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리(月湖里)
1. 마을의 자연환경
해평면 중심지로 대구(大邱)~상주(尙州)간 국도가 통과하는 3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고. 해평면소재지 마을로서 면내 각 기관 단체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2. 마을의 역사
옛날에는 태인경씨(泰仁景氏) 영양오씨(英陽吳氏)의 몇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임진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이라고 한다.
3. 마을과 관련된 지명
* 대창걸(月湖里)
해평현(海平縣)이 있을 때 관가의 큰 창고 60채가 있었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창고는 모두 소실되어 없어졌다.
* 어리게(月浦), 번게(反浦)
남평문씨(南平文氏)가 개척한 마을로서 베틀을 제작한 양민공(襄敏公) 문영(文英)의
묘소가 어리게 산록에 있다.
4. 성씨별 가구분포
총 137가구중 김해김씨(金海金氏) 13호, 덕수이씨(德水李氏) 8호, 선산(一善)김씨 6호
경주최씨(慶州崔氏) 5호, 전주최씨(全州崔氏) 5호, 태인경씨(泰仁景氏) 5호, 영양오씨
(英陽吳氏) 5호, 남평문씨(南平文氏)5호, 기타 85호
5. 전설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때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 선생이 목화(木花) 씨앗을
붓뚜껑속에 숨겨와 목화를 재배하고 손자 문래(文萊)는 목화로 실을 뽑는 기계를
만들어 “문래”라 하였고, 동생 양민공(襄敏公) 문영(文英)은 베짜는 기계를 만들어
“문영베”라 하는데 문영(文英)선생은 조선조(朝鮮朝)초 선산부사(善山府使)로 부임하니
처가고을인 반포(反浦)에 자리를 잡고 민생을 위한 노력으로 조계산(베틀산 - 금산리
뒷산)의 모양과 “공상다리”(오상동에 놓인 다리)모양을 따서 “베틀”을 만드는데 성공
하였다 한다.
6. 마을의 특징
* 동제(洞祭)
陰正月 15일에 동제는 과거 해평중고등학교 운동장 큰 바위에 지냈으나, 홍수로
없어지고 현재 마을 동편 야산의 소나무 밑에서 오곡, 과실, 어포로 매년 행사를
하였으나 1989년도부터 동제를 폐지하였다.
* 농공단지 - 만여평의 농공단지가 있다.
7. 유적, 유물
* 해평초등학교 교정 석상(石像)
이 석상은 해평면 낙산리 『부처밭골』에 있던 것을 옛날 해평우체국 앞으로 옮긴 후
다시 이곳으로 옮기었다.
화강암으로 조각되었으며 일종의 장승이다. 옷은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있는데
윗저고리는 옷 끝이 배꼽까지 드리워지면서 등에까지 돌려 조각되었고, 양손은 가슴
앞에 모았으나 저고리 속에서 합장하여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약간 웃음이 어리어있는 점이 인상적이며, 특히 턱 수염이 약간 옆으로 바람에
날린 듯 조각된 것으로 이조시대 다른 어느 석상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확실한 고정을 할 사료가 없으나, 남평문씨가 처음 자리 잡을 당시
는 반계(반계)로 불리었으나, 점차 번계(反浦)로 불리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어리게 라는 칭호는 당초 반포 마을에서 내 건너마을을 지칭하는 말로 월계(越溪)가
점차 순수한 우리말로 되면서 어리게로 변명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故鄕(海平)의 歷史와 文化 (구미문화원 해평분원 2005원발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