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떠밀려 온 자리
영설
진백화는 꽤 성가신 축에 속하는 손님이었다. 매일 두 시쯤 들어와 수십여 분동안 물건들을 들여다봤다. 그렇다고 또 단골 손님이라기엔 애매한 것이 정말 물건들을 들여만 봤다. 그 행동이 구매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하게 된 3주 동안은 그랬다. 그날도 그녀는 심하게 곱슬거리는 밤색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며 인기척도 없이 가게로 들어왔다. 또 오셨네 저 할머니. 어서오세요.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인사 뒤로 다시 싱거운 정적이 흘렀다. 파악한 대로라면 이번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온 다른 손님들이 계산을 다 하고 나서 한참을 있다가 성큼성큼 나가며 엉, 고마워 아가씨, 하고 내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에 손이 갔다. 뻔한 패턴에 곧 금이 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해파리.”
“아, 네?”
“왜 해파리여?”
팔꿈치 위에 그거. 백화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나는 그제야 제 팔 위, 작은 문신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 문신은 스스로에게 주는 퇴사 선물이자 약속이었다. 나름 경쟁률이 높다는 기업을 운 좋게 들어갔음에도 중학생들 일진놀이만 못한 정치질에 질려 온갖 증후군이란 증후군은 다 떠안고 퇴사한 뒤 남긴 결과였다. 어느 조직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유히 떠다니자는 무언의 다짐이 있었다. 하지만 괜히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적당히 철 없는 젊은이로 남기로 했다.
“티비에서 봤는데 해파리는 심장이 없는 동물인데도 잘만 돌아다니고 산다더라고요. 그게 그냥 멋있어서 했어요.”
“어엉, 그건 나도 처음 알았네.”
편견은 내쪽이 더 깊었던 것인지, 더 어떤 반응도 없이 수긍하고 마는 할머니를 보며 은근히 뒤로 내뺐던 팔이 뻘쭘해졌다.
“번호로 적립한 포인트 그거 사용되지? 뒷 번호 7970. 아가씨 옆에 비타 음료수 그거 포인트로 결제해줘.”
“진백화님 맞으세요?”
내가 알바를 시작하기 이전에는 물건을 자주 사기도 했던 건지 포인트가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의아한 기분을 숨기며 결제를 끝냈을 때, 백화는 음료를 내게 슥 밀었다. 나는 몇 차례 사양하다 결국 못 이긴 척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엉, 고마워 아가씨.”
전해야 할 감사를 되려 받고 얼떨떨해진 나는 결제 조회를 눌러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진백화. 어쩐지 할머니의 모습과 매칭이 되는 듯 안되는 이름이었다.
같은 날, 그녀를 다시 마주친 건 오후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들린 미술관에서였다.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되는 버스에서 어디쯤 왔나 하고 고개를 들 때면 늘 한 쪽면은 담쟁이 덩쿨로, 다른 한 쪽면은 대형 포스터로 덮인 그 건물이 보였다. 이제는 눈에 익은 특별전 포스터에서 전시 기간이 그날까지인 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다만,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려 전시장으로 달리기 시작한 건 나의 선택이었을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상황이었을지 모를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입장 마감 시간 5분 전, 나는 어느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던 고요한 전시장의 마지막 관람객이 되었다.
7, 80년대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다룬 특별전은 기대보다 무난했다. 시대에 의해 흥하기도, 시대에 의해 잊혀지기도 한 작가들의 그림이 한데 모였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 같았다. 몇몇 그림은 국어 교과서에 삽화로 실릴 듯한 고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관람객이라는 압박감에 점차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급해진 나는 어느덧 전시의 중반이 지났음을 예측케하는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한 그림 앞에 선 노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들어온 순간부터 전시의 중반으로 오는 길까지 귓가에 남은 것은 오로지 내 발걸음 소리밖에 없었기에 당연스럽게 이 공간에 나뿐인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놀란 이유는 작품 앞의 사람이 분명 아는 뒷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물건을 보고 계시나 싶어 내가 유심히 관찰했던 백화의 뒷모습이었다. 밤의 바다를 그린 평범한 그림 앞에서 미동도 없이 선 백화는 마치 등대처럼 보였다. 얼마나 꼿꼿이 서 있었는지 차마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나는 그 작품의 일부가 된 듯한 백화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은 작품들은 어떻게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멍하게 전시관을 나왔고, 그 순간까지도 발소리는 오직 내 것뿐이었다.
