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면이 담긴 그릇은 보통 식당에서 쓰는 반주그레한 냉면 그릇 그대로였다. 깨끗하게 설거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은빛으로 윤도 났고 그 움쑥한 공간을 채운 국물 표면은 알맞은 기름기로 반들거렸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굶으렵니다."
"일해야 되는 사람이 안 먹고 어떻게 견뎌. 잠깐 나가서 뭐라도 먹고 때웁시다."
몇몇 사람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등을 돌린 이유는 다름 아닌 단 하나. 거기 있는 것이 국수였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가 나온 뒤 반응을 보면 사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차라리 주머니가 거덜날지언정 나가서 사 먹고 만다는 겁 없는 평사원들. 수저로 보시기를 딱딱 두드리며 무언의 항의를 하면서도, 끝내 그릇을 받아 들고는 반이나 먹을까 말까 한 뒤에 그릇을 반납하는 대리 정도의 중간 관리자들. 나중에 화장실로 달려가 게워 낼 땐 게워 내더라도 묵묵히 입 안으로 하나 가득 밀어넣는 쪽은 대개 과장 이상의 상급 관리자들이었다. 나는 편집부장이었다.
직원 백이십 명을 거느린 회사에서 매일 저녁 식단이 국수라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점심은 찐밥에 소가 한번 헤엄치고 지나간 듯한 무국과 김치, 깍두기, 콩자반이 군대 식판에 담겨 나왔고 저녁은 매일같이 국수였다. 그나마 비빔국수, 열무국수, 이런 식으로 변화가 있었더라면 사람이 못 먹을 정도는 안 되었을 터다. 하다 못해 김 조각을 뿌리거나 계란 고명에 잘게 부순 통깨라도 얹어준다면 좀더 국수다운 국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저주스러운 회사표 국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흰 소면 한 줌에 뜨뜻미지근한 물이 부어져 티스푼 한 숟가락 정도의 양념장이 얹힌 채로 배식구를 빠져 나오는 것이었다.
달리 부를 말이 없어 희다고는 하나 실은 덜 삶은 행주처럼 탁한 빛을 띠고 있어서, 정말로 주방 행주 삶은 물에 그대로 삶아 냈나 싶을 정도로 출처가 의심스러운 물국수였다. 당연히 맛이란 게 느껴질 리가 만무했고 저녁 식사 자체가 그저 소면 씹어먹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가끔 양념장에 딸려 나온 눈꼽만한 파 조각이 씹히기도 했지만 소면의 절대적인 비율에 대해서는 턱없이 작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놈의 국수는 처음에는 소면이었다가, 나중에는 그저 밀가루 말아 놓은 반죽이 되었고, 요즘에는 고무줄이 되었다.
6개월이다. 반 년. 웬만한 건강체라도 반 년 동안 매일 저녁 똑같은 국수를 먹고 멀쩡할 수는 없다. 눈에 헛것이 보일 정도로 몸의 리듬이 깨어져서 그랬는지, 지난 주 총무과 과장은 사표를 사장 앞에 내밀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물론 저 지하 식당의 빌어먹을 국수랑 그걸 만드는 당신 이모랑 같이."
나는 내가 사장한테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돌아 버리기 전에 누군가 먼저 미쳐 주어서 그 말을 한 것이 고마웠다.
언제나 먹고 나서는 후회한다. 내가 왜 이걸 또 먹었을까. 그래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지는 근무 시간과 집까지 가는 먼길을 떠올리면 역시 먹어 두는 게 좋겠다 싶어 오늘도 속는 셈 치고 식당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후회의 반복.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끊을 수 없는 고리. 나는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한 국수 맛을 얼른 잊으려고 담배를 문 채 현관 밖으로 나왔다. 이미 두 젓가락에 국수를 해치우고 나와서 담배를 하나씩 물고 있는 대리와 주임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들끼리 얘기하다가 내가 나오자 일순 전기 스위치를 내린 것처럼 입가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끄고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하 소강당을 어렵사리 개조해서 식당으로 만든 게 작년 여름이었다. 그 때 월급에 붙어 나오던 식대 십만 원이 끊겼고 대신 회사에서 저녁까지 제공하게 되었다. 평소 밖에 나가서 저녁까지 해결하면 십만 원은 가볍게 넘는 달이 많았기 때문에 직원들은 환영했다. 우리 회사처럼 근무 시간이 어중간하면 점심 저녁을 모두 밖에서 먹는 일이 흔했다. 우리는 독자 회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인 회사라 보통 오전 열한 시에서 저녁 열시까지 근무했고, 점심과 저녁은 각각 열두 시 반과 여섯 시에 나왔다.
