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번째 이야기];조선시대의 역학 연구
태극과 음양이 철학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송대의 성리학에 이르러서이다.
주자가 태극을 이( )로,음양을 氣로 규정함으로써 이 양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상 내지는 역학사상에 차이가 생긴다.
서화담은 세계를 음기와 양기의 생성 변화로 보아 앞에서 말한 역삼의(易三義)가운데서 변역을 강조했다면 이퇴계는 인극을 강조하여 불역의 입장에 선다.
반면에 이율곡은 화담과 퇴계의 입장을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지양하고 '변역하는 가운데 불역하는 이치가 있다"고 하여 변역과 불역을 불가분적으로 파악하였다.
조선 시대 역학사상의 문화적 영향은 역리적 구조원리에 의한 훈민정음 창제에서 뚜렷이 나타나며,이제마의 사상의학도 실학파의 역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체질의학을 성립시켰다.
이병헌은 관괘(觀卦)의 단전에 보이는 '성인이 신도로서 교를 베푸니 천하가 복종하였다.'에서 성인을 구세의 교주로 보아 역리를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19세기 한국의 역학사상
조선시대의 역학사상중에서 19세기 한국의 역사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아 별항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정다산의 고역(古易)사상
주자학의 체계를 발전적으로 지양하여 이용후생의 문제를 주제로 삼아 전개되는 실학사상에 있어서의 역학사상은 정다산에서 절정을 이룬다.
다산 정약용은 성리학의 왜곡됨을 비판하고 경전 자체의 진실성을 회복하려는 입장을 보여주는데,이러한 그의 학문적 입장을 주사학이라 일컫기도 한다.
먼저 다산의 천관(天觀)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천을 창창유현의 천과 영명주재의 천으로 나누었다.
영명성과 주재성은 천'상제의 대표적인 본질적 속성으로 파악된다.
물론 정주 상제를 주재자로 보았으나, 이는 이( )에 대한 주재의 의미로,다산이 말한 영명한 인격신의 주재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이런 주재자의 의미는
조화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결국 주역을 바라보는 다산 사상의 핵심은 천(상제)의 주재자로서의 지위를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명하고,역의 역할이 인간이 천명을 받는
방법을 밝히는 것으로 본다.
그는 세속화된 점술을 비판하고,복서를 하늘의 뜻이 통하는 신앙적 성격으로 보고,잡다한 복서법을 간명하게 설명하여 순천지학(順天之學)으로서의 고역의 면모를 재정립하였다.
역학의 기본을 이루는 태극에 대해서도 다산은 성리학적 궁극론을 배제하고 '천지가 분리되기에 앞서 혼돈된 형체의 시작이요,음양의 싹이며,
만물의 태초'라고 정의하여 생성론적 시초로 정의힌다.
이러한 인식의 기초 위에서 태극이나 음양이 조화의 근본이 아니라 그 위에 조화자 주재자로서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64괘에 대한 인식도 일반적 형태를 취하지 않고 음양의 증감에 따라 12개월에 해당하는 12벽괘와 재윤괘 2괘를 합해 14괘를 괘의 기본으로 인식함으로써,
주역을 소과 중부를 추가한 것이다.
또 다산은 종래의 역삼의와는 달리 일왈교역(一曰交易),이왈변역,삼왈반역의 새 삼역론을 제시하고,상하의 괘를 서로 바꾸어 이루는 교역은
복희의 획전법이라 하여.그 원초성을 강조하였다.
또 우주 안에서 독자적 형질을 갖는 건곤감리를 역의 4정괘로 보았다.
다산에게는 역학연구의 독특한 역리사법이 있다.
'추이(推移),물상(物象),호체(互體),효변이 그것이다.
그리고 독역요지서는 앞의 역리사법이 역수학적 본질을 헤아리는 방법이라면,단상사를 중심으로 64괘의 계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추상,해사,존질,
고명 등 모두 18항이다.
이는 한송이래의 편견된 역에 사로잡히지 않고,고성(古聖)의 고역에 돌아가 역을 연구하자는 방법론들이다.
이와같이 19세기 초 한국 역학사상은 다산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최수운의 영부사상
수운 최제우는 1860년 4월 득도하여 무극대도를 창건하였다.
무극대도는 "내 마음이 네 마음"이라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심법에 의해 전수받은 영부와 주문에 의해 본질이 규정된다.