다음 날의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두 시에 가까워질 수록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네 시가 되어도 백화는 오지 않았다. 다만, 가게 포스기가 아닌 휴대전화 안전 안내 문자에서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서부경찰청] 서구에서 배회중인 진백화씨(여, 71세)를 찾습니다. -160cm, 49kg, 갈색 파마머리, 연한 회색 바람막이. 발견 시 182로 전화.’ 지금껏 한 번도 신경써보지 않은 문자였지만, 내용에 적힌 이름을 보게 되자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전날 미술관에서 보았던 사람은 분명 진백화였다. 오늘 문자가 왔다면 어제 목격한 것도 도움이 되는 건가? 아니 그보다도 그럼 어제 내가 본 진백화는 배회 중이었던 건가? 심각해진 나의 시야로 문득 950원짜리 비타 음료수가 눈에 띄었다. 나는 포스기에서 고객 정보 페이지를 열고 경찰서가 아닌 진백화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대기음이 한 차례 이어지기도 전에 누군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했다.
“언제 어디서 목격을 하신 거예요?”
“어제 미술관에서요. 한국 현대 화가 다시보기라는 전시에서 할머니가 계신 걸 봤어요.”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집에 휴대폰도 두시고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사라지셔서 신고했던 거거든요.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하셔서 엊그제 치매 검사를 받고 오신 분이라 걱정이 돼서 제가... 아! 혹시 거기 전시 중에 진우택이라는 분 작품도 있었나요? 할머니 친오빠가 화가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백화가 서 있던 자리의 그림이 떠올랐다. 제목은 기억나지만 그 밑의 화가명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바로 포털사이트로 접속해 작품 제목을 검색했다. <밤의 몽돌해변>, 화가명은 권온이었다.
“아, 제가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사회복지사는 자기가 알아보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인터넷 화면의 그림 속 물결을 가만히 응시하다 문득 이상한 충동이 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지체 없이 지하철로 향했다. 이상한 할머니 손님에게 왜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아무래도 그 음료수를 받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었다. 스크린도어에 비친 해파리 문신은 애써 외면했다.
설마 싶은 마음에 향했음에도, 정말 그곳에서 백화를 발견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진짜 여기 계셨다고?’ 였다. 당황한 나와 달리 백화는 산책 중에 친구를 만난 사람처럼 반가워하며 손에 든 봉지에서 빵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아니, 왜 여기 계세요? 지금 사회복지사 분이 할머니 찾겠다고 신고하고 난리세요. 빨리 같이 가요, 할머니.”
“안 돼. 아가씨야, 나 못 본 걸로 해. 나 아직 찾아야 할 게 있어. 안 돼.”
팔짱을 끼고 당겨봐도 할머니의 아귀힘을 이기진 못했다. 백화는 그럴거면 먼저 가라고 쌩하게 돌아섰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다는 사람을 혼자 가게 내버려두기에는 참을 수 없는 찜찜함이 몰려들었다.
“아,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저랑 같이 가요. 대신 우리 지하철 막차 시간 전까지는 돌아가요!”
“엉, 고마워 아가씨.”
그래서 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내가 물을 때마다 백화는 가야 할 집이 있다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정말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의 발걸음으로 움직였기에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백화와 내가 들어선 곳은 해변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의 동네였다. 재개발 대상 지역인건지 골목을 걸어다니며 보이는 주택의 반 이상이 내부가 텅 비어있었다. 백화가 마침내 멈춰선 집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들은 휑하니 비었고, 그 속으로 아무 가구도 없이 태초의 상태로 돌아간 듯한 내부가 보였다. ‘공가’ 글씨가 붉은색 페인트로 적힌 대문을 열고 백화가 들어갔다. 인간인지라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 나는 휴대폰의 전화 키패드로 112를 누른 채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할머니 여기 텅 비었잖아요. 찾는 게 뭔진 몰라도 아무 것도 없는데 대체 뭘...”
“잔말 말고 여기 와서 이것 좀 도와봐.”
빈 집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 들어가자 2층으로 향하는 내부 계단 앞에 쪼그려 앉아 첫 계단 위의 먼지를 손으로 쓸고 있는 백화가 보였다. 나는 옆에 앉아 숨을 최대한 참으며 그 행동의 일련을 관찰했다. 자, 이제 들어. 계단의 상판 모서리에 열 손가락을 댄 백화는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더 재촉했다. 나도 반대 쪽 모서리에 손가락을 댄 채 둘이서 동시에 힘을 주자 정말 상판이 위로 열렸다. 백화의 비밀 수납장이었다. 그 속에 든 액자와 종이 봉투를 발견하고서 나는 뭔가 케케묵은 사연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는 직감에 소리 없이 침을 삼켰다.