열두 시 반에 먹는 찐밥은 오후 세 시면 약발이 떨어진다. 공복감 때문에 네 시가 넘어가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기조차 싫어진다. 처음 한 달 동안, 여섯 시에 매번 물국수가 나왔을 때는 편집부 사람들 모두가 시장을 반찬 삼아 잘 먹었다. 여섯 시 십 분 충전 완료. 그러나 맹물에 말아 놓고 양념장 한 숟가락이 맛의 전부인 한 줌의 물국수는 위에서 작용하는 유효 시간이 오후 일곱 시 반까지였다.
편집부 사람들은 나태해지기 쉬운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그보다는 언젠가 이 회사를 떠나 보다 나은 기업으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대개 오전 아홉 시부터 열 시 반까지 영어나 일어, 중국어 학원을 다녔다. 그러느라고 아침을 거르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상태에서 한 술 밥과 한 줌 국수를 6개월째 제공받으니 우린 모두 비정상적으로 허기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나마 두 달 정도까지는 소면에 질려하면서도 우리는 진지하게 말하곤 했다.
"이제 겨우 두 달째라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서 먹어. 우리는 이 경제 난국 중에도 호강하는 거야. 먹어, 얼른 먹어."
그건 분명 부서 사람들 대화의 일부였는데도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에게 강다짐하는 것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계속 소면을 건져 올리고, 약간의 양념이 된 뜨뜻한 생수를 라면 국물인양 후루룩 들이키는 것이었다.
1억원 가까운 교재가 한꺼번에 반품된 시기는, 아내가 헌준이의 영어 공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선언한 때와 같았다.
"헌준이를 지금의 당신처럼 만들지 않으려면 일찍부터 원어민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우게 해야 돼요. 부모가 해 줄 게 그것말고 또 뭐가 있어요?"
맞는 말이었지만 그 때 헌준이는 고작 세 살이었고 한글도 떼지 못한 아이였다. 그러나 아내는 한글이야 언제든 다 배울 수 있으니 영어 선생님을 붙여 줘야 된다고 고집했다. 경기 사정으로 월급이 120만원으로까지 떨어진 나는 한 달에 못 줘도 40만원이 드는 영어 공부방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한국인한테 배우면 안 될까? 아니면 집에서 당신이 가르쳐 줘도 되고. 당신 발음 좋잖아."
"내가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었는데. 강산이 바뀌어도 수십 번은 뒤집어졌어요. 요즘 세상이 어떤데, 한국인 강사로는 어림도 없어요."
"그러면 그 원어민 발음 나오는 교재를 구입해서 매일 당신이 붙잡아 앉혀 놓고 들려 주든가. 요즘 <이선생 영어교실>인지 <탄탄영어>인지 그런 종류 많잖아."
"내가 그런 회원 관리제 교재에 믿음이 갈 리가 없잖아요. 당신네 회사만 봐도 그런 교재들 얼마나 얼렁뚱땅 만들 것인가는 뻔하지."
나는 한순간 울컥했으나 자존심을 내세울 근거가 없을 만큼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 당신이 적당한 데 알아봐서 보내도록 해. 단 되도록 저렴한 걸로 부탁할게."
그리하여 아내가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32만 원짜리 영어 공부방 선생은 미국에서 온 흑인 선생이었다. 편견 따위는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헌준이는 날마다 슬랭을 한 마디씩 주워 듣고 와서는 우리 부부 앞에 자랑스럽게 선보여 주었다.