주문은 3.7자로 ㅁㅁ(고어임;한울님,하늘님,한얼님,하날님 등)님을 모시는 시천주의 원리를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지기(至氣) 조화 사람의 세 가지 문제에 우주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우주가 처음 열리는 난상난견(難狀難見)의 혼원일기(渾元一氣)를 지기로 보고,음양상균 화출만물을 조화로,만물지중(萬物之中) 최령자를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수운은 우주론을 일기론(一氣論)으로 이해하여 성리학적 본체론을 배제하고 대립된 두 세계를 현상계로 수렴할 뿐만 아니라.그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형이상과 형이하가 본래 하나라는 대전적(大全的)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영부를 얄아보고자 한다.
영부는 "그 이름이 선약(僊藥)이요,그 향상은 태극이요,또 궁궁(弓弓)이다" 고 했을 뿐 구체적인 모양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수운은 득도 이후에 이 영부를 스스로 그려서 수백장을 탄복했으며,그 결과 선풍도골이 되었다고 했다.
이 영부는 동학혁명 전후에 동학인들 사이에 여러 모형으로 유포되었으나,어느 것이 그 원형인지 알 수 없다.
현재 동학교단에서는 서로 다른 것을 내세우며 영부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영부는 1차적으로 그 기능 면에서 볼때,불사(不死)의 선약으로 불린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또 영부는 최해월이 '약동불식(躍動不息)'의 마음'이라고 해석한 이후 영부는 곧 ㅁㅁ님(ㅁ는 고어임;하늘님,하날님,한얼님 등)마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영부의 궁금증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태극이니 궁궁이니 하는 말이 가지고 있는 신비적 요소도 있겠지만,영부는 다의적으로 해석돼 왔다.
그 중에 주목할 일은 "영부는 거북꼬리의 용담(龍潭)에서 얻는 괘도이다.이것의 부(符)는 천부와 동일한 일종의 신물"이라는 주장이다.(장병길)
이어서 그는 영부는 역수로서 1,6을 중궁에 입궁시킨 것이 특징으로 보고,하도 낙서에 이은 제3의 도서역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배태되어 있었다.
시천교 초기 자료에는 수운의 을묘천서란 "복희씨 때에 용마가 나오고,홍범이 나올 때에 낙귀(洛龜)가 나온 것 같이 무극대도의 영문영서(靈文靈書)일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 상주의 동학교에서도 아(亞)자를 넣은 8괘도로써 궁을(弓乙) 영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경주용담영부라는 이름으로 두 종의 영부가 발표되었는데,앞에서 장병길이 말한 그 영부도이다.
김홍철은 이 영부도를 원용문의 궁을경도식에서 인용하였는데,세 본 모두 일치한다.
하지만 이 영부도 역시 수운의 작역이라거나,영부의 원형이라는 단서를 찾기에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다만 관심이 가는 부분은 세칭 '용담영부도'가 수운의 동학사상을 얼마나 잘 표현해 주고 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 나름대로 의미 부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ㄱ)영부도는 중궁(中宮)에 하도가 5,10土를,
낙서가 5 허중을 넣었는데,1,6수가 입궁하여
홍범에서 말한 일왈수가 중심이 되어 수운의 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이는 용담수류사해원(절구 시)
의 경전 뜻과 상통한다. 그 밖에 2,7火를 북방에,
3,8木을 서방에,4,9金을 동방에,5,10토를 남방에
배열하였다.
(ㄴ)영부도는 하도에서와 같이 10수를 다 사용하였으며,
낙서에 가일하여 새로운 오행의 수를 정하였다.
이도 역시 구악춘회일세화(절구 시),삼백육십개(탄도유심급)
의 경전 뜻과 같다.
(ㄷ)영부도는 중궁 1,6水를 1은 체(體)이므로 불용수(不用數)로 ( )에
넣고,6은 용(用)이므로 실수(實數)로 표기하는데.
주자가 말한 천이일생수이지이육성지(역본의 도)에 따라
후천에 6수를 용한 것으로 보인다.1을 체로 하여 정전도에
10수를 배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합하면 13수가 나온다.
이는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교훈가)"의 뜻이다.
1을 제외한 음양대대의 수는 12이다.
