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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일일영어/요일별 담당자 Shame on you!
허정택 7 추천 0 조회 110 14.12.19 22:4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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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2.20 00:42

    첫댓글 shame 과 shy 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겠네.
    Always thxs, my friend.

  • 14.12.20 01:04

    Not a shame to the heaven,,,,let us live so.

    When I was young, I felt shy too much. And then my nick name was 홍시.^^

  • 작성자 14.12.20 05:03

    대학시절에 하숙집에
    고대 영문과에 합격한 신입생이 한명 들어 왔었다.
    하숙집 고참이라 붙잡아서 물어 보았다.
    울산 시골에서 재수없이 어떻게 들어 왔노?
    저 학성고 출신 입니다.
    난 그때 학성고라는 존재를 알았었다.
    내가 한때 좋아했던 김태희도 울산 출신이라.
    어릴때 삼촌이 병영에서 학성공원 까지 버스 구간을
    운영 했었어 자주 놀러 감.
    그땐 태화강에서 물고기 잡던 시절이였어.
    울산의 한 수재가 부산 경남고에 유학와서 다들 따신 밥먹고
    다니던 시절, 어린 태환 학생은 자취하며 못먹고 고전 하던 시절이
    떠 오르네.

  • 14.12.20 06:10

    그랬째. 울산 태화강에서 낚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밑갑을 끼워던져 넣어도 꼬시래기가 달라들어 거의 꼬시래기만 낚이던 바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자취하던 시절에 밥을 하기 귀찮을땐 집에서 가져온 쌀을 절반정도는 아예 박상을 튀겨놓고 주위가계에서 우유를 사다가 말아먹기도 했째. 아마 이게 우리나라의 프레이크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콘 프레이크가 아니라 이름하여 " 쌀박상 후레이크"
    ㅎㅎ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내가 고추장을 워낙좋아해서 일년에 한두번씩 모친께서 올라와서 큰 단지로 한단지 가득 고추장을 담가주고 가셨는데,,,
    그후 일년쯤 지났을까,,,어느날 하교하니 모친께서 " 니 괜찮나?" -계속-

  • 14.12.20 06:15

    @박 태환 하고 물어시길래, 뭘요하고 되물으니,,," 그래 고추장을 많이 먹고도 위장이 괜찮나?" 카시는기라. 그라고 가만 생각해보이 거의 일년에 큰 단지로 한 단지씩 혼자서 (쪼께 부풀리면) 거의 맨날 고추장에 밥 비비문것 같은 추억들,,,^^ ^^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네 그랴,,,
    난 국민하교 2학년때부터 밥을 대충은 할줄 알았단다. 그라고보면 만서기 팔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듯 하이,,,,ㅎㅎㅎㅎ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뭘 비비묵는거는 거의 프로수준이다. 이것도 내몸에 묶인 습성이라 쉽게 떨어지질 않는듯,,,,^^ ^^ㅎㅎㅎㅎ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고딩시절이 나에겐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던것 같으이,,,^^

  • 14.12.20 06:33

    @박 태환 하나 더 있네.
    그라고 사흘이 멀다하고 그놈의 연탄불 꺼자무가 연단불 피우던 ,,, 아이쿠 말마라! ㅋㅋㅋㅋ

  • 작성자 14.12.20 06:51

    @박 태환 너가 대범한 성격이다보니 가볍게 표현해서 그렇지
    말 안해도 너 고생 한것 알겠다.
    한참 성장기에 그런 고생을 하다니. 너무 공부 잘한것도 흠이다.
    너를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집에 불러다가 영양 보충 시켜 줄낀데.
    난 동생의 예를 보아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내 큰놈이 동부로 유학 갈려는걸
    내가 강제로 눌려 앉혔다.
    공부보다 중요한게 건강이다.
    나도 고교 졸업후 서울 올라 와서 빈약한 하숙집 밥때문에
    처음에 10킬로가 줄더라.
    그때부터 생존 의 목적으로 혼자 보신탕 먹으러 다닌게
    보신탕 매니아가 되였다.
    객지 생활에서 나의 건강 생활에 일조한 보신탕 전문 "별미집"
    동대문 지하철역 근처에 있었는데 김해에서 상경한 부부가
    운영

  • 작성자 14.12.20 06:56

    @허정택 7 하던 집이였는데 객지 생활 거의 10년동안 가족같이 정들었던 집이였다.
    미국 오기전에도 보신탕 먹을겸 인사차 들렀었지.
    미국은 개고기가 불법이라서 가끔씩 멍멍탕 생각나면
    맛이 비슷한 흑염소탕으로 향수를 달래곤 한다.

  • 작성자 14.12.20 05:15

    내 동생은 연세대 상대 졸업후 유타 주립대로 유학 왔었어.
    그당시 유타주 로간이란곳은 한국 식당은 찾아 볼수 없었어.
    그런데 이놈이 학교 기숙사 양식을 못 먹어 내는기라.
    눈이 많이 오는 곳인데 한번은 눈길을 걷는데 앞이 잘 안보이는 기라.
    학교 보건소에 갔더니 영양 실조! 암만 먹을게 풍부해도 못 먹어내면
    영양 실조가 되더구만.
    당장에 한학기 휴학 시키고 우리집으로 불러 한국음식으로 건강 회복.
    소식 듣고 어머니가 한국에서 개소주를 가져 오셨는데
    이놈이 원래 개를 사랑하던 놈이라 끝까지 먹기를 거부. 개소주는 결국 내 차지.
    일찍 장가 보내기로 결정, 아버지 주위를 수소문. 이대 영문과 졸업반인 부산 규수를 찾아

  • 작성자 14.12.20 05:35

    결혼. 그후부터 전세가 역전. 동생 처지가 쭉 펴임. 제수씨 음식 솜씨가 상당한 수준이였음.
    그당시 유학와 있던 김종필 외아들 김진 이는 과테말라 여자와 동거 중이였음.
    다들 한국 음식 잘 하는 동생 가정을 부러워 하고 많이들 찾아와서 먹고 갔다고
    전해짐.
    김종필이가 로간까지 아들 보러 찾아 와서 몇 안되는 유학생들 불러 중국 식당에서 대접.
    그당시는 김대중에게 팽 당하기전이라 정당의 실세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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