그 무렵 또 한 번 대대적인 교재 반품이 있었다. 그전에도 매출액은 아이엠에프 이후로 매년마다 5∼10%씩 들쑥날쑥했지만 거기서 하강세를 멈췄기에 우린 다소 안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국가 경제의 강약에 상관없이 계속 의무교육을 받으러 학교로 가고 있었고, 천재 아닌 다음에야 참고서 한두 권씩은 꾸준히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정·다종교과서 내용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조금씩 바뀐데다가 요즘 아이들은 선배 교재를 물려받는 걸 싫어했던 것이다. 그런 계산 아래 있었던 우리에게 일시 반품이란 큰 충격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헌책방이 특별히 호황을 누린 것도 아니고 교재 물려주기 운동이 활성화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방판용·회원용이 아니라 일반 시중 판매 단행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지금의 우리 부서가 서둘러 조그맣게 꾸려졌다. 그러나 기존의 회원들을 내버려둘 수도 없고 해서 우리가 회원 관리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이 당장 기똥차게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 시기의 '반품 쇼크'는 지하 식당을 만드는 데에 한몫했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금까지 매일 저녁 국수를 먹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담배 한 모금을 마저 피우다가 영업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진한 국물 냄새가 확 끼쳐 오는 것이 아마도 단체로 라면을 먹고 왔나 보다. 그들 무더기의 제일 뒤쪽에서 대리가 낮게 소릴 질렀다.
"빨리 좀 못 올라가 이자식들아! 부장한테 찍히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그 말에 나는 아차 싶어 시계를 보았다. 부장이 '찍는 사람' 평사원이 '찍히는 사람'인데 내가 안 들어가고 뭐했나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분침과 시침은 여유롭게 6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긴 한 줌의 국수를 먹고 물까지 다 마시는 데 7분이면 족하고, 담배 피우는 데 5분, 지금까지 13분을 하는 일 없이 노닥거렸어도 원래 저녁 시간인 7시까지는 아무 문제 없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영업부는 삼십오 분이나 남겨 놓고 서둘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지, 원래 경쟁력 강화, 경쟁력 강화를 외칠 수밖에 없는 부서였지. 편집부 같은 정체 구간과는 급수가 다르다고 늘 주장했던 그들. 비슷한 일을 계속 하는 우리 같은 것들은 십오 프로 삭감된 고정급을 받고, 너희들은 매출에 따라 오륙십에서 오륙백까지 능력급을 받지. 그래서 우리보단 늘 분초를 다투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우리를 잉여분 내지는 무좀 보듯 하지. 그래도 난 고정급이 마음 편하다 이 새끼들아.
회사에서 미술부가 없어지고 편집부와 통폐합된 것은 오래 전이었다. 편집부는 과목별 전공 담당이 내용을 교정 교열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인원 감축을 할 수 없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고 책을 예쁘게 꾸미는 데에 일조하는 미술부를 전원 퇴출시킨 것이었다. 그건 성급할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결정이었다. 편집부에서 매킨토시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윈도우용 포토샵을 다룰 줄 안다는 젊은 여자애가 하나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쿼크 익스프레스가 호환해서 하나의 편집 디자인 체계를 이루도록 하려면 맥을 알아야 가능했다. 자연히 우리는 워드 프로세서 중심의 편집을 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책들은 옛날 제본 도서나 애들 레포트, 80년대 비밀 문건 따위처럼 허술하고 조잡했다. 그대로 시중에 내놓아서는, 웬만큼 정신나간 놈들이 아니면 안 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하고 있었다. 미술부를 한두 사람이라도 채용해 달라고 하지도, 아니면 맥 교육 시간을 조금이라도 갖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이미 편집부도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가운데 것들이 잘려나간 뒤였던 것이다. 한 사람이 비슷한 계열의 서너 과목을 동시에 교정봐야 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나는 중학 국어 1, 2, 3학년 여섯 권과 고등 국어 상하 두 권, 문학 상하 두권, 문법 한 권을 혼자 만들고 있었다. 미친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편집부 전원은 어느새 미친놈 미친년이 되어갔다.
한 번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상부에 보고하고 인원 확충을 하기 위해 일인당 담당 과목 리스트를 만들고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보고문 끝에는, 이런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우리 교재를 사고 싶어할 정도로 보기 좋게 만들기 힘들다고 완곡하게 덧붙였다.
