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교회 용사들의 세가지 특징(2165.2022.11.20.지방남선교회 총회설교)
대상11:10-14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방 남선교회 회원여러분! 저희 상주교회를 방문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지방 남선교회와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리고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남선교회 설교를 신10:12-15절로 ‘행복한 남선교회의 생활’(2016.7.10.오후 지방남선교회 순회예배설교), 2021.1.31 총회때에는 ‘하나님을 마음을 시원케 하는 남선교회’가 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남선교회 용사들의 세가지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역대상 11장부터는 다윗의 왕조가 세워지는 그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등장하는 것이 다윗과 함께 다윗의 왕조를 세운 용사들의 이름입니다. 다윗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용사들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늘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이 용사들과 함께 왕조를 강성하게 세웠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믿음의 용사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강성하게 세워가길 원하십니다. 본문은 다윗과 함께 왕조를 세웠던 용사들의 세 가지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경북북지방 남선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이 용사들처럼 세워 나가기시를 축복합니다.
1.경북북지방을 위해서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10절‘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 용사들의 첫 번째 특징은 다윗과 ‘더불어’입니다. ‘더불어’는 함께입니다. 공동경험의 개념입니다. 다윗의 용사는 왕과 함께,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39절에 암몬 사람 셀렉, 41절에 헷 사람 우리아, 46절에 모압 사람 이드마, 47절에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할례를 받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행1:4절‘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20명이 더불어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그중에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고자 찾아왔던 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동생들도 더불어 한마음으로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더불어’가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며 성령 충만한 역사를 이룹니다.
다윗 왕국의 군대 조직의 리더십을 소개하는 이 대목에서 ‘요압’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국의 군대 장관으로 일등 공신이었지만 역대기 역사에서 더불어 일할 줄 몰랐던 요압의 이름을 삭제합니다. 삼하3:39절‘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요압 장군을 다윗 왕이 버거워합니다. 요압 장군은 막무가내였으며 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요압의 세력이 너무 막강하여 다윗이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역대기 역사가 평가하기를 더불어 일할 줄 모르는 요압이었습니다. 지방남선교회 여러분 회장을 중심으로 함께 일하는 용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압처럼 막무가내 용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모세 곁에는 아론, 훌, 여호수아 같은 협력자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누가와 같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벧전5:3-5절‘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양 무리의 본이 되면 영광의 면류관과 젊은이들이 순종하게 된다는 영적 원리입니다.
동물 세계에서 어미 없는 새끼는 사냥을 배우지 못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남선교회는 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감동으로 본을 보인 것처럼 경북북지방 남선교회가 감동으로 믿음의 본이 되기 원합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할렐루야
2.경북북지방을 위해서 ‘힘껏 도와’서 일해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10절‘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다윗을 힘껏 도와’했습니다. 다윗 용사들의 두 번째 특징은 다윗을 ‘힘껏 도와’입니다. ‘힘껏 도와’는 ‘강하다’, ‘강하게 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이 점점 강해진 이유가 협력자들이 힘껏 도왔기 때문입니다. 돕는 척이 아닙니다. 돕는 흉내만 낸 것도 아닙니다. 말씀만 하시면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알겠지만 5분 대기조가 있습니다. 5분대기조는 출동하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책임을 묻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며 믿음의 행동대원들입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을 온 이스라엘이 지지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인간의 힘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그 일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힘을 내어 충성할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우편 강도는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만남이요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왼편 강도는 예수님과 만남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만남이 은혜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만남이었습니다. 용사 중의 용사라고 할 수 있는 야소보암, 엘르아살입니다. 대상11:11-14절‘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 다윗 군대의 정예 요원답게 야소보암은 창으로 300명을 무찌릅니다.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백성들이 도망가는데도 엘르아살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큰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히10:38절‘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했습니다.
다윗 용사들의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도망가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생명 걸고 충성했던 사람들로 인해 다윗의 나라는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윗의 용사들처럼 생명을 건 충성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좋은 군사는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처럼 생명을 건 충성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충성된 사람이 바로 경북북지방 남선교회 성도여러분 ‘나’ 자신이기를 축복합니다.
3.경북북지방을 위하여 ‘말씀대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10절에서‘말씀대로 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 용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말씀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약속이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루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다윗과 함께했던 용사들 때로는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다윗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약속하신 것들을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윗의 용사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일꾼이 되고 용사가 됩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반응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용사들이 되기 원합니다.
사31:4절‘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어르렁거리다’가 히브리어로 하가이며 우리말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맹수들처럼 먹잇감을 앞에 놓고 혓바닥 핥으며 어르렁거림입니다. 조용히 눈감고 명상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어르렁거림입니다. 말씀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시119:103절‘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맛집 매니아가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말씀 매니아입니다. 계10:10절‘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했습니다.
종말 시대에 삼시세끼 육신의 밥만 먹으면 육신의 힘이 강합니다. 말씀을 먹으면 영의 힘이 강해집니다. 말씀으로 영의 힘을 키웁시다. 대상10:13-14절‘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죽은 것은 블레셋 병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울과 세 아들들이 목이 잘려 죽습니다. 블레셋 성벽에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마지막 남은 아들 이스보셋은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목이 잘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다윗 왕의 주변에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다윗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반응했습니다. 다윗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전건축이었더니 그의 첫째 삼인, 둘째 삼인, 삼십인의 장군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다윗의 세 용사도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이 전쟁가운데 이길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 거룩한 일에 하나님이 동행하실 줄 믿었습니다. 그래서 큰 구원이 거기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용사의 길은 어렵습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길은 너무나 복된 길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이 길에 헌신하고 봉사하게 되어지면 거기서 얻어지는 기쁨이 큰 것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들은 앞장섰습니다. 솔선수범하였습니다.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분들을 통하여 많은 승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이 삼십명 중 세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들을 인하여 감격합니다. 나무나 감격하여 그 행한 일을 하나님께 부어드립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아둘람굴에 피해 있을 때 이들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다윗을 도운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 중에 있게 되는데 블레셋은 베들레헴에 지쳤고 다윗의 군대는 전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냥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데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다윗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블레셋 적진을 돌파하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옵니다.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다윗도 주책입니다. 이런 전쟁의 때에 뻔히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에 진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가 감히 베들레헴에 가서 우물물을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먹고 싶다고 해도 참아야지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너무 먹고 싶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다윗의 심정을 알고 무모한 세명의 용사가 블레셋 진영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어찌 보면 맹신이지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블레셋 진영까지 쳐들어갑니다. 밤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떻게 했는지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왔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보고 감격합니다. 저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생명 바쳐 물을 떠왔는데 이것은 내가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저들의 생명과도 같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린다고 말합니다.
다윗을 너무나 감동시킨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다윗이 힘들 때에도 함께 하였던 사람들입니다. 늘 다윗과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앞의 세명의 용사보다 더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상황판단이 되지 않는 언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다윗의 소원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소원도 아닙니다. 그냥 개인의 어떤 만족을 위해 한낱 감상에 젖어 있는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처사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목숨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북북지방 남선교회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까? 주님을 위해 올 한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애썼습니까? 우리의 사명이 올해로 끝입니까? 내년에는 그냥 이름만 올라가 있는 용사들이 되시겠습니까? 용사라는 이름은 있고 정말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는 자라면 우리는 다 무익한 종들입니다. 어쩌면 악하고 게으른 종일 수 있습니다. 우리 다시금 일어설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남선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과 같이 경북북지방남선교회 전체가 더불어 힘을 합하여 말씀대로 큰일을 감당하여 우리를 통하여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혀 드리며 귀한 사명 잘 감당하시는 지방남선교회 회원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