가로 세로가 모두 한 뼘 남짓한 크기의 작은 액자에 끼워진 것은 익숙한 그림이었다. 전시장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본 적 있는 권운의 <밤의 몽돌해변>과 풍경이 비슷했다. 그러나 백화가 한참을 앞에 서 있었던 그 그림과는 분명 다른 그림이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밤의 몽돌해변>과 액자 속 그림은 그린 사람이 다를 듯 싶었다. 검게 칠해진 바다 물결 사이마다 형광빛의 푸른 점들과 그 빛을 받고 있는 남자의 실루엣도 함께 그려졌다. 붓터치가 너무 세밀하게 쌓여서인지 마치 물감이 아직 다 안 마른 듯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모서리에 작게 ‘ㅈㅣㄴ’ 이라 새겨진 서명이 뒤늦게 보였다. 사회복지사의 말을 듣고 진우택에 대해 검색했을 때 이미 봤던 그의 시그니처 서명이었다.
“아, 이거 할머니 오빠 되시는 분이 그린 거예요?”
“아니. 이거는, 그니까 사실은 이것도, 다, 내가. 내가 그렸어.”
내내 당당하던 백화는 몇 차례 말을 더듬고서는 갑자기 눈매를 닦기 시작했다. 놀란 내가 얼굴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애써 멋쩍게 웃었지만, 웃음으로 참아지지 않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등을 작게 토닥이며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의 눈물을 진정시키는 일은 처음이라 서툰 기다림이었다.
백화의 호흡이 가라앉는 동안 수납장에 액자와 함께 들어있었던 종이 봉투를 꺼내자 짧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권운입니다’ 로 시작된 편지는 ‘오빠의 죽음은 유감이지만 그와 별개로 이제는 진화백이 본인의 그림들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로 끝이 났다. 나는 내가 정리한 백화의 상황을 그녀의 입으로 확인받고 싶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백화는 이제 되려 나를 진정시키며 돌아가자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 부탁이 있으니 서둘러 나가자고 일어섰다.
“아가씨야, 나 답장을 쓰고 싶어. 근데 내가 그림만 그리느라 한글을 다 못 배워서...”
갑작스런 요청에 종이도 펜도 가지고 있지 않던 나는 급하게 휴대전화를 키고 메모장에 들어갔다. 걸어가는 길에 할머니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서 조심스레 준비한 말들을 읊었다. 평생을 이 문장들만 마음으로 쓰고 지우며 다듬어 온 사람처럼 한 번의 뜸들임도 없는 발화였다.
*
운 선생께.
한국에 오신다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한국에 돌아와 전시회를 하신다고요. 만약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68년 8월 이후 56년만이겠네요. 저를 알아보실까요. 모든 걸 다 기억하는 저는 아마 운 선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독일 유학 시절에 휴학을 하여 한국에 잠깐 내려오셨었죠. 더운 여름날 오빠의 초대로 우리 집에 온 운 선생을 처음 봤을 때, 긴장한 제게 너그럽고 깍듯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들을 많이 봤지만 운 선생만큼 허영심 없고 순수한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오실 때마다 제게 작은 그림도 선물해주셨는데 모두 잃어버리고 딱 한 장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오빠가 집 앞 몽돌해변에 낚시대를 두고 왔으니 찾아오라고 제게 시켰었고, 운 선생이 밤엔 위험하니 같이 가주겠다고 따라나섰던 날의 그림입니다.