주한석(편집부장) : 중학국어 전학년 각 학기 고등국어 상하 문법 문학 상하(총 11권)
홍은미 : 중학영어 전학년 고등영어ⅠⅡ 일본어 ⅠⅡ(총 7권)
안국호 : 중학수학 전학년 공통수학 수학ⅠⅡ (총 6권)
봉경수(주임) : 중학과학 전학년 공통과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 화학(총 8권)
우혜선 : 공통사회 상하 사회문화 윤리 정치 경제 세계지리(총 7권)
노지원(차장) : 중학사회 전학년 국사 상하 세계사(총 6권)
불과 예닐곱 명의 직원으로 다음 신학기까지 맞춰 서른 권이 넘는 교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시정해 주지 않을 경우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드는 일이란 불가능하다고 나는 용기백배해서 말했다. 그러는 동안 이사는 서류를 훑어보는 시간보다 메기눈을 해 가지고 나를 째려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미술부가 없어서 힘들다고? 그럼 외주를 줘. 하지만 외주 비용은 편집부 자체 내에서 해결하도록 해. 교정 인원 문제도 마찬가지야. 아르바이트생을 쓰든가. 회사에서는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온갖 데를 쥐어짜고 있어. 그러니까 교정 아르바이트 구하려면 알아서 구하고 경비 문제는 나 모르게 해."
그게 이사의 대답이었다. 고생하기 싫으면 십오퍼센트 삭감된 월급에서 또 떼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쥐어 주든지 알 바 아니라는 것이었다. 편집부 전원은 위에서 내려온 이와 같은 대답에 항의하지 않고 얌전히 현실을 접수했다. 자연히 우리의 일상 업무는 구교재 짜깁기, 워드 편집, 교정, 필름 교정과 인쇄소에 넘기기 등으로 한정지어졌다. 문제집은 나날이 볼품이 없어져 갔다. 학원 강사들의 항의가 줄기차게 접수되었다.
일요일이었다. 업무량은 과중하고 사실 주말까지 모두 반납해도 그 많은 교재를 손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이긴 했다. 그러나 편집부의 어느 누구도, 똑같은 월급 받고 주말까지 봉사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사가 고압적으로 나온 이상 우리도 다같이 '에헤라' 하고 손을 놓을 수밖에.
간만에 평촌의 어머니가 우리집에 들르셨고, 아내가 점심을 만든다고 부엌에 간 동안 나는 헌준이를 부엌 불기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무릎에 앉혀 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헌준이를 당신 무릎으로 안아 가시고는 낮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도……이러구러 옮길 때 되잖았겠냐? 에미야 그런 문제는 잘 모른다만… 그래도 경력자니 어디 간들 지금보다 못하겠니. 재정 좋은 데로 간부급으로 가면… 네 처뿐만 아니라 헌준이도 생각해야지……."
그러고 보니 지지난 주에 아내도 그리 말한 적이 있었다. 왜 아랫사람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느끼는 거냐고, 지금 떠나야지 나중에 더 늦어지면 후회해도 소용없다고……말이다. 나는 책임 문제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요즘 젊은 애들 보세요, 자기 마음에 안 내키면 금방 짐 싸들고 떠나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다가 더 맘에 들고 급여 조건 좋은 데로 가면 눌러 앉는 거고, 먼젓번보다 더 심하다 싶으면 나름대로 또 좋은 데 찾아서 그렇게 날아가는 거고, 꼴린다 싶으면 머리 맞대고 벤처 기업 하나 만들고……. 왜 당신 혼자만 그렇게 모든 거 참고 받아들이려 해요? 영업직도 아닌데 누가 판매왕 관이라도 씌워 준답니까?"
"그렇게 계속 정착 못 하고 떠나버릇 하면 인생 망가지기 쉬워."
나는 재떨이에 톡톡 떨어져내리는 하얀 재를 내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요즘 애들 인내심 없고 평생 계획 바꾸기를 밥먹듯 해서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그걸 거꾸로 내가 배우란 말야, 당신은?"
