2km 이다. 경사도 없고 넓찍한 길의 주위에 빽빽한 전나무까지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주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줄 듯 하다. 그저 산책 하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사시사철 푸른이끼로 뒤덮힌 움푹파인 침식형 구덩이 사이를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일명 용트림 폭포라 불리는 사실은 폭포라 부르기는 민망할정도로 규모가 작다. 그러나 기기묘묘한 웅덩이와 그 묘한 기분을 더해 주는 푸른이끼는 필자가 보아 온 수많은 폭포와 계곡 중 그 어느곳에 견주어도 최고로 꼽을만 하다. 튀는 물방울들이 한낮의 역광과 더불어 빛을 더해주는 나무사이로 10걸음만 더 오르면 그 많은 물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물길이 끓어지고 만다. 잠시 어리둥절하는 필자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깊이를 알수 없이 무시무시하도록 서슬 퍼런 심연만을 드러내고 있는 검룡소.
둘레 약 20m. 하루에 2000톤 정도의 물을 뱉어내며, 물의 온도는 9도. 현대의 과학 기술로도 쉽사리 지하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한다.
아. 이곳이 한반도와 희노애락을 같이하고, 셀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의 젖줄이 되어지며, 수많은 도시를 감싸 안고 황해로 흘러가는 한강의 발원지가 아니던가.
땅속을 제외 하고는 더 이상 물을 공급해 주는 곳이 없으니 한강의 발원지 임은 확실하고, 과연 한강의 발원지라 할만큼 주위의 경관은 웬지모르게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 짓누른다. 분명 이제껏 보아온 계곡이나 비경과는 무언가 다른 극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인 용에 얽힌 전설이 글로 옮기기도 진부하지만, 실제 이곳은 검은용이 소를 잡아 먹는다 하여 동네사람들에 의하여 메꾸어 졌던 것을 1986년 태백문화원에서 복원 하였다고 한다.
불끈불끈 힘찬 물줄기를 토해내는 이곳 검룡소는 더 위쪽의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등에서 지하로 들어간 물이 이곳에서 용솟음치며 비로소 공기와 합류하여 골지천을 향하여 북쪽으로 향하며,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송천 물과 합하여 처음으로 "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니 그것이 조양강이다. 조양강은 다시 동남천과 합하여 동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동강은 영월의 단종유배지로 알려진 청룡포 인근 하송리에서 서강과 합하여 "남한강"이라는 한강의 이름을 얻고 단양을 거쳐 충주로 흘러 간다. 충주호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남한강은 방향을 급격히 북으로 바꾸어 여주를 거쳐 경기도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 하니 비로소 "한강"이 된다.
묘하게도 필자가 꽤 오래 살아온 곳은 한강이 강화도의 황해에서 긴 여정을 마치기 직전인 "일산" 필자의 긴 여정은 한강의 끝에서 시작 해서 줄곧 한강을 벗어나지 못한 여정이었음을 깨닫는다.
검룡소 가는 길의 전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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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심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 음..미처 필터를 준비 못해서 물속을 알아 보기 어렵지만 분위기는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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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 용트림 폭포라 불리는 검룡소 물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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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풍성했던 태백의 1박2일은 귀경길의 마지막에 용연동굴을 봄으로서 여정을 내린다. 본 기사의 코스 모두가 반경30km 이내에 있으므로 아침 일찍 서둘러서 관광을 시작 하였다면 용연동굴까지 감상 할 시간은 충분 하리라 생각 한다.
이제껏 육지와 파란 태맥의 하늘 그리고 맑은 물등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였으니 구색을 맟춘다면 이번엔 지하로 내려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태백에서 서울로 가려면 38번국도를 타고 사북.고한으로 빠진다. 이길을 따라 태백을 벗어나자마자 태백의 관문인 두문동재를 넘기전에 우측으로 용연동굴 팻말을 보고 들어 가면 된다.
용연동굴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920m) 위치한 동굴이다(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 ). 태백은 조금 높다고 하면 금방 1000m에 육박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높은도시임을 새삼 느낀다.
만추가 느껴지는 호젓한 길을 자동차로 5분정도 가면 용연동굴 매표소에 다다른다. 주말이라면 이곳에 주차 하고 앙증맞은 꼬마 기차를 타고 동굴 입구까지 간다. 필자가 찾은 날은 월요일 이라서 방문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관리소장님이 친절히 꼬마기차가 곧 운행 한다는 것과 뜨거운 커피까지 대접해 주셨다. 꼬마 기차는 기적소리 대신 에어클락션을 울리고, 칙칙폭폭 대신 디젤엔진음을 울리지만 충분히 재미 있는 모습으로 힘차게 올라 오더니 곧 재잘거리는 수학여행 학생들을 뱉어낸다.
동굴 내부는 편안히 구경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잘되어 있고 내부 전체(약 1km)를 둘러 보는데에 40분정도가 걸린다. 약 1억5천만년전에서 3억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석회동굴로 동굴 속에는 각종 석순과 종유석이 즐비하고 특히 동굴 깊은 곳에는 임진왜란때 동굴속에서 피난을 하던 사람이 암벽에 붓글씨로 피난하게 된 내력을 적어 놓은 것이 있다. 또 다른 동굴들 보다도 습도가 월등히 높아서 늦가을 임에도 끈적거림과 조금 덥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런 환경 탓에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초동굴성갑층, 긴다리 장님좀딱정벌레,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옛새우와 장님 톡톡이 등 6종의 신종 생물이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한 동굴이다. 지금은 약 30종의 동굴생물이 서식 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동굴의 내부는 각종 안전장치와 인공 조명이 화려 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연동굴에 비해서는 너무 조명이 현란 하다) |
동굴 입구로 가는 도로. 만추의 고즈넉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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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동굴앞 광장. 태백의 구호가 "관광" 이라는 것을 증명 하듯 밀착설명 하는 관리소장님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
주말을 이용 한다면 용연동굴 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한껏 장난 스러운 꼬마기차를 타고 동굴 앞까지 올라 간다. 칙칙폭폭이나 기적 소리대신 에어클락션 소리가 이색적이긴 하다. |
꼬마기차가 수학여행온 방문객 들을 뱉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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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많으십니다 늘 건강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