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Fiji) 여행기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우선 떠나는 즐거움을 느낀다. 틀에 박힌 일상을 며칠간이라도 떠나본다는 것은 가서 보게 될 새로운 견문에 대한 호기심에 앞서 일상의 탈출이라는 해방감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출가해 스님이 되고부터 나는 이렇게 살리라 하고 스스로 정해 놓은 생활의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세 가지로 구분 시간을 나누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 생활의 시간을 3등분하여 3분의 1은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것과 또 3분의 1은 명상이나 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3분의 1은 여행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이것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 내가 출가를 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였다. 20대의 젊은 학인 시절부터 나는 이것을 실천하며 살려고 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이 익혀진 나는 매일 3시간 이상의 독서를 계속하고 있다. 절에 와서는 경전을 읽는데 몰두하면서도 취향을 따라 여러 가지 책을 골라 읽는다. 40여 년간 사 모아둔 책이 모두 15000권 정도는 된다. 이 가운데는 기증을 받거나 남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책들도 상당히 많다. 사색과 명상은 독서와 함께 길들어진 버릇이다. 혼자 있을 때 가끔 앉아서 좌선을 하기도 한다. 여행은 절에 사는 덕분에 전국의 유명한 절은 거의 다 다녀보았다. 한 때는 섬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기도 하였다. 외국여행은 여행비가 넉넉지 못해 마음대로 다니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50여 개 나라를 다니며 세계 100대 도시는 다 가 보았다. 100개국을 견문하고 쓰기로 했던 백국기(百國記)는 형편이 되지 않아 쓰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기회가 되면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나 남미도 가보고 싶다.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이란 여행기를 쓴 일본의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는 여행은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였다. 말하자면 방랑의 여행이 여행답다는 말이다. 그의 여행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나도 그렇게 해 보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며칠이라는 일정을 잡고 어디서부터 어디로 다니며 보고 올 것인가 떠나기 전에 대충 계획을 세워 떠나곤 했다. 또 단체로 관광여행을 할 때는 여행사를 통하여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므로 도저히 방랑 여행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어떤 신도분으로부터 남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 이야기를 듣고 아무도 모르게 살짝 피지를 갔다온 적이 있었다. 그때 적은 일기를 펼쳐 보았다.
1997년 8월 18일 며칠 출타하고 오겠다고 방장스님께 인사하고 절을 나섰다. 어제 해제하고 우리 강원은 방학에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이미 피지(Fiji)행을 결정해 놓고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절을 나섰다. 울산 진아가 차를 가지고 와 김해공항까지 차를 태워다 주었다. 김포에서 국제선을 타고 이륙한 시간은 저녁 8시 30분. 별로 승객이 많지 않았다. 비행기가 제 고도에서 날 때 좌석을 옮겨 빈자리에 가 누운 자세로 잠을 청했다. 자는 둥 마는 둥 9시간 이상을 비행한 끝에 현지시간 오전 9시 반경 Fiji Nadi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 시간보다 3시간이 빨랐다. 희은정 자매가 마중 나와 있었다. 수도 수바까지 가는데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중간에 몇 번 내려 리조트에 들러 주변구경과 바다구경을 몇 차례 하고 수바로 갔다. 2시 가까이 수바에 도착 중국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Trade winds Hotel에 방을 잡았다. 수바는 이 나라 수도이자 항구도시이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하였고 원시적인 풍림의 운치가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Fiji에 대하여 잘 몰라 오기 전에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약 1,8000㎢의 작은 영토에 80만명 가량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작은 나라라 설명되어 있었다. 원주민격인 피지인과 이주해 들어온 인디안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인데 가끔 인종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하였다. 호델에서 쉬다 사업차 이곳에 와 몇 년 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교포댁에 가 저녁공양을 대접받았다. 희은정 아들 지원 군과 그의 사촌 보나 양이 안내하러 왔었다. 가서 공양대접을 받고 9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자려고 잠을 청했으나 정신이 멀뚱하여 이런 저런 생각만 떠오른다. 점심때 중국식당에서 재스민 차를 마신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라즈니쉬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읽다가 말다가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머리는 맑았다. 창을 열고 아침공기를 마셨다. 바다는 잔잔하고 구름이 제법 짙게 깔려 있었다. 바로 눈앞에 직선거리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섬에 무성하게 덮여 있는 열대성 나무숲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홍차를 한잔 마시고 들어와 또 책을 몇 줄 읽었다.
8월 20일 8시가 넘어서 식당에 내려가 빵과 쥬스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9시에 혼자 시내 구경을 나갔다. 가이드북이 준비되지 않아 그냥 아무 곳이나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이 나라 공용어가 영어라 가끔 내 승복을 보고 나를 쳐다보고 어디서 온 사람이냐? 뭐하는 사람이냐?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이 모두 치마를 입고 살아, 멀리서 보면 여자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면 남자다. 택시를 타고 바닷가에 가 섬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산보를 즐기기도 했다. 남국의 향수가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다. 하늘의 구름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잠시 해변의 나그네에게 이런 저런 생각이 객수가 되어 떠오른다. 먼 타지에 와 있어 이방인이 아니라 이런 저런 상념에 젖다보면 내 스스로가 이방인이 되는 것 같다. 지리적 여행이란 지구촌을 벗어날 수 없지만 생각의 여행은 무한하다. 해변의 한 나절이 생각을 부풀게 해 먼 하늘을 날아간다. 마치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것처럼. 한참을 서성이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수바 타운으로 들어왔다. 식당을 찾아 들어가 저녁을 사 먹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가 너무 짧고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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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자우로운 ~ ㅎ~ 부럽~~ ^^*
즐거운 방랑 여행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적인 여행(?)
글로 이렇게 동행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__________^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