"무분별하고 불안정한 애들 태도를 본받으라는 게 아니라, 그런 애들의 모험심과 도전 의식과 생활 감각을 배우란 거지요. 어차피 경제고 나라고 개판 된 마당에 평생 직장 개념 같은 게 아직도 있는 줄 알아요?"
나는 아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더 참지 못하고 마시던 커피 잔을 팽개쳤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내 면상에 소리지르려던 걸 꾹 참고 나지막하게 한 마디 했다. 당신, <이것이 인생이다> 같은 인간 극장 프로를 너무 많이 봤어. 거기 나오는 성공담들이 지극히 소수란 걸 알아야지. 그러고서 아내는 헌준이 교육비를 걱정하며, 이미 깨어 버린 적금 통장과 돌려 막기조차 안 되는 카드값을 떠올리며 밤새 내 어깨 너머에서 소리 죽여 울었을 거다.
"점심 드세요, 어머님. 당신두 헌준이 데리고 와요."
어쩐지 아까부터 냄새가 영 이상하다 했더니 오늘 점심 메뉴는 칼국수였다. 나는 기겁을 하고 하마터면 안고 있던 헌준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물론 아내가 만든 칼국수는 지하 식당의 소독약 냄새나는 소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 비싼 바지락이 한 무더기나 얹혀지고, 계란 고기 고명과 김 조각과 통깨가 얼마나 맛깔스럽고도 정성스럽게 뿌려졌는지 모르는 바 아니었다. 국물도 양념장이나 다시다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멸치 국물을 우려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이봐 당시인!"
나는 어머니가 보든 말든 상관 않고 아내를 향해 눈을 지릅뜨고는 노기등등 소리쳤다.
"내가 국수라면 치를 떤다고 말 안 했던가?"
반 년 만에 우리 집에 들르신 어머니는 내 그 말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니 아가야, 얘가 무슨 소리냐. 그게 정말이야?"
투명한 유리 그릇 세 개를 식탁 위에 이미 얹어 놓은 아내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내가 헌준이를 집어던질까 봐 염려스러웠던 것인지 얼른 내 품안에서 그 녀석을 빼앗듯 안아들었다.
"그, 그게……. 모처럼 제대로 된 국수 한 번 먹여 보자 싶어서……. 당신이 계속 국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아갈까 봐……."
"그래, 아가. 잘했다. 뭐가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먹고 보자. 사내 자식이 그렇게 음식 까탈 부리면 못쓴다."
어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내의 마음씀이 고마워졌다. 특정 음식에 대한 지나친 불신과 분노는,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 아내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그러나 가엾은 아내여. 당신은 여섯 달 넘게 물국수만 받아들인 나의 위가 밀가루 가락만 보아도 경련을 일으킨다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는 때깔 고운 칼국수 그릇을 후려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찰그랑, 헌준이가 울기 시작했고 아내는 사방으로 튀는 유리 파편을 어쩌지도 못한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통곡했다. 어머니는 내 오른팔을 붙들고 제발 이러지 말라고, 무엇이 어찌 된 일인지 납득 가게 얘기나 해 보라고 통사정했다. 그러나 나는 왼팔로 아무 상관 없는 김치소박이 그릇까지 밀어 떨어뜨리고 말았다.
일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다같이 점심을 굶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은 난장판이 된 응접실을 아내가 모두 깨끗이 치우고 나서야 들었다.
잘 자던 아내가 갑자기 미쳐서 나를 옭아매고는 골방에 가두었다. 독방에서 암말않고 잠자코 국수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각방을 쓰자는 것이었다. 나는 각방보다도 당장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도대체 무슨 수작이냐고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그러나 여편네는 이 말에는 묵묵부답, 방 안으로 국수 한 그릇을 잠자코 밀어 넣을 뿐이었다. 그건 비빔국수도 아니었고 때깔 고운 칼국수도 아니었다. 혐오스럽기 이를 데 없는 뜨뜻미지근한 물국수, 회사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나는 반주그레한 국수 그릇을 내려다보며 절규했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그놈의 물국수는 목청을 높일수록 더욱 팅팅 불어났다. 한 가닥 한 가닥이 마치 거대한 문어 다리처럼 굵게 불었다. 스멀거리며 그릇 밖으로 비어져 나온 국수 가닥들은 내 목을 휘어감고는 마구 흔들었다. 몸부림을 치는데도 끊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나는 한 줌의 국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무더기의 질긴 문어떼에 휘감겨 있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아―"
"여봇! 정신 좀 차려요!"
