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교동 최씨 고택(중요민속자료 제27호)’은,
경주 최씨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
월성을 옆에 끼고 흐르는 남천 뒤 편, 양지바른 곳으로, 오른쪽 옆에는 경주향교를 두고,
뒤편으로는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어린 계림鷄林이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 주고 있는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집터는 원래 신라의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터의 자리로 알려져 있어, 궁궐에서나 사용함직한 거대한 석조유물들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집을 지을 당시, 인근 경주향교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유림들의 반발로 집터를 깍아 내리고, 처마높이를 낮추어서 권위적이지 않고 지금과 같은 수수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다.
대지 2천 평에, 1만여 평에 이르는 후원,
이 집에 살던 노비 숫자만 100여 명에 이르렀을 만큼 규모가 큰 집으로서, 조선시대 경상도 지방 양반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곳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리단길은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과 황남동에 위치한 좁은 도로이다.
낡은 옛건물에 한옥으로 생긴 식당과 커피점,
사진관,술집,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유명해지고,
젊은이들의 유동인구가 아주 많다.
처음 이길의 이름은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첨성대는 신라시대 선덕여왕때 지어진 천문 관측소이다. 첨성대 주변에는 개절마다 다른 꽃들을 식재해 철 마다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주변의 꽃들을 즐길 수 있고, 밤에는 첨성대 조명이 점등되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교촌마을은 말그대로 학교가 있다는 뜻이다.
신라시대에 지금의 국립대학격인 국학이 세워 지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국학은 고려시대의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다. 그러나 교촌 마을이 더욱 유명세를 탄 이유는 따로 있다.
경주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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