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 1편>
바닷속에서 만난 온천
김순일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2014년 설 연휴 때 조카와 같이 필리핀 아닐라오 섬으로 스쿠버 여행을 다녀왔다. 바닷속에서 온천물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자연이 경이롭다.
저녁에 회식이 있고 야근하는 일이 많아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기가 어려워 새벽에 수영을 배웠다. 10년이 지나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 망설였지만, 바닷속이 궁금하여 1994년에 스킨스쿠버를 배웠다. 자격증 없이는 즐길 수가 없는 취미생활이라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첫 번째 다이빙 장소는 거제도였다. 겁도 나고 기대도 되고 설레면서 장비를 세팅하였다. 잘 가라앉으려면 납을 허리에 차야 한다. 6kg을 차고 바닷속으로 점프를 하였다. 아무리 입수하려고 해도 안 되었다. 덩치가 있어서인지 남자들이 사용하는 무게인 8kg을 허리에 두르자 입수가 잘 되었다. 처음으로 바닷속의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수풀이 아름답고 해삼이 특히 많았다. 그날 해삼을 따서 먹은 신선함은 잊을 수 없다. 암 발병 전인 2013년까지 국내외를 다니며 1,000여 번을 넘게 바닷속을 즐겼으니 내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짜릿한 취미다.
대학에서 해양수산학과를 다니고 있는 조카에게 바닷속을 보여주고 싶었다. 학과에 대한 자부심을 유도하기 위해 동호인들 4명과 함께 필리핀 아닐라오 섬으로 향했다. 처음 다이빙 가는 조카는 설레고 좋아서인지 입이 귀에 걸려있다. 궁금해서 계속 질문을 하며 재잘거린다.
아닐라오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퓨아뉴기니 섬 북서부를 잇는 코랄 트라이앵글(Coral Triangle)의 북쪽 꼭짓점 부근에 있다. 전 세계 산호 종의 76%와 3,00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곳이다. 60여 곳의 다양한 포인트가 있다. 동굴 다이빙, 드리프트 다이빙, 월 다이빙, 난파선 다이빙, 수중온천 다이빙 등을 즐길 수 있다.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차로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으로 접근성이 좋아 스킨스쿠버 동호인들한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초급부터 고급 잠수부까지 다양한 수준의 다이버들과 수중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5박 6일의 여정으로 스쿠버를 하루에 3회씩을 하였다. 성당 바위(The Cathedral Rock) 포인트 외 14곳을 즐겼다.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가다가 자기를 보아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는 예쁜 물고기와 신기한 물고기를 관찰하다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다. 갑각류, 오징어, 문어, 해마, 프로그피쉬, 수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물 반 물고기 반이다. 그중에서 마이닛 포인트(Manit Point)는 자연의 신비로움의 극치를 이루며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이닛은 필리핀 따갈로그오 언어로 ‘뜨겁다’라는 뜻으로 온천이 나오는 지역을 지칭하는 포인트이다. 설렘과 기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모습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견딜만하게 뜨거운 물이 올라왔다. 바닷속에서 온천물을 즐기니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다이빙 후 쉬는 시간에도 수영과 스킨을 즐기며 즐거워하는 조카의 모습에 나도 행복했다. 피곤함을 느끼지 않은 젊음이 부럽기도 하였다.
조카는 스킨스쿠버 초급 자격증, 나는 나이트록스(Nitrox) 다이버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나이트록스란 산소 21%가 포함된 일반 공기보다 산소가 많이 포함된 기체를 말한다. 레크리에이션 다이빙, 스포츠 다이빙의 새로운 분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이트록스를 사용하면 수중에서 더 오래 체류할 수 있고 수면 휴식을 줄일 수 있으며 감압 병의 위험에서 멀어질 수 있는 건강에 좋은 자격증이다. 나이 들어도 오래도록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했다.
스쿠버 여행은 주로 바다에 인접해 있는 섬으로 간다. 도시보다 생활 수준이 낮은 편이다. 필리핀 섬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순박하지만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이 잘살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해외여행이나 해외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났다. 조카에게 바다에 대한 호기심은 충분했던 것 같다. 해양학을 전공하는 조카가 해양 계통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시 - 3편>
빛바랜 책
김순일
내가 사는 이유는
작은 꿈과 사랑
영혼을 적시어 주는
빛바랜 헌책
태고의 향기
태초의 젖가슴 냄새가 난다
책 속에서 나를 찾고
책 속에 내가 존재한다
지혜와 슬기
책은 언제나 소중한 나의 스승
노스텔지아다
산책
김순일
기척도 없이 다가온 너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친구로 삼았지
실눈을 뜬다
창문 가득 햇살이
하루를 열어 준다
아침을 먹고
석촌호수를 걷는다
지난여름 태풍으로 찢겨진 나무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내게도 태풍이 한 차례 지나고
아침 바람과 햇살
신선한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삶
김순일
산다는 것은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아름답고 소중하네
치열한 삶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남은 것은
나에게 희미한 흔적들
앞만 보고 살아 온 삶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숨 막히게 살아 온 추억들
이제는 천천히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삶을 깊게 음미하며
나만의 여백에 그림을 그려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