국수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내가 큰 손으로 멱살을 쥐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를 이제 막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사태 파악이 되자 나는 아내의 손이 꿈속에 본 거대하고도 징그러운 국수 가락인 양 황급히 떨쳐 버렸다.
일찍 일어나고도 정신이 부산스러워 헤매다가 늦은 출근을 하니, 편집부에는 웬 낯모르는 아가씨가 간이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저게 누구였더라……싶다가 이내 그녀가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된 편집부 새 직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일주일 사이 번개같이 모집 광고를 내고, 내가 면접을 보고 그 중에서 가장 착해 보이는 대졸 여성을 뽑은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우리의 고독한 '교재와의 싸움'에 감명을 받아서 한 명의 인력을 추가로 뽑아도 좋다고 허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서의 영어·일어과 담당 홍은미가 3주 뒤의 결혼과 함께 퇴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홍은미가 남아 있는 동안 빨리 업무 전수를 해 주기 위해 서둘러 영문과 출신 여사원을 모집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최종 합격 통보가 이틀 전에 갔고 오늘부터 첫 출근인 셈이다.
"반갑습니다. 저어……."
짧은 생머리의 그녀가 불편해 보이는 간이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문계희입니다."
문계희. 영문과를 졸업했고 부전공으로 일어를 공부했다는 여자. 내가 그만큼 공부했으면 더 나은 데로 가지 이런 회사는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어여삐 여긴다. 쯧쯔, 너는 소굴에 제 발로 들어와 걸려든 거야. 토익이 몇 점이라고? 제이엘피티가 몇 급? 놀구 있네……여기서 그런 거 하나 소용 없다. 넌 한 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취업 사기의 일종 같은 거 당했다고 생각하면 돼.
"예, 잘 왔습니다. 교재 양이 만만치 않으니까 이제 빨리 홍은미 씨한테 업무 인수인계 받고 일 들어갑시다. 일은 별 거 없어요, 오히려 단순 노동에 가깝지."
"저어―교재를 편집하는 거 아닌가요?"
문계희는 대단찮은 일에 무언가 한 가닥 희망이라도 걸었다는 듯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 어린애한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갖게끔 도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꿈 깨, 이것아! 하고 정신이 확 들게 해 주는 것이 도와 주는 것인가.
"문계희 씨는 편집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저―저는―편집 조판 과정을 6개월 정도 이수했습니다만."
"그래요, 면접 때 그렇게 말했었지. 그래서 내가 그 때 뭐라고 물어봤지요?"
"운용 가능한 프로그램이 뭐냐고 물어 보시고……. 그래서 제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페이지메이커라고 대답했고……."
"그거 말고, 그 다음에."
"아……여기서는 그래픽 조판보다는 교정 교열 윤문이 주업무가 될 거라고……."
면접 때 사근사근하고 담담해 보였던 문계희는 이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기억하는군. 좋아요. 그대로만 하면 됩니다."
나는 아직도 무언가 못 알아들은 표정인 문계희를 그대로 홍은미 쪽에 넘겨 주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홍은미도 별로 말없이 무덤덤하게 그녀 앞으로 너덜너덜한 영어 교재 한 권을 던져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새로 온 문계희를 가르치는 일보다는 오늘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저녁 근무자들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오늘은 사장의 생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밖에 나가 애꿎은 담배만 죽여 댔다. 홀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문계희를 둘러싸고 기절초풍할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국수였어요. 맨날 그런가요? 그런 국수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봐요. 어떻게, 김 조각은 없더라도 최소한 국물이라도 따뜻해야지……."
"황당했죠? 이제 익숙해지면 별 거 아니게 될 겁니다. 저녁 식사는 자기 돈 들여서 밖에서 하지 않으면 대답이 없어요, 대답이."
