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
위로의 말 ^ㅡ^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전3:16).
푸른 저 하늘에도 맑은 날이 있는가 하면, 구름 끼고 비가 오며, 천둥 번개 치는 날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하루 일상 과 인생에도 여러 일들이 일어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기억이라는 주머니 속에 저장이 된다.
그 저장된 기억은 개인의 역사요, 거울이 되어 개인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많은 기억들 중에서 좋았고 행복했던 기억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힘들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거나, 활동을 위축시키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을 산출하는 지난 기억들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기억을 없애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또렷하게 기억되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되돌이킬 수 없는 사연들.
그때마다 스스로의 치료를 위하여 책을 읽거나 상담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앓아눕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우리는 여러 형태의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럴 때 동일한 경우를 겪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는 이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치료 약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 순간이 있기까지 여러 일들로 상처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늘 그런 부정적이 기억과 현실과 또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현재가 피곤하고 괴로울 때도 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처럼 무엇인가 주어진 일은 의무적으로 해내고 있지만 저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믿음과 열정과 순수와 기쁨과 희망과 그런 행함이 아니요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 때문에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주변을 보면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힘겨움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하였다.
어려움을 당할 때 나는 얼마나 고민했고 어떻게 풀려고 노력하였으며 결국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나온 지금 그 문제들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으며 그 순간 내가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해주고 나도 또한 이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며 그들에게 상담하고 싶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내가 상담 할 사람이 적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상담자가 되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때로는 더 외롭고 더 힘이 들기도 했다.
나는 기도 할 때 기본 내용 중에서 늘 ‘육신이 아픈 사람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그들을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한다.
살다 보니 늘 나도 육신이 아플 때와 마음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다.
육신이 죽던지, 영이 죽던지 죽음 가까이에 있는 괴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현재에도 성전 앞에 무릎을 꿇는 많은 사람 중에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현실과 자신을 볼 때 안타까움이 그지 없어 이 글로나마 조금의 위로를 주고 싶은 나의 사랑의 한 표현으로 이 글을 쓴다.
최고의 진리를 가르치는 한사람으로서, 영생을 이야기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 육 간에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의 상처로 남는지.
오늘날도 예수님처럼 영 육을 다 고쳐주며 영생의 복음을 전해주면 좋으련만.
살전5:23절의 온 영과 혼과 육이 예수님 강림하시기까지 강건하기를 원한다는 그 말이 절실하기만 하다.
병과 사고로 주님 앞으로 먼저 간 제자들이 있어서 나는 마음에 깊은 상처와 허함이 깃들었다.
처음 당할 때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죽음이 몇 번 더 있었음에도 아직도 나는 죽음에 익숙하지 못하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는 말로 위로를 삼지만 말이다.
육신의 큰 병으로 육이 먼저 가는 것이야 기도로 밖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길밖에 없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으니 어찌 하랴.
다만 이곳에 진리를 따라왔다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시험을 받아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활동하지 않는 강시(중국의 움직이는시체를 이르는말)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숨이 끊어진 것이 아니요 무슨 계기가 필요하고 위로와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두 사람이 아니요, 성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에 어떤 대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없을까?
만나서 상담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의 문이 여러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요 소수의 몇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연을 다 들어주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말하는 사람이나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결코 유쾌한 내용들이 아니기에 그 어떤 일이 있었던지 간에 본인이 마음에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에 차라리 글로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마음의 병을 치료받아 다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사람을 혹 만난다면 그들의 상담자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ㄷ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전3:16).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전7:15).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전8:14).
내가 의인이라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있어지는 여러 불법한 일을 보고 고민하고 고민하며 목마른 사슴같이 의문에 싸여 있을 때 생수같이 다가 온 말씀이었다.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라
17-21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말씀은 나에게 지독한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여 오랫동안 나를 모함하고 욕하고 사생활까지라도 알아내어 힘들게 한 사람에 대하여 나의 대처가 어떠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그 답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을 때 내 마음에 해답을 준 말씀이다. 이 말씀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를 보는 순간 뺨을 한 대 때려 주었을 것이다. 너무 어이없는 그의 간사함과 아부적인 태도 때문에, 그리고 또 후회하였을 것이다. 차라리 참을 것을 하고. 뭐는 건드릴수록 냄새가 난단다. 그래서 뭐가 무서워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요 더러워서 돌아간다는 말이 꼭 맞는 사람인 것 같았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시55:1-14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 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찐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 일찐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71:7-9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시71: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73:1-5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업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73:16~17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73:20-28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 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 하리이다.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음이 아플 때는 음악도 무척 위로가 되며 노래의 가사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우며 무엇인가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전도의 실패를 맛보았을 때 나는 부르는 복음 찬송가가 있다.
일어나 걸어라
1.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2.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 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1.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
(후렴)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난 이 찬송을 예수님의 손길로 생각하며 내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곤 하였다.
이천에 와서 한 가족이 말씀 공부를 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 가족 세 명 중 아내가 떨어져 나가자, 마음이 약한 남편과 아들도 함께 공부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 속 쓰림과 홀로 걸어야 하는 지도자의 고독이 밀려올 때면 제자들이 알게 해준 이 복음 찬송을 흥얼거리며 시원한 바람 속에 마음을 다잡곤 하였다.
그 외에도 또 홀로 걷게 될 제자들을 위해서도 ‘파송의 노래’라는 복음 송을 부르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위로 삼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로 인하여 상처를 주고받는다.
사는 동안 인생의 노정이 같으므로 겪는 고통도 비슷한 것들이 많다.