그날, 해안가를 걸으며 사실 오빠의 그림들이 전부 제가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했을 때 제가 조심하지 못해 결국 들킨 것일까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원인은 술에 취한 오빠가 다 말해버린 것이었죠. 오빠는 사는 동안 술로 져 본 건 운 선생한테 뿐이라고 했으니 진화백이 오빠가 아닌 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권운, 당신이 유일합니다. 모든 걸 밝힐 생각이 없는지 제게 물으셨을 때 제대로 답하지는 못하고 그저 겁에 질린 채로 함구해달라 부탁드린 걸로 기억합니다. 운 선생은 제가 허락할 때까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오빠가 요절한 소식을 들었을 때 저에게 편지를 주셨지만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저와의 약속을 계속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본 밤바다는 참 아름답고 기이했습니다. 해변으로 떠밀려 온 해파리 떼들이 푸른 빛을 내며 쏘아다니는 꼴이 마치 물 속의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습니다. 신발 밑창으로 전해지는 물컹한 느낌 때문인지 걷는 내내 심장이 움찔거렸습니다. 해파리는 한자로 해월이라 바다의 달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운 선생이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다의 달을 함께 밟고 있는 겁니다, 하고요. 우리는 즉석에서 바다의 풍경을 그려 서로 나눠가졌습니다. 운 선생이 보낸 편지와 함께 제 그림도 잘 받았습니다. 둘 다 서로의 그림을 잃지 않고 간직해 왔다는 사실이 새삼 좋았습니다. 며칠 전, 우리 세대 화가들의 작품을 다룬 전시가 있다하여 혹시나 하고 갔다가 운 선생의 작품을 봤습니다. 당신도 그 바다를 다시 간 적이 있었던 거지요. 무채색 뿐이었지만 제 눈에는 분명 푸른 빛이 보였습니다. 다시 뵙게 된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선생의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권운 선생, 저와 둘만 있을 때는 진화백이라 불러주어서, 기억에 남을 만한 가슴 뛰는 추억들을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진화백 드림.
아! 신기한 점을 말씀드릴게요. 지금 이 글은 팔에 바다의 달을 새긴 한 아가씨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심장도 없이 유유히 떠다니는 존재라서 멋있어보였다더군요. 우리도 언젠가 심장이 없는 투명한 몸으로 떠다니게 되겠지요. 그때 다시 몽돌해변을 같이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 문장을 받아적었을 때는 지하철까지 타고 이미 반 정도 지난 상태였다. 추신의 내용은 낯간지러워 못 적겠다고 했지만 백화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남기게 되었다. 휴대폰에 적힌 글씨들을 물끄러미 보는 백화의 떨리는 표정은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현재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제가 진화백을 알게 된 두 번째 사람인 거죠?”
“맞네, 맞아. 아가씨가 2등이야.”
“친구 러브레터 대필해주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친구 아니었어, 아가씨? 참, 이럴 게 아니라 아가씨도 이름 알려줘. 이름으로 불러줄게.”
“최유경이에요.”
“그래, 경아. 고맙다.”
나는 어쩌면 백화가 항상 건네준 고맙다는 인사가 그녀를 이렇게 끈질기게 쫓게 만든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나름 떠들썩했던 일명 ‘백화 배회 사건’이 종결된 후, 한 달의 단기 알바도 끝이 났다. 백화의 섬망 증세는 다행히 장기간 복용하던 약을 한동안 먹지 않아 생긴 일시적 증상으로 결론이 났다. 백화는 운 선생을 당당히 볼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함께 권운의 전시회를 보러 갔고, 나는 먼 발치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봤기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나는 아예 이색적인 직업을 가져보겠다는 엉뚱한 도전 의식이 생겼다. 그 결과로 등대 관리직 공무원 선발에 성공했을 때, 백화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꽃집에서 가장 비싼 꽃다발을 사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어쩌면 나도 수중의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자랑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특별전 전시장 입구에서 전시의 주인공인 그녀를 만났을 때, 백화는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했다. 그것은 내가 본 자기소개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자기소개였다.
해 뜨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반성의 시간으로 쓰겠어요.....🤦♀️
진백화 남매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는데 더 재능을 보였던 건 백화였어요. 장남인 우택은 성장과정에서 점차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미술 실력도 부진하게 됩니다. 흥해도 장남이 흥해야 한다! 라는 썩은 사상을 가진 아버지는 백화의 그림을 우택이 그린 것으로 속이자는 결론을 냅니다. 결국 백화의 그림으로 데뷔한 이후 우택은 성공에 눈이 멀어 동생의 그림을 호시탐탐 노렸고 결국 백화는 화가로서의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찌저찌해서 결국 노년기에 들어서라도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되찾고 다시 붓을 잡는 백화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어요.
갑분 로맨스, '나'로 나오는 유경의 서사 실종, 드라마 막화 '3년 후' 스러운 결말 등등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서 저를 마지막까지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도 나름 인물들 관계성은 괜찮지 않았나 싶슴다 헿
이렇게 소재 정해서 쓰는 거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것 같아. 가아끔 한 번씩 해도 좋겠다고 생각!!