수학과 안국호의 목소리다.
"그래도 오늘은 사장 생일이라고 뭐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나 달라. 하긴 뭘 기대해. 있는 놈이나 잘 먹지."
노 차장의 한숨 섞인 푸념인가.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코딱지만큼 얹어 주는 저런 양념장 말고 제대로 된 고추장에 빨갛게 비빈 국수를 먹고 싶어. 거기다 통깨까지 뿌리면 얼마나 좋을까."
"나가서 사 먹어, 인마 넌."
사람들의 목소리가 웃음소리와 엉키어서 누구의 것인지 이내 분간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들은 아무리 어둑어둑해졌다지만 내 뒤통수조차 안 보이는 걸까. 아니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하긴 편집부 직원들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괜히 윗사람들과 공모자인 양 고개를 푹 숙이고 담배를 밟아 끈다. 그들과 내가 매일 저녁 물국수를 먹게 된 게 마치 내 탓인 것만 같다.
그러고 나서 2주일이나 채 지났을까. 어느 새 저녁 식탁에는 편집부라고는 봉경수 주임과 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헛헛한 공간을 휘둘러보고는 봉경수를 마주하고 쓸쓸히 국수를 말아 입 속에 밀어 넣었다. 보송보송한 신세대 문계희를 따라 어느덧 사람들은 영업부처럼 밖으로 나가 저녁을 사 먹게 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다고 해 보았자,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모두 한계가 있는 법이라 떡볶이나 라면을 사먹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로 만족한다. 무엇보다도 떡볶이―라면―김밥―만두 식으로 변화가 있고, 금방 지어 내서 뜨거운 김이 팍팍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으로 따지자면, 아무리 처자식이 있다 해도 내가 그들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끝내 소면 씹기만 할 팔자. 아내의 얼굴과 헌준이의 흑인 영어 선생님을 떠올리며.
"봉 주임."
"네? 부장님."
"자넨 왜 사람들 따라서 밖으로 안 나가나?"
의아한 눈으로 날 보며 멈칫해 있던 봉경수는 이내 쑥스럽게 웃어넘겼다.
"에에이-. 부장님 두고 제가 어딜 나가나요, 의리없게."
"그런 거라면 나가도 괜찮네. 가서 입에 맞는 거 먹고 와도 돼."
"아닙니다. 한 번 그러기 시작하면 습관 들어 버릴 겁니다. 그 저녁값은 누가 감당합니까. 조금이라도 아껴서 집에 갖다 주어야지요. 밖에 나간 애들이야 아직 결혼도 안 했고, 결혼을 했어도……. 어쨌든 여자들은 영향을 좀 덜 받을걸요. 모르긴 몰라도 집안에선 경제 보조적인 입장일 테니."
나는 봉경수의 말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저녁 시간에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임질 그 무언가가 있는 30대 이상으로 보였다. 그것이 아내든 노부모든, 하다못해 강아지 새끼 한 마리든.
사흘 전에 사표를 낸 홍은미의 결혼식이었다. 부서 사람들 가운데 간부급만 와서 함께 경직된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고 박수를 보냈다. 홍은미는 이제 미국에서 경영학 박사로 강의를 나간다는 남편을 따라갈 것이다. 그것이 이 희망 없는 회사 생활보다는 현명한 선택이리라. 나와 봉 주임, 노 차장은 신부의 남편과 악수를 나누었고 신부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를 여러 차례 받았다.
참석 인원도 불분명하고 손이 많이 가서 뷔페로 하객들을 대접할 줄 알았는데, 식권을 받고 가 보니 각각의 좌석에 상차림이 되어 나와 있었다. 홍은미는 남편 된 사람의 배려로 이 결혼식에 특별히 돈을 많이 투자했다고 한다. 경제 난국답지 않은 발상이라고 우리끼리는 수군거렸지만, 이 강남의 부잣집 아가씨가 자신을 눈부시게 빛내 줄 오늘 하루보다 경제 난국을 더 고려할 리 없었다. 신랑신부는 모형 애드벌룬을 타고 비누방울과 구름의 윤무 속에 입장하기까지 했었으니, 그 옵션 하나 하나에 값을 매기고 좌불안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어쨌든 우리 세 사람은 간만에 먹을 복 터졌다고, 식권을 내고 자리로 가 앉았다.