어릴 때는 보호받아야 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 것에서 오는 상처, 커가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거나 놀림을 받거나 맞은 상처, 좀 더 커서는 이성이 생겨 그로 인하여 헤어짐이나 하나 되기까지 받는 고통, 그리고 사회생활 하면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물질적이나 정신적으로 받은 상처, 자식 키우면서 믿었던 자식으로부터 받은 상처, 본인의 육체의 병 때문에 받은 상처, 남모르게 혼자만 아는 비밀과 죄의식 때문에 받은 고통과 상처들.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의 몸과 마음들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무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거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통계학으로 보아도 사람은 평생 살면서 가장 깊고 큰 상처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 받는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처들을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는 길은 무엇일까?
가까운 사람 간에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사랑도 주고받는다는 말이다.
그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기에 미숙한 우리 자신들의 부족함 때문에 본인은 상대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것이 상대에게는 그것이 아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랑하는 법은 가르쳐 주고 있다.
고전 13장 4절로 7절에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은 이 15가지가 전제된 사랑이 아니요, 본인들이 본인들의 사랑에 대입해 보면 알겠지만, 정 반대의 행동을 하면서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내 자신의 사랑 법을 이 15가지의 저울에 올려놓아 보았더니 한 가지도 옳은 것이 없었고 모두 고쳐 나가야 할 문제들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상대와 다투는 원인이 되는 것이 성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성내지 않기로 마음 먹은 후 고쳐 나가고 있다. 역시 그 한 가지 고치기도 쉽지는 않지만.
또 문제는 이 사랑 법을 알았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알려주어 상대가 이 사랑 법을 모르고 행하지 못한다면 혼자로서는 불가능한 것이 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랑 법을 사랑하는 상대에게도 반드시 알려주어 함께 노력하라는 교육을 한다.
상대에게 받은 상처는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많은 부분이 치료된다.
어려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상처는 본인이 부모 되어 보면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부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고 회한의 눈물로 본인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이성으로 인한 상처도 또 다른 이성으로 말미암아 치유를 받기도 한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에는 상대의 단점이 커 보여서 그 단점만 바라보고 원망하고 미워하지만 서로 헤어지고 나면 그 단점들 보다는 장점과 아름다웠던 추억들로 인하여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부부지간에도 때로는 떨어져 있어 봐야 상대의 빈자리 속에서 상대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이 이와 같은 이치니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의 깊이를 우리는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오래도록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
나는 어느 때 사람이 싫은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글만 보아도 시체 냄새가 나서 토할 것 같아 그 이름들을 보지 못한 적이 있었다. 또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고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나를 배신할 사람일 거야 하는 불신으로 만사가 싫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고통이었고 아픔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나의 마음은 가죽만 남은 것 같은 허기로 가득하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간절함에 누구의 말이었던가, 어디서 읽은 책에 나와 있었던 말이었던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마는 ‘사람은 지구와 같아서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신기한 것이 사람' 이라고 나와 있었다. 다만 그 지구를 처음 진입 할 때에 어느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나에게 강렬하게 남는 것이다.
사막 쪽으로 먼저 들어갔는지, 바다 쪽인지, 산 쪽인지, 그러나 그 처음 모습과 많이 다른 많은 모양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구의 모습이듯이 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와 시시각각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사람 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고 모든 사람이 다 배신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요, 진실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짧은 인생에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온 나에게도 여러 경험이 있었듯이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으랴. 그러나 이제 지나간 일들은 잘 겪고 승리하였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여러 파도와 같은 일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는 어떤 경험과 지혜로 맞설 것인가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 누구도 미래는 짐작할 수 없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나약한 자신인 것이다.
본인의 마음을 키우고 과감하게 도전하여 모든 문제와 부딪혀 싸워보리라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글들을 읽고, 듣고 공부를 하는것이다. 지식은 승리를 하게 하되 상처를 최소한 줄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대화하고 대처해 보자.
마지막으로,
'남을 죽이고자 하는 자는 자기가 먼저 죽는다' 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옮기며 오늘의 짧은 이야기를 마친다.
옛날 어느 농부의 집에 소와 염소가 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하루 종일 소와 더불어 연자 맷돌을 돌렸습니다.
염소의 보기에는 소는 주인 농부에게 사랑받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농부는 늘 소와 함께 있었고 염소에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연자맷돌을 돌려야 삼시세끼 먹을 벼를 찧어서 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종일 일일해야하는 소의 고통을 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인에게 소는 사랑만 받는 존재라는 질투와 미운 마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염소는 어떻게 하면 소를 죽이므로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주인을 불러 말했습니다.
주인님 당신과 함께한 저 소를 보십시오. 저 소는 너무 바싹 말랐으니 잡아 먹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때에 주인은 비로소 소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소의 모습은 그랬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못하고 주인에게 고삐를 잡혀 꼼짝 없이 일만해야 했던 소의 모습은, 뼈만 앙상히 남아 형편 없는 모습이었음을 주인은 처음으로 보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를 잡아 나의 소에게 먹여야겠구나.
염소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소를 죽게 만들고 소만 없어지면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 할 줄 알았지만
주인에게는 염소 자신 보다는 소가 더 소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는 매일 주인가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로가 살기 위한 처절한 고통의 몸부림이요 삶의 최 일선에서의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주제도 못되면서 입장바꿔 생각지 못하는 옹졸한 염소는 우리 가까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소의 입장이라면 하나님만은 아시고 계신다는 그 믿음으로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필연 결과는 있어질 것이고, 끼리끼리 만나게 소와 양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날에 결과를 보상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리 하시길 빌어보며 이만 줄입니다.
첫댓글 건강하세요 강사님
글이 위로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