(ㄹ)영부 중궁을 육면체로 그리고 그 안에 점선의 원을 그림으로써
무극과 일원심을 상징한다. 이는 "심혜본허 응물무적(탄도유심급;
즉 해석을 달자면 '마음은 본래 비어서 물건에 응하여도 자취가
없다'라는 뜻입지요^^)의 뜻과 같으며, 이중심 안에 있는
점선 원은 영부도만이 가지고 잇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몇가지 예로서 영부도를 제3의 도서로서의 부(符)로 자리매김을 시도해 보았다.
삼역대경에도 '도(圖),서(書),부(符) 각정기천(各定其天)이라 하였다.
영부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주용담영부는 수운사상을 전해주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3)김일부의 정역사상
일부(一夫)김항의 정역에 대하여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이제는 복희역-문왕역에 이은 제3의 일부역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는 폭이 상당히 넓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는 대역서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거룩하도다 역의 역됨이여,역은 책력이니
책력이 없으면 성인이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도 없다.(한자 생략함)
일부는 역은 곧 책력 또는 역수라고 새롭고 구체적인 정의를 내렸다.
이는 천지역수재여궁(서전,논어)에 이미 나타난 바와같이 역수를 천도의 실체로 파악한 것이다.
즉 정역이 서는 이른바 우주 시간의 변화 원리를 生(366)-長(365)-成(360)으로 진행되는 필연성(하단주;양재학은 '무극대도 출현의 당위성'라함)
에서 천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360이란 수는 주역에서 말한 공자의 360과 같으나. 그 근원은 다르다고도 본다.
또 정역시에 '천지지수는 수일월(數日月)이니 원역(源易)하상용윤역(何常用閏易;하늘과 땅의 수는 해와달이 수놓으니 해와 달이 바르지 않으면, 역이
아닐세.역이 바른 역이 되어야 역 노릇을 할지니,원역이 어찌 항상 윤역을 쓰리오(이정호 역))이라 하였다.
김주성은 마지막 구절을 360의 무윤력을 쓴다는 뜻이 아니라,윤역을 현행 음력으로 보았다.
따라서 역학에서의 천도론은 일월 변화가 중심이 되어 만물이 부단히 생성,변화하며, 동시에 자연만물의 생명유행으로서 천도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정역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ㄱ)설괘전 3,4~5,6장에 나타난 삼재적 생-장-성 원리에 따라
복희팔괘-문왕팔괘-정역팔괘의 순서로 발달해 왔다.
인격성의 발달도 이와 함께 한다.
(ㄴ)천도로서의 자연의 변화와 인사로서의 인간의 변화를
예고하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놓았다.
천지도수의 변화로 천도를 파악하고,인간을 황극으로
이해하며,억음존양이 아니라 조양율음(調陽律陰)으로써
만민평등과 남녀 평등을 명시하였다.
(ㄷ)선천의 역을 교역,후천의 역을 변역의 역이라 하여
근원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차원의 역 질서를 보여주며,
동시에 후천으로가는 金-火 사이의 변화는 바뀌지 않는(不易)
완전한 正易이 되는 것이며,역법과 자연 변화와 음율과
조화의 모든 질서가 정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금화 정역이 정역의 원 이름이다.
(ㄹ)무(戊;5 황극이며 10무극)와 기(己)(10무극이며 1태극) 자리는
선후천 변화에 있어서 5토와 10토를 이루는데,이때 5 황극은
10무극과 1태극을 우주 창조의 본체로 하여 만물의 성장과 분열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우주 운동의 본체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음양변화의 조화정신이다.(양재학은 "무극은
우주조화의 바탕,태극은 무극의 조화성(혼돈성)이 개벽되어
질서화되는 경계로 보았다. 정역에서 황극을 지칭하는 包5含6은
선천의 5와 후천의 6을 동시적으로 포섭하는 이중적 의미이다"고 했다.)
(ㅁ)복희역이 무위자연의 소박한 역이라면,문왕역은 인위조작의
문교(文巧)한 역이요,일부역은 자연과 인간이 극도로 조화된
우주의 이상과 인간 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초탈의 역이다.
(ㅂ)정역사상이 한국 역학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한국 유학의
고질적 폐단이었던 중국 유학에 대한 사대의식을 역수성통
(歷數聖統)원리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학문적
체계를 정립하였다.
다음은 "20세기 한국의 역학사상이 전개됩니다."^*^
<이찬구 박사님>저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