"헉!"
우리는 거의 동시에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건 홍은미의 악취미인가. 홍은미가 상차림에 직접 관여했을 리는 없으나,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국수, 칼국수도 비빔국수도 아닌, 회사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물국수. 김이 모락모락 나고 고명이 차분하게 쌓여 있었지만 그 위로 자꾸만 회사의 물국수가 환영처럼 끼여들었다.
봉 주임이 당황스럽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겨……결혼식이라 으레 그런가 보죠. 정 아니다 싶으면 옆에 그릇 밀어 두고 다른 거 먹죠. 여기 부침개도 많고 잡채도 있어요."
"아냐, 봉 주임. 밀어 둔다고 될 일이 아냐. 나는 국수가 내 눈에 띄었다는 사실 자체가 심히 불쾌하고 진절머리나."
우리 세 사람이 제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정장으로 갈아입은 신랑신부가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홍은미가 우리 쪽으로 오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국수가 놓이지 않은 식탁이 없나 할끔거리며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어머나, 이걸 어쩌죠."
홍은미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제가 그렇게 국수는 빼 달라고 했는데……. 어른들 말씀이, 결혼식 때 국수 없으면 보기 안 좋고 결혼식답지 않다고 그렇게들 고집해 대셔서……."
"괜찮아, 괜찮아 은미씨, 어디 한두 번 먹어 보나.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말고 어서 인사들 드리러 가요."
봉 주임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다른 사람들 쪽으로 어깨를 떠밀어 보냈다. 그녀가 와서 안절부절 못해한다고 해서 눈앞의 국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 노 차장이 어깨를 으쓱거리다가 결국은 먼저 자리에 앉았다. 봉 주임과 나도 이어서 털썩, 무너져 내리듯이 흰 보자기를 씌운 식탁 앞에 주저앉았다.
노 차장은 김치전을 여러 갈래로 찢기 시작했고 봉 주임은 기름기 도는 갈비탕을 끌어다가 내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그 먹음직스러운 것들은 뒷전이고, 내 눈엔 멀리 밀어 놓은 국수 그릇만 보였다. 아무리 눈앞에 고급스럽게 꾸며 놓은 잔치국수가 있다 한들, 물국수를 혐오하면서도 물국수에 길들여진 나는 물국수밖에 먹을 수 없었다. 내 삶은 언제나 물국수였을 뿐, 물국수가 김과 계란 따위로 줄 긋는다고 잔치국수가 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김치, 소고기 냄새는 어디론가 가고 오로지 국수 냄새만 밀어닥쳐왔다. 그것도 거기 있는 잔치 국수 냄새가 아니라, 회사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독특한 물국수 냄새가. 밀가루를 말아 놓고 며칠 묵은 듯한, 이제 막 푸른곰팡이가 피어나는 듯한, 소독약으로 간을 맞춘 듯한, 화장실에서 건져 올린 듯한 면발. 그 냄새.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을 밀치며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순식간에 양탄자 바닥에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노 차장과 봉 주임이 나를 부축해서 끌고 나가려 했으나, 나는 완강하게 식탁을 잡은 채로 양탄자에 끝까지 토악질을 해댔다. 점잖게 식사하고 있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 대는 소리, 지배인이 급사를 부르는 소리, 속에서 나는 조금 전보다도 더욱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홍은미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었다.
분명히 아침을 먹고 왔는데, 엊저녁에는 소주에 삼겹살도 먹었는데, 왜 지금 눈 아래로 떨구어진 것들은 하나같이 허여멀건한 국수 가락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위액까지 게워내면서도 눈물까지 쏟으면서도, 내 안에 있던 내용물을 확인하려 들었다. 씹다 만 듯한 국수 가락 모양이, 꿈 속에서 내 목을 질기게 졸라댔던 문어발만한 국수 가락만큼 불어나고